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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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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6 15:48 문화정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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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5 15:54 문화정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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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2 10:18 문화정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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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16:20 문화정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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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09:29 문화정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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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13:38 문화정책이야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글로벌스타일이 됐다. 그의 뮤직비디오가 지난 7월 15일 처음 공개되고 한달이 채 되기 전에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고, 지금은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를 2억 6천만회나 넘긴, 올해 지구상의 최고 히트작이 될 것 같다.


음원시장도 강타하고 있다. 세계 디지털음악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아이튠즈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고, 전통의 빌보드 차트 싱글 부문에서도 1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앞으로 더 오를 것 같다). 미국의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에 올랐고, 전세계 가수들의 꿈이라는 MTV 시상식 무대에도 초청받았다.


싸이로선 행복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할 거다. 국내 팬 상대로 재밌자고 찍은 뮤직비디오가 이렇게 히트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설령 해외 시장을 고려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그래 그런지 그의 인터뷰는 온통 고마움뿐이다. 지난 20일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거기서 그는 "내가 지금 이런 시간과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 국민들이 날 여러 차례 용서해줬기 때문이다"며 모든 영광을 국민들에게 돌렸다. 왜 아니겠는가? 대마초 정도는 가수들의 통과의례라 치더라도 병역비리는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어떤 가수는 군입대와 관련해 말 한 마디 잘 못했다가 10년이 넘도록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싸이가 언급한 ‘용서’라는 표현이 생선 가시마냥 목에 탁 걸린다. 용서? 누가 누구를? 누구의 무엇을 용서했다는 건가?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가수 노릇 하려면 국민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 나라인가? 뒤집어 말해 소위 ‘국민’이란 사람들 눈밖에 나면 내맘대로 노래도 못 부르는 나라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용서라는 말에서 ‘검열’의 뉘앙스를 느낀 거 같다. 공권력이 칼자루를 움켜쥐고 온갖 노래에 난도질을 해대던, 가사가 천박하다고(조용필-나의 노래), 왜색이라고(이미자-동백아가씨), 대통령 앞에서 ‘네가’라며 반말했다고(윤복희-여러분), 창법이 수준미달이라고(들국화-그것만이 내세상) 방송에서 퇴출시키던 그 시대가 떠오른 거다.


옛날처럼 공권력을 동원해 노래에 시비거는 사례는 크게 줄었지만(이번 정권에선 늘어났다), 그 관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개 윤리위원회 대신 ‘국민 감정’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등장하더니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창작활동을 옥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대중검열’이라고 부를 만하다.


혹자는 한국 사람이 ‘한쪽으로 쏠리는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음악이, 미술이, 공연이, 문화 전체가 다양하지 못하다고 획일적이란다. 몇몇 스타와 소수의 기획사가 문화시장을 다 잡아 먹는 게 그래서 당연하단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문화시장이 승자독식의 정글이 된 게 과연 국민성 탓일까? 사실은 국민 감정을 앞세운 대중검열 탓 아닌가?


싸이는 ‘대중검열’에서 용케 살아남았다. 처음부터 잘나거나 착한 ‘척’하지 않아 괘씸죄를 면한 게 일단 컸고, 김장훈이라는 착한 형님을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하지만 싸이를 높게 평가하는 건, 그 과정에서도 ‘자기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데뷔곡 ‘새’에서 보여줬던 기발하고 통쾌한 음악을 이번 강남스타일에 기어이 되살려내 오늘의 즐거움을 안겨준 것 아닌가. 따라서 감사는 오히려 우리가 싸이에게 해야 한다.


싸이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한류와 케이팝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대중검열의 허들을 싸이처럼 뛰어넘지 못하고 잊혀져간 이땅의 숱한 아티스트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좀 더 품어주고, 그들 음악을 좀 더 관용했더라면, 이땅의 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국민의 용서 따위 받지 않아도 자기 음악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일까?


* 경남도민일보 '아침을 열며'에 실린 칼럼입니다. 신문 게재문 : http://goo.gl/wuv3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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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9 13:40 문화정책이야기

(3) OSMU 프레임


문화산업 담론을 박제화시킨 세 번째 요인은 바로 OSMU 프레임이다. OSMU, One-Source Multi-Use 라는 이 용어는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산업 정책을 입안하고 사업을 개발하는 데 그야말로 '금과옥조' 또는 '핵심교리'처럼 떠받드는 대원칙이다. 이 말이 회자된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일단 OSMU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면, 원소스(One-Source)란 원작을 일컫는 말이다. 만화든, 소설이든 특정 콘텐츠의 원작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멀티유즈(Multi-Use)는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2차 콘텐츠들을 가리킨다. 영화,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 게임 등 원작의 명성에 힘입어 비즈니스 확장 차원에서 다른 장르로 재창조된 작품들이다.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의 신화격인 '리니지'를 예로 들어보자. 그 게임의 원작이 바로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쨌든 이 같이 원작이 히트하고 나서, 혹은 원작의 히트와 함께 다른 장르의 콘텐츠로 비즈니스의 영역이 확산되는 현상, 혹은 그것을 추구하는 전략을 두고 OSMU라고 통칭했다. 


 문화콘텐츠교의 핵심 교리 OSMU 


우리나라에선 '아기공룡 둘리'가 OSMU의 대표선수로 오랫동안 주목 받아 왔다. 1983년에 어린이 만화잡지 '보물섬'에 처음 연재되어 인기를 끌자 1985년 '롯데삼강 둘리바'를 시작으로 각종 라이선스 상품이 쏟아지기 시작했고(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5년에는 만화단행본으로 출판돼 만화출판시장에서 한 획을 그었으며, 1987년에는 KBS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둘리의 배낭여행'이라는 에듀테인먼트 콘텐츠가 처음 만들어지고, 1996년에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얼음별 대모험'이 상영돼 그해 30만명에 가까운 관람객을 불러들였다.

  둘리의 OSMU를 설명하는 자료(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그밖에도 2001년에는 뮤지컬이 만들어지고, 라이선스 미용실도 오픈했으며, 부천에선 주민등록증과 함께 '둘리거리'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선 호적등본까지 만들어졌다. 이처럼 둘리는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산업의 대표적인 OSMU 성공사례가 되면서 200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후배 콘텐츠들의 전설적인 모범이 되었다. 


둘리의 OSMU 성공사례가 널리, 반복적으로 소개되면서 정부의 지원도 덩달아 이 프레임에 맞춰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사업계획서를 심사할 때 'OSMU' 항목을 만들고 거기에 상당한 점수를 배점하는 거다. 당연히 정부의 지원을 받고 싶은 기업은 OSMU가 쉬운 형태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원작이 성공하기만 하면 OSMU를 통해 떼돈을 벌겠다는 장밋빛 청사진도 함께 내놓는다. 


참신한 콘텐츠가 등장하기 어려운 이유 


그런데 둘리를 포함해 세계적인 OSMU 성공사례(키티, 미키마우스 등)들을 벤치마킹하다 보니 참신한 콘텐츠들이 등장하지 못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실제로 정부의 콘텐츠진흥 사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2000년 대 초중부터 이렇다 할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정부 지원 이전인 2000년대 초반에 풍성했던 콘텐츠('마시마'로 등이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엽기적인 그녀' 등의 인터넷 소설)와 비교해보면 크게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OSMU 성공사례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상품화가 쉬운 캐릭터 모양,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다자 캐릭터 구조, 소비자들이 반응을 보이는 캐릭터 특징, 소비자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이야기 전개방식 등. 그런데 정책의 방향이 기존 성공작에 내재돼 있음직한 이러한 유전자를 뽑아내 새로운 작품에 이식시키기를 강요하는 거였다. 


소비자 입장에선 어떨까? 눈에 보이는 캐릭터와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각기 다르지만, 보다보면 웬지 낯익은 작품이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슷비슷한 콘텐츠들이 난립이었다. 결국 새로운 느낌을 주는 데는 실패한 거다. 


사실 OSMU는 기획이 아니라 결과다. 콘텐츠가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이라는 거다. 이 생각은 사실 2000년대 초반에도 많은 사람이 하고 있었다. 당시에 전문가들은 "원작만 좋으면 OSMU는 따라온다"는 말들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정책결정자 대부분이 그렇듯 막연하기 짝이 없는 본질에 충실하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즉 'OSMU'에 집착했다. 그래서 조급하게 OSMU가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라고 닥달한 거였다.

 

 전남 장흥군의 홍길동 캐릭터 


지역서도 OSMU? 


서울에서 이런 프레임에 빠져 있으니 지역도 아무 비판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전남 장흥의 홍길동 프로젝트를 혹시 기억하시는지? 우리나라의 지역 문화콘텐츠로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역 차원에서 콘텐츠에 대한 인식을 갖고 지역 마케팅에 활용한 사례로선 모범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또 축제와 테마파크 부문에선 나름의 성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장흥군은 홍길동 콘텐츠사업을 펼치면서 캐릭터 라이선싱, 뮤지컬 제작, 애니메이션 제작, 테마파크 건설 등 철저하게 정부와 산업계가 신봉한 OSMU 교리를 철저하게 따라갔다. 문화부와 행자부 등의 중앙부처로부터 수십억원 대의 예산을 따낼 때의 핵심적인 논리도 바로 OSMU를 통한 비즈니스효과 극대화였다. 


그런데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의 결과는 어떨까? 홍길동의 OSMU 전략과 사업이 과연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OSMU 전략으로 탄생된 애니메이션, 캐릭터, 뮤지컬 콘텐츠들은 과연 지역경제를 위해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을까? 


장흥군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지자체에서는 뮤지컬 제작 붐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다. 지역에서 콘텐츠사업을 한다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들여 대형뮤지컬부터 만드는 식이다. 그때마다 들먹이는 논리가 바로 OSMU이다. 이제는 OSMU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앱스토어 덕분에 불세출의 글로벌 스타가 된 '앵그리버즈' 예를 들어보자. 이 게임은 핀란드에 있는 로비오 모바일(Rovio Mobile)이란 회사에서 만들었다. 본사는 헬싱키에 있고 2010년 기준으로 직원이 고작 17명에 불과했다. 2003년에 설립됐으니까 올해로 열 살이 됐다. 내수 시장은 우리나라의 1/5밖에 안 되고, 우리나라처럼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니 언어 핸디캡도 가지고 있다.


 


로비오가 앵그리버즈를 만들어내기 전에는 주로 대기업의 게임을 대신 개발해주는 그저그런 용역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앵그리버즈 하나로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대박을 터트렸고, 안드로이드폰에 이어 지금은 구글 크롬 등에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게임과 관련한 UCC를 만들어 유튜브에 공유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면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았다. 


성공요인 안다고 성공하나? 


그러자 할리우드에선 새로운 버전인 '앵그리버즈 리오'와 함께 '리오'라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고, 어느새 국내 대형마트에서도 앵그리버즈 캐릭터 상품이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앵그리버즈는 지금 당장 지구상에서 OSMU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콘텐츠가 아닐까? 그런데 과연 로비오 관계자들은 앵그리버즈를 개발할 때 OSMU를 고려했을까? 게임이 뜨기만 하면 바로 20세기 폭스사와 계약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을까? 캐릭터 상품 라이선스는 어떻게 체결하고, 영화 판권은 어떻게 계약할 건지를 염두에 뒀을까? 그리고 그런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정부기관을 찾아다니며 로비를 했을까? 


성공한 콘텐츠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는 건 유익한 작업이긴 하다. 그리고 그 정보를 공유해 새로운 창조자산으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요인이란 것도 사실은 결과이거나 그저 그 당시의 상황이었을 경우도 많다. 그래서 '분석'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어야 한다. 그 결과를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순간, 모두가 '과거'에 발목잡히는 꼴이 된다. 새로운 콘텐츠 비즈니스가 맞딱드릴 상황이란 건 예전 비즈니스가 겪었던 그 상황 그 조건대로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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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08.07 10:44 문화정책이야기

(2) 신화 프레임

 

우리나라서 문화산업 담론을 박제화시킨 두 번째 프레임은 바로 '신화 프레임'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우리나라에서 문화산업 관련 진흥정책이 본격적으로 돛을 올린 게 2000년대 초다. 정부의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정책을 집행할 기구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된 것도 2001년 8월이었다. 그리고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콘텐츠는 바로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였다.


쏘나타 프레임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쥬라기공원'(1993)과 '타이타닉'(1998) 이 두 영화가 했다면, 지금 언급할 '신화 프레임'은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앞선 두 영화가 우리나라서 문화산업 정책이 필요하다는 당위를 심어주었다면, 이번 두 영화는 우리나라 문화산업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이 두 영화에서 바로 '신화'라는 코드를 끄집어낸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 사회가 외면 또는 무시했던 신화와 설화에 대박 콘텐츠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둘 다는 모두 북유럽의 신화와 설화가 배경이 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우리도 우리 신화와 설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관련 소스를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신화 프레임이 낳은  635억짜리 '문화원형 사업'


그렇게 탄생한 사업이 바로 2002년부터 시작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우리문화원형의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이었다. 이 사업에 대해 진흥원 측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문화원형을 소재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 테마별로 디지털 콘텐츠화하여 문화콘텐츠산업에 필요한 창작 소재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시행되는 사업입니다." 


좀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문화에서 설화, 신화, 음악, 건축, 풍속 등 이른바 문화원형에 해당하는 콘텐츠들을 디지털로 재가공해서 문화콘텐츠산업계 전체가 쉽게 활용케 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라고 보면 된다. 


 

 

이 문화원형 사업의 성과로 언급된 콘텐츠는 바로 영화 '왕의남자'와 케이블 드라마 '별순검'이었다. 전자는 영화 제작 과정에 '조선왕궁을 디지털로 재현한' 문화원형 콘텐츠가 세트 제작에 활용됐고(경복궁에서는 촬영할 수 없기에 세트장을 지어야 했는데, 그 과정에 이 콘텐츠가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후자는 '조선시대 검안록'을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어 놓은 것이 실제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활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업 방식에 문제가 많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201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최문순 의원(현 강원도지사)은 이 사업을 두고 '속 빈 강정'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사업의 목적은 '산업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효과가 매우 미약했다'는 게 최의원의 평가였다. 이때 배포된 보도자료의 내용 일부를 인용해 보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이재웅)이 매년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아온 '문화원형 디지털화 사업'이 '속 빈'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9년 동안 무려 635억 4,000만원이 투입됐지만 이를 활용한 콘텐츠 매출액은 고작 7억 4,200만원(온라인 구매 8,900만원, 직접구매 6억 5,3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 됐다. . . .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했지만 활용 건수가 단 한 번도 없는 과제가 전체 181개 가운데 52개(29%)나 됐다. . . . 애초 복원된 문화원형을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 또한 확인 결과 '용두사미'였다. 게임에 활용된 과제는 11개(6%), 애니메이션은 9개(5%), 캐릭터는 8개(4%)에 불과했다."

 

 

 

9년간 635.4억원이면 사실 엄청난 예산이다. 물론 토건 예산으로는 겨우 건물 하나, 다리 하나 값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문화부문 예산 단일 항목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물론 여기서도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같은 건축과 토목 부문은 뺀 것임). 그런데 이런 예산이 단일 항목 사업으로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참여정부, 그리고 MB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신'신화 프레임'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세계 유수의 대박 콘텐츠들이 신화와 설화에 근거를 둔 것들이니까, 역으로 우리의 신화와 설화를 아무나 접근하기 쉽게 디지털콘텐츠로 재창조해놓으면 머지 않아 우리들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같은 세계적인 대박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에 기초를 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보시다시피'였다.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다고 할까?

 

지역 설화 총출동?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 프레임'은 비단 문화부 정책뿐만 아니라 지역 전반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지금도 전국 각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토리텔링 관련 사업들을 보면 대부분이 '지역신화'나 '지역설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아니라면 '지역 출신 인물'에 토대를 둔다. 다분히 '과거지향적'이다. 


물론 중앙정부에서 무슨 지침을 내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세우는 정책이 그러하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정보와 자료들이 그러하니 지역은 그걸 거의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지역에서 주로 진행하는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예로 들어보자. 


알려져 있다시피 각종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전국의 아마추어 작가들과 문화콘텐츠 관련 대학생들에게는 '기회의 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이벤트를 통해 정식 작가로 활동하기를 꿈꾸는 거다. 그런데 지역에서 진행되는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들을 보면 대부분 '지역 설화'에 바탕을 둔 작품들이다. 아예 공모 단계에서 주최측이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공모전(2009)

 

지역의 설화가 다른 지역과의 차별점을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생명력이 취약한 지역 설화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향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지역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설화들을 어렵사리 살려내봐야 호응을 얻지 못하고 금방 잊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작업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말한 '문화원형' 사업처럼 획일적으로 '몰빵'하듯이 하는 건 곤란하다는 뜻이다.

 

오늘 이야기, 살아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이처럼 우리의 시각이 과거로만 향해 있는 동안 현실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역이라는 맥락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기껏해야 , '지금은 라디오시대', '여성시대' 류의 라디오 사연 프로그램, '6시 내고향',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방송국 프로그램 정도다. 이런 데서야 1년에 한 두번만 나와도 경사이고, 그나마 한 번 소개되면 다시는 기회를 잡기가 힘들지 않던가.

 

이제는 문화산업에서 '신화 프레임'을 포기할 때가 됐다. 신화 자체를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신화가 문화산업의 황금열쇠라도 되는 듯한 이 구닥다리 프레임을 포기하자는 거다. 대신 살아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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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08.01 16:50 문화정책이야기

우리나라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1990년대말 국민의 정부(DJ정권)이 탄생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전에도 문화산업에 관한 정책과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산과 정책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낸 건 국민의 정부 때부터였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문화산업 부문에 대한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대선 공약이었던 '문화부문 예산 1% 확보'를 지켰다.


하지만 당시 문화산업정책에 대한 비전과 철학은 그렇게 충실하지 못했다. 문화산업에서 특히 '산업'에 방점이 찍혔다. 문화산업은 항상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이라고 칭송 받았고, 그래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종과 비교 또는 경쟁 상대가 되었다. 매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부가가치를 얼마나 만들어내는지, 고용창출효과가 얼마이고, 산업적 파급효과가 얼마인지를 밝혀내는데 행정력이 집중됐다. 그 이전까지 산업적인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던(해도 미미하게 했던) 문화부 관료들은 오랫동안 거대 기업들을 거느리며 공력을 쌓아올린 경제부처(산업자원부나 정보통신부 등) 관료들과 힘겨운 경쟁을 해야 했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데이터들로 문화의 산업적 효과를 강변해야 했던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산업 담론은 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경제부처와 힘겨루기를 하기 위한, 다시 말해 '일반 제조업과 서비스업보다 콘텐츠산업이 훨씬 부가가치가 높고 파급효과가 크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프레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부 부처에서 만들어진 그 프레임은 경제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지, 문화적 생산성, 창조성을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정책적으로도 주로 돈 될 만한 콘텐츠, 수출 될 만한 작품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박세리가 나와 골프 붐이 일어나고, 김연아가 등장해 피겨스케이트 붐이 일어난 것처럼, 성공한 콘텐츠가 등장하면 산업 전반이 자연스럽게 발전할 거라고 믿었다. 스포츠와 문화가 같을 수 없는데, 왜 우리나라 문화산업 정책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경제적인 성공'에 목을 매달았을까?


이렇게 된 데는 일종의 '원죄'가 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문화산업이란 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살펴보자. 


(1) 쏘나타 프레임


1993년 전세계를 휩쓴 영화가 한편 있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다. 바로 이때 향후 20년 여 가까이 우리나라 문화산업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 프레임 하나가 탄생한다. 나는 그것을 '쏘나타 프레임'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용은 간단하다. 영화 '쥬라기공원' 한 편이 벌어들인 돈이 '쏘나타 150만대를 수출한 효과와 맞먹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신문 칼럼으로 소개되었고, 심지어 당시 대통령이었던 YS가 직접 인용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 문화산업 담론을 이끌어낸 영화 '쥬라기공원'

 

영화의 흥행수입을 쏘나타 수출에 빗댄 비유는 사회적으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 결과 그해(1993년) 정부조직(문화부)에 처음으로 '문화산업국'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산업 정책을 국가정책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한 대통령은 DJ였지만, 그와 관련한 정부조직을 처음 만든 이는 YS였다. 하지만 예산이나 성과 면에서 그렇게 뚜렷한 실적을 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기업들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이때를 시점으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일제히 콘텐츠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은 물론이고, 현대, 대우 등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각자 콘텐츠 관련 사업부서를 만들고 음반, 영화, 비디오 등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쥬라기 공원 같은 성과는 내지 못했다. 다들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시행착오가 많았고(이들 대기업들도 제조업 위주로 성장해서 문화 비즈니스에는 초짜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1997년말에 IMF가 터지면서 너도나도 철수하기에 바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대표적인 대기업 콘텐츠사업단이었던 삼성영상사업단도 이때 사업을 접었다.

 

이처럼 쏘나타 프레임은 기업 부문에선 IMF를 통해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지만, 정부 영역에서는 오히려 더 강화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0년대 말에도 바로 이 프레임에 근거해서 정책이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YS정부 시절에 최초로 문화산업을 주목하게 한 콘텐츠가 '쥬라기 공원'이었다면, DJ정부 시절에는 '타이타닉(1998)'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물론 이때도 쏘나타가 콘텐츠산업의 파급효과를 증명하는 지표로 등장했고, 각종 언론에서 칼럼과 기사로 재생산됐다.

 

이처럼 쏘나타 프레임이 만연하면서 우리는 문화상품을 '돈'으로 환산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무엇이든 조금만 흥행이 되면 쏘나타부터 갖다 붙이는 식이다. 우리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쉬리'는 EF쏘나타 3,119대, '공동경비구역 JSA'는 2,964대, '친구'는 4,860대의 생산효과가 있다는 거였다. 쥬라기공원이 상영된 1993년부터 따지면 근 20년간을 이런 식으로 콘텐츠산업을 사유해왔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슬로건의 탄생

 

그 결과는 '대박이 아닌 문화상품에 대한 무시 혹은 무관심'이었다. 쏘나타 수천대를 생산할 정도의 효과가 아니면 명함을 내밀지 마라는 분위기라고 할까? 


세상 사람들이 오로지 대박상품에만 열광하는 건 아니다. 대박은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그밖에도 수많은 문화상품에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문화적으로 풍성하다고 말한다. 다양성, 그게 바로 문화의 본질 아니던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슬로건을 기억하시는지. 소액다건 식의 나눠주기 지원이 아니라 될 놈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해 스타를 만들겠다는 관점이 여기에 담겨져 있다. 여기서 말한 소액다건식이란 기존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가리킨다. 심사를 통해 차등 지원하면 잡음이 많이 생기니 소액이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기관에게 혜택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물론 문제가 없지 않았다. 오로지 지원만 받아서 연명하는(?) 단체들이 많이 양산되기도 했다. 명색이 '산업'인데, 이런 식의 지원은 곤란하다는 게 당시 정부의 생각이었고,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나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지원 방식이 정책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돼버린 게 문제였다.

 

세상에는 굳이 대박이 아니어도 되는 콘텐츠들이 많이 필요하다. 소수가 보더라도 굴러갈 수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 정도의 반응만 있어도 창작생활을 이어갈 아티스트와 회사를 경영할 기업도 있다.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서 "대박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외쳐대는 꼴이니, 이들 콘텐츠와 기업들이 설 자리가 빠르게 없어지는 거다.

 

대박 신화에 질식되는 문화 다양성

 

가요계를 보자. 가요계는 아이돌, 대형기획사가 주름잡고 있다. 최근엔 K-POP이 인기를 끌며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반면 인디음악인들의 설자리는 매우 제한적이다. 최근에 '톱밴드'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약간 숨통은 터졌다고들 하지만, 그마저도 특정 장르에 국한된다. 다양한 계층과 연령, 그리고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음악을 즐기기에는 우리 음악시장은 지극히 편중되어 있다.


영화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관이란 곳은 대기업의 손아귀에 죄다 편입된지 오래다. 그곳에선 자기네(혹은 계열사)가 투자한 영화를 우선적으로 올린다. 주판알 튀겨보고 아니다 싶으면 순식간에 내려버린다. 기다려주는 법이 거의 없다. 그동안 인디영화를 지원하던 시스템도 이번 정권 들어 크게 망가졌다.


2010년 11월에 세상을 떠난 인디뮤지션 '달빛요정'과 2011년 2월에 유명을 달리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을 다들 기억할 거다. 이들의 불행이 과연 지난 20여년 간 추진해온 정부의 '대박 위주 문화산업 정책'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문화가 중형 세단 쏘나타의 생산, 수출효과와 비교되는 순간 우리 모두 돈벌이의 질주에 눈이 먼 것 아니었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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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07.10 12:57 문화정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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