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1.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 다음주 20일에 경기도 광명시에서 제1회 광명소셜포럼 개최

- 지자체 차원에서 소셜을 테마로 대중적인 포럼을 개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 특히 포럼 주제가 ‘소셜미디어의 어제와 오늘, 99%를 위한 적정마케팅’



2. 99%를 위한 적정마케팅이란 테마가 재미있는데요, 무슨 뜻인가요?


- 우리나라에서 소셜미디어가 지나치게 기술적, 기능적 측면 위주로 소개된 측면이 강함

- 마치 가전제품 사용설명서처럼 실제 사용하는 거에 비해 훨씬 과한 정보 제공

- 이용자 입장에선 사용도 하기 전에 기능습득에 질려버리는 상황 연출

- 대다수의 사람이 소셜미디어 전문가가 되자는 게 아니라, 대다수에게 필요한 소셜미디어 활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



3.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 세 가지 강연이 진행됨. 첫번째는 ‘공공기관과 소상공인이 활용하는 소셜미디어의 어제와 오늘’, 두번째는 ‘99%를 위한 적정마케팅이란?’, 세번째는 ‘나에게 맞는 적정마케팅 사례 공유’

- 이들 내용은 기존에 소셜미디어를 하는 게 무조건 좋다는 식의 계몽성 교육에서 탈피

- 지역이란 맥락, 특히 지역 소상공인들을 위한 소셜미디어 활용법에 초점

- 특히 광명시는 2012년 5월부터 지역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셜상점’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음


4. 소셜상점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는데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 광명시가 지역 소상공인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

- 소셜미디어 활용법, 소셜미디어 활용사례, 마케팅방법 등 강좌 개설

- 지난해 2기까지 총 38명 수료, 상인간, 상인과 손님간 커뮤니케이션 활발



5. 광명시가 이 분야에선 앞서나가는 거 같은데요,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매우 강함. 취임과 함께 소셜미디어 친화적인 정책포탈 ‘생동감’ 구축

-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블로그인 ‘광명시민공동프로젝트’ 

- 특히 스스로 ‘소셜특별시’라고 도시 브랜드를 천명



6. 경남지역은 어떤가요?


- 2년 전에 광명시와 유사한 ‘소상공인을 위한 소셜플랫폼 구축사업’을 경남도와 창원시에 제안한 적이 있음

- 아울러 ‘소셜미디어와 지역혁신’이란 테마의 글로벌콘퍼런스 제안도 있었음

- 이야기는 여러 차례 오갔지만 끝내 실현되지는 못함

- 아직까진 지자체와 공기관의 정책홍보 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



7. 소셜미디어가 지역발전에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 공동체의 문제는 미디어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음

- 미디어는 혈관 같아서 구석구석 막히지 않고 잘 흘러야 전체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음

- 소셜미디어는 지역여론, 공동체 내 소통의 동맥경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현재로선 유일한 대안

- 단순히 정책홍보로만 볼 게 아니라 지역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재작년 가을 즈음이었다. 마산원도심 스토리텔링사업을 막 시작하고서 같은 개념의 다른 사업을 발굴기 위해 여러 자치단체와 기관을 만나 한창 설득하고 다닐 때였다. 그때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소셜 플랫폼’이었다. 물론 소상공인 혼자서 독자적인 소셜 플랫폼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우니 공공부문에서 도와주자는 내용이었다.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바탕을 깔고, 소상공인 개개인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향상시켜 소비자와의 소통에 적극 참여케 하여 소상공인 친화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제안서를 작성해 여러분을 만났다. 지역에서 소상공인 대출사업을 주도하는 경남신용보증재단에서부터 경상남도와 창원시의 경제담당 국장들을 만나 직접 설명했다. 지역 소상공인 정책을 책임지는 분들이었고, 매년 수천억원 대의 예산을 주무르는 곳이었다. 그 예산의 0.1% 정도만 투자해도 소상공인을 위한 소셜플랫폼은 닻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메이라는 없었다. 준비가 덜 된 탓인지, 소셜미디어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했던 탓인지 “검토해보겠다”는 공무원 특유의 멘트만 되돌아왔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면, 최소한 열 명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던가? 나중에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그 시점에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지자체가 여럿 있었고, 그 중에서 특히 경기도 광명시는 2년 전에 경남도 등에 제안했던 것과 거의 유사한 내용인 ‘소상공인을 위한 소셜 인프라 구축’을 주요 정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광명시는 아예 스스로 '소셜특별시'라고 선언했다. 2011년 10월에는 소셜댓글 등 소셜미디어와의 연계성을 높인 정책포탈 ‘생동감’과 시민블로거와 함께 하는 ‘광명시민공동프로젝트’라는 정책블로그도 선보였다. 그리고 지난해 5월 25일에는 ‘소셜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소셜미디어 활용 마케팅 교육이 시작됐다. 기수별로 30명씩 벌써 6기를 마쳤으니 180여명의 상인들이 지역에서 소셜미디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 ‘소셜잇수다’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 소셜상점 상인들 인터뷰가 소개됐는데, 그 어떤 소셜미디어 전문가보다 생생한 사례와 체험담이 쏟아졌다.


*소셜잇수다 - 광명시 소셜상점편 보기 http://www.bloter.net/archives/142947


광명시의 소셜상점 사례는 시대적인 흐름과 사회적인 수요에 맞춰 정책적인 뒷받침이 적절하게 이뤄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겠지만, 광명시가 이 분야에 전국적인 모범이 된 건 기정 사실이 됐다. 아무쪼록 광명시의 소셜상점이 성공해 이땅의 소상공인들에게 희망의 상장이 돼주기를 바란다.


다시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자. 광명시와 경남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사람 차이였을까? 광명시는 서울에 인접해 있으니 정보도 빠르고 우수한 인재도 많았기 때문일까? 천만에!  경남에도 이미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관의 지원 없이도 활동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합천에선 여행업을 하는 이동훈 대표가 대표적이다. 이미 3년 전 ‘파트모’(파워트워터모임)란 이름으로 지역에서 소셜미디어 모임을 주도했고, 최근에는 ‘스마트폰대학’을 열어 지역민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재를 털어 태블릿피시를 여럿 장만해 지역 어르신들께 임대하는 사업도 펼쳤다. 이대표는 현재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지역관광활성화를 주도할 사회적기업을 한창 설립하고 있다.


창원에는 ‘창원시민미디어센터’를 이끌고 있는 심재훈 대표가 있다. 오랫동안 시청자미디어 운동을 주도해온 심대표는 소셜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시민이 직접 콘텐츠는 생산하는 ‘나도 시민기자다’란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그 결과물로 나온 수료작 여섯 편을 지역민방에 상영하는 성과를 올린 바 있다. 그밖에도 파워블로거로,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영향력 있는 페이스북 이용자로 활동하는 분들이 지역에도 많이 계신다.


문제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관 지원 없이 민간 주도로 구슬이 보배로 꿰이는 사례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광명시처럼 적절한 시점에 적정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그 순간을 크게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지역에는 이미 반짝이는 구슬들이 많이 있다. 그 구슬을 꿸 안목이 아쉬울 뿐.


* 경남도민일보 '아침을 열며'(2013. 2. 13)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가기 - http://goo.gl/gwv8j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1. 창원시가 최근 야구장 부지를 진해 육대부지로 지정했는데요, 소셜미디어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왔겠죠?


- 창원시 관련 소셜미디어에선 굉장히 큰 이슈로 부각

-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성토 분위기인 듯



2. 주로 어떤 내용들이 많이 올라오는지요?


- 두 단어로 표현하면 미안함과 조바심

- 미안함은 창원시 결정에 대해 시민으로서 미안하다는 표현들임

- 조바심은 혹시나 NC가 연고지를 옮기면 어떡하나 하는 표현들이 주종을 이룸

- 특히 서울 고척동 돔구장이라든지, 이번에 10구단 등록에 실패한 전북 등 선택지가 많은 상태라 조바심은 더 커지고 있고, 실제 창원시민이면서 그리로 옮겨가라고 조언하는 분도

- 일부이긴 하지만 창원시 3개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선 필요한 조치였다는 평가도 있음



3. NC 다이노스는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요?


- 공식적인 보도자료와 인터뷰 외에 별도의 내용이나 댓글 등을 달고 있진 않음

- 다만 지난 수요일에 페이스북 페이지 대문이미지를 교체함

- ‘야구 자체가 목적인 NC다이노스의 꿈은 계속됩니다.’

- 이 문구가 창원시의 결정에 대한 구단의 대답이 아닐까 함

-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야구라는 변수만 가지고 판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게 아닐까 함



4. 말씀을 들어보니 소셜미디어 여론이 격앙돼 있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 야구장 부지는 시청사 부지와 함께 창원시가 통합되며 매우 예민한 이슈였음

- 부지선정 용역도 오랫동안 했고, 최종발표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음

- 그동안 당연히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을 텐데, 시민들, 특히 야구팬들은 여론이 수렴됐다고 느끼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음

- 특히 NC야구단 팬들이 가장 분노하는 대목은 시가 직접 발주한 타당성조사에서 최하위를 받은 장소를 선택했다는 것. 창원시가 스스로 명분을 저버렸다고 판단하는 듯

- 하지만 진해에 살지 않으면서도 창원시의 결정을 지지하는 분들이 꽤 있는 걸로 봐선 시간을 두고 설득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음



5.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여론 수렴을 했을 텐데, 왜 많은 분들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할까요?


- 방법론에 문제가 크다고 봄.

- 대체로 여론을 수렴한다면 전화여론조사, 공청회 및 세미나, 전문가간담회 정도가 진행됨

- 전화여론조사는 설문항목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라 조작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

- 공청회는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보다는 발표자와 토론자, 그리고 참석자의 구성이 변수

- 전문가간담회 또한 구성의 재량이 상당부분 주최측에 있음

- 결국 다양한 입장의 시민이 자유롭게 편안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할 채널이 매우 협소하다는 결론이고, 그래서 그런 여론수렴 과정에 대해 신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임

- 이미 우리는 누군가를 대표로 세우지 않아도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를 갖고 있음

- 이 채널이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기존 방식대로 소통을 고집하니 진의를 의심하게 되는 것임




6. 앞으로 여론수렴 과정에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 소셜미디어가 보편적으로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직접민주주의'가 새로운 화두임

- 예전에는 물리적, 공간적 제약으로 대의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상당부분 시민이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시스템이 가능해졌음

- 이번처럼 민감한 문제일수록 시민들이 여론형성에 참여해 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함

- 만약 이번 부지선정과 관련해서도 ‘성공적인 야구단 운영'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두고 성실하게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음

- 최근에는 이런 여론수렴 프로그램도 많이 개발되고 있음(ex : 500인 원탁토론)

- 이는 정치인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바야흐로 소셜미디어 시대다. 한국에서만 3,000만명 넘게 보급된 스마트폰이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지하철 풍경이 2~3년 새 확 바뀌었다. 카페 풍경도 바뀌었다. 심지어는 학교 풍경도, 집안 풍경도 바뀌었다. 함께 있어도 따로 존재한다.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손가락은 분주하다. 일행이 있어도 예외는 없다. 잠시 대화가 끊기면, 어김 없이 스마트폰이다.


걱정하는 목소리도 그만큼 많아졌다. 언론들은 ‘손바닥 안의 마약'이라며 중독현상을 경고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안에서 행복해 하는 사진과 비참한 자기 현실을 비교하며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난단다. 지나치게 들여다보다 목디스크와 안구건조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늘어나고 있단다. 교실에선 스마트폰 기종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도난사건도 자주 일어나고 있단다. 


이쯤 되면 악마의 기계가 아닐까 싶다. 관계를 파괴하고 존재를 고립시키며, 허상을 쫓게 하고 몸까지 훼손하니 말이다. 차라리 이 따위 기술이 없었던 시절이 나았다 싶기도 하다. 아무리 급한 연락이라도 우체국으로 달려가 전보를 날리는 수밖에 없었던(불과 20여 년 전 일이다), 그래서 회신이 오기까지 하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이 매우 인간적이었다고들 생각한다.


새로운 매체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하지만 일단 숨고르기..... 기억을 되돌려보자. 1998년에 모 통신사에서 한석규를 등장시켜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란 광고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는 휴대폰이 대중적으로 이제 막 보급될 시점이었다. 전화기가 손안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놓을 줄을 몰랐다. 휴대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다. 여기저기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신호음이 사회 문제로 9시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엄지족이라고 들어봤는지? 비싼 통화료 대신 저렴한 문자서비스로 주로 소통하는 사람들을 일컬렀다. 그때도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비슷했다. 시력저하에 손목과 손가락 관절에 염증이 생겨 병원 찾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는 거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전화'가 발명됐을 때도 비슷한 걱정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편지를 주고 받는 낭만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경고했다. 전화로 해결하면 되니 이웃간, 친지간 교류도 빠르게 사라질 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방향이었다. 사람들은 전화 때문에 더 자주 만나게 됐다고 한다. 소통이 늘어나다 보니 만나야 할 ‘이유' 또한 많아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당연히 새로운 현상을 야기한다. 거기엔 또 긍정과 부정적인 면이 뒤섞이게 마련이다. 기술을 보급하는 쪽에서는 장밋빛 미래를 강조할 거고,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쪽에서는 어두운 그늘을 부각시키려 할 거다. 그렇다고 양시론과 양비론에 기댈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미 현실 안에 들어와 있지 관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에 매몰될 게 아니라 흐름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1892년 벨이 뉴욕에서 시카고로 전화 거는 장면. 

당시에도 새미디어에 대한 기대 못지 않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미디어의 변화와 공동체


나는 ‘미디어 기술'이란 관점에서 소셜미디어를 바라보려고 애쓴다. 인류가 소통하기 위해 발전시킨 다양한 기술이란 맥락에서 소셜미디어를 평가해보자는 거다. 


공동체의 규모가 크지 않을 때는 특별한 미디어가 필요치 않았다. 아니 뒤집어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미디어가 없을 때 공동체의 규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미디어라고 해봐야 일정한 '의식(儀式)'과 '구전(口傳)',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상징'이 전부였을 때, 공동체의 최대규모는 부족사회 정도였다. 


당시에는 우리가 어떻게 시작됐고(곰이 백일간 마늘을 먹어 사람이 됐다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홍익사상 같은 모양으로)를 알려주는지를 이야기란 형태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됐을 것이고, 의식(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같은)이란 형태로 반복됐을 것이며, 상징(삼족오 같은)의 모습으로 공유됐을 것이다. 


하지만 문자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구전에 의존하던 메시지가 '기록'되기 시작했고, 매우 '정확하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내용도 신화처럼 간단한 형태에서 벗어나 제법 복잡해졌고, 분야도 다양해졌다. 부족을 훨씬 뛰어넘는 '나라 공동체'가 등장한 것도 활자 미디어의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경전을 기반으로 한 고등종교도 문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쇄술은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기술이 등장하면서 소수 엘리트에게 한정됐던 '해독력'은 계급을 초월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문자를 지배했던 계층은 권력이 나뉘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어 반발하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카톨릭의 위협을 무릅쓰고 독일어로 번역한 성서를 인쇄해서 배포한 건, 그래서 혁명이라 불러줄 만했다. 


공동체를 꽃피운 잡지미디어


인쇄술 덕분에 '잡지'라는 미디어가 등장했다. 잡지는 인쇄술을 통해 메시지의 독과점이 허물어졌다는 신호탄이었다. 활자를 다룰 줄 아는 지식인이라면, 계급이나 지위에 거의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세상을 향해 지속적인 메시지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잡지를 중심으로 기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종다양한 공동체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회공동체도 사실 잡지 미디어에 많은 빚을 지고 성장했다. 교회마다 주보가 발행됐고, 학생회와 청년회 등도 저마다 잡지를 제작하는 데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대학 동아리에서도, 직장 신우회에서도,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교회와 관련된 소규모 공동체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잡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 공동체의 명운은 해당 잡지의 활성화 정도와 같은 궤적을 그릴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미디어 환경에 둘러싸인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잡지 채널을 지배하던 교회의 영향력은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볼거리와 읽을 거리가 부족하던 시대에 정기적으로 발행되던 교회공동체의 잡지는 구성원들의 눈과 마음을 충분히 붙들어놓는 데 성공적이었다. 교회공동체가 비교적 문화적으로 앞서나갈 수 있었던 것도 잡지를 통해 축적된 내공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공동체를 압도한 매스미디어


하지만 20세기 후반으로 오면서 매스미디어 영향력이 가파르게 증가한다. 특히 TV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의 눈은 활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 빠르게 옮겨간다. 활자매체는 상당한 지적 훈련이 선행돼야 해독이 가능했지만, 영상매체는 유무식과 관계 없이 직관적으로 해독이 가능했기에 파급효과는 훨씬 컸다.  옛날 같으면 건너건너 이야기로 전해 듣던지, 그도 아니면 활자를 해독하며 발신자의 뜻을 헤아려야 했다면, 영상매체는 보면서 바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비판론자들은 지적 훈련이 필요치 않다는 이유로 ‘바보상자'라는 저급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활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 넘어가는 도저한 흐름을 뒤집을 순 없었다.


대중매체는 교회공동체에게 여간한 악재가 아니었다. 고작 잡지 미디어에 의존하던 교회공동체는 매스미디어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 공동체의 활기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빠르게 위축됐다. 이즈음 주류 기독교계가 대형화에 승부를 걸었던 건 매스미디어로 재편되는 미디어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나름의 해결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길 잃은 교회공동체


하지만 곧이어 매스미디어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인터넷이 등장했다.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별도의 '관문'이 있냐없냐에 있었다. 매스미디어는 송출하는 주체와 콘텐츠 생산자가 방송국이란 형태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터넷은 장악이나 독점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구나 생산할 수 있고, 누구나 소비할 수 있다. 굳이 방송국이란 거간꾼을 거치지 않아도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접 만남이 가능하다. 미디어가 민주화되면서 메시지 또한 민주화되었다고 할까? 이 환경에 잘 적응해 많은 사람들이 스타가 됐고, 새로운 영향력을 세상에 행사하게 됐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이 변화된 환경을 기회로 활용하는 데 썩 성공적이질 못했다. 기민하게 움직인 게 홈페이지나 카페를 만드는 정도였는데,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과 관리 부담이라는 벽에 부딪혀 그것들을 공동체의 미디어로 활용하는 데는 대부분 실패했다. 그나마 운영자가 부지런하면 꽤 활성화되는 카페도 있었지만, 내부 결속을 다지는 정도는 몰라도 공동체의 메시지를 세상과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물론 인터넷 자체를 불온하게 보는 교회지도층의 퇴행적 시각도 한몫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교회공동체의 기회


2009년 11월에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상륙하면서, 새로운 수평미디어인 소셜미디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소셜미디어가 기존의 인터넷과 다른 점이라면 콘텐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이란 거다. 사실 기존의 콘텐츠 중심 웹환경은 문제가 적지 않았다. 수많은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메시지를 선별하기가 우선 어려웠고, 익명성을 방패로 악성루머와 악플 등이 기승을 부리며 웹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했다. 교회가 인터넷을 터부시하는 것도 그리 이상하진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 중심으로 바뀌면서 ‘친구가 좋아하는', ‘친구가 추천하는' 콘텐츠가 주위를 채우기 시작했다. 친구의 라이프스타일이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 된 거다. 그리고 이 추세는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더욱 확산되고 그 정도도 깊어질 전망이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신자의 삶이 비신자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쳐 복음으로 초대한다는 것, 바로 교회가 말하는 전도의 기본 원칙 아닌가? 이 관점으로 보자면 소셜미디어는 교회공동체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통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덩치 싸움, 돈 싸움으로 자기 세력을 뽐내기보다는 가난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세상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신앙공동체에겐 이보다 더 좋은 창구가 현재로선 없지 않을까?


김교신과 함석헌이 2013년에 나타난다면?


일제시대 우찌무라 간조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김교신과 함석헌, 송두용 등은 조선으로 넘어와 ‘성서조선'이란 잡지를 창간하고 무교회주의 운동을 펼쳤다. 1927년부터 1942년까지 월간지 형태로 모두 158호가 발행됐고, 매번 300부 정도가 인쇄돼 구독된 걸로 알려져 있다. 


김교신이 2013년에 무교회주의 운동을 한다면, 과연 잡지만 만들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무교회주의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소규모 공동체였다.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였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학위논문이 지금도 매년 한 두 편씩 꼬박꼬박 발표되고 있다. 기독교의 진정성, 한국의 기독교를 고민하는 이들은 어김 없이 무교회주의자들의 성서조선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벌써 80년 가까이 지난 비주류 중의 비주류 공동체가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잡지 미디어'를 갖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들의 신앙과 비전은 잡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비록 300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신앙에 공감하는 공동체를 엮어내면서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에너지를 축적한 것 아닐까?


이런 상상을 종종 해본다. 과연 김교신과 함석헌이 1927년이 아닌 2013년 오늘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무교회주의 운동을 하게 된다면, 과연 그들은 8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잡지'를 만들까? 사실 잡지는 당시로선 ‘최첨단 매체'였다. 종이인쇄와 제본이라는 ‘하이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자기네 메시지를 손쉽게 복제할 수 있었고, 그것을 수백명에게 공급해 읽히며 일상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잡지는 최첨단 매체가 아니다. 두고두고 밑줄 그으며 탐독하기보다는 책장 하나 옮길 때마다 분리수거장에 내놓을까말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그저그런 종이책일 뿐이다. 


그렇다면 2013년의 김교신과 함석헌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여전히 종이잡지를 고집할까, 아니면 과감하게 소셜미디어를 선택할까? 메시지의 내용도 마찬 가지다. 80여년 전처럼 텍스트만 고집할까, 아니면 사진과 영상에도 관심을 기울일까? 역사에 가정을 붙이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들었지만, 그분들의 열정과 간절함을 감안한다면, 이 땅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매체전략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공동체의 향기를 소셜미디어로


2013년 대한민국 교회공동체의 초상은 참 우울하다. 세상에서 외면받다 못해 조롱받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뜻있는 신앙인의 가슴은 새카맣다 못해 새하얀 숯덩어리가 되었다. 진심과 열정으로 외쳐도 돌아오는 건 외면뿐일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큰 변수 중의 하나로 나는 ‘미디어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 급변하는 미디어 기술과 환경에 교회공동체가 다분히 수동적, 퇴행적이어서 변화하는 세상과 소통하는데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말이다.


이 맥락에서 소셜미디어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단순히 스마트폰에 탑재돼 시도 때도 없이 신자들의 눈을 홀리는 요물로 보지말고, 신자 혹은 비신자의 눈과 귀가 머무는 바로 그곳에 교회공동체의 메시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그들의 삶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냐를 생각해야 한다는것이다. 


아울러 교회공동체가 신자 개개인의 향기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신자는 신자끼리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아 성장할 수 있고, 또 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교회밖으로까지 전달될 수도 있다. 연일 터지는 낯부끄러운 교회 관련 소식에 “일부 몰지각한 교회와 성직자의 일탈일 뿐”이라고 변명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실제 아름답고 훌륭한 삶의 공동체가 이미 존재한다는 걸 스스로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소셜미디어에는 이미 신망 두터운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나는 요즘 이만열 교수님(www.facebook.com/mahnyol)과 지강유철 선생님(www.facebook.com/yucheol.jigang) 등으로부터 매일매일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 이 글은 계간지 '개혁신앙' 창간호(3월 발간 예정)에 실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prev 1 2 3 4 nex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