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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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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4 14:13 지역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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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4.07.16 10:09 지역과스토리텔링

"독립적인 개인들의 다양한 의견들과 정보가 폭넓게 제공될 때 공동체는 지혜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일정한 방향으로 경도된 의견과 정보가 공동체를 지배할 때 공동체는 어리석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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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1:07 지역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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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0 15:56 지역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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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21:53 지역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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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22:18 지역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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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3 17:06 지역과스토리텔링

#1

우리 동네(경기도 남양주 덕소) 아파트 단지 대부분은 1주일에 한 번씩 요일을 바꿔가며 이른바 ‘알뜰장터’가 열린다. 주로 단지내 가장 넓은 도로 양쪽에 노점들이 들어서는데, 채소와 과일, 생선과 어패류, 떡볶기와 치킨, 뻥튀기와 와플, 동화책과 영어학습지 등 다루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품목들이 펼쳐진다. 날이 갈수록 인기가 더해서 규모도 커지고 이를 유치하는 아파트 숫자도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대형마트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아파트에도 매주 하루 알뜰장터가 열리고 있다.


분위기는 꼭 5일마다 열렸던 옛날 시골장터 같다. 품질은 나쁘지 않고, 가격은 마트나 상가보다 저렴하다. 쇼핑이 끝날 때까진 아무것도 손댈 수 없는 대형마트와 달리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즐기며 자유롭게 거닐 수 있으니 훨씬 자유롭다. 여기저기 거래 트는 목소리들이 왁자하니 삭막한 아파트에 갑자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2

2년 전 마산원도심 스토리텔링사업을 한창 펼칠 때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자주 참여했는데, 당시 친구들은 가음정시장과 반송시장을 모임장소로 자주 잡고 싶어 했다. 스토리텔링사업과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해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두 시장은 이미 익숙한 곳이었다. 80년대 중후반 고등학생 시절 가음정 주공아파트에 살았으니 가음정시장은 ‘우리 동네’였고, 반송시장 또한 어릴 때 허기를 채우러 자주 들렀던 곳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곳들을 찾아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곳은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훨씬 더 활기차게 ‘살아’ 있었다. 80년대 이 두 곳과 비교조차 불가능한 번화가였던 마산의 창동이 엄청난 공공예산을 들여 ‘재생’하지 않으면 안 될만큼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중심지도, 번화가도 아니었던 시장이 30년을 넘게 위축되지 않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니, 그 그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3

지난 달 18일 시장경경영진흥원이 주최한 ‘고객사랑 시장만들기 캠페인'에서 가음정시장, 반송시장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전국에서 열 군데가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창원에서만 두 곳이 받았다. 비결이 뭘까? 문득 이 두 시장을 흔히들 말하는 ‘전통시장’으로 불러도 되나 싶었다. 가음정시장은 1,160가구의 가음정주공아파트 단지가, 반송시장은 4,560가구의 반송주공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진 뒤 생긴 시장이다. 옛날부터 있던 상권이 아니라 정확하게 ‘아파트’와 함께 만들어진 시장이다.


지금 상식으로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전통시장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아니던가. 수천 세대에 이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홍보하려면 아무개 ‘대형마트’를 유치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홍보 포인트가 된다. 직접 유치하기가 어려우면 가까운 거리에 대형마트 몇 개가 존재하는지를 강조해야 한다. 그런데 가음정과 반송시장이 대표적인 시장으로 상을 받았단다. 아파트와 시장, 이 둘 사이 궁합이 생각보다 잘 맞는 것 아닐까?



#4 

아파트 단지를 옮겨다니며 매주 열리는 알뜰장터가 성행하는 것도, 아파트와 함께 생겨난 가음정, 반송시장이 전국 최우수 시장으로 선정된 것도 결국은 ‘사람’ 때문이다. 현대 한국인의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다. 사람 모인 곳에 장이 서고, 장이 서는 곳에 공동체 문화가 자라나는 건 그래서 당연한 결과다.


1960년대 근대화론이 세계를 지배할 때 수많은 지식인들이 전통시장의 종말을 예언했다. 유통이 근대화될수록 규모 작고 비효율적인 전통시장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의 예언이 틀렸다고 증명한다. 선진국일수록 전통시장은 더욱 활성화됐고, 대형마트에 집착하는 한국의 아파트 입주자들조차도 시골장터를 단지 안에 유치하고 있다.


생각을 좀 고쳐보자. 아파트가 서는 곳에 상가를 짓고 대형마트를 유치할 게 아니라 시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특정 계층 위주로 이용하는 주민센터의 평생학습 프로그램도 좋지만, 공동체 문화를 제대로 살려보겠다면 모두가 즐겨 이용할 수 있는 시장이 안성맞춤 아닐까? 사람 떠난 옛시장의 명맥을 잇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새 시장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아파트와 시장은 이제 만나야 한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아침을 열며'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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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4.01.07 22:34 지역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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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3.10.22 09:11 지역과스토리텔링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진나라 이후 무려 2,0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된 중국제국은 1911년 신해혁명을 계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혁명을 이끈 쑨원은 1912년 1월 공화정인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임시대총통에 취임한다. 쑨원이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의 자리를 양보한 뒤 몇년간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도도한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 즈음 인천에 조성된 청나라 조계지에는 산동지방 출신 화교들이 많이 정착해 있었다. 1908년에 인천으로 건너와 ‘산동회관’이란 이름의 객잔(客棧)을 연 우희광(于希光)도 그 중 하나였다. 황제정을 끝장낸 신해혁명 소식은 물론 인천의 화교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기뻐했을까, 슬퍼했을까, 희망을 가졌을까, 낙담을 했을까? 


그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최소한 산동회관 주인 우희광에겐 희망찬 소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가게 이름을 ‘공화춘(共和春)’으로 바꾼다. ‘공화국의 봄’, 즉 아시아 최초로 공화국이 된 중국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공화춘은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이름을 날린다. 다름 아닌 ‘짜장면’ 때문이다. 짜장면은 1950년대에 연안부두에서 일하는 화교 노동자들을 위해 특별식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비싸고 오래 걸리는 기존 청요리 대신 간편하고 값이 싸면서도 요기도 되는 음식이 바로 짜장면인데, 처음 개발된 곳이 바로 공화춘이었다.


이달 초 인천에 들렀다 잠시 차이나타운을 찾은 적이 있다. 마침 요기를 해야 해서 망설이지 않고 공화춘을 찾았다. 지상 4층 건물을 모두 쓰는 공화춘은 한마디로 으리으리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꼭대기층으로 안내한다.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메뉴판을 받아 보니 ‘공화춘 짜장면’이 1만원. 딱 3초 고민한 뒤 그것으로 주문했다. 짜장면 원조집에 와서 1만원을 아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짜장 형식으로 나온 공화춘 짜장면에는 돼지고기 대신 해물이 가득 들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길이 남기고자 인증샷을 찍고 페이스북에 자랑삼아 올렸다. 이내 좋아요 숫자가 올라가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천 사는 친구의 댓글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동네 사람들은 그 '공화춘'에서 안먹어요. 주로 초입에 있는 신승반점 간짜장 먹습니다. '공화춘' 설립자의 손녀분께서 운영하시는 곳인데…”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나름 벼르고 별러 맛본, 그것도 무려 1만원이나 투자한 공화춘 짜장면인데, 그게 진짜가 아니라 짝퉁이라니, 진짜배기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니! 다른 인천 분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길 왜 갔냐? 거긴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알고보니 진짜 공화춘은 1983년에 이미 문을 닫았다. 음식점 장사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정부의 화교 재산권 제한 정책에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이후 20여년간 폐허로 방치되던 ‘원조’(이런 접두어를 붙여야 한다는 게 서글프지만) 공화춘 건물은 2006년에 등록문화재에 등재됐고, 2010년에 인천 중구청이 매입해 짜장면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50미터 떨어져 영업중인 짝퉁 공화춘을 운영하는 회사의 정식명칭은 ‘(주)공화춘프랜차이즈’다. 한국인 이현대씨가 2002년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2004년에 지금의 자리에 본점을 열었다고 한다. 국민음식 짜장면이 만들어진 곳이니 상표 욕심을 낼 만도 했을 거다. 물론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지역민들은 이곳을 외면하고 있었다. 공화춘을 이야기하는 지역민의 이야기에는 진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인천시가 만약 방치된 공화춘 건물을 몇 년만 더 일찍 문화재로 등록하고 매입했더라면 어땠을까(혹시 뒷북친 건 아닐까)? 특허청이 만약 공화춘의 본래 뜻이 중국 신해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다면 과연 상표출원을 허락했을까? 공화춘을 브랜드로 쓰고 싶은 한국인 사업가가 우희광 선생의 유족과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이끌어낼 방법은 과연 없었을까?


모든 지역에는 저마다의 공화춘이 있다. 손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는 음식점이 있다.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역의 브랜드, 지역 문화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민의 마음이 시간만 흐른다고 얻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업자와 손님의 손에만 맡겨둘 일도 아닌 것 같다. 소중하다 여긴다면 함께 지켜나갈 지혜도 모아야 하지 싶다. 우리 지역의 공화춘은 안녕하신지 문득 궁금해졌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에 실렸습니다. http://goo.gl/54Tm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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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1 16:32 지역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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