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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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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이야기/옛날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

  1. 2010.01.22 결혼 5주년, 격정의 날들을 회상하다.(14)
  2. 2010.01.16 창원 상남장, 10년 전 이야기(4)
  3. 2010.01.14 팀셀(Timshel), 죄책으로부터의 자유(2)
우리 부부는 2005년 1월 22일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얼렁뚱땅 살다보니 벌써 만 5년이 흘렀네요. 그 사이에 딸 둘도 생겨 단촐한 네 식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큰 애가 다섯 살, 작은 애가 세살입니다. 

보통 기념일을 끊을 때 5주년, 10주년 단위로 좀 더 색다를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요. 그래서 저도 결혼 5주년을 기념하여 옛날 기록들을 좀 뒤적여 봤답니다. 결혼할 당시 기록은 없구요, 대신 처음 만났을 때 기록은 제법 남아 있습니다. 처음 전화로 통화를 시작한 게 2000년 11월말이었구요, 실제로 만난 건 2000년 12월 24일,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건 2001년 초부터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그때 기록을 뒤적여보니, 정말 손발가락이 다 오그라드는 표현도 수두룩하구요, 또 부득이하게 이별을 선언했다가 힘에 겨워 허덕이던 모습도 눈에 선하네요. 벌써 10년 가까이 흐른 것들인데, 막상 읽어보니 어제 일처럼 또렷하기만 합니다. 오늘은 결혼 5주년을 기념해 그 기록들을 다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처음 대면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썼던 기록입니다. 저희는 200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종로의 교보문고에서 만나 저녁식사와 조촐한 선물교환을 하고, 지금은 <점프> 전용극장으로 바뀐 종로2가의 코아극장에서 <치킨런>이라는 애니메이션을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첫 만남을 마무리할 때쯤 아내의 표정은 썩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마지막 선물로 내가 후배 집에까지 차로 데려다 줄게"라고 말했지만, 그게 진심으로 느껴졌습니다(실제로 진심이었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마침 폭설이 내려 길이 빙판으로 변했고, 길 한복판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저흰 꼼짝 없이 차 안에서 밤을 새야 했습니다. 하늘이 도와(?)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비극은 면할 수가 있었죠.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저는 계속 인연의 끈을 이어갈 수 있는 핑계는 생겼지만, 또 한 편으로는 새로운 남자 사귀기를 원하지 않았던 아내의 속마음이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이런 글을 남겼답니다.


아름다워서 슬픈...(2000. 12. 26)

아름다워서 행복한 적 있습니까.
아름다워서 슬퍼본 적 있습니까.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아름다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아름다움
분명 함께 했으나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
너무 찬란해 차라리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그래서 더욱 처절하게 아름다운 그 아름다움

추억 속에서...
기억 속에서...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잊혀져야 할 운명의 아름다움

홍수 속에 떠내려가는
집채를 바라보듯
간직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구르는 아름다움

아름다워서 행복한 적 있습니까.
아름다워서 슬퍼본 적 있습니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 뒤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풀렸습니다. 만나기 전과 같이 거의 매일 밤을 새며 통화를 했습니다. 둘 다 일을 하고 있었던지라 꼬박 새지는 못하고, 새벽녘 신문이 아파트 대문 앞에 놓이는 소리가 들릴 때 비로소 잠을 재촉하던 때였습니다. 한 마디로 '둘 사이가 엄청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손발가락 오그라들게 만드는 글이 여럿 됩니다만, 혹시나 공해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아 딱 세 개만 공개합니다. 혹시나 손발가락 저림 현상이 있으신 분들은 건너 뛰셔도 무방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2001. 1. 8)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려 그런지
새 아침이 그렇게 푸를 수가 없습니다.

물기 머금은 아스팔트는
아침햇살을 잔뜩
퍼내고 있었고

대동백화점을 돌아
창원시청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천주산은
한밤의 간판사진처럼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바로 오늘을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혼자 보기 아까웠고
그래서 그리움도 생기나 봅니다.


아침을 깨우는 그대(2001. 1. 18)

아침에 눈 뜨자마자 그대 목소리 들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손을 뻗을 때 그대 항상 닿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매일 그대 위해 정성껏 노래부를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대 내 말에, 그리고 내 노래에 귀를 기울이니 행복합니다.
그대 나를 알고, 나 또한 그대를 아니 행복합니다.
내가 그대를 아끼는 만큼 그대 또한 나를 아끼니 행복합니다.

때로 그대 때문에 잠을 설치니 행복합니다.
때로 그대 때문에 눈물과 한숨 지으니 행복합니다.
때로 그대 때문에 아파하니 행복합니다.

그대로 인해 나의 세상은 이전보다 더 아름다워졌고
그대로 인해 나의 삶은 이전보다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바라옵기는 이 모든 것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옵기는 이 모든 아름다움 퇴색되지 말기를
바라옵기는 이 모든 즐거움 더 큰 기쁨으로 승화되기를

함께 있다면 서로에게 자유를
따로 있다면 서로에게 그리움을
헤어져 있다면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그대의 향기(2001. 2. 5.)

문득 10년 전 찾았던
광릉수목원이 떠올랐습니다.

삼림욕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그곳...

당시 저는
이름표가 달린 아름드리 나무를 구경하기보다
이름 없고 때깔 없는 나무들이 만들어 놓은
삼림욕장 걷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유달리 혼자 그곳 찾기를 즐겼습니다.
어울릴 친구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같이 갈 이유가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굳이 혼자서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오로지 방해 받지 않고
거기가 아니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홀로 온전히 취하기 위한 욕심 때문이었을 겁니다.

꾸밈없고
포근하고
아늑하고
감미로운
그 모든 향기를 말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도 위기는 있는 법. 생각보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습니다. 2001년 2월 중순경이었습니다. 여기에다 그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둘 사이의 관계가 아닌 다른 이유가 개입되기 시작하면서 둘은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아내는 '사랑한다면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콘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에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상황은 꼬여만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2월 하순경 우리는 '이별'을 선택합니다.


어떤 후회(2001. 2. 19)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뜨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며 세상은 참 냉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겨우 하루밤 사이라도 이 세상 구석구석에 수많은 아픔들이 있었을 테고, 헤아릴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을 터인데 이놈의 세상은 도무지 그 고통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이미네요.

언제였던가요.... 그대의 집을 나서던 그 순간. 뒤돌아 둔중한 철문을 닫으며 몇 마디를 했던가요? 아니 그저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던 그 몇 초 사이... 참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지금 대문을 열면 다시 서 있을 텐데....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 텐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고 들어서서 '1'이라는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이 갈등은 계속됐지요. 그러나 집게손가락 끝마디는 주인의 이런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버튼을 눌러놓고 있었지요.

문이 닫혔습니다.... 층수를 알리는 숫자는 자꾸 줄어들데요. 자꾸만 낮아지는 높이만큼이나 희망은 포기로 뒤바뀌고... 마침내 1층에 도착해 입구가 열리자 전혀 다른 세상이 앞에 펼쳐졌습니다. 똑같은 문을 들어서고 똑같은 문을 나섰을 뿐인데, 앞에 펼쳐진 그림은 왜 이리도 달라져 있는지요.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해봤습니다. 그 짧은 몇 초 사이.... 다시 한 번 문을 열었다면.... 다시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모니터앞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달라져 있을까요? 아니겠지요.... 다시 문을 열어도 바뀔 것이 더 이상 없을 것이기 때문에 차마 문을 열지 못한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그때 한 번 더 문을 열지 못한 게 왜 이리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버거움(2001. 2. 19)

매일매일 해내야 할 일이
매일매일 맡은 역할이
매일매일 바라보는 눈길이

버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거기로부터 놓여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 끝 모서리에
홀로 서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위 두 글은 이별을 선택하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바로 그날 쓴 글들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인식을 못할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었죠. 그런데 이별의 고통은 이튿날 절정에 달했습니다.


힘이 들수록(2001. 2. 20)

지금은 힘든 때입니다.
많이 힘든 때입니다.
갑자기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잘하는 식당 찾아가며 밥 챙겨먹는 것도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것도
주어진 업무에 집중하는 것도
옆에 있는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간혹 농담 따먹기로 주위를 웃기는 것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도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는 것도
슬픈영화를 보고 눈물짓는 것도
양지바른 담벼락에서 해바라기하는 것도

모두 그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것들.....
그대와 만나기 전부터 있었던지라
그대와는 상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대를 만난 이후
그대가 이 모든 것들의 이유가 됐습니다.

마치 뿌연 유리창을 깨끗이 닦은 것처럼
그대를 통해본 세상은 예전과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의 이유가 사라진 지금
그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 짐이 됐습니다.

이른 아침에 왜 일어나는지
밥은 왜 챙겨먹어야 하는지
출근은 왜 해야 하는지
업무는 왜 처리해야 하는지
친구와 수다는 왜 떠는지
농담 따먹기로 주위를 왜 웃겨야 하는지
약속은 왜 지켜야 하는지
노래는 왜 불러야 하는지
영화는 왜 보는지
양지바른 담벼락에서 해바라기는 왜 하는지

찾기지도 않는 이유를 찾아야 했고
생활은 어느새 의무라는 짐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힘든 때입니다.
많이 힘든 때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겠죠?
그래도 살아야 하겠죠.

그대여, 힘이 들수록
많이 힘들수록
잘 먹기를 바랍니다.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대를 아끼는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고통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날 밤 11시에 아내는 제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내도 너무 아프고 힘들었답니다. 그리고 제가 "그래도 어떡하겠냐, 받아 들여야지"라고 말해주면, 자기 맘도 좀 정리가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전화를 받는 순간 "이번 이별은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아내는 "장난치는 거냐"며 당황해 했습니다만, 저는 그때 정말 절실했습니다. 그 이틀간의 아픔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틀간의 고통을 통해 '남이 만들어 놓은 조건' 때문에, 혹은 '환경이 만들어 놓은 제약' 때문에 사람을 포기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너와 내가 아닌 다른 이유로 이별해야 한다'면 그것이 평생 후회가 될 거란 것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아내를 강하게 붙잡았습니다.


옥상에 오르면(2001. 2. 24)

옥상에 오르면
땅에 발붙이고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됩니다.

날개가 없는 탓에
그림자와 운명적으로
붙어 살아야 하지만

그나마 옥상이란 데가 있어
날아올라 내려다 보는
흉내는 내게 됩니다.

옥상에 오르면
확실히 세상은
달라져 있습니다.

막혔던 길이 뚫리고
가렸던 산이 솟아 오릅니다.

우왕좌왕하던 골목길
갈팡질팡하던 동네어귀...

왜 저기서 헤매고 다녔는지
한심하기도 하지만
이제 웬만큼 자신감도 생깁니다.

옥상에 오르면
확실히 보는 눈 또한
달라져 있습니다.

눈앞의 어려움에 맘조리기보다는
오래도록 걸어가야 할 먼산을 바랍니다.

당장 달겨드는 괴로움을 피하기보다는
마침내 얻게될 행복을 꿈꿉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옥상에 오르는 까닭은

멀리 펼쳐진 인생길을
가늠해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이마만한 경험을 했다면 여기서 몇 달 뒤에는 결혼을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 때문에 우리 부부는 이로부터 4년이 더 흐른 2005년의 오늘에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리고 또 다른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때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요, '앉아서 떡먹기'요, '누워서 돈 세기'라고 할까요?

어쨌든 오늘로 벌써 결혼 5주년이 됐네요. 같이 살아주는 사람, 날 믿어주는 사람, 내 사람이 있다는 게 여간한 행복이 아니라는 걸 예전 기록을 들춰보며 새삼 느낍니다. 

5주년 기념일인데 오늘을 그냥 보낼 순 없겠죠? 그렇다고 뻑적지근한 이벤트를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오늘 하루 털어서 점심 같이 먹고, 정말 오랜만에(아이들 때문에 몇 년간 접어야 했던) 영화 한 편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볼 영화는 안 보면 대화가 안 되는 <아바타>입니다.^^

위로부터 2006년, 2007년, 2009년에 찍은 한강변 코스모스축제 현장입니다. 해마다 가족이 늘어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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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저는 창원에서 1980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습니다. 처음 둥지를 튼 곳이 지금의 창원남고등학교 바로 앞에 두 동으로 이뤄진 '창일아파트 나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는 상남초등학교를 다녔지요. 그때만 해도 상남역이 살아 있었고, 철길도 지금의 창원시청 앞 잔디광장을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상남초등학교는 상남역 바로 밑, 상남지역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등하교 때마다 자연스럽게 상남장을 관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남장은 4일, 9일 장이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항상 사람으로 북적이며 엄청난 활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원시의 도시개발 정책에 밀려 2000년대 말에 그 원형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때 저는 경남도민일보 기자직을 그만두고 경남발전연구원의 위촉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상황이 안타까웠던 저는 제 홈페이지에 두 편의 글을 남겼습니다. 뒤져보니 그게 나오네요. 오늘은 상남장에 관한 10년 전 제 생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폐쇄되는 상남장(2000년 11월 26) 

창원의 명물이자 역사였던 상남 5일장이 이제 폐쇄된답니다. 이유인즉슨 시에서 상남재래시장을 짓고, 거기 상인들이 입주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건물은 아마도 옛날 상남통을 철거하는 대신 옛 상인들에게 보상차원에서 지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내막이야 속속들이 모르지만, 얼핏 듣기로 그렇게 들었습니다.

오늘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다가 일부러 내려 그 재래시장이란 곳엘 들렀습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지은 것인데, "창원이 발칵 뒤집힌다"는 프랜카드가 벽면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고, 각종 포장마차들도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모여들었습니다만, 그걸 보는 제 가슴은 자꾸만 싸늘하게 식어만 갔습니다. 그저 점포 하나 얻었다고 좋아했던 그 상인들이 이제부터는 저 무지막지한 홈플러스(삼성이 경영하는 대형할인매장)와 경쟁을 해야겠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리 따져봐도 경쟁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시에서 지어준 건물이니 멋있기라도 합니까, 그렇다고 상품에 대한 품질이 보장됩니까. 그저 하나 있는 매력이라면 재래시장의 '토속성'인데, 그런 허름한 건물에 가둬 둘 바에야 도대체 일반 아파트 상가와 뭬 다를 게 있겠습니까?

둘러보고 오는 길에 보니 시에서 직접 붙인 프랜카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남재래시장이 개장하면 상남 5일장은 폐쇄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누구는 임대료 물어가며 건물 한 귀퉁이 겨우 마련해 장사를 하는데, 누구는 그런 절차 하나도 안 밟고 트럭에 물건 실어와서 더 싼 가격에 장사한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건물 임대를 위해 돈을 지불한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점상을 단속하는 거야 합법이니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화가 나는 것은 왜 정책결정자들이 그 정도의 안목밖에 안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상남재래시장이라는 해법은 상가 안에 입주한 사람들도 죽이고, 또 장돌뱅이 노점상들도 죽이며, 지난날 상남장을 거닐었던 시민들의 추억 또한 죽이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마산에 가면 부림시장이라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마산의 재래시장이지요. 지금 그곳 형편이 어떤지 아십니까? 인근에 들어선 대우백화점과 새로 문을 연 신세계 백화점 덕분에 거의 죽음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 둘 상점은 문을 닫고 있고, 인적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 달 여 전에 거길 가봤는데, 거의 슬럼화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상남 재래시장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백화점 보다 훨씬 저렴하고 품질도 보장되는 동시에 각종 편의시설 또한 쾌적하게 갖추고 있는 대형 할인매장이 삼성홈플러스 말고도 두어 개 더 창원에 들어선다는데, 어느 누가 가격경쟁력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고, 편의시설도 부족한 상남재래시장을 찾겠냔 말입니다.

그러나 지난번에도 지적했듯이 5일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상남장은 분명히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공인중개사를 하는 제 친구 말이 상남장이 서는 날은 아예 전화 한 통화 안 울린다고 그러더군요. 그 정도로 상남장은 매력을 가졌더랬습니다. 비록 홈플러스와 각종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도 상남장은 끄덕 없었으니까요.

이처럼 상남장이 대형유통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목표시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사람이 대형매장을 찾을 수도 있고, 상남장엘 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대형매장과 상남장을 찾는 이유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대형매장에는 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사러 간 것이고, 상남장에는 훈훈하고 여유로운 토속적인 분위기를 사러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상남장만이 줄 수 있었던 그런 상품가치가 송두리채 사라지고, 오로지 가격과 서비스만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이겨내겠다는 것입니까?

물론 속단하기는 이를 것입니다. 당장은 시에서 상남 5일장 폐쇄를 공표했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수십년 이어온 장소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폐쇄된 상남재래시장(2000년 12월 9) 

어제 차를 몰고(요즘 기침 때문에 자전거 타는 걸 자제하고 있습니다^^) 집에 가던 중 상남재래시장을 들렀습니다. 이 시장에 관해서는 며칠 전 11 25일자로 주저리에 글을 올려놨지요. 그때 제목은 '결국 폐쇄되는 상남장'이었습니다. 상남재래시장이 문을 염과 동시에 기존의 상남 5일장이 문을 닫게 된 것이죠. 그런데 오늘은 제목을 다소 수정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며칠만에 지나친 상남재래시장 건물은 웬지 낯설었습니다. 지난 주만 해도 각종 프랜카드에 포장마차에 겉보기는 씨끌벅적했습니다만, 어제 찾은 상남재래시장 건물에는 프랜카드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번듯했던 포장마차도 자취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고작해야 부동산 간판 하나와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먼지쌓인 자동차 몇 대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건물복도에 진을 치고 있던 간이부스들은 때에 따라 치울 수 있다손 치더라도 매장 안에 있던 점포들까지도 마파람 게눈 감추듯 사라지다니,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창원이 발칵뒤집힌다는 둥, 아줌마들을 위한 빅 찬스라는 둥 온갖 현란한 문구들이 결국 허풍으로 판명난 것일까요? 저 또한 상남재래시장의 미래가 힘겨울 거라고 예측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이처럼 허무하게 끝장이 날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시청에다 확인을 못해봤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대한 정확한 내막은 모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일 뿐인지, 다른 특단의 조치가 준비되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없었던 일로 치부돼버리는 건지....

며칠 전 세일한다고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써붙였던 종이는 떨어져나가고 접착테이프 쪼가리만 휑뎅그레 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마치 무슨 절규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매장을 채우고 있던 물품들은요? 주변에서 흥을 돋우던 포장마차들은요?

이제 상남장도 현실이 아닌 추억으로 변질되려나 봅니다.

예전 사이트를 뒤지다가 10여년 전에 제가 갖고 있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기록으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이 또한 사라질 것 같아 짬 날 때마다 이곳에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유통기한이 만료되고도 한참 지난 글들이라 읽는 재미는 없으시겠습니다만, 제 나름의 기록을 정리하기 위한 시도이니 너그러이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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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예전 사이트를 뒤지다가 10여년 전에 제가 갖고 있던 홈페이지에 썼던 글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기록으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이 또한 사라질 것 같아 짬 날 때마다 이곳에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유통기한이 만료되고도 한참 지난 글들이라 읽는 재미는 없으시겠습니다만, 제 나름의 기록을 정리하기 위한 시도이니 너그러이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블로그 주소가 'http://timshel.kr'입니다. 제 트위터 주소도 '@timshel02'입니다. 게다가 제가 다녔던 여러 직장에서의 이메일 주소도 'timshel@....'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말로 발음하면 '팀셀'입니다. 영어에는 없는 단어이고, 히브리어입니다.

보통은 95% 이상이 제가 이런 주소를 쓰는 데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이 단어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계십니다. 며칠 전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많이 보여준 후배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심지어 히브리어 사전까지 찾아보고, 또 아는 목사 친구에게 전화해 뜻까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에 대한 답변은 들었어도, 제가 왜 이런 단어를 좌우명처럼 항상 달고 다니는지는 이해가 안 됐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래저래 소상히 그 사연을 일러준 적이 있답니다. 이 팀셀은 저의 의식세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10년 전에 제가 나름 이와 관련해 정리해뒀던 글을 다시 끄집어내봅니다.


팀셀, 죄책으로부터의 자유(2000년 12월 29일)

1
자유를 속박하는 가장 무서운 힘은 무엇일까요? 역사 라는 큰 틀에서 보면 독재와 폭압, 그리고 전쟁과 편견 등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정작 일상 속에서 우리를 한발짝도 못 움직이게 만드는 어두운 힘은 바로 죄책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특히 '나 때문에' 무슨 일을 그르쳐서 생긴 죄책감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가 돼 항상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게 만듭니다.

2
성서 앞부분에 보면 그 유명한 '카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카인과 아벨 모두 자기가 준비한 예물을 야훼께 바치지만, 야훼께서는 아벨의 것만 받아들이고 카인의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무슨 이유로 카인의 예물이 거절 당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만, 여하튼 카인은 그 사실에 분노하고 아벨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며, 급기야는 아벨을 들로 유인해 쳐죽이게 됩니다

이후 카인은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을 받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특히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죽일 것"이라는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리게 되고, 야훼께서는 그런 카인을 위해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는 증표를 새겨줍니다. 

3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에 등장하는 쌍둥이 아론과 카알은 성서상의 카인과 아벨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형 아론은 온순한 성격으로 아벨을 닮았고, 동생 카알은 반항적인 성격으로 카인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영화에서는 제임스 딘이 카알 역할을 맡아 반항아적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혔더랬죠.

3대에 걸쳐 진행되는 소설 이야기를 모두 말씀드릴 수는 없고, 아론과 카알의 이야기만을 짧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카알은 항상 아버지를 애덤을 사랑하고, 또 그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지만 왠지 거절당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버지든 소꿉친구인 애이브라든 선량한 형 아론을 사랑하는 대신 비뚤어진 자신은 멀리한다고 느낀 거지요. 그러던 어느날 돌아가신 줄 알았던 어머니 캐시가 살아있고 그 동네에서 가장 사악한 매춘업소의 주인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아버지 애덤과 어머니 캐시 사이의 이야기도 참 처절합니다만 여기선 생략하지요).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일어납니다. 사업에 손을 댔다가 재산을 잃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카알은 콩에 투자합니다. 다행히 큰 돈을 벌어들인 카알은 아버지 애덤에게 그 돈을 가져다 드리지만 애덤은 그 돈이 가난한 농부의 돈을 갈취한 것이라며 받기를 거절하지요. 마치 야훼께서 카인의 예물을 거절하셨듯이 말입니다.

이에 화가난 카알은 형 아론을 제물로 삼아 증오를 불태웁니다. 마치 카인이 아벨을 들로 유인해 쳐죽였듯이 카알은 온순했던 형 아론을 매춘부 어머니에게 데려가 둘을 대면시킵니다. 그때까지도 어머니에 대해 전혀 몰랐던 아론은 그 만남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군에 입대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 애덤은 충격으로 눈이 멀게 되고, 카알은 카인이 그랬던 것처럼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던 어느날 애덤을 돌보던 중국인 리는 아론의 사망통지서를 받게 됩니다. 아무도 몰래 찢어버릴까를 고민하던 리는 "사람은 괴로워할 권리도 있다"고 결론내리고 애덤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 애덤은 그 충격에 뇌일혈로 쓰러지고 카알은 절망에 빠집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아론이 죽은 것도 아버지가 쓰러진 것도 모두 제 탓이에요. 제가 형을 케이트네 집에 데려갔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알려주었죠. 아론은 그래서 도망치듯 이곳을 떠난 거예요. 저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만 어쩔 수..."

카알은 아버지의 무서운 눈을 피해 침대 옆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그래도 아버지의 눈이 보였고, 그 눈이 한평생 자기를 노려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덤의 의식이 돌아왔을 때, 리는 카알을 애덤에게 데리고 갑니다.

"애덤, 당신이 앞으로 얼마를 살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당신의 아들은 오래오래 살 겁니다. 결혼을 할 거고, 그의 자식은 당신의 후손이 될 겁니다. 카알이 화가 나서 일을 저지른 거예요. 애덤 당신이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 분노의 결과로 그의 형,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아론이 죽은 겁니다."

카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는 계속합니다.

"아냐 , 말해야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이 있더라도 말해야 해. 당신의 아들은 죄책감으로 제정신이 아닙니다. 견딜 수 없을 지경에 도달했어요.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애덤 당신이 카알을 축복해주도록 해요. 카알이 평생 죄의식에 사로 잡혀 살지 않게 해줘요.... 아담, 어서 아들을 편안하게 해줘요. 한 번만 기회를 줘요. 어서 자유를 주세요. 인간이 짐승보다 나은 건 자유가 있어서지요. 어서 아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축복해 줘요."

애덤은 힘겹게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생을 마칩니다.

"팀셀!"

4
팀셀은 히브리어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정확한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이 단어가 등장하는 문맥을 살펴야겠죠.

이 단어는 앞서 짧게 언급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카인이 자기가 거절당했다며 분노에 떨 때 야훼께서 카인에게 몇 가지 주는 언질에 이 단어가 등장합니다. 본문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주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색이 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하니,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팀셀)"

이 문맥 속에서 보면 팀셀의 뜻인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의미는 황희 정승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관대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죄가 카인을 덮치려고 문밖에 도사리고 앉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인 너는 그 죄에 속박되지 않고 다스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니까요.

5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나의 실수에 의해서든, 나의 분노 때문이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짓눌릴 때가 많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짓눌림은 자주 자기를 망가뜨리는 쪽으로 치닫게 되지요.

절망의 상황에서 우리가 쉽게 자기 파괴를 선택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 그것말고는 달리 선택할 방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번 빠져들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처럼 죄책감의 고리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팀셀........

죄가 너를 덮치기 위해 도사리고 있어도, 너는 오히려 그 죄를 다스릴 수 있다는 선언. 형과 아비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는 죄책감이 너를 옭아매더라도, 너는 거기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선언죄책감으로부터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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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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