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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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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4 15:41 도시와스토리텔링

인류문명과 함께 탄생한 도시는 중간에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인간의 삶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나라마다 도시를 나누는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우리나라만 해도 인구의 90%가 도시에서 살아간다. 이미 국가보다 더 유명한 도시들이 상당수 등장했고, 영향력 또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물론 문명 초기의 도시가 지금의 도시와 같을 수는 없다. 신화의 시대가 저물면서 더 이상 성직자가 도시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됐다. 산업혁명 이후로는 도시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었다. 신전의 크기 대신에 경제력의 크기가 도시의 상징이 됐다. 매스미디어가 등장하며 도시간에 다른 것 못지 않게 같은 것도 크게 늘어났다. 교통이 발달하고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개인이 느끼는 도시의 소속감도 크게 옅어졌다.


이야기에 대한 현대도시의 이상한 열정


하지만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이야기에 대한 도시들의 열정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도시의 기원을 더듬고, 도시를 거쳐간 인물들과 경관, 그리고 사건과 사고들을 샅샅이 훑는다. 신전에 필적할 만한 랜드마크를 도시 곳곳에 채우고, 시시때때로 다양한 축제들을 열며 도시의 콘텐츠를 채운다. 이야기만 두고 봤을 때 신화가 지배했던 고대 도시에 못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와 도시와의 관계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본래 도시는 생존을 위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야기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현대 도시,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도시는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분히 '도구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마케팅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쉽게 말해 '솔깃한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특정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도시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이야기는 도시의 사활이자 도시 그 자체였는데, 현대 도시의 이야기는 장식이자 수단이 되었다.




수단이 된 이야기는 그 대상이 달라진다. 도시 구성원이 아니라 이야기의 목적이 향하는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도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이야기라면 도시에 공장이나 회사를 세울 기업가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상권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그곳에 와서 돈을 쓸 사람들이 대상이 될 것이다. 관광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그곳을 찾을 관광객이 대상이 될 것이다.


도시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도시 브랜드는 대부분 ‘외부 사람’의 평가를 가리킨다. 시민들이 자기 도시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따위는 도시 브랜드 가치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스토리텔링도 바깥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그 도시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다 좋게 평가하도록 고안된 이야기들인 셈이다.


도시 이야기에 대한 이런 외부지향적 태도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1997년 IMF 이후에 급속하게 확대됐다(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지금처럼 쓰이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IMF 탈출이 지상목표이던 시절, ‘부자되세요’가 덕담이 되던 시절, 기존의 모든 가치들은 돈으로 치환됐다. 이야기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 이야기는 도시 경제에 기여한다고 간주될 때에만 도시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찾아서


그러나 도시의 이야기는 본래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도시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 도시에 돈 쓰러 오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도시 구성원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를 통해 함께 확인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대 한국 도시의 이야기들은 지금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을 배제하고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대신 어딜 가나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건물,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축제, 비슷한 제도, 비슷한 경관들로 넘쳐난다. 서울에 사나 창원에 사나 광주에 사나 강릉에 사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도시마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정작 도시는 어슷비슷하다. 


그렇다고 고대처럼 도시마다 신전을 세우고 각자의 신을 떠받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대도시가 현대도시보다 우월하다는 말도 아니다. 1만년을 넘게 지나오며 도시 또한 놀라운 진보를 거듭했다. 가장 큰 성과라면 임금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되는 도시 체제가 상식이 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다시 신화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며 도시를 만들 때 이야기를 함께 창조한 이유를 곱씹어보자. 이야기는 도시를 멋지게 치장하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안팎으로 닥치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도시가 품고 있는 좋은 이야기는 빛을 발한다. 좋은 이야기는 도시공동체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인도한다. 따라서 좋은 이야기를 가진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의 운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위 스토리텔링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홍수에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지금의 도시 이야기는 철저하게 도시 구성원을 배제하고 있다. 시민이 이야기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관청의 이야기에 동원되는 ‘숫자’로 전락했다. 목적을 위해 가공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정작 시민들의 이야기는 외면 받는다.  


한편 도시의 이야기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시민들은 자기 도시를 자주 폄훼하는 데서 존재감을 찾기도 한다. 도시 정부는 시민을 외면하고, 그만큼 시민은 도시를 깎아내리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정작 시민들의 마음 속에는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사상누각 같은 도시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도시 자체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미래 또한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도시의 이야기를 냉정하게 들여다 보자. 우리 속에 어떤 이야기가 살아남아 있는지, 남아 있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사라졌다면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를 고민하자. 도시 마케팅이나 도시 브랜드 따위는 잠시 접어두자. 먼저 우리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시민이 누구인지부터 살피자.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방도를 찾아보자. 관청이나 관광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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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