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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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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10:29 야! 소셜 좀 해!

이 연재는 청년들이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을까 하는 제안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지향점은 결코 ‘소셜미디어 전문가’가 아니다. 소셜미디어의 기능을 빠삭(?)하게 섭렵한 ‘기능인’을 키우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신 이 책은 ‘스토리텔러’를 지향한다. 세상과 공동체를 향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기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바로 그런 스토리텔러를 목표로 한다. 어떤 상황, 어떤 조건이든 자기 색깔을 지키며 이 세상에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그런 주체적인 스토리텔러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쓴 것이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우리 시대의 리더는 스토리텔러”라고 했다. 여기서 스토리텔러란 단순히 재담꾼을 말하는 건 아니다. 연설 잘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그들에게 희망의 그림(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지 않을까? 명확한 자기 메시지를 갖고 있으면서, 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바로 스토리텔러인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세계관과 윤리를 세우는 행위


본래 스토리텔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선사 시대에는 공동체의 제사장이나 무당에게만 그 역할이 주어졌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즉 신화나 설화는 공동체가 견지해야 할 세계관이 됐고, 또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구전을 통해 공동체에 확산됐는데,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 매체가 등장하면서 스토리텔링의 헤게모니는 기록을 관리하는 학자들에게로 이동한다.  기록을 관리한다는 건 기억을 장악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주관적인 기억력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객관적인 기억, 즉 기록에 바탕을 둔 사회로 진화한 것이다.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객관적인 기록이 갖는 힘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20세기에 등장한 대중매체, 즉 매스 미디어 시대는 미디어 자체가 압도적인 스토리텔러였다. 사람들의 눈과 귀는 매스미디어에 고정됐고, 그것이 보여주는 세상이 실제 세상의 전부인 걸로 착각할 정도가 됐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이들은 하나 같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싶어 했다. 권력이 그러했고, 자본도 그러했다. 이런 시도는 21세기인 지금도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와 함께 매스 미디어와 대비되는 인터넷 시대가 열린다. 매스 미디어에 집중됐던 스토리텔링 역할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수평적으로 분산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학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지성 분야도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집단지성이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진화의 열매로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매우 혁명적인 변화다. 인류 역사상 이런 평등한 기회가 개인에게 주어진 적이 없었다. 예전 인터넷에선 목소리로만 말했다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마이크와 앰프로 떠들고 있다. 훨씬 강한 전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심지어 기존 매스 미디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이외수 선생은 여느 언론사보다 많은 130만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웬만한 국가 인구보다 많은 5,200만명의 페이스북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표가 우리 모두 이외수 선생이나 레이디 가가 같이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대중적인 스타가 되자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우리 모두가 ‘제대로 된 스토리텔러’가 되자는 것이다.


미국의 소셜미디어 전문가인 로렌 피셔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소셜미디어가 스토리텔링의 기술(art)로 진화하고 있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셜미디어가 단순히 인맥 쌓는 수단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기술이라고 정의한 건 정말 탁월한 통찰 아닌가.


자, 이제 이렇게 정리하자. 소셜미디어는 수단이자 도구이다. 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이 달이라면, 소셜미디어는 손가락이다.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봐서야 되겠는가.


스토리텔링은 삶을 편집하는(editing) 활동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말자. 스토리텔링이 핵심이라고 해서 무슨 작품활동을 하자는 말은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보면 ‘편집활동’이다. 그날그날의 상황과 장면, 그리고 생각과 아이디어를 소셜미디어에 ‘편집’해서 소통하는 활동 말이다. 스쳐지나간 수많은 장면 중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골라내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다양한 이야깃거리 중에서도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발굴하는 것, 이 모두가 편집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당부하자. 이처럼 일상을 스토리텔링, 즉 편집해야 하는 이유는 ‘눈속임’이 아니라 ‘발견’을 위해서라는 점을 꼭 기억하자. 남의 눈을 속여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진가를 제대로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해리포터를 쓴 조안 롤링은 2008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그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가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셜미디어를 하든, 스토리텔링을 하든 결국 자기 인생을 위해 하는 거다. 이 점 잊지 말자. 



※ 그동안 연재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 인사 올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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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16 11:13 야! 소셜 좀 해!

크리스챤 베일이 주연한 영화 '이퀼리브리움'(2002)을 보면 제3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전체주의 사회 ‘리브리아’가 등장한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은 범죄와 전쟁이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됐다고 규정하고, 철저하게 그것을 통제한다. 이를 위해 모든 시민은 매일 감정을 억제하는 약물인 프로지움을 복용해야 한다. 그리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동이든 혐오든 그 어떤 감정이라도 이끌어내는 문화예술품을 접해서는 안된다. 소설도, 그림도 그래서 철저하게 은폐된다.


하지만 감정은 본능이다. 억지로 누른다고 눌려지는 게 아니다. 마치 나치 치하의 레지스탕스처럼 감정을 추구하는 비밀결사조직이 만들어지고, 또 그들을 뒤쫓는 비밀경찰이 등장한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는 감정의 굴곡 없이 평정한(Equilibrium) 것처럼 보이지만, 지하에는 여전히 감정을 표출하고 사는 사람들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낯설지 않다. 영화가 나온지 10년이 지난 이 땅 대한민국은 오히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리브리아’에 갈수록 근접하고 있는 것 같다. 


'리브리아'에 근접하고 있는 한국사회


기성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하려면 개인의 특성과 감성보다는 사회(정확하게는 기업)가 요구하는 점수가 필요하다. 학벌에, 학점에, 토익점수에, 그리고 기타 자격증 등의 객관적인 물증을 요구한다. 다행히 기성사회 편입에 성공하더라도 승승장구하려면 철저하게 개인의 색깔은 숨겨야 한다. 개인의 꿈과 취향, 그리고 신념 따위는 일단 접어둬야 한다. 그리고 조직이 원하는, 회사가 기대하는 용도를 채워주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취업을 위해 자기 소셜미디어 계정을 ‘조작’하는 내용의 특강이 대학가에서 열리고 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취업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기를 숨기고 또 조작하라는 메시지였다. 자기 계정에서 자기를 숨긴다는 것, 리브리아에서 프로지움을 복용하며 자기 감정을 통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웃어도 울어도 안 되는 리브리아 시민과 취업을 위해 자기 존재를 은폐해야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 중 누가 더 불행한 걸까?


영국의 저명한 교육운동가인 켄 로빈슨 경은 2010년 TED 강연에서 교육이 산업모델에서 농업모델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산업모델이란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모든 과정을 표준화 또는 획일화시킨 것을, 농업모델이란 지역과 토양, 그리고 기후에 맞게 영농방법을 다양화시킨 것을 말한다. 즉 개인의 재능, 열정과 상관 없이 획일적인 교육을 시킬 건지, 아니면 각자의 재능과 열정에 맞춰 다양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그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거의 사용 못하고 있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평생동안 자기 재능을 모르고 있거나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기가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상당히 많이 만났어요. 세상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일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평생 그 일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자기 일을 사랑해서 다른 일하는 건 상상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부류 같지가 않아요. 실제로는 극소수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저마다 타고난 재능들로부터 사람들을 유리(遊離)시키는 악(惡)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인적자원은 자연자원과 마찬가지로 깊이 묻혀있곤 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발굴해내야만 하죠. 쉽게 찾을 수 있게 드러나 있질 않아요. 그래서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지금껏 교육이 그런 기능을 할 거라고 믿어왔습니다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를 못했어요.”


로빈슨의 말처럼 자기 일을 사랑해서 다른 일은 상상도 못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다. 어쩌면 그들은 일본의 괴짜 뮤지션처럼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다수는 자기와 맞지 않은 일을 운명처럼 감내하며 불행 속에 살아야 할까? 로빈슨은 교육이 그 기능, 즉 각자의 재능과 열정에 맞는 일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일을 해줄 거라고 믿어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그는 교육의 ‘혁명’이 필요하고, 획일적인 산업모델이 아닌 다양한 농업모델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미 획일적인 산업모델로 교육 받아 사회진출을 눈앞에 둔 청년들은 어떡해야 하나? 나의 재능과 열정이 어디쯤에 묻혀 있는지 몰라 무엇을 어떻게 발굴해야 할지도 모르는 청년들은 어떡해야 하나?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농업모델의 교육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미 버스를 놓쳤으니 운명에 맡겨야 하는 걸까?


소셜미디어는 자기 재능을 발굴할 도구


이 책을 쓴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교육이라는 버스를 놓쳤어도 포기하지 말자. 언제 올지 기약도 없는 새로운 교육 버스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말자. 뛰어난 지도자가 불현듯 나타나 청년들이 처한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것을 기대하지도 말자. 그 시간에 차라리 직접 나서자. 닥치고 시작하자.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자기를 다시 조율하고, 인생의 비전을 새롭게 세우자. 


물론 소셜미디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미디어가 될 수 있다. 세계관을 키우고, 자기를 발견하며, 전문성을 쌓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마침내는 저마다의 꿈이 저마다의 현실이 될 수 있게끔 소셜미디어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여럿이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뜻이 워낙 좋아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혼자의 꿈’을 어떻게 ‘여럿의 꿈’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혼자의 꿈을 여럿에게 알리는 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운이 좋아 기자의 눈에 띄는 방법이 거의 유일했다. 기왕이면 대서특필이 되고 후속보도가 이어질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개인의 꿈이 공동체의 꿈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그래서 실제 훌륭한 꿈을 가진 사람보다 언론에 접근할 수 있는 로비력을 갖춘 사람이 더 크게 다뤄지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꿈은 있어도 운과 줄이 달려 기자 만나기 어려운 사람에겐 그림의 떡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그런 제약마저 제거했다. 더 이상 자기 꿈을 세상에 알리는 데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 저마다의 꿈, 저마다의 재능에 집중해보자.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면 끈질기게 발굴하자.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열정을 일깨워보자.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소셜미디어로 소통하자. 저마다의 꿈이 저마다의 현실로 둔갑하는 그 짜릿한 경험을 놓치지 말자.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의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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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15 09:56 야! 소셜 좀 해!

2007년 즈음 모 정부기관에서 잠깐 동안 음악산업팀장을 맡았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음악시장에서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편중 현상은 대단했다. 지금과 다르다면 K-Pop 열풍이 전세계가 아닌 아시아권에 머물렀다는 정도? 어쨌든 음악은 죄다 10대를 위한 것이었다. 그나마 원더걸스의 ‘텔미’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아이돌을 아끼는 삼촌팬이 막 등장할 시점이었다.


고민이었다. 편식이 몸에 나쁘듯 문화도 한 쪽으로 편중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 전체를 봐서도 그렇지만, 제각각의 취향을 가진 소비자도, 메이저가 아닌 음악을 추구하는 인디 뮤지션들도 형편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동체의 다양한 문화 욕구가 채워지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행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한 괴짜 뮤지션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그래서 나는 일본 음악시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은 인디음악시장이 훌륭하게 발달해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전체 음악시장의 50% 정도를 인디음악이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이돌은 아이돌 대로, 인디는 인디 대로 나름의 음악생태계를 만들어 제법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런 일본 음악생태계를 벤치마킹하려고 세미나를 기획했다. 전문가 두 사람을 초청했는데 그 중 한명은 일본 최대의 인디음악 유통사이트인 'mF247'에서 오랫동안 인디 뮤지션을 발굴하고 프로모션해온 다카하시 야스히로 프로듀서였다. 세미나에서 다카하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어느 날 mF247에 등록하기를 원하는 한 뮤지션이 음악을 들고 왔다. 수십년간 온갖 인디음악에 귀가 단련된 다카하시가 들어도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도대체 이런 음악을 누가 듣겠나' 싶은 생각이 솔직히 들었다. 다카하시는 그 뮤지션을 되돌려보냈다. 하지만 다시 찾아왔다. 사이트에 올릴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국 판단은 듣는 사람 몫이다 싶어서 별다른 홍보 없이 올려놓았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음악에 반응했고, 이후 음반제작으로까지 이어져 CD 판매량이 2만 장을 넘겼다. 콘서트는 대박이 났다. 이 과정을 지켜본 다카하시는 깊은 반성을 했다. 그가 직접 한 말이다.


"저는 그 과정을 통해 누군가가 어떤 음악이든 하고 싶어 한다면 그 음악을 듣기 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그와 같은 괴짜 음악가도 있고, 그런 음악에 호감을 느끼는 감상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없다는 데 있다. 괴짜 음악가와 감상자가 어떡해서든 만나야 반응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할 텐데, 이들을 이어줄 통로, 즉 미디어가 없었던 거다. 반면 일본에는 mF247과 같은 미디어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국민성 타령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본래’ 획일적인 걸 좋아한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사실 한국과 일본의 이런 차이는 국민성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 때문에 나타나는 거라고 봐야 한다. 다양한 뮤지션이 다양한 감상자를 만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가 이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저마다의 꿈에 팬 커뮤니티가 받쳐준다면?


장황하게 일본의 괴짜 뮤지션 이야기를 한 것은 이 시대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그에게 빗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괴짜 뮤지션이 자기 음악을 고집하는 것처럼 청년들도 자기만의 세상, 자기만의 인생을 꿈꾸고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그 괴짜 뮤지션이 사는 곳이 한국이냐 일본이냐에 따라 삶의 해법은 달라질 것 같다. 


먼저 괴짜 뮤지션이 한국에 산다면? 현실은 팍팍하다. 음악은 음악이고 생계는 생계다. 생계수단을 먼저 확보한 다음에 자기 음악을 추구하는 게 안전하다. 두 가지가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초지일관 자기 길을 가는 선배들도 없진 않지만, 고달픈 현실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길을 나선 선배들을 만나봐도 격려보다는 만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 산다면? 음악이 생계가 되는 삶에 한 번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소개된 mF247뿐만 아니라 그와 유사한 다양한 플랫폼에 노크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일본이라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가 기대하는 감상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기에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음악을 지지해주는 감상자를 10명에서 100명으로, 1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려갈 수 있지 않을까?


마케팅 전문가들은 ‘팬을 1,000명 확보하면 사회운동(movement)으로 전환된다’고 말한다. 취향을 같이 하는 1천명이 모이면  단순히 개인 취향의 합이 아니라 사회적인 움직이는 힘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1,000명의 팬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면, 괴짜 뮤지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의 음악이 그에게 ‘직업’이 되지 않을까? 당장 떼돈은 아니더라도 자기 음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소셜미디어, ‘소일거리’거나 ‘무기’거나


이 땅의 청년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꿈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혼자만의 것이라면, 한국의 괴짜 뮤지션처럼 생계 대책부터 마련해놓고 꿈은 취미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공유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오랜 시간 동안 전문성을 축적해 사회적인 역량을 키워간다면, 앞서 제안한 것처럼 ‘평생직업’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 소셜미디어는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다.


처음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공간을 초월해 전세계인들이 연결되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도 획일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마치 라디오나 TV 같은 매스미디어처럼 인터넷을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연결됐다. 국경을 초월해 취향 따라 연결되기도 했고, 지역을 초월해 신념으로 모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이제는 개인이 기성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발신할 수 있게 됐다. 저마다의 메시지가 저마다의 수신자를 찾아가는 수평적인 미디어가 등장한 것이다. 전문가의 감수와 편집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매스미디어의 장비와 노하우를 빌리지 않아도 된다. 발신할 콘텐츠만 있다면 혈혈단신으로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소셜미디어는 단순한 소일거리도 될 수 있지만, 쓰기에 따라 ‘무기’도 될 수 있다. 소위 미디어 전문가들이 편집하여 보여주는 세상에 수동적으로 얹혀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세상을 편집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강력한 장비를 손에 쥔 것이다.


칼에도 종류가 많다. 과일 깎는 과도, 회 뜨는 회칼, 로마병정이 썼던 단검, 일본 무사가 썼던 일본도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한 칼이 존재한다.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쓰는 사람에 따라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또 사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크기만큼 소셜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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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09 11:43 야! 소셜 좀 해!

소셜미디어를 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수시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인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객체가 아니라, 주체, 즉 인맥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각성이 있어야 한다.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인맥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ㅇ 소통의 중심을 잡자

 

먼저 뻔한 얘기부터 하자. 주체라는 건 '내가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주체적 인맥이란 나를 중심으로 한 인맥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남이 만들어놓은 인맥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인맥지도를 새로 그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심'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구름잡는 소리로 '심리적인 중심'을 잡으라는 뜻이 아니다. '소통의 중심', '소통의 베이스캠프'를 견고히 민들어라는 뜻이다.

 

페이스북을 예로 든다면, 본인의 '타임라인(프로필)'과 본인이 운영하는 '페이지'가 소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블로그를 중점적으로 운영한다면 그곳이 소통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중심이 되는 주체적인 인맥이 형성될 수 있다. 


그렇다고 거점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소통의 거점은 명확히 하되 소통이 일어나는 현장은 가리지 말자. 친구의 블로그든, 담벼락이든, 페이지든, 그룹이든 소통이 필요한 곳에서는 충분히 소통하자. 다만 하루 종일 바깥에서 놀다가도 잠은 자기 집에서 자야 하듯이, 본인의 소통 거점이 어디라는 것만큼은 명확하게 인지하자.

 

실제로 SNS 이용자 중 상당수는 자기 계정을 거의 돌보지 않는다. 어떤 이는 뉴스피드(페이스북)나 타임라인(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좋아요'하거나 '리트윗'하는 데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자기가 속한 그룹(페이스북)에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주고받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도 한다. 정작 본인 계정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이웃집 참견하느라 자기집 건사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할까? 


이런 분들은 설사 SNS 안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극히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진다든지 하면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소셜미디어 안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아예 계정을 닫는 수도 생긴다.

 

그렇다면 '중심을 잡고' 소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본인의 생각과 말을 꾸준하게 '발신'하면 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운영한다면, 하루에 최소 2~3건 이상은 자기가 직접 글을 올리자. 블로그를 운영한다면 1주일에 두 건 이상은 포스팅을 하자. 이런 페이스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지 그 누구도 어찌 할 수 없는 '자기 자산'이 생긴다.



ㅇ 오프라인으로 확장하자

 

올해 초 미국에서 한 삽화가 주목을 받았다. 페이스북 친구를 2,000명 넘게 보유하고 있던 한 사람의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달랑 두 명밖에 오지 않은 그림이었다. 페이스북에서 표현되는 친밀감과 현실과는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였는데, 이 그림에 공감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줄을 이었고, 국내에서도 여러 군데서 인용된 적이 있다. 작가가 실제 있었던 일을 그린 것인지 단지 풍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그림이 상징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소셜미디어에서 수다 떨고 친밀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의 인맥이 풍성하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SNS에서만 이뤄진 관계라면 거기에 '거품'이 끼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주체적인 인맥을 만들려면 오프라인을 지향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라면, 오프라인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보자. 직접 만나서 말을 섞어보면 그 관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온라인상에서 모호했던 것들이 실제 만남을 통해 상당부분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소셜미디어 소통 또한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역으로 기존의 오프라인 관계를 소셜미디어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도 추천한다. 관계에 따라 온라인의 실시간성이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겠지만, 오프라인의 여러 가지 제약(시간 및 공간 등) 때문에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에 소셜미디어가 훌륭한 보완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프라인 친구들이 소셜에서 만나게 되며 "네가 이런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고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만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오프라인 관계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뜻.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양쪽 공간이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훨씬 성숙해질 것이다.

 

ㅇ 일을 벌이자

 

인맥의 완성은 '경험'에 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나서 서로의 심사를 교환하고, 또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눴다고 해서 의미 있는 인맥이 되는 건 아니다. 만약 거기까지라면 그저 '아는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인맥이 되려면 공통의 '경험'이 필요하다. 함께 여행을 하든, 함께 땀을 흘리든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한 경험이 있을 때 그 결속은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앞서 언급한 '평생직업' 부문과 이 '프로젝트'를 연결지어서 생각해보자. 평생직업을 만들어갈 때 동행할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하지만 막막할 거다.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할까? 일단 소셜미디어의 '미디어'성에 주목해보자. 미디어란 신경망과 같다. 어떤 분야의 정보와 스토리가 구석구석 맴돌게 해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신문, 잡지, 방송 등 기존의 올드미디어가 수행했던 비즈니스를 참고해도 좋다. 정보나 콘텐츠를 소통하면 독자(시청자)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그 커뮤니티 규모에 따라 다양한 비즈니스가 펼쳐질 수 있다. 본인이 직접 커뮤니티를 상대로 사업을 펼칠 수도 있고, 본인이 아니어도 그 커뮤니티를 활용(광고나 마케팅 등)하고 싶어하는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12년 1학기에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 '소셜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 강의를 한 적이 있다. 3~4명이 한 팀이 돼 각 팀별로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방송국을 설립하고 한 학기 동안 실제 운영해보는 프로젝트였다. 팀별로 라면이야기, 클럽문화, 동네패션왕, 옛날 다방, 데이트코스, 독립커피숍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나왔다.  이들 중 실제 사업하는 분들의 관심을 받고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낸 팀도 있다.  


물론 '미디어성 프로젝트'만이 승산 있다는 말은 아니다. 비즈니스성 프로젝트만이 의미 있다는 뜻도 아니다. 봉사나 자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봉사 프로젝트를 만들어 뜻 맞는 소셜친구와 함께 지속적으로 활동을 펼쳐보면 어떨까? 특정 아티스트나 예술사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전문으로 다루는 공간을 만들고 친구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해보면 어떨까?


중요한 건 '의기투합'과 '과정의 소통'이다. 특히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보자.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폼 잡지 말고, 솔직하게 세상과 소통해보자. 이 과정은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친구간의 결속력도 강화시켜주겠지만,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아울러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단순한 인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생 동지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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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08 09:16 야! 소셜 좀 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외로워서도 그렇지만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를 '연결'하는 전략을 오래 전부터 선택했다. 역사책에 나오는 씨족과 부족이란 형태부터 오늘날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맥'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끊임 없이 연결되려고 애써왔다. 아니, 인맥은 생존본능이다!

 

인맥은 생존본능!

 

간단하게 역사(?)를 짚어보자. 농경사회에선 '혈연'이 최고였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집성촌은 혈연을 기반으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한 최고의 모범사례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도시화가 진행됐고,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너도나도 고향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도시는 온통 낯선 사람들로 넘쳐난다. 낯설다는 건 그만큼 위협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연'이 주목 받는다. 같은 고향출신이면 일단 '우리편'으로 판단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을 기반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언덕이 되어준다.

 

그런데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되면서 그 기능 또한 매우 복잡해진다. 교육수준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역할에 차등이 생기고, 그 위치에 따라 권력과 부도 차별화된다. 그러다 보니 '학연'이 급부상한다. 비슷한 교육수준을 가진 같은 학교 출신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며 또 다른 사회안전망을 만들어내는 거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계급'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인맥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안전을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안전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학연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긴 하다. 대체로 초등학교 동창이 순수한 친구 사이에 가깝다면, 고등학교 동창은 사회적인 결사체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등학교 인맥은 정치환경에서 매우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다. 개인의 정치성향을 떠나 같은 고교 출신이면 적극적인 빽이 돼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혈연', '지연', '학연'은 지금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인 '인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이런 전통적인 인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그들은 또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인맥을 형성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다. 종교는 혈연, 지연, 학연을 초월하는 신앙이라는 신념체계로 완전히 새로운 인맥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또 하나의 훌륭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가 다는 아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와 행복 또는 이해관계를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인맥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각 지역마다 자리잡고 있는 해병전우회, 휴일마다 학교운동장에서 땀흘리는 조기축구회와 사회인야구단, 직장 내 기수별 모임, 맘 맞는 여성끼리 계모임 등등 우리는 수동적으로 인맥에 속하기도 하지만, 능동적으로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가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끊임 없이 관계를 창조해낸다.

 

소셜미디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00년에 우리나라서 아이러브스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2012년에 페이스북이 세계 10억명의 사용자를 돌파한 것도 이처럼 '연결되려는 본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미 사회엔 개인이 연결된 인맥이 포화상태일 것 같은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소셜미디어에 또 열광할까? 새로운 연결에 왜 다들 흥분하는 걸까? SNS라는 것이 '연결되려는 본능'의 어떤 지점을 자극한 것일까?

 

주체가 되기 어려운 오프라인 인맥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SNS가 등장하기 전의 인맥들, 일단 이들을 '오프라인 인맥'이라고 통칭하자. 오프라인 인맥의 공통점이라면, 언제나 '소수가 주체이고 다수는 객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오프라인 인맥들에서 '주인공'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오프라인 인맥에서 주체가 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충성도를 보여야 한다. 공식적인 행사에는 필참해야 하고, 아울러 멤버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세심한 활동도 뒤따라야 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원칙은 이들 인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치 공무에서와 같이 개인적인 사정은 뒤로 하고 조직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비로소 주체라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인맥이 주는 효용은 주체에 가까울수록 극대화되고, 객체로 밀려날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SNS는 그 어떤 개인도 인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다. 오프라인 인맥과 비교하면 SNS는 거의 판타지라 부를 만하다. 시간적 한계도 거의 없고(동시에 수천명과 소통할 수 있다), 공간적 한계도 제로에 가깝다(전세계 어디라도 만남에 제약이 없다). 신분이나 학력, 외모 등 오프라인 인맥을 가늠하는 각종 울타리들도 SNS에서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각종 제약을 초월해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기존 오프라인 인맥 사이에서 갑갑함을 느끼던 사람이라면 통쾌함을 만끽할 만하다.

 

하지만 완전한 것은 없다. SNS가 주체적인 인맥 쌓기를 가능하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SNS에서 만든 인맥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주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SNS가 '도피처'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도피처로 삼았다간 유사한 실패 되풀이 가능


앞서 열거한 것처럼 SNS에는 기존 오프라인 인맥이 줄 수 없는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래서 충분히 몰입할 만도 하고, 매진할 만도 하다. 하지만 오프라인 인맥에서의 실패를 위로 받기 위해 SNS에 몰입한다면, 머지 않아 오프라인에서와 유사한 실패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인간관계'는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SNS에 대한 각종 부작용이 보고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임처럼 중독증과 의존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FOMO(fear of missing out)'에서 보듯이 잊혀질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서 늘 행복한 사람들 소식만 접하다보니, 그렇지 못한 자기 신세를 보며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페이스북 사용자도 얼마든지 관계 속에서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초반에서 SNS라는 용어보다 '소셜미디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SNS는 정형사의 손에 들려 있는 발골칼과 같다. 잘 쓰면 고기를 뼈에서 분리해 부위별로 날렵하게 잘라내지만, 잘못 쓰면 자기 몸에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골칼을 들었다 해서 누구나 뼈와 살을 분리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형사가 돼야겠다는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칼의 임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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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05 10:11 야! 소셜 좀 해!

이제 구체적인 방법론을 탐구해보자. 소셜미디어에서 전문성을 어떻게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평생직업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ㅇ 마음에 불이 붙는 '분야'를 찾자

 

평생직업이라면, 기왕이면 자기와도 맞아야 한다. 흔히들 묻는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래, 잘하는 걸 하면서 살래?'라고. 현실적으로는 후자가 맞다.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는 제법 큰 갭이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 취향보다는 잘하는 것에 마음을 붙여보라고 권한다. 마음을 붙이다 보면 좋아하게도 된다고, 마치 사랑하지 않아도 정붙이며 살면 된다는 식으로. 


그런데 평균수명이 늘었다. 큰 변고가 없으면 100세까지도 산다 한다. 그 긴 시간을 '척'하며 살아야 한다면, 이 또한 불행 아닐까? 기왕이면 자기와도 맞는 걸 직업으로 찾아보자. 중장년이라면 몰라도 청년이라면 아직 시간이 있지 않은가. 

 

대신 처음부터 너무 결론(직업)에 목매달지는 말자. 소셜미디어는 과정이다. 시간이 흐르며 변화도 겪고 성장도 하는 것이다. 성급하게 굴 일은 절대 아니다. 애초 구체적인 직업에 대한 소명이 없다면, 마음이 끌리는, 마음에 불이 붙는 ‘분야’를 먼저 찾아보자. 듣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들여다보고 있으면 몰입하게 되는 그런 분야를 찾아보자. 



ㅇ 자기 전문성을 구현할 ‘채널’을 만들자

 

‘분야’를 찾았다면 자기만의 전문성을 키워갈 별도의 '채널'을 만들자. 시간이 흐를수록  지식과 노하우가 차곡차곡 축적되어 마침내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런 전문 채널을 말이다. 기존의 개인 소셜 계정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은 공과사, 그리고 전인(全人)이 드러나는 곳이기에 특정한 전문성을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다. 

 

전문채널은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는 '블로그'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블로그는 현재까지 나온 개인미디어로는 최강이다. 하나의 테마를 정해 콘텐츠를 축적해나가면, 그 자체로 전문 매체로 성장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의 블로그 중에 이렇게 성공한 사례가 많다. 축구를 전문으로 다루는 블로그, 야구의 타격폼을 전문으로 하는 블로그, 드라마나 영화를 다루는 블로그, 시사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블로그, 곤충사진에 집중하는 블로그 등 그 영역은 실로 다양하고, 또 대부분 블로그와 함께 전문가로 성장해 있다. 이런 성공모델이 이미 있기에 노하우를 잘 배워 성실하게만 콘텐츠를 축적해간다면 전문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모범으로 크리스탈이라는 필명을 쓰는 생태블로거(http://lovessym.tistory.com/) 안수정씨를 소개한다. 대학 생물학과에서 곤충을 전공한 그는 1996년 졸업하자 결혼해 10년간 육아에 매진한다. 그러다 자녀들이 제법 큰 2005년에 똑딱이 사진기 하나 달랑 들고 곤충을 테마로 한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국내 최대의 곤충카페 운영자와 생태분야 파워블로그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노린재를 테마로 한 국내 최초의 전문서적(‘노린재도감’)도 펴냈고, 전공을 살려 박사과정도 수료했으며, 여러 대학에 출강도 하고 있다. 살림과 육아로 붕 뜬 10년이란 공백을 블로그와 카페라는 소셜미디어로 훌륭하게 만회한 것이다.


하지만 블로그는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운영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블로그가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페이스북의 '페이지' 서비스를 활용해보자. 페이스북을 주로 사용하는 경우라면 페이지를 활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페이스북의 최대 약점으로 지목됐던 '검색 가능성'도 조만간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페이지를 통해 자기의 전문성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부담스럽다면? 뜻이 통하는 사람과 채널을 함께 운영해보자. 그것도 아니라면 뜻을 같이 할만한 채널을 찾아가 열심히 활동해보자. 거기에 올라오는 글에 열심히 반응하고, 또 댓글 다는 이들과도 정성껏 소통해보자. 꿩만큼은 아니겠지만 닭만큼의 효과는 볼 수 있지 않을까?

 

ㅇ  정보의 리더십을 확보하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보의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보의 리더십이란 최신정보를 빨리 습득할 수 있고, 또 그에 대한 통찰력을 갖춘 경우를 뜻한다. 10여년 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일이다. CNN에선 전세계로 전쟁상황을 생중계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그 영상을 받아 생중계에 나섰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 아랍지역과 문화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해서 방송사는 엄청난 애를 먹었다. 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아랍문화를 묵묵히 연구해온 연구자들은 그날 이후로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이 갖고 있던 정보의 리더십은 우리 사회에서 도저히 대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보의 리더십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네이버 검색으로? 그 정도 가지고는 부족하다. 국내 검색으로 나올 정보라면, 이미 희소성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리더십이 아니라 팔로우십이라고 봐야 한다. 정보의 리더십을 확보하려면 정보 수집 단계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직접 정보를 생산하든지, 그게 어렵다면 가능한한 최초 정보생산자에게서 바로 정보를 제공받는 게 좋다.

 

소셜미디어가 이런 경우에 유용한 정보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관심분야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독하거나 친구관계가 설정돼 있다면, 당신은 중간단계 없이 첫 정보를 입수하는 사람이 된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축구스타 메시의 페이지(https://www.facebook.com/LeoMessi)를 구독한다 치자. 이 경우 메시가 업로드하는 글과 사진을 직접,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보도자료를 통해 통신사로 알려지고, 그것을 국내 통신사가 받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려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획기적인 단축이 아닐 수 없다.

 

외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관심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해외 저널이나 뉴스를 정기적으로 탐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엔터테인먼트 쪽이라면 ‘Variety’, IT 분야라면 ‘Mashable’ 등 분야별로 다양한 잡지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이 리스트를 확보해서 정기적으로 관리하면 된다.  리스트를 확보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국내 뉴스 중 관심 분야 뉴스를 잘 살펴보면 기자들이 반복적으로 인용하는 잡지들이 등장한다. 


전문블로거의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뉴스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상세한 내용과 다양한 정보소스를 블로거들이 이미 많이 확보하고 있고, 그들을 멘토 삼아 자기만의 차별화된 전문성을 구축해가면 되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소개하자면, 시사 부문은 ‘아이엠피터’(http://impeter.tistory.com)를 통해, IT 소식은 ‘광파리의 IT이야기’(http://kwang82.blogspot.com/)를 통해, 축구이야기는 ‘효리사랑’(http://bluesoccer.net), 연예가 소식은 ‘송원섭의 스핑크스’(http://fivecard.joins.com/) 등을 참고한다.


ㅇ 자기만의 시각을 다듬자

 

전문성의 완성은 '자기 생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앵무새처럼 남의 말만 전달한다고 사람들이 전문가라 불러주진 않는다. 정보의 리더십을 활용해 자기만의 통찰력을 키우고, 그걸 기반으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혹은 단숨이 이 경지에 이르는 사람은 없다. 처음엔 다들 충실한 전달자로 출발한다. 다만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

 

처음엔 단순하게 전달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해설을 곁들여보자. 시간을 추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흐름도 읽어낼 수 있다. '예전에 이런 전망이 우세했는데, 결국엔 이렇게 되었다'든지, '이 사람이 처음엔 저런 말을 했지만 이번엔 말을 바꿨다'든지 하는, 시간을 두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알아내기 어려운 부분을 먼저 찾아내보자. 전문성은 바로 이런 '끈질긴 집중'에서 생긴다. 그리고 흐름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전망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평가'로 발을 내디뎌보자. 다양한 사례 다양한 견해들을 충분히 섭렵하다 보면 나름의 선호와 평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자기가 열심히 다양한 방법으로 써본 사람만이 자기만의 평가를 내릴 수 있지 않은가. 전문분야도 마찬가지다. 꾸준하게 천착하다 보면 누가 제대로 된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엉성한 논리로 거짓말을 하는지 옥석을 가려낼 수 있고, 또 자기만의 견해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ㅇ 현장을 지키자

 

자기 분야가 생겼다면, 발로 뛸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온라인이나 소셜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절름발이다. 어떤 분야든 관련된 큰 행사가 있게 마련이다. 그게 축제나 대회일 수도 있고 콘퍼런스나 세미나일 수도 있다. 그런 오프라인 행사의 현장을 지키자. 


그리고 걸프전을 생중계하던 CNN처럼 현장의 사진과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소통하자. 같이 참여하고 싶었으나 피치못할 사정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자. 현장에서 소식을 전달하는 이 순간만큼은 정보의 최초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이 점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 '현장'은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키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거기에선 그 분야의 고수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관심을 가진 동료들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현장이란 라이브공연과 같다. 좋아하는 가수를 디지털 음원으로 들었을 때와 공연장에 직접 가서 들었을 때의 감동이 같을 수가 없는 것처럼 현장에는 텍스트와 사진, 그리고 동영상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집에서 혼자 TV로 볼 때와 길거리에서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응원할 때의 감동의 에너지가 도저히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ㅇ 기고하자

 

끝으로 전문성을 사회적으로 '인정' 받자. 전문성이 직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인정이 필수다. 그래서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선 자격증과 잡지라는 장치를 통해 전문가를 선별해냈다. 지금도 이 시스템은 유효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기존 시스템에 의존하지는 말자. 자기 분야에 협회나 학회가 있다면 거기서 발행하는 잡지에 기고해보자. 만약 그런 단체가 없다면 기존 신문 여론부에다가도 기고해보자.

 

신문의 경우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기 분야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될 때가 있다. 큰 행사가 열린다든지, 큰 사고가 터질 때 보통은 이슈가 된다. 이럴 때 그동안 갈고닦은 식견을 맘껏 발휘해보자. 본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얘기할 수 없는 자기만의 시각과 논평을 과감하게 세상에 드러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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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04 09:45 야! 소셜 좀 해!

취업문제로 아우성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취업 시장도 세대별로 희비가 교차한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취업시장에서 불리해지고 있다. 갈수록 세상은 '신입'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회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을 신입으로 뽑아 다양하게 훈련시켜 자기 사람을 만들었다. 사회가 사람을 키운 것이다. 그런데 요즘 기업은 이미 훈련된 사람, 즉 경력자를 원한다. 사람 키우는 투자는 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개인이 알아서 배우고 성장해서 오라는 뜻이다. 


줄어드는 직장 선택지 


어렵사리 취업문을 통과해도 불안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한 직장서 오랫 동안 일하기가 결코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직업 중 '공무원'을 최고로 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평생직장'의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고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도 공무원 중 최고 말단인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이가 적지 않다. 공무원의 학력 인플레가 심각한 수준이란다.



공무원만큼 인기 있는 직업인 교사는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일단 교육 받을 학생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고, 기존 교사들은 최대한 정년을 채우려 해 일자리가 거의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경영의 효율성을 앞세워 기간제 같은 비정규직 교원이 늘어나면서 근무환경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청년들 앞에 놓인 직장의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평생직장'에 매달리지 말고 '평생직업'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직장은 바뀔 수 있었도, 나이와 상관 없이 인생 전체와 함께 갈 수 있는 자기 직업을 마련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평생직업이 비단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화두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면서 중장년층에게도 정년이 필요 없는 자기 직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인생 2모작'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했더라도 워낙 기대수명이 길어진 탓에 연금만으로 노후를 기약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준비성이 좋은 분들은 직장생활하면서 짬짬이 자기 직업을 찾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은퇴 뒤 본격적으로 직업전선에 나서고 있다. '평생직업'이란 거,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그런데 평생직업이랑 소셜미디어가 무슨 상관? 소셜미디어에 시간 투자하는 대신에 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따야 하는 거 아닐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거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평생직업을 찾고, 또 완성해가는 데 소셜미디어가 가장 멋진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는 시간관리 도구

 

이제 소셜미디어로 평생직업을 찾는 방법을 함께 탐구해보자. 평생직업은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문가가 되려면 꾸준한 학습과 노하우의 수련, 그리고 축적이 필요하다. 최신 정보에도 빨라야 하고, 관련 분야에도 해박해야 한다. 한 마디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전문성을 가질 수 있냐없냐를 좌우한다.

 

바로 여기에서 소셜미디어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전문성을 축적하는 데 필요한 시간관리 도구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소셜미디어는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이스북이 기존의 프로필 대신 타임라인을 적용한 것도 바로 이 시간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장시간에 걸친 학습과 축적의 도구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가 있기 전에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매체는 '학회'나 '협회', 그리고 거기서 펼쳐내는 '자격증'과 '잡지'밖에 없었다. 개인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고,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으며, 비용도 제법 많이 들었고, 실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소위 전문가들이 만든 이러한 진입장벽을 거의 없애줬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기만의 매체를 만들어 전문성을 관리하고, 그것을 통로로 자기만의 고객 커뮤니티를 관리할 수도 있다.


 

전문성의 내용도 획기적으로 다양해질 수 있다. 단체가 관리하고 인증하는 전문성은 단체의 논리에 따라 경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개인이 구축하는 전문성은 그것을 평가해주는 사람과 그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의해 자연스럽게 인정될 수 있다. 


같은 업종, 같은 취미라 하더라도 세부적으로 얼마든지 가지를 쳐내려갈 수 있다. 마치 골프채가 거리와 지형, 바람에 따라 다양하게 새분화되듯이 전문성도 개인의 취향과 역량에 따라 촘촘하게 분포될 수 있다. 이 말은 얼마든지 '자기만의 전문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자기만의 평생직업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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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09.27 10:51 야! 소셜 좀 해!

2012년 2월 어느날 국내 모 중앙일간지에 '청년 취업과 SNS'를 주제로 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요즘 기업들은 인력을 채용할 때 취업지망생의 소셜계정을 뒤지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고, 거기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문제될 소지의 글들은 원서를 내기 전에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회사 인사담장자들이 좋아하는 인재상을 나열하고, 그런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서 소셜계정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지도 안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대학가에서 이런 내용의 취업특강이 제공되고 있다는 소식도 덧붙여졌다.


기사만 봐도 피곤이 몰려온다. 이건 취업지망생들을 보고 노골적으로 거짓 치장을 해라, 할리우드 액션을 하라는 주문이나 다름 없다. 좋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취업이 됐다고 치자. 그럼 과연 그 소셜계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마 취업하자마자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평생직장이란 단어가 사라진 지금, 한 5년 쯤 직장을 다니다가 새로운 직장 문을 두드린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때를 위해 새로운 소셜 계정을 만들고 연기를 해야 할까? 이건 말이 안 되는 컨설팅이다.


회사에 맞는 성격이 따로 있나?


캐릭터는 고유한 매력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질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좋고 나쁨을 따질 수는 없다. 앞선 예처럼 직원을 채용하는 회사 입장에선 선호하는 성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흔히들 CEO에 맞는 성격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세일즈맨이 되기에 유리한 캐릭터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서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개그맨이라고 해서 모두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듯이 세일즈맨 중에서도 내성적이고 조용조용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성격에 맞게 나름의 회사경영법이나 영업법을 개발하고 터득한다.


그리고 좀 더 크게 보면, 취직하는 게 반드시 인생의 성공이라고 볼 수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삼성전자라 하더라도 자기랑 맞지 않으면 관둘 수밖에 없다. 내 주변에도 3년은 물론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뛰쳐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대기업 신입사원 20명 중에 1명은 1년 안에 퇴사한다는 통계도 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자기 캐릭터가 거대한 조직체계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뒤늦게 깨달은 것 아닐까?


<렘브란트의 자화상>

 

우리는 자주 실수하고, 잘못된 판단도 자주 내린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그런데 될 수 있으면 실수하지 않는 게 좋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판단이 있다. 딱 두 개만 꼽는다면 직업을 선택하는 일,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직업과 배우자를 선택하기 전에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내려고 애쓴다. 시간과 노력은 물론이고 돈도 기꺼이 투자한다. 그런데 막상 부딪히면 사전에 습득한 지식은 그렇게 쓸모가 없음을 깨닫는다.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왜 그럴까?


남 아는 만큼 자기도 알아야


상대방에 대한 지식을 쌓은 만큼 자기에 대한 지식은 쌓지 않아서 그렇다. 직장이 됐든 배우자가 됐든 일단 일원이 되면 우리는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나도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기를 모르니 상대방에게, 또는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처음부터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거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면, 상황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직업을 선택할 때도 대규모의 조직사회를 선택할지, 아니면 중소규모를 선택할지, 그도 아니면 독립적인 전문직종을 선택할지 좀 더 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자를 고를 때도 나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고,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소셜미디어로 자기 발견하는 방법>


‘스토리를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살아온 삶,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한편으론 정리도 되고, 한편으론 치유도 된다고 한다. 티모시 윌슨 교수는 그의 책 <스토리>에서 이를 두고 ‘스토리편집(story editing) 접근법’이라고 불렀다.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통해 자기가 처한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글쓰기만 한다고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파괴적인 글쓰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윌슨 교수는 이때 적절한 ‘개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야기하는 사람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보다 건강한 변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거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두가지 모두가 가능하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있고, 친구들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가 자기발견에 매우 유용한 도구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자기 표현을 어떻게 할까? 글쓰기가 부담스럽다면 음악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ㅇ 나를 표현해주는 OST

 

EBS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실험 장면. 10명에게 각자 좋아하는 노래 10곡을 써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들 노래를 들려주고 노래를 선택한 사람의 성격을 추정해보라고 했다. 결과는... 추정한 성격이 놀랄 정도로 실제 성격에 근접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노래 몇 곡만 들어봐도 성격을 맞출 수 있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거다.


이처럼 자기 캐릭터를 가장 쉽게 발견하고, 또 상대방에게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음악이다. 자기 소셜 계정에 음악을 공유하면 된다. 대체로 유튜브(youtube)에 올라와 있는 음악동영상을 많이 공유한다. 최근에는 소리바다와 벅스 같은 음악서비스에서도 손쉽게 페이스북 등에 음악을 공유할 수 있게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음악에 대해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DJ처럼 정기적으로 음악을 공유하는 것도 좋다. 음악을 그닥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기적이진 않더라도 문득 마음이 동하는 음악이 있을 때 놓치지 말고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단, 무턱대고 링크만 거는 일은 삼가자. 사람들이 라디오 음악에 매료되는 게 음악 앞뒤에 붙는 진행자의 멘트와 사연 때문이듯이, 소셜에서 나만의 음악을 공유할 때도 나름의 사연과 이유를 덧붙이는 게 좋다. 기왕이면 '비오는 날이면 듣고 싶은 음악' 같이 식상한 멘트보다는 '몇 년 전 비오는 날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레코드가게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왔다'는 식의 구체적인 나만의 이유를 소개하자. 그 감성의 주파수에 조응하는 친구들은 반드시 회신을 보내올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여기서 공유되는 음악은 일종의 '배경음악'(BGM)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음악성, 가수의 예술성, 이런 건 음악 전문잡지나 사이트를 보면 된다. 반면 소셜계정에서 공유하는 음악은 자기의 지식을 자랑키 위함이 아니라 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혹시 영화나 드라마의 명장면을 배경음악 없이 본 적이 있는가? 배경음악이 있고 없고를 비교해보면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소셜에서의 음악공유는, 그래서 내 인생의 OST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ㅇ 일상의 장면들

 

어린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찍고 싶은 걸 찍어보라고 하면 완전히 새로운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비슷하게 좋아하고, 비슷하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과 달리 아이들은 철저하게 자기의 시선, 자기의 관심사를 카메라에 담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을 잘라내는 행위"라고. 그래서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똑같은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아도, 작가마다 완전히 다른 느낌의 장면이 포착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다름'에서 작가의 개성을 발견한다.


흔히 말하는 '인증샷'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인증샷을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의 개성과 취향을 알 수 있다. 자주 가는 곳, 즐기는 술,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인증샷을 올리는 건 일종의 객관화 과정이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죽 훑어보면 나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소셜 시대에 프로작가냐 아니냐는 거의 의미가 없다. 누가 적극적으로 일상의 장면을 담아내고, 그것을 공유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특히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다만 일상의 장면을 포착할 때 좀 더 신경을 써보자. 흔히 보는 사진들보다는 좀 다르게 표현해보려고 애써보자. 같은 음식 사진을 찍어도 좀 다른 각도에서, 좀 다른 장면을 포착하려고 애써보자. 특별히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면, 시간을 두고 꾸준하게 찍어 공유해보자. 동네 안에 있는 담벼락도 좋고, 도시 안의 보도블럭도 좋고, 강렬한 햇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도 좋다. 마음 가는 장면, 나만의 감성을 일으키는 장소를 테마로 선택해보자.


이런 제안을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마디가 "난 사진을 잘 못 찍어서"라며 망설인다. 따지고 보면 잘 못 찍을 이유가 전혀 없다. 스마트폰 혹은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들고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살짝 누르기만 하면 된다. 다만 뭘 찍어야 할지 막막하고, 또 찍는 행위 자체가 낯설어서 문제인 거다. 이 정도는 너무 쉽게 극복될 수 있다. '닥치고' 찍으면 된다. 찍다 보면 찍고 싶은 주제도 발견되고, 개성 있는 나만의 앵글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도 앞서 음악공유와 똑같은 매너를 갖추면 좋겠다. 사진만 달랑 올리지 말고, 관련된 정보나 심상 들을 곁들이자. 하나의 콘텐츠를 가치 있게 만드는 건 바로 '메타데이터'(부연설명 자료)다. 언제 어디서 촬영한 건지, 그리고 왜 그 장면을 포착하게 됐는지 등과 같은 메타데이터가 뒷받침되면 콘텐츠의 가치도 올라간다. 그렇다고 내용을 심각하게 제시하란 말은 아니다. 유쾌하게, 가볍게 표현하더라도 들어가야 할 메타데이터는 빠트리지 않는 게 좋다. 거기에서 독자들은 신뢰를 느낀다.


 

ㅇ 라이프 에피소드

 

음악과 사진은 어떤 면에서 '직관적'인 콘텐츠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한 눈에 총체적인 느낌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직관은 빠른 반면에 오해의 소지도 크다. 같은 사진, 같은 음악을 들어도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반면 '글'은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대화를 주고 받은 당사자도 나중에 확인해보면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글로 표현된 경우에는 그 오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일을 하거나 약속을 할 때 항상 문서 형태로 증거를 남긴다.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어떤 상황이든 일단 글로 표현하는 순간 '정리'되는 느낌을 받고, 또 '다음'을 전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글이란 것 자체가 객관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머리 속이나 가슴 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정리되기보다는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자기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이른바 '섬'이 되는 것이다. 글을 통해 자기를 객관화하고, 그 모습으로 사람들과 소통해보자.


그렇다면 어떤 '글'이 좋을까? 진지한 논문? 감성적인 에세이? 교과서를 통해서 접한 글쓰기, 그리고 기성미디어를 통해 접한 기사와 논설 등은 사실 소셜미디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그 정도의 퀄리티로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주제도 잡아야 하고, 글의 구성도 기획해야 한다. 한 번 쓰면 에너지가 왕창 방전된다. 소셜미디어에서 꾸준하게 쓸 수 있는 글이 아닌 것이다.


대신 일상 속의 에피소드를 기록해보자. 현재 소셜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이야기 주제로는 자녀 육아일기, 좌충우돌 연애담 정도를 들 수 있다. 가족과 친구간의 에피소드도 좋다. 알바하면서 부딪힌 손님 이야기도 나쁘지 않다. 자녀가 없다면 조카(?)의 육아일기도 흥미롭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 주고받은 대화,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등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캐릭터가 드러나게 된다. 옛날 이야기도 좋다. 어버이 날에 부모님과의 잊지 못할 추억을, 블랙데이를 맞아 실패한 연애담을, 성탄절을 맞아 어릴 때 가장 감동적이었던 산타 선물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겁'이다. 유치원에서부터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사람들은 20년 가까이 읽기와 쓰기 수련을 했건만, 결론은 "나는 글을 못 쓴다"는 거다. 글이라면 자꾸 교과서나 소설책을 떠올려서 그렇다. 우리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페이지에 달하는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다. 하루에 다는 댓글 양만 해도 한 페이지는 되지 않을까? 소셜에서 글쓰기란 딱 그렇게만 해도 된다. 댓글 쓰듯이, 문자 주고받듯이만 쓰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유념하자. 상대방이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지극히 주관적인 글은 되도록이면 삼가자. 소셜에서 보면 종종 외롭다든지, 너무 힘들다든지 하는 격한 감정을 소셜에다 직접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당사자 입장에선 그렇게라도 쓰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다소 편안해진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을 지나치게 자주, 또 직접적으로 표현할 경우 주변 사람들은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건 소통이 아니라 넋두리이기 때문이다. 정 해야겠다면, 공개범위를 제한하자.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뒤 당시의 상황을 반추하며 에피소드 형태로 기록해보자.

 

ㅇ 그밖에 가능한 것들


그밖에도 자기를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혹시 그림 그리는 재능을 갖고 있다면, 백분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일종의 그림일기라고 할까? 그림은 희소성이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재능이기도 하다. 하루를 정리하는 장면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자. 그리고 그와 관련한 간단한 심상을 글로 덧붙여보자. 


쉬운 방법 중에 하나로 '우스개'를 공유하는 방법도 있다. 재미 있는 그림이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을 공유하면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쉽다.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항상 '신선'해야 한다는 거다. 이미 유행이 지난 우스개를 뒤늦게 유통했다가는.... 노코멘트하겠다. 우스개로 승부를 걸겠다면, 출처를 다양하게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소셜에서 이미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해외 계정들도 많다. 시간싸움에 자신 있다면 우스개도 좋은 콘텐츠임에 분명하다.


끝으로 기사 링크하기. 요즘 뉴스사이트를 보면 기사별로 거의 100% 소셜링크 버튼을 갖추고 있다. 기사 공유의 범위를 넓혀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에서다. 실제로 수많은 기사들이 소셜공간에서 공유되고 있다. 일종의 자발적 신디케이션(뉴스의 선별 및 배급)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포탈사이트의 기사신디케이션보다 친구들이 해주는 신디케이션이 훨씬 만족도가 높다. 단, 기사 링크할 때도 마찬가지로 꼭 기사에 대한 '자기 논평'을 곁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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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09.26 14:52 야! 소셜 좀 해!

대학 시절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두 명의 여성이 길을 가로막았다. 첫 마디가 "인상이 참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남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독특한 기운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솔깃했다.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 기분이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이어진 질문이 바로 "도를 믿으십니까?"였기 때문.

 

자기 발견은 가장 큰 행복


인생은 결국 자기를 발견해가는 과정 아닐까? 스스로 '자기'를 자각했을 때,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건을 통해 나를 '발견'하게 됐을 때, 그 희열을 무엇에다 비교할 수 있을까? 흔히들 존재감이라 하지 않는가? 좁게는 가족 관계에서 넓게는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서 인정 받고, 그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고유의 위치에 존재할 수 있다는 자각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 설령 '좀' 아는 사람들도 '지금의 나'가 아닌 '옛날의 나'에 멈춰 선 경우가 허다하다. 화가 고갱은 이런 제목의 그림을 남겼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이 제목은 우리 인생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사춘기 때 바로 이 문제로 가장 불안한 시간을 보내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명쾌한 해답을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 질문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한 비수도권 대학의 교수와 차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다. 지방대학 학생들은 알게모르게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다고 한다. 공부 잘하고 잘 나가는 친구들은 죄다 서울로 가고, 자기들은 그 대열에서 낙오돼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는 거다. 이른바 패배주의, 냉소주의가 만연해 있단다.


교수는 그걸 깨고 싶었다. 토론팀을 만들었다. 국내 방송사들이 개최한 토론대회에 이들을 이끌고 과감하게 참여했다. 지역예선을 통과하고 서울 본선에까지 올랐다. 결승전까지 가진 못했지만, 준결승에서 소위 우리나라의 명문대학 팀과 붙어 대등한 승부를 벌였다. 그 경험이 있고 난 뒤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생각도 달라졌다. 옛날 같으면 감히 꿈꾸지도 못했을 아이템을 과감하게 기획하고 또 도전하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토론팀 활동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한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대 심리학과의 티모시 윌슨 교수가 한 실헙이다. 표준지능검사를 하면서 흑인과 백인이 반반씩 섞인 한 그룹에는 ‘지능검사’라고 했고, 다른 그룹에는 ‘퍼즐’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검사지였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지능검사라고 밝힌 집단에서 백인은 흑인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고, 퍼즐이라고 밝힌 집단에선 흑인이 백인 점수를 능가한 것으로 나왔다. 흑인들 지능이 백인들 지능보다 떨어질 거라는 선입견이 실험과정에 작용한 거였다. 윌슨 교수는 이를 ‘고정관념의 위협’이라고 불렀다(‘스토리’, 웅진지식하우스, 2012).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간다. 윌슨 교수의 지적처럼 많은 경우에 스스로를 고정관념의 감옥에 가두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발견’은 누구에게나, 그 어느 순간에도 절실한 주제다. 지역 대학생들은 토론대회를 통해, 흑인들은 지능검사 과정을 통해 본인도 몰랐던 자기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우리에겐 자기를 발견할 계기가 필요하다.


'발견'은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그 계기는 다양하다. 조앤롤링은 하버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실패의 과정을 통해 자기를 발견했다고 했다. 혜민스님은 연애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자기를 발견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자기를 발견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기를 발견한다는 거다. 조앤롤링의 실패든(남편, 부모와의 관계가 실패한 경우), 혜민스님의 연애든, 회사에서의 팀업무든, 여행이든 모두가 관계가 본질이다. 새로운 관계에 맞딱뜨리면서, 혹은 익숙한 관계에서 단절되면서 비로소 자기가 보이는 거다.


따라서 관계를 전제로 하는 소셜미디어는 자기 발견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과의 소통과 상호작용, 그리고 다양한 반응들이 종합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고, 또 친구들이 나를 일깨워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캐릭터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이 자산은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스펙보다 훨씬 강하다. 아니 강할 수밖에 없다. 스펙은 더 나은 스펙을 가진 사람에 의해 대치될 수 있지만, 캐릭터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대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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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09.24 18:35 야! 소셜 좀 해!

내게 맞는 멘토 찾기


이제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소셜미디어를 시작하긴 했는데, 내게 맞는 멘토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좌충우돌 부딪히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자연스레 멘토군(群)이 형성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좀 더 효과적으로, 빠른 시간에 내게 맞는 멘토를 찾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자. 유명인이라고 다 멘토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유명하다고 세계관이 다 성숙한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나와 맞는', '내가 지향하는' 멘토여야 한다는 거다.

 

ㅇ 평소 롤모델을 소셜에서 찾기


제일 수월한 방법은 평소의 롤모델을 소셜에서 찾아보는 거다.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접한 사람들 중 '롤모델'로 삼을 만한 분들이 있을 거다. 2012년 기준으로 보면 '김제동', '안철수', '시골의사 박경철' 같은 분들이 청년들에게 크게 환영받고 있다. 이런 분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찾아보자(안철수 교수는 소셜미디어 거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김제동과 박경철은 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계정과 관계를 맺자.

 

ㅇ 친구의 멘토에 관심 기울이기


먼저 소셜미디어에 안착한 친구(팔로워)의 '친구 관계'(팔로잉)를 살펴보는 것도 손쉬운 방법이다. 사람이 혼자서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주변에 참조할 만한 것이 있으면 그 범위가 쉽게 확장된다. 친구의 친구관계가 단서가 돼서 본인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다.


ㅇ 소셜 관련 기사에 주목하기


언론에서 다루는 소셜 관련 기사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자의 경쟁력은 '취재원'에 있다. 현역 기자가 소셜 관련, 혹은 소셜에서 이슈가 되는 내용을 다룰 때 누구의 말을 주로 인용하는지 보면, 누가 소셜미디어에서 중요인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분들을 1차 멘토 후보군으로 보고 자기와 궁합을 맞춰보자.


ㅇ 소셜 허브를 찾아내기


한때 연예인 인맥지도 그리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주목받았던 사람이 바로 박경림. 웬만한 연예인의 인간관계는 박경림을 통하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걸 인맥에서 '허브'라고 부른다. 소셜에서도 마찬가지다. 허브 역할에 특히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시간을 두고 사귀다보면 자연스레 발견된다. 그를 통하면 손쉽게 다양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의할 점. 단순히 친구 숫자가 많다고 허브가 되는 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이끌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ㅇ 멘토도 움직인다


소셜에서의 관계를 흔히 '느슨한 인간관계'라고 표현한다. 달리 표현하면 '쉬운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관계를 맺기도 쉽지만, 그만큼 끊기도 쉽다.멘토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예의를 지키긴 해야겠지만, 의리까지 지켜야 할 심각한 관계는 아닌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하는 과정에 따라 멘토군은 달라질 수 있다. 그게 또 자연스럽다. 다만, 자기 멘토군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은 세우자. 그리고 '리스트'를 관리하자. 트위터든 페이스북이든 리스트를 관리할 수 있다. 인생 전반의 멘토를 찾는 한편, 분야별 멘토도 모셔오자. 시사 부문의 멘토, 문화예술 부문의 멘토, 전문 분야에 관한 멘토 등등. 본인이 정립하고 성장시키고 싶은 다양한 분야에 멘토들을 포진시키자.


멘토와 소통하기

 

멘토를 통해 제대로 성장하려면 서로 소통해야 한다. 물론 눈팅만 해도 효과는 있을 거다. 하지만 질적인 차이는 크다. 제아무리 훌륭한 인터넷 강의라도 효과면에서 교실 강의를 따라갈 수 없다 하지 않은가. 서로 눈을 맞추며 소통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소셜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왕에 멘토로 삼았다면, 적극적으로 소통하자.

 

ㅇ 호응하기


앞서도 밝혔듯이 인간관계의 첫출발은 '듣기'다. 그리고 호응하기다. 멘토로 삼았다면, 그의 활동에 적극적인 호응을 표시하자. 페이스북이라면 '좋아요'는 기본이다. 트위터라면 RT(리트윗)는 기본이다. 멘토들에게도 엄연히 '호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멘토들도 '누가 내 글에 호응하는지' 궁금해 한다. 따라서 자주 호응할수록 멘토에게도 존재감이 인지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댓글로도 호응을 표시하자. 트위터라면 멘션이나 인용하기 리트윗으로 간단한 의견을 표시하자.

 

ㅇ 토론하기


토론하라고 해서 멘토들과 바로 맞짱(?)을 뜨라는 말은 아니다. 급수가 다른데 무턱대고 덤비는 건 무모하다. 일단 멘토의 글에 달리는 댓글들을 살펴보자. 그리고 비슷한 급수로 보이는 댓글에 의견을 달아보자. 대부분의 경우 멘토는 댓글에서 벌어진 토론에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멘토의 생각은 물론 본인의 생각도 분명해지고, 또 함께 자란다. 물론 자신 있는 분야라면 직접 토론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토론의 목적은 분명히 하자. 승부 내기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기라는 것.

 

ㅇ 요령 있게 질문하기


'질문도 기술이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생각보다 질문하는 요령을 잘 모르는 청년들이 많다. 무턱대고, 다짜고짜로 물어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혹시 OOO 자료 있어요?', 'OOO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이런 식이다. 질문 받는 입장에선 황당하다. 이런 질문은 상대방을 골탕먹이거나 약올리고 싶을 때 하는 거다. 



멘토가 특정한 자료를 구하고, 또 재구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떤 문제에 대해 다 얘기하려면 책 한권이라도 부족할 거라는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질문이다. 좋은 답변을 기대한다면, 질문이 좋아야 한다. 먼저 멘토의 관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어떤 이슈가 궁금하다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스터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이러저러한 것 같은데, OO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류의 질문이 좋다. 그래야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ㅇ 오프라인 활동에 참여하기


멘토와 정말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오프라인 활동에까지 참여하기를 권한다. 그의 강연이든, 그가 참여하는 번개든, 실제로 면대면으로 만나 말을 섞어보면 관계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체험할 수 있다. 물론 배움과 영향력의 질도 달라진다. 정말 닮고 싶은 멘토라면 꼭 오프라인에서도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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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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