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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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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슈미트는 그의 책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그토록 많은 장소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손끝에 그토록 많은 힘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중개인을 거칠 필요 없이 실시간 콘텐츠를 소유하고, 개발하고, 확산시킬 수 있게 된 것은 확실히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에릭의 말대로 시공간을 초월해 거의 모든 인류가 직접 연결된 적은 확실히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초연결 상태로 새로운 현실과 에너지가 생성되고 있고, 상당수의 기존 질서는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


스토리텔링도 예외가 아니다. 별다른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땐 신분과 지위로 스토리텔러가 결정되었다. 인쇄혁명이 일어나 책과 잡지가 쏟아지면서 스토리텔러 숫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활자를 다룰 줄 아는 지식인 계층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자본과 권력이 스토리텔러의 지위를 독점하기 위해 핵심적인 미디어를 장악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시대, 아직은 소셜미디어 이용자 대다수가 자기도 스토리텔러라는 자각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기의 영향력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체감하고 있다. 체감이 자각으로 진화할 때 쯤이면 또 다른 큰 변화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매스미디어 시대에 주로 활동하던 엘리트 스토리텔러들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스토리리스너라고만 생각했던 독자들과 보다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21세기초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인류를 흥분시켰던 개념 중의 하나가 바로 ‘집단지성’이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레비(Pierre Levy)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성 개념을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가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실제로 역량이 동원되는 지성”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또 ‘세계철학 World Philosophy’이란 책에서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류사회는 공동의 지적 능력과 자산을 서로 소통하면서 집단적 지성을 쌓아 왔으며, 이 집단지성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인류의 진정한 통합으로 새로운 진화의 완성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의 전망대로 인류는 몇 가지 성공적인 작품을 내놓았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위키피디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웹환경도 변화를 겪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에 콘텐츠 중심으로 구성됐던 웹환경이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문서를 찾아주던 인터넷에서 사람을 찾아주는 인터넷으로 바뀐다는 말이다. 구글이 검색결과에 ‘구글플러스’를 반영하는 것이나, 페이스북이 최근 그래프검색을 도입한 것 모두 단순 콘텐츠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콘텐츠를 찾아주겠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두고 폴 아담스는 ‘웹개발이 3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논평했다. 1단계는 문서만을 잔뜩 웹에 올려놓은 상태라면, 2단계는 각각의 문서에 리뷰나 댓글을 남길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 상태이고, 3단계는 웹사이트들이 본격적으로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 ‘소셜댓글’을 예로 든다면, 댓글의 내용이 그 문서뿐만 아니라 댓글 단 사람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도 생생하게 나타나는데, 이때 문서는 소셜미디어 포스팅의 링크 파일로 둔갑하게 된다.


이 같은 사람 중심의 네트워크는 콘텐츠 중심의 네트워크와는 또 다른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콘텐츠 중심의 네트워크가 ‘집단지성’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됐다면, 사람 중심의 네트워크는 ‘집단감성’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주목 받고 있는 ‘공유경제’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람의 연결은 이전에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엄청난 ‘신뢰자본’을 만들어냈다. 오로지 소통만으로 만들어진 신뢰는 자격증이나 규모, 외양이나 스펙이 만들어줄 수 있는 신뢰 수준을 크게 뛰어넘었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와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신뢰는 그만큼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줬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로 연결되면서 자기만의 기술을 공유하고, 방을 공유하고, 물품을 공유하고, 심지어 자가용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제레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을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꿈 같은 이야기라고 폄하했지만, 불과 10여년이 지난 오늘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단지 지역사회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글로벌 서비스로도 성공하고 있다.



공유경제의 키워드인 신뢰는 감성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감성이 공유될 때 엄청난 창조성과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셜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집단감성은 인터넷이 만들어낸 집단지성과는 또 다른 폭발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소셜미디어 시대에 스토리텔링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게 될까? 핵심은 스토리텔링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엘리트 스토리텔러들이 스토리텔러가 된 독자들과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어낼지, 얼마나 많은 대중 스토리텔러들이 이 네트워크를 통해 프로페셔널로 성장할지, 또 이들 스토리텔러들이 네트워크 안에서 어떤 아젠다를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켜나갈지가 스토리텔링의 미래가 될 것이다.


아울러 비즈니스의 관점에서는 스토리텔링 네트워크, 즉 다양한 스토리텔러 사이의 네트워크를 잘 조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에디터’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어떤 작품을 발표하든, 어떤 사업을 추진하든, 어떤 서비스를 운영하든, 그 과정에 수많은 대중 스토리텔러들과 맞딱뜨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토리텔러들은 대부분이 통제 불가능한 지역에 존재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통제 불능으로 보이는 네트워크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하고 목적한 바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비즈니스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새로운 대중 스토리텔러들의 등장으로 스토리는 이제 결과가 아닌 ‘과정’이 되었다. 창작과 제작, 유통 과정에 이들 스토리텔러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스토리는 끊임 없이 창작과 제작을 반복하는 과정이 돼버렸다. 이제는 이들의 역할과 개입을 인정하고 함께 ‘집단감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스토리텔링을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의 마무리는 세계적인 과학 칼럼니스트인 렌 피셔의 말로 대신한다.


“대중의 합이 제일 세다. 최상의 답은 대중 속에 있고,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똑똑한 천재는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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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스토리텔링에 대한 현재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담론은 다분히 조작주의적이라고 앞서 주장한 바가 있다. 스토리텔링만 제대로, 멋지게 해낼 수 있다면 떼돈도 벌 수 있고, 돌아선 소비자의 맘도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분히 실체적이다.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엄청난 성과를 이끌어낼 스토리텔링이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 믿는다. 마치 무림계를 평정할 비서(秘書)처럼, 용을 불러들일 드래곤볼처럼, 지니를 불러낼 램프처럼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스토리텔링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쿵푸팬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승 시푸를 제치고 무림을 재패하고 싶었던 타이렁이 비기가 담겨 있을 거라 믿었던 용문서를 결국 입수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건 텅빈 종이에 반사되는 자기 얼굴이었던 것처럼, 스토리텔링이란 것도 쫓아가서 찾아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아닐까?


사실 스토리텔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야기는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파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저마다의 ‘편집’이 일어난다. 두어 단계만 지나도 이야기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 더해지기도 하고 덜해지기도 한다. 최초의 이야기는 하나이더라도 과정을 거친 이야기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가 전파되는 과정이 질적으로 달라졌다. 과거에는 이야기를 수동적으로만 소비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능동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성 미디어(기자)와 핵심 스토리텔러(평론가 등)들만 잘 관리해도 기대했던 대중적인 태도를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활동이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스토리텔링 네트워크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ㅇ 스토리텔링 네트워크


스토리텔링 네트워크란 정확하게는 스토리텔러간의 네트워크를 뜻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전파되는 과정에 위치한 사람들을 단순 전달자가 아니라 엄연한 스토리텔러로 봐야 한다는 게 이 개념의 핵심이다.


스토리텔링 네트워크에 대한 아이디어는 연세대 언론영상홍보학부의 김용찬 교수가 제시한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 이론'(Communication Infrastructure theory)에서 가져왔다. 김교수는 여기서 커뮤니티 스토리텔러간의 네트워크, 즉 스토리텔링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때 커뮤니티의 참여도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중매체가 지배하던 시대의 스토리텔러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특정한 교육과 자격, 그리고 상당한 훈련도 거쳐야만 스토리텔러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창작 관련 전공을 마쳤든지, 아니면 영화아카데미처럼 사회에 마련된  콘텐츠를 직접 창조하는 스토리텔러뿐만 아니라 이를 소개하고 평하는 스토리텔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급성장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는 이들만이 스토리텔러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상당 수준의 엘리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러는 여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들을 소개하고 전파하는 스토리텔러들은 급격하게 많아졌고, 다양하며, 영향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편으론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원작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진입장벽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웬만한 촬영과 녹음, 편집은 물론 네트워크에 발행하는 활동까지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2013년 7월에는 이인화 교수와 엔씨소프트가 스토리제작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인 ‘스토리헬퍼’를 무료로 배포했다. 


사람들의 관심도 엘리트 콘텐츠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콘텐츠에도 나뉘고 있다. 방송과 신문의 시청률과 구독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유튜브 시청시간과 소셜미디어 이용시간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아마추어 스토리텔러들이 세상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크게 늘어났다. 초단편영화제, 29초영화제 등과 같이 변화된 미디어환경과 테크놀로지에 적응하고 새로운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플랫폼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엘리트 스토리텔러, 엘리트 콘텐츠 제작자들은 어떡해야 할까? 2000년대 초 음반사들이 디지털 음악을 보며 그러 했던 것처럼 적대적으로 경쟁해야 할까? 매스미디어가 소셜미디어에 그랬던 것처럼 수시로 견제해야 할까?


급격한 변화는 항상 두려움을 낳기 마련이다. 19세기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기차를 보고 “기차가 공간을 죽였다”고 표현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바람에 출발지와 목적지 말고는 의미 없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한탄이었다. 전화가 처음 등장할 때도 비슷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화 때문에 인간 관계가 망가질 거라고 우려했다. 전화로 용건을 주고받으면, 더이상 사람들을 만나려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에는 항상 흐름이 있었다. 변화가 야기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적응력은 또 놀라워서 문제는 해결하고 새로운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디지털 음악에 대해 음반사들은 적대적이었지만, 스티브잡스의 애플은 디지털음악의 문제보다는 효용성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디지털음악시장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증가하며 매스미디어가 고전하고 있지만, 개중에는 독자와 시청자들과 생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드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등장한 수많은 대중 스토리텔러들을 바라봐야 한다. 경쟁이 아닌 공생, 적대가 아닌 파트너십을 선택해야 한다. 사실 이들 대중 스토리텔러들 상당수는 엘리트 스토리텔링의 헤비유저(Heavy User)들이다. 엘리트 콘텐츠를 그만큼 많이 읽고, 보고, 느꼈기에 소셜미디어에서 자립적인 스토리텔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소셜미디어가 없을 때 이들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엘리트 스토리텔러들이 저마다의 팬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듯이, 이들 대중 스토리텔러들도 나름의 커뮤니티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엘리트 스토리텔러들이 대중 스토리텔러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앞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ㅇ 개방과 수평, 그리고 협력의 네트워크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소셜미디어의 스토리텔러들은 조작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니, 애초에 사적 영향이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네트워크 형성에 임하는 게 낫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스토리텔러의 숫자가 적을 때는 그들을 특별 관리함으로써 영향력의 방향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평적으로 연결돼 있는데다 숫자 또한 가늠하기 어려운 개방적인 네트워크 안에서는 어설프게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 자체가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소셜미디어의 이런 개방성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정기능’을 하게 된다. 이 장 앞 부분에 ‘스토리텔링 담론의 변질’을 다뤘는데, 그 핵심 내용은 ‘조작주의적 관점’이었다. 스토리텔링이 사람의 마음과 감성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도구적, 수단적 방법으로 스토리텔링을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거였다.


하지만 스토리텔링 네트워크가 건강하게 작동한다면, 상당부분 조작주의적 시도를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링컨이 한 말처럼 한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 있고,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많은 사람을 오랫 동안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가 이 같은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 가지의 기준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개방성이다. 진입장벽이 최대한 낮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며, 쉽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개방성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생태계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다양성인 것처럼, 건강한 스토리텔링 네트워크도 다양성 위에서 성장할 수 있다. 


두번째는 수평성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네트워크에 연결된 스토리텔러에게 발언의 기회가 최대한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네트워크를 혁신할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인터넷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서비스인 카페의 특징은 ‘등급’이다. 등급에 따라 발언권과 영향력이 달라진다. 이 같은 수직 구조는 단기간에 폭발력을 이끌어내는 데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활성화된 에너지가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렵다. 히딩크 이전 수직적인 구조의 국가대표 축구팀을 상상해보면 된다. 선후배간의 규율이 단기간의 효능은 쉽게 만들어내지만, 일정한 한계는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세번째는 협력이다. 생명력이 강한 네트워크일수록 북적이는 분위기다. 북적인다는 건 소란스러운 것과는 다르다. 북적이는 곳에서는 생산과 창조가 주로 일어난다면, 소란스러운 곳에서는 갈등과 반목이 주로 일어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는 뭐든지 해낼 수 있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만들어 실질적인 집합효능(Collective Efficacy)을 이끌어낸다. 특히 엘리트 스토리텔러와 대중 스토리텔러간에 협력적 네트워크가 형성될 때 기존의 콘텐츠 비즈니스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공동 창작, 공동 제작, 공동 유통이 통합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집합효능(Collective Efficacy)는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 이론(Communication Infrastructure theory)의 한 개념으로 공동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강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론에 따르면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스토리텔링 네트워크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을 때 집합효능이 잘 나타난다(Kim, Y. C., & Ball-Rokeach, S. J., 2006, Community Storytelling Network,

Neighborhood Context, and Civic Engagement).





한국에서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된지는 올해로 3년째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에 엘리트 스토리텔러들은 소셜미디어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휘발성과 깊이 없음이 가장 큰 회피의 이유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관계와 깊이 있는 소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13년 지금은 상당수의 엘리트 스토리텔러들이 소셜미디어에 자리를 잡았다. 단순히 평판 관리 수준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흠뻑 몸을 적시고 함께 어울리고 함께 소통하고 있다.


예전에 엘리트 스토리텔러들은 오로지 결과물(콘텐츠)만 가지고 독자와 소통했다. 그 결과는 판매량이나 입장객 숫자였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독자란 그저 숫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또 다른 스토리텔러로 진화해 엘리트 스토리텔러와 긴밀하게 연결되자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투자자가 따로 없고(크라우드 펀딩), 창작 과정에 함께 참여하며, 수많은 홍보대사들이 아무 대가 없이 마케터로 발벗고 나선다. 잊혀졌던 시집이 다시 빛을 보고, 새로운 강좌가 열리고, 다양한 기획이 쏟아진다.


물론 이제 겨우 3년이기에 정형화하고 이론화시킬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실제 네트워크로 기적을 만들어낸 사례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3월 15일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으로 추앙받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더 이상 종이 백과사전을 찍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 백과사전을 찾지 않는다는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뺏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위키피디아는 철저하게 개방성과 수평성을 견지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나 편집할 수 있다. 문턱도 없고, 계급도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백과사전의 내용이 망가지지 않는다. 동성애나 인종주의, 환경과 개발 같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주제에 대해서도 놀라울 만큼의 균형감을 갖춘 콘텐츠가 버티고 있다. 과연 어떤 힘이 위키피디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헌신적인 에디터’에 방점을 찍는다. 아무나 편집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 아무 대가 없이 단지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자발적 편집자들이 상당수(위키피디아 편집에 참여한 전체 숫자에 비하면 소수이지만)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위키피디아를 들여다 보며 콘텐츠를 다듬고 질서를 세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편집자와 독자들이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거대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그 집합효능이 바로 오늘날의 위키피디아를 있게 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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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는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스토리텔러는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나 요긴한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아니다. 스토리텔러는 공동체의 설계자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권력자다.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우리 시대의 리더는 스토리텔러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텔러는 구성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는 규범을 세우고 질서를 만든다. 아울러 공동체 삶의 균형이 흐트러졌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조정하는 책임을 진 사람도 바로 스토리텔러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미디어의 변화와 함께 스토리텔링도 바뀌어 왔다. 당연히 스토리텔러도 바뀔 수밖에 없다.


ㅇ 원시 스토리텔러, 사제


구전과 의식이 지배하던 초기 공동체 시대의 스토리텔러는 사제(제사장, 무당)들이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의식을 집전하며, 초월적인 힘에게서 들은 메시지를 공동체에게 전달(이야기)한 이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구성원들에게서 존경 받았고, 아울러 공동체의 실질적인 리더이기도 했다. 분쟁과 갈등이 생기면 권위를 가지고 조정했고, 행동들에 대한 상벌을 결정했으며, 아프거나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 역할도 했다. 이른바 제정일치 사회였다.



ㅇ 학자군의 등장


앞서 문자의 등장과 함께 문명도 형성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문자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지식의 축적이 가능해졌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자군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기억과 직관에 주로 의존하는 이전의 사제들과는 달랐다. 사물과 상황을 대하는 태도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새로운 신뢰감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시작했다.


학자들의 힘과 지위가 강해질수록 사제들의 그것들은 위축돼갔다. 자연히 제정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과정은 제정이 거의 일치했던 삼국시대, 불교가 위세를 떨쳤지만 과거제를 통해 학자들이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한 고려시대, 그리고 성리학을 이념으로 유토피아를 꿈꿨던 조선시대를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스토리텔러가 바뀌었음을 뜻한다.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 갈등 조정의 기준은 사제 개인의 통찰이 아니라 축적된 지식, 즉 학자들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ㅇ 책과 잡지, 많아지고 다양해진 스토리텔러


인쇄 테크놀로지는 신분과 지위에 무관한 새로운 스토리텔러들을 쏟아냈다. 지성과 함께 글솜씨로 무장한 개인과 특정한 기호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책과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변화라면, 대중들도 스토리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일단 책과 잡지라는 미디어에 접근하기가 크게 쉬워졌고, 스토리텔러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ㅇ 매스미디어, 미디어가 스토리텔러


하지만 라디오와 TV 같은 매스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뀐다. 대중의 눈과 귀는 해독의 수고를 거쳐야 하는 활자보다는 바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거기에다 재미까지 가미한 음성과 영상에 고정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시대는 미디어 자체가 스토리텔러가 된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니, 영향력도 지대하게 클 수밖에 없었다. 


인쇄매체 시대를 거치며 숫자적으로 늘어나고 내용적으로 다양해지려던 스토리텔러들은 매스미디어 시대를 거치며 다시 위축됐다. 매스미디어는 인쇄매체와 달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었다. 엄청난 고가의 장비와 설비를 갖춰야만 미디어 기능을 할 수 있었고, 이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등교육과 고도의 훈련을 거쳐야만 했다. 마치 인쇄 시대 이전에 특정 계급과 지위를 가진 사람만이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매스미디어 시대도 특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세상을 향해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한편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자 스스로 공동체의 스토리텔러(지배자)가 되고 싶은 세력들이 매스미디어를 탐내기 시작한다. 하나는 라디오를 장악했던 히틀러, 무지막지한 언론통폐합을 실행했던 신군부, 비판언론을 숙청하고 보수언론에 엄청난 특혜를 줬던 이명박 정부처럼 막강한 스토리텔러를 꿈꾼 권력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광고라는 돈줄을 쥐고 자기에게 유리한 스토리텔링을 유도 또는 강제했던 기업, 즉 자본이었다.


ㅇ 소셜미디어, 각성한 대중이 스토리텔러


그렇다면 소셜미디어 시대의 스토리텔러는 과연 누구일까? 소셜미디어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다.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더구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철두철미 개인화 미디어다.


소셜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중심’이 없다는 것이다. 꼭 거쳐야 할 거점도 없다. 특정한 중개인도 없다. 사람들은 그 누구의 개입 없이 직접 연결된다. 그 누구의 데스킹(검수)도 없이 직접 퍼블리싱한다. 예전 같으면 내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선 방송이든, 신문이든 미디어 기업을 찾아가야 했지만, 소셜미디어는 그럴 필요가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은 ‘매우 쉽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했던 인쇄매체 시대에도 최소한의 경비(종이와 제본비 등)와 전문가(인쇄업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그만큼의 진입장벽조차도 획기적으로 낮춰버렸다. 글만 안다면, 아니 사진만 찍을 수 있다면 세상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소셜미디어 시대의 스토리텔러는 누구일까? 바로 대중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셜미디어를 다룰 줄 아는 '각성한' 대중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단순히 친구와 접촉하고 소통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세계관을, 자기의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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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어느날 프랑스 남부 아르데스 협곡에서 신비로운 동굴 하나가 발견된다. 이 동굴은 발굴자의 이름을 따 ‘쇼베 동굴’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는 매머드, 사자, 동굴곰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 약 300여 점의 벽화가 있는다. 놀라운 점은 이 동굴의 벽화가 무려 3만 2,000여 년 전에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로 알려진 라스코와 알타미라 동굴벽화보다 무려 1만 5,0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고고학자들은 이들 벽화가 매우 깊숙한 곳에 그려졌다는 사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제의 등이 이뤄지던 공동체의 성스러운 공간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다시 말해 당시 공동체의 공식적인 상징활동, 즉 스토리텔링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 동굴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인류가 조직화된 공동체를 꾸리게 된 것을 흔히 신석기 시대인 약 1만~1만 5,000년 전으로 추정해왔다. 하지만 이 벽화의 발견으로 구석기 시대에도 상당히 고도화된 스토리텔링 활동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후 인류는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자기 공동체의 스토리를 만들고 공유했을 것이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변수는 바로 ‘미디어’다. 스토리텔링 활동은 미디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메시지 전파의 범위와 정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가 콘텐츠다’라고까지 정의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미디어가 더 이상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가 됐다고 봐야 한다. 공동체의 미디어 변화가 스토리텔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거칠게나마 한 번 살펴보자.


세계적인 미디어학자인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란 인간의 확장(Media is the Extension of Man)"이라고 정의했다. 땅을 파야 한다면 삽, 굴삭기 등이 맨손을 확장하는 미디어이고, 달려야 한다면 자전거, 자동차, 기차 등이 맨발을 확장하는 미디어이며, 소리를 외치려 한다면 메가폰, 마이크와 앰프 등이 육성을 확장하는 미디어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면 편지, 잡지, 신문, 방송 등이 웅변을 확장하는 미디어인 셈이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 기능을 확장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 다양한 미디어를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공동체와 관련해서는 '메시지를 지배하기 위한 미디어'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해서는 일정한 규범이 없어서는 안 되는데, 이 규범을 확산하고, 교육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메시지가 공동체 구석구석까지 미칠 수 있게 하는 미디어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미디어란 말도 바로 이 '메시지를 지배하기 위한 미디어'를 가리킨다.


ㅇ '의식(儀式)'과 '구전(口傳)'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 공동체는 저마다의 스토리텔링 활동을 유지해왔다. 쇼베 동굴의 예처럼 성스러운 장소를 따로 만들고 거기서 ‘그림’과 ‘음악’(이 동굴에서 동물 뼈로 만든 피리가 발굴됐다)으로 표현되는 일정한 제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공동체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학자들은 신석기 시대의 공동체를 150여 명으로 추정한다. 넉넉하게 잡아도 수백명 수준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의 규모가 크지 않을 때는 특별한 미디어가 필요치 않았다. 아니 뒤집어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미디어가 없을 때 공동체의 규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당시의 공동체 미디어라고 해봐야 쇼베 동굴에서 추정하는 것처럼 일정한 '의식(儀式)'과 '구전(口傳)',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상징'이 전부였을 것이다.


ㅇ 문자 미디어의 등장


하지만 문자라는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구전에 의존하던 메시지가 '기록'되기 시작했고, 매우 '정확하게' 전파되기 시작했다(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출발점으로 보는 수메르인들은 갈대로 만든 천필로 점토판에 설형문자를 새겼다). 메시지의 내용도 신화처럼 간단한 형태에서 벗어나 제법 복잡해질 수 있었고, 분야도 다양해질 수 있었다. 또 기록을 통해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다양한 학문이 발전하게 된다. 인류 최초의 문학이라는 길가메시 서사시가 수메르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점토판과 설형문자라는 매체 덕분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다(사진은 길가메시 서사시가 새겨진 점토판).




물론 공동체의 범위도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한다. 수백명 수준에서 수만명, 수백만명으로 확대되면서 이른바 ‘문명’을 만들어낸다. 메소포타이마, 이집트, 황화, 인더스 문명 모두 문자 미디어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ㅇ 인쇄술의 발명


인쇄술은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자에 접근할 수 있는 신분과 계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들이 공동체의 메시지를 장악했다. 하지만 인쇄술은  책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고, 동시에 문자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문해력만 갖추고 있다면 신분과 계급을 물론하고 중개인 없이 메시지에 도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더구나 인쇄술은 당시로선 최첨단 기술이었지만 비용이나 난이도 면에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범용 기술이기도 했다.  마치 1990년대 말의 인터넷이 최첨단이었지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인쇄술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반 기술이 되어준 것이었다.


특히 마르틴 루터나 존 위클리프 등이 로마카톨릭의 위협을 무릅쓰고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한 성서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만나 유럽전역에 배포돼 유럽의 지식생태계 자체를 송두리째 변화시킨 건, 그래서 혁명이라 불러줄 만했다.


인쇄술이 가져다 준 변화 중에서 특히 '잡지'라는 미디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잡지는 인쇄술을 통해 메시지의 독과점이 허물어졌다는 신호탄이었다. 활자를 다룰 줄 아는 지식인이라면, 계급이나 지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세상을 향해 지속적인 메시지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잡지를 중심으로 기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종다양한 공동체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념이나 철학, 기호와 새로운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가 잡지를 촉매제 삼아 활발하게 조직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잡지는 처음에는 주로 교회와 협회, 각종 단체 등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행됐다가 뒤이어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동인지와 각종 문예지들이 속속 등장했다. 공동체가 있는 곳에는 늘 잡지가 있었다. 잡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동체의 정보를 공유했다. 잡지는 이를테면 공동체 구성원에게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관' 같은 존재였다. 


ㅇ 라디오의 등장과 대중매체 시대


한편 19세기 말 라디오의 발명과 함께 대중매체, 즉 매스미디어 시대가 열린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전달되는 음성은 활자 매체와는 또 다른 파괴력을 만들어냈다. 활자 미디어는 최소한의 문해력을 전제로 하지만, 음성은 그에 대한 교육 수준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단말기를 보유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었지만 그마저도 함께 모여 듣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매스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동일한 메시지가 공동체의 지위고하와 유무식을 불문하고 동시에 전달될 수 있는 획기적인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중의 눈과 귀는 당연히 활자보다는 훨씬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이 대중매체에 집중됐다. 옛날 같으면 건너건너 이야기로 전해 듣던지, 그도 아니면 활자를 해독하며 발신자의 뜻을 이해해야 했다면, 이제는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발신자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매체 환경이 바뀐 만큼 공동체의 주도권도 빠르게 재편됐다. 라디오로 시작된 대중매체의 시대는 텔레비전으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출현은 공동체에겐 지독한 악재가 됐다. 저마다의 메시지로 저마다의 공동체를 꾸려가던 움직임이 위기에 봉착했다. 고작 잡지 미디어에 의존하던 공동체는 매스미디어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공동체의 활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사라지는 공동체도 속출했다. 근근히 살아남은 공동체는 운 좋게 대중매체의 조명이라도 받아야 그나마 활기를 띠는 정도가 됐다.


ㅇ 수평적 미디어, 인터넷의 등장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 매스미디어와는 완전히 다른 수평적인 미디어, 인터넷이 등장했다.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별도의 관문'이 있냐없냐에 있었다. 매스미디어는 송출하는 주체와 콘텐츠 생산자가 방송국이란 형태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대중은 매스미디어에 일률적으로 연결되어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밖에 없다. 방송국이란 문지기가(작가든, 피디든) 선택한 콘텐츠가 아니면 미디어를 탈 수 없다. 따라서 그 방송국 하나만을 지배하면 메시지를 독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터넷은 장악이나 독점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구나 생산할 수 있고, 누구나 소비할 수 있다. 굳이 방송국이란 거간꾼을 거치지 않아도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가 가능하다. 이런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는 2000년대 초 P2P(Peer to Peer) 서비스를 통해 극명하게 표현됐다. 별도의 중앙 서버 없이도 각자의 컴퓨터 하드끼리 네트워크로 연결돼 음원 파일을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었다. 매스미디어만 바라보고 있던 기존의 음악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결국 시장주도권을 내놓고야 말았다.


이처럼 수평적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특정 부류가 공동체의 메시지를 독점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굳이 특정 부류에 속하지 않더라도, 특정 관문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특정 스펙을 쌓지 않더라도 원하는 메시지를 누구나 발신할 수 있고, 또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디어의 혁명적인 변화는 '새로운 개인'의 등장을 촉진했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콘텐츠에,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러들에게 열광했다. 이같은 변혁의 힘이 콘텐츠 시장의 체질을 바꾼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개인의 눈부신 활약에 비해 공동체는 썩 성공적으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기민하게 움직인 게 홈페이지를 만드는 정도였는데,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과 관리 부담이라는 벽에 부딪혀 그것을 공동체의 미디어로 활용하는 데는 대부분 실패했다. 공동체에게 인터넷은 그저 낯선 환경이었다.


ㅇ 한국 인터넷 포탈의 반동


최소한 한국 인터넷은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며 수평적 미디어로서의 매력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소수 포탈 사이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수평적이어야 할 인터넷환경은 다분히 수직적으로 변해갔다. 방송을 타지 않으면 세상에 없다고 여겨진 것처럼 포탈의 검색결과에 노출되지 않으면 인터넷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 받았다.


더구나 공룡이 된 국내 포탈들은 음악, 영화, 쇼핑 등의 인기 인터넷 서비스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기도 하고, 기존 서비스에 브랜드를 빌려주는 형태로 수수료를 챙기기도 했다. 이처럼 포탈들이 다양한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개입하면서 각 분야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의 가능성은 그만큼 차단했다. 당연히 수평 미디어만의 활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ㅇ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새로운 기회


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다시 다가왔다. 2009년 11월에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상륙하면서, 새로운 수평미디어인 소셜미디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소셜미디어가 기존의 인터넷과 다른 점이라면 콘텐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이란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웹환경 자체가 사람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많다. 



단순히 새로운 서비스가 하나 등장한 게 아니라 웹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훌륭한 콘텐츠'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보를 뒤졌다면, 이제는 '친구가 추천하는 콘텐츠'를 함께 공유하며 수다를 떨기 위해 인터넷을 한다는 말이다. 


인터넷이란 수평적 미디어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기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콘텐츠 중심의 웹환경에서는 뜻하지 않은 장애요소도 적지 않았다. 우선 수많은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메시지를 선별해내는 작업이 난해해졌고, 익명성에 숨은 악성 콘텐츠들이 인터넷 환경을 오염시켰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과도한 범람은 그래서 신디케이션 비즈니스를 잉태했고, 그 과정에 한국의 인터넷 대중은 포탈 중심의 수직 구조화를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중심으로 웹환경이 재편되면서 기존 웹이 가졌던 부작용은 상당부분 개선되고 있다. 사람 중심의 웹에선 콘텐츠 중심의 웹에선 존재하지 않던 '신뢰 네트워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신뢰 자산은 콘텐츠 선별에 들어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킬 것이고, 그만큼 생산적인 활동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가능성은 ‘공유경제’란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존 인터넷 환경과 소셜미디어가 또 다른 점은 콘텐츠 생산에 대한 진입장벽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를 대표하는 홈페이지의 경우에는 폼나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시스템을 유지보수 관리하는 이슈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반면 소셜미디어는 140자의 글, 사진 한 장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대중매체처럼 고도로 훈련 받아야 비로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맘만 먹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미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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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스토리텔링은 뜻밖의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다. 경영자들은 직원들의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의사들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도록 훈련되어 있다. 기자들은 내러티브 저널리즘으로, 심리학자들은 이야기 치료로 접근했다. 매년 수만 명 가량이 미국 스토리텔링네트워크에 가입하거나, 미국에서 열리는 200여 개 스토리텔링 페스티벌 중 하나에 참가한다. 그리고 어느 서점을 가더라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마치 구도의 길이나 장학금 지원 전략, 갈등 해소방법 혹은 체중 감량 플랜으로 여기고 쓴 책들이 실로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글은 미국의 사회학자인 프란체스카 폴레타(Francesca Polletta)가 2006년에 쓴 그의 책 ‘그것은 열병과 같았다(It Was Like a Fever : Storytelling in Protest and Politics)’의 첫 페이지에 소개한 내용이다. 본래 스토리텔링이라면 주로 문학과 철학, 즉 인문학적 개념으로 통용됐다. 그런데 어느새 경영학, 의학, 정치학 등으로 크게 확산됐다. 사람들은 그래서 지금을 ‘새로운 서사시대’라고 정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이 같은 스토리텔링의 열병은 이역만리 대한민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이 쓰는 웬만한 참고서에는 ‘스토리텔링’이 제목에 들어간다. 스토리텔링 학습법이라는 설명이 붙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프리젠테이션에도 스토리텔링, 사업계획서에도 스토리텔링, 심지어 면접에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용하라고 주문한다. 대대로 수많은 도깨비 방망이가 존재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스토리텔링만큼 만능이 있었을까 싶다.


1. 스토리텔링 담론의 변질


스토리텔링에 대한 열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크리스티앙 살몽의 ‘스토리텔링’을 번역한 류은영은 1995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디지털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을 지목한다. 이 때를 계기로 스토리텔링은 문학적 서사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디지털화되어 가는 모든 세상과 맞딱뜨리게 되었다고 한다.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스토리텔링 담론이 날개를 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토리텔링 담론의 대중화와 IT 환경변화는 정확하게 궤를 같이 한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과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세상은 온통 디지털의 문법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격변을 겪게 된다. 디지털은 실제로 모든 시간과 공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메일은 ‘실시간 편지’와 ‘자료 공유’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고, 하이퍼텍스트는 특정 위계와 질서, 특히 전문적인 중개인의 개입 없이도 모든 정보가 수평적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혁명을 통해 새롭게 창조된 세상이었기에 그만큼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는 욕구는 강해졌을 테고, 그 공간을 스토리텔링 담론이 메웠다고 말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시대의 핵심 교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디지털이란 수식어에 갇히기 보다는 그것을 발판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디지털이 변화시킨 거의 모든 것에 스토리텔링 담론이 스며들었다. 특히 그 효과성에 큰 기대가 모아지면서 ‘조작주의(Operationalism)적 관점’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대박을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 소비자를 설득하는 스토리텔링, 학습효과를 높이는 스토리텔링,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스토리텔링, 기업경영의 문제를 해결하는 스토리텔링 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필자가 작금의 스토리텔링 담론을 ‘조작주의’로 판단하는 배경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이 개념은 네덜란드의 문화철학자 C.A. 반퍼슨의 생각을 빌어온 것이다. 반퍼슨은 그의 책 ‘급변하는 흐름 속의 문화’(1994, 강연안 역)에서 인류의 문화 발전 모형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번째는 신화적 사고, 두번째는 존재론적 사고, 세번째는 기능적 사고가 그것이다. 





반퍼슨의 문화철학이 빛나는 부분은 이들 발전 모형 모두가 고정돼 있지 않고 시간과 환경의 변화와 함께 ‘변질’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변화를 ‘내재’와 ‘초월’로 개념화했는데, ‘내재’란 사고의 체계가 형해화되면서 인간성을 억누르는 부작용을 가리키고, ‘초월’이란 그 내재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체계가 등장과 인간성을 해방을 뜻한다.


첫번째 문화모형인 ‘신화적인 사고’를 살펴보면, 신화란 공동체의 기원을 규명하고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를 획정하는 순기능을 갖는다. 즉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치 울타리 안에 있는 양떼가 안전함을 느끼는 것처럼 신화 프레임으로 설명되는 공동체는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명쾌한 해답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신화의 순기능은 영원하게 지속되지 못하고 언젠간 변질되고 만다. 그 변질된 모습이 바로 인간을 억압하는 ‘주술’이라고 반 퍼슨은 지적한다. 주술은 인간의 존재를 설명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암흑으로 몰아간다. 사람은 신화에선 안정감을 느끼지만 주술에선 두려움에 휩싸인다. 제사장의 권위는 권력으로 둔갑하여 민중 위에 군림한다. 그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굴종을 강요 받고 착취를 당한다. 이런 변질이 바로 내재화인 것이다.


두 번째 문화발전 모형으로 제시된 ‘존재론적 사고’는 신화적 사고 체계의 내재화를 ‘초월’하기 위한 인식론적 혁명이었다. 인간을 억압하는 추상적인 힘을 혁파하고 인간 존재 자체의 가치를 세우자는 도전이었다. 이성과 합리가 신화와 주술을 대치했고, 다시금 인간이 스스로 주인되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존재론적 사고’도 퇴행적인 변질을 피할 수 없는데, 그 결과는 고립과 소외로 귀결되는 ‘실체주의’라고 반퍼슨은 지적한다. 존재론적 사고의 내재화는 바로 실체주의인 셈이다.


세 번째 문화발전 모형인 ‘기능적 사고’는 실체들이 분절, 고립되어 있다는 사고체계를 초월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로는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파한다.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의미는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발견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기능적 사고도 내재화를 피할 수 없는데, 그 결과가 바로 ‘조작주의’라고 반퍼슨은 말한다. 관계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그것을 ‘조작’함으로써 다시금 인간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다시 스토리텔링으로 돌아와보자. 공동체 사회에서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분명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서는 안 되는지, 바람직한 인간상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공동체의 공감대를 확산하고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스토리의 주인은 공동체와 구성원 자신들이었고, 스토리텔러들은 오로지 공동체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봉사했다.


하지만 작금의 스토리텔링은 공동체의 울타리를 벗어나 갖가지 사적 목적에 복무하는 수단적, 도구적 개념으로 전락했다. 스토리텔링이 결과론적으로 사람의 감성을 움직여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맞지만, 거두절미 그 기제만을 따와서 역으로 사람의 행동을 특정하게 유도하기 위해 감성을 조작하는 도구로 스토리텔링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살몽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의 스토리텔링은 다분히 ‘행동지침’인 셈이다. 이는 반퍼슨이 지적한 ‘내재화’라고 충분히 볼 수 있고, 자연히 미래 전망 또한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스토리텔링 담론이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미국의 경우를 충실히 쫓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토리텔링 담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새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동력으로 IT 중심의 벤처산업과 새로운 카테고리로 ‘문화산업’을 내세웠다. 이때를 계기로 문화계의 숙원이었던 ‘정부 예산의 문화부문 예산 비중 1%’를 달성하게 된다. 


주무부처였던 당시 문화관광부는 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핵심 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스토리텔링,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초점은 문화콘텐츠였다. ‘쥐라기 공원’이나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국가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런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낼 스토리텔링이 무엇일지가 가장 큰 관심이었다.



당시 정부의 논리는 단순했다.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산업으로서의 문화콘텐츠산업, 이를 견인할 글로벌 스타 콘텐츠(이를 발굴하기 위해 ‘스타프로젝트’가 수년간 진행된다), 그 콘텐츠의 DNA라 할 수 있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이란 새로운 국부창출을 위한 방아쇠로 받아들여졌다. 조금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외화(돈)를 벌어들이기 위한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스토리텔링 담론이 ‘돈’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했으니, 콘텐츠가 아닌 다른 분야도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전국의 각 지자체는 지역공동체라는 관점보다는 지역 마케팅, 지역 관광 활성화라는 테마 안에서 스토리텔링을 동원했다. 기업은 매출 증진과 소비자의 유혹을 위해 스토리텔링을 활용했다. 심지어 개인조차도 입학과 취업을 위한 자기 포장으로 스토리텔링을 덧씌우고 있다.


반퍼슨의 관점으로 한국의 스토리텔링 담론을 평가한다면, 지금 바로 경보를 울려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감성을 움직인다는 ‘효능’만 바라볼 게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과 규범을 세운다는 ‘본질’을 반성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흔히들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선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공감한다. 진정성 개념 자체가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는 지점은 바로 내재화, 즉 조작주의적 관점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경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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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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