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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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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4 15:41 도시와스토리텔링

인류문명과 함께 탄생한 도시는 중간에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인간의 삶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나라마다 도시를 나누는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우리나라만 해도 인구의 90%가 도시에서 살아간다. 이미 국가보다 더 유명한 도시들이 상당수 등장했고, 영향력 또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물론 문명 초기의 도시가 지금의 도시와 같을 수는 없다. 신화의 시대가 저물면서 더 이상 성직자가 도시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됐다. 산업혁명 이후로는 도시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바뀌었다. 신전의 크기 대신에 경제력의 크기가 도시의 상징이 됐다. 매스미디어가 등장하며 도시간에 다른 것 못지 않게 같은 것도 크게 늘어났다. 교통이 발달하고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개인이 느끼는 도시의 소속감도 크게 옅어졌다.


이야기에 대한 현대도시의 이상한 열정


하지만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이야기에 대한 도시들의 열정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도시의 기원을 더듬고, 도시를 거쳐간 인물들과 경관, 그리고 사건과 사고들을 샅샅이 훑는다. 신전에 필적할 만한 랜드마크를 도시 곳곳에 채우고, 시시때때로 다양한 축제들을 열며 도시의 콘텐츠를 채운다. 이야기만 두고 봤을 때 신화가 지배했던 고대 도시에 못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와 도시와의 관계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본래 도시는 생존을 위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야기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현대 도시,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 도시는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분히 '도구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마케팅 관점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쉽게 말해 '솔깃한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특정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도시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이야기는 도시의 사활이자 도시 그 자체였는데, 현대 도시의 이야기는 장식이자 수단이 되었다.




수단이 된 이야기는 그 대상이 달라진다. 도시 구성원이 아니라 이야기의 목적이 향하는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도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이야기라면 도시에 공장이나 회사를 세울 기업가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상권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그곳에 와서 돈을 쓸 사람들이 대상이 될 것이다. 관광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그곳을 찾을 관광객이 대상이 될 것이다.


도시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도시 브랜드는 대부분 ‘외부 사람’의 평가를 가리킨다. 시민들이 자기 도시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따위는 도시 브랜드 가치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스토리텔링도 바깥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그 도시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다 좋게 평가하도록 고안된 이야기들인 셈이다.


도시 이야기에 대한 이런 외부지향적 태도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1997년 IMF 이후에 급속하게 확대됐다(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지금처럼 쓰이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IMF 탈출이 지상목표이던 시절, ‘부자되세요’가 덕담이 되던 시절, 기존의 모든 가치들은 돈으로 치환됐다. 이야기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도시 이야기는 도시 경제에 기여한다고 간주될 때에만 도시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찾아서


그러나 도시의 이야기는 본래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도시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 도시에 돈 쓰러 오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도시 구성원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곳에 살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를 통해 함께 확인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대 한국 도시의 이야기들은 지금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을 배제하고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대신 어딜 가나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건물,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축제, 비슷한 제도, 비슷한 경관들로 넘쳐난다. 서울에 사나 창원에 사나 광주에 사나 강릉에 사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도시마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정작 도시는 어슷비슷하다. 


그렇다고 고대처럼 도시마다 신전을 세우고 각자의 신을 떠받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대도시가 현대도시보다 우월하다는 말도 아니다. 1만년을 넘게 지나오며 도시 또한 놀라운 진보를 거듭했다. 가장 큰 성과라면 임금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되는 도시 체제가 상식이 되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다시 신화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만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며 도시를 만들 때 이야기를 함께 창조한 이유를 곱씹어보자. 이야기는 도시를 멋지게 치장하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안팎으로 닥치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도시가 품고 있는 좋은 이야기는 빛을 발한다. 좋은 이야기는 도시공동체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인도한다. 따라서 좋은 이야기를 가진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의 운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위 스토리텔링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홍수에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지금의 도시 이야기는 철저하게 도시 구성원을 배제하고 있다. 시민이 이야기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관청의 이야기에 동원되는 ‘숫자’로 전락했다. 목적을 위해 가공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정작 시민들의 이야기는 외면 받는다.  


한편 도시의 이야기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시민들은 자기 도시를 자주 폄훼하는 데서 존재감을 찾기도 한다. 도시 정부는 시민을 외면하고, 그만큼 시민은 도시를 깎아내리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정작 시민들의 마음 속에는 이야기가 사라져가는, 사상누각 같은 도시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도시 자체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미래 또한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도시의 이야기를 냉정하게 들여다 보자. 우리 속에 어떤 이야기가 살아남아 있는지, 남아 있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사라졌다면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를 고민하자. 도시 마케팅이나 도시 브랜드 따위는 잠시 접어두자. 먼저 우리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시민이 누구인지부터 살피자.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방도를 찾아보자. 관청이나 관광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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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르다는 진리(?)가 있습니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을 완전히 달리 볼 수 있다는 걸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주는 경구는 없지 싶습니다.


제가 이 코너를 통해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만 일상의 대부분은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심하다고 보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죠? 물론 그 심심한 게 싫어서 도시로 모여들어 쉽게 만났다 헤어지기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신해철의 '도시인'처럼 "함께 있지만 외로운" 게 우리네 일상인 것 같습니다.


가끔 드라마틱한 상황이 우리를 찾아와주기도 합니다만, 그 성격이 긍정적일 때보다는 부정적일 때가 훨씬 많지요? 가까운 사람이 다친다든지, 큰 병에 걸린다든지, 돌아가신다든지... 이런 경우엔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원튼 원하지 않튼 각본 없는 드라마 한 복판에 던져지게 되니 그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스토리로 내면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부정적 스토리들이 갖는 힘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둘 경우 인생의 전체적인 색깔은 우울 쪽으로 기울게 돼 있습니다. 환자들과 상담을 많이 한 정신과 의사들도 우리 인생의 색깔을 즐거움과 우울을 양끝에 놓고 저울에 매단다면 평균적으로 우울 쪽으로 기운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죽음을 향해가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거라 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드라마들도 있지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든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됐다든지, 커가는 아이들이 재롱을 피운다든지, 이런 즐거움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쁜 것들은 금방 '적응'해버린다는 함정이 있지요? 슬픔과 우울은 좀처럼 적응이 안 되고 갈수록 심화되는 반면, 기쁨과 행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적응돼 그 상태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이런 걸 보면 참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우울한 인생, 손놔버릴 순 없겠죠? 잡스 형님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는데, 꼭 그런 거창한 말씀을 언급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발견해 그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내면화한다면 나의 인생, 나의 시간들도 꽤 근사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문제는 심심한 일상에서 어떻게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낼 거냐가 아닐까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상은 대부분 무의미합니다. 일상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습니다. 기다려봐야 무반응이고 무관심입니다.


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수밖에요. 그 중에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낯설게 하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낯선 프레임을 불쑥 갖다 대 보는 거지요.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것처럼 평소와 다른 낯선 프레임을 갖다 대면 똑같은 일상도 다르게 보이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그 중에서도 또 쉬운 방법이 바로 ‘낯선 스케일’을 갖다 대보는 겁니다. 


어릴 때 저는 방바닥이나 이불 위에 엎드려 검지와 중지로 한참을 장난치곤 했습니다. 이걸 두 개로 세워 움직이면 꼭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 같잖아요?(짝다리라 안습이긴 합니다^^) 100미터 달리기도 하고, 칼루이스의 멀리뛰기도 흉내내곤 했지요(많이들 해보셨죠?). 거기에 몰입하면 한참은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손가락은 칼루이스에 빙의되고 방바닥은 트랙이, 이불이 필드가 돼서 나만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펼쳐지는 거죠.


이처럼 '낯선 스케일'은 제법 큰 재미를 안겨줍니다. 일상은 그대로입니다만 바라보는 시점(eye leve)과 스케일은 내가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 확 당겨 보거나 멀리 죽 밀어 보면 나의 일상이 생각보다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거죠. 



일본의 환경디자이너인 하나무라 치카히로(花村 周寛)는 ‘낯설게 하기(foreignization)’라는 컨셉으로 일상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네를 매단 쇠사슬에 노동하는 피규어들을 연출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낸다든지, 종합병원 중앙홀에 인공눈을 내려 투병하는 환자들에게 즐거움은 선사한다든지(사진 참조) 하는 시도들이죠. 반복되고 무의미한 일상에 낯선 상황이 ‘개입’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는 예술적 시도들이랍니다.



하나무라의 이런 아이디어는 우리도 일상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예를 들면 출퇴근 길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습관을 길러보는 거지요. 지하철이나 버스의 디자인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광고판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떤지, 스마트폰으로 어떤 것들을 주로 보는지 등등 이런 변화들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를 상상해 보면 재밌지 않을까요? 지하철만 타던 분이 가끔 버스만으로 이동해보면 또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겠어요?


‘동네 여행하기’도 제가 강추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너무 익숙한 공간을 한 번 낯설게 여행해보는 거죠. 우리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골목은 어디로 나있는지, 한 바퀴 도는데 몇 분이나 걸리는지, 맛집은 어딘지를 살펴서 나름의 코스를 만들어보는 거지요. 누군가 집에 찾아오면 그 코스대로 동네를 소개하고, 군데군데 즐길거리, 먹을거리를 알려준다면 얼마나 멋져 보일까요? ‘우리 동네를 즐기는 열 한 가지 방법’.... 뭐 이런 거 만들어보면 가족끼리도 즐거운 이야기 한 토막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우울한 기운이 지배적인 인생살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기만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권투의 잽처럼 상대(우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줄 겁니다. 운명이 원체 우울한 거라고 손 놓치 마시고 ‘낯설게 하기’란 잽을 툭툭 던져가며 경쾌한 스텝을 밟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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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작년(2012년)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노랫말 중에 제가 뽑은 최고는 이거였습니다.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작년, 전세계를 들었다놨다 했던 '강남스타일'. 거기에 등장하는 남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반전 있는 사람'입니다. 보기에는 정숙해도 놀 땐 확실하게 노는 여자, 평소엔 점잖아도 때에 맞춰 확실히 미칠 수 있는 남자, 뭐 그런 사람이 강남스타일이란 얘깁니다만, 좀 더 보편화시킨다면 반전 포인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말이겠죠?


물론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캐릭터를 공부하며 두 가지 유형을 배우셨을 겁니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평면적인 캐릭터'라구요. 입체적인 캐릭터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바뀌는 캐릭터를 일컫습니다. 전형적인 악당인 줄 알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정의의 투사로 바뀐다든지, 상당히 양반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뒤로 호박씨를 까더라는... 바로 이 입체적 캐릭터를 요즘말로 번역하면 '반전 있는 사람'이 되겠지요?



보통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주연과 주연급 조연은 대부분 입체적 캐릭터입니다.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머물게 되는 거겠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반전 있는 캐릭터가 항상 사랑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런닝맨 안주인이라는 탤런트 송지효는 전혀 뜻밖에 '멍지'라는 캐릭터를 얻고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평면적인 캐릭터는 매력이 없습니다. 너무 뻔한 패턴 때문에 사람들이 기대를 아예 접어버리지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저렇게 반응할 거란 게 보이니 굳이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집니다.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사이라면(가족이나 동창이나), 울며 겨자먹기로 표피적인 소통만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이 안 보이고 '패턴'이 도드라져서 그렇습니다. 패턴에 종속된 사람, 패턴이 지배하는 사람,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같은 사람, 다시 말해 '비인간적'으로 보인다는 거지요. 비인간적인 사람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패턴이란 것, 평면성이란 건 어떻게 생겨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상처', '트라우마' 같은 방어기제 때문에 형성된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자기의 존재를 위협하는 사고, 사건, 질병 등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강하게 작동해서 그게 내면화될 때 옴짝달싹 않는 '패턴'을 만들고, 그것이 사람을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지 않나 하는 거지요.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게도 적용됩니다. '어버이연합' 같은 어르신들의 패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집단이, 공동체가 가진 트라우마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평면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차단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억압하게 되지요. 집단적 방어기제가 작동하면 거기에 반하는 어떤 움직임들도 가차없이 공격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요? 전열이 흔들리면 패배할 수 있다는 공포가 공동체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개인이든 공동체든 '반전 포인트'를 찾는 습관이야말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 집단적으로는 '우리 공동체 안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어?'하는 놀라운 발견들을 해나가자는 것이지요. 이런 반전포인트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생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 겁니다.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에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재미가 쏠쏠해지는 겁니다. 


그럼 개인과 집단의 반전포인트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매우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관찰'입니다. 너무 싱겁나요?^^ 하지만 관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자기가 속한 집단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입장, 조직 입장에 함몰되어 격하게 휩쓸리기가 쉽지 좀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집단을 차분하게 관찰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지요.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한 번 자기와 집단을 들여다보세요. 잘 관찰해보면 내가 몰랐던 내 모습, 내가 몰랐던 집단 속의 사람들이 보일 겁니다. 예를 들어 록음악은 정서를 파괴한다 싶어 마냥 클래식만 들으시나요? 그런데 어느날 뜻하지 않게 록음악 하나가 귀를 파고 듭니다. 이게 뭐지 싶겠지요? 그때 도망가지 마시고 그 과정을 찬찬히 복기해보세요. 왜 경원시하는 음악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을까? 그 과정을 보면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 거기 있을 거에요. 그게 바로 반전 포인트랍니다.


혹시 금욕을 미덕으로 삼는 단체에 속해 있나요? 술도 담배도, 옷가짐도 모두 금욕과 절제를 하는 단체라고 가정해봐요. 근데 내가 참 좋아하는, 존경하는 어떤 분이 운동복 차림으로 어느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 캔을 따서 들이키고 있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에 대한 감정을 거둬들이고 그를 탄핵하시겠어요, 아니면 그의 입장과 생각을 노크해 보시겠어요? 관찰이란 바로 후자겠지요?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에게 과연 맥주캔이란 무언지, 운동 뒤에 마시는 맥주 맛은 어떤 건지 한 번 들어보시지 않겠어요? 만약 그 부분에 마음을 열면 내가 알고 있는 '금욕'이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겠죠? 예전엔 맥주 캔을 마시느냐 마느냐가 금욕을 나누는 이슈였다면, 이 과정을 거치면서 맥주 흡입여부를 뛰어넘는 더 높은 차원으로 금욕 아젠다가 승화되지 않겠어요?


자기를 스토리텔링할 때 익숙한 것에만 매몰되지 마세요. 끊임 없이 반전 포인트를 찾아보세요. 생각보다 개인은 다방면이고, 사람들은 다양하다고 전 믿거든요? 그런 반전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저마다의 무대에서 주인공 노릇하지 않겠어요? 도저히 겁나서 주인공을 못하겠다면 주연급 조연이라도 해야죠. 한 번뿐인 인생 평면적이기 그지 없는 엑스트라로 사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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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정신과 전문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감성 에너지는 자기의 과거가 만족스럽게 그려질 때 곧잘 충전된다고 하네요. 사실 인간은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지요? 대부분은 과거의 기억, 과거의 자아상에 근거해서 현재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니까요. 자기 과거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면, 판단과 행동도 부정적일 확률이 높고, 자기 과거가 긍정적이라면, 판단과 행동이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에 도시락을 자주 잃어버려 부모님께 "넌 왜 잃어버리기만 하냐"고, "어찌 고쳐지지를 않냐"고 심하게 혼난 기억이 부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해 자리잡고 있다 칩시다. 어른이 돼서 우산이나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습니다. 대번에 어떤 말이 머리를 때리나요? "또? 난 별 수 없나봐"하는 자책이 온몸을 휘감고 다른 분야에까지 무기력해지며 자책하는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겠어요?


반대로 부모님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안 잃어버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갔다면, 분실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상이 만들어지지 않았겠죠? 이 경우 어른이 돼서 이것저것 분실해도 분실 자체에 몰입해 자기를 학대하기보다는 분실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지 않겠어요?


이처럼 자기 과거를 어떻게 그리느냐는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또 미래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키가 됩니다. 과거를 과거라고 과거에 방치해선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과거를 다시 정비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그래서 순서입니다.


조금은 부정적인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이번 정권 들어서서 뉴라이트 교과서가 큰 이슈로 등장했지요? 왜 그들이 과거에 집착하는지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들의 부끄러운 조상, 그들의 불의한 이권을 미화하는 데 왜 이토록 무리수를 써가며 매달리는지 잘 살펴보세요. 그들의 과거를 그들 입맛에 맞게 짜맞춰 놓으면 오늘의 그들 행동에 정당성이 생깁니다. 봐라,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냐? 우리 조상이, 우리 기득권이 생각만큼 정당하지 않은 게 아니지 않냐? 그러니 우리의 오늘도 정당하고, 미래도 지금처럼 장구할 거다. 알겠냐? 뭐 이런 식입니다.


그렇다고 걔네들처럼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과거를 억지로 미화하고 견강부회해야 한다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이자들의 행동에서 '힌트'를 얻으시라는 거지요. 


'조작'과 '편집(editing)'은 엄연히 다릅니다. 조작이란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고, 있는 사실도 날조하는 것이구요, 편집이란 있는 사실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드러내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지요. 어떻게 보면 한끗 차이지만, 결과를 놓고보면 천양지 차이가 됩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과거를 어떻게 편집하는 게 좋을까요? 기억을 떠올리며 대하 서사시를 써야 할까요? 새로운 사관과 해석기법을 배워 역사적으로 조명해야 할까요?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할 수만 있다면야 더없이 훌륭하겠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시도하기도 쉽지 않고, 시도하다 오히려 힘에 부쳐 나가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어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꼬리표'를 붙이는 겁니다. 영어로는 Index라고 부르지요? 팩트는 팩트대로 존재하는 거지만, 거기에 '나만의 꼬리표'를 달아주는 겁니다. 그 팩트를 내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 그 꼬리표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9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노래 하나가 있어요. 김민우의 '사랑일뿐야'라고... 그 가사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별을 했는지 몰라."


이별을 밥먹듯이 하는 팩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팩트에 어떤 꼬리표를 달아줄까요? '난 왜 이럴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하는 자책성 꼬리표를 달아줄 수도 있을 거구요, 노래 가사처럼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는 꼬리표를 달아줄 수도 있을 겁니다. 어느쪽이든 가능하지만, 그 결과는 참 많이 다르겠죠? 일단 표정부터 다를 겁니다. 한쪽은 우거지상, 다른 한 쪽은 해바라기상.^^


생활 속에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큰 일도 있고 소소한 일도 있습니다. 이들 일(팩트)들에 꼬리표를 붙여보세요. 기왕이면 '긍정적인 꼬리표'를 붙여보세요. 특히 소소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게 해보세요. 대개 너무 큰 일은자기만의 꼬리표 붙이기가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잘못한 일, 큰 사고를 냈다면, 긍정적인 꼬리표 갖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지요? 그땐 정면돌파밖에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소소한 일은 얼마든지 꼬리표 붙일 수 있습니다. 그게 차곡차곡 쌓여 습관이 되고 몸에 배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죠.


끝으로 사족 하나. 위에 말한 '큰 일'도 꼬리표를 붙일 수가 있긴 합니다. 다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에요. 큰 일이 수습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 살짝 끄집어내서 거기에 꼬리표를 붙여보세요. 숙제 마친 기분이 들면서 한결 마음도 편해지실 겁니다.


아.... 옛날 사진 뒤져보며 하나씩 '긍정적인 꼬리표'를 달아주는 것도 강추해드리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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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얼마전 한 대학생 모임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300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는데요, 살아가며 300개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 뭐 이런 뜻이었지 싶습니다. 이곳에서 '시간과 스토리텔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 해서 (서면)인터뷰에 응하고 제 생각을 보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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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장님께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는데, 개인의 스토리를 형성하는 것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TED의 목표가 spreading ideas에 초점이 둬 있듯이 소장님의 스토리텔링 목표가 궁금합니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큽니다. 여기서 스토리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를 뜻하는 게 아니에요. 누구나 멋진 삶을 동경하잖아요? 그런데 그 동경이 어떤 '상태'에 머무는 사람이 많아요. 돈을 많이 번다든지, 미인과 결혼한다든지, 막연하게 행복했으면 좋겠다든지. 하지만 자기가 살고 싶은 '스토리'를 가지면 크게 달라집니다.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 내가 인생을 마감했을 때 어떤 스토리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는가? 그걸 생각해보자는 거지요.


예를 들어 사육신을 생각해보자구요. 서슬퍼런 세조 앞에서 절개를 지키잖아요? 만약 그들에게 '생존'이 목적이었다면 세조에 협조했겠죠. 하지만 그분들에겐 '스토리'가 있었어요. 그렇게 비겁하게 협조했을 때 역사에서 내가 어떻게 그려질까, 후손들이 뭐라고 할까, 차라리 초개같이 생명을 버리면 지금은 당장 목숨을 잃어도 후손들의 자랑이 되지 않을까? 그런 스토리가 그들 속에 있었던 거지요.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겠죠? 자기가 완성해야 할 스토리를 위해 생각을 다듬고 실력을 쌓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거랍니다.


#2. 저희는 “시간”이라는 개념과 “스토리텔링”의 개념이 관련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하루 스케줄을 미리 작성해 보듯이, 소장님께서는 개인의 시간 기록의 중요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간을 기록해보는 건 하루를 어떻게 쓰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하루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보면 내 인생도 어느 정도 점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찰하란 뜻은 아닙니다. 매일, 매순간을 그렇게 각성했다간 아마 스트레스 때문에 제 명에 죽지 못할 거에요. 1년에 한번 정도 해봐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자기 삶을 자기가 들여다본다는 경험을 갖는 게 중요하니까요. 다만 어떻게 관찰할 건지, 평가는 어떻게 할 건지가 중요하겠죠?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능하면 미래를 위해 저당잡히는 시간 못지 않게 현재에 충실한 시간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3. 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시간” 개념이 궁금합니다.


시간은 '거름종이'죠. 당장 눈앞에서야 아름답고 훌륭한 소리를 누가 못하겠어요? 하지만 시간이란 거름종이를 거치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짝퉁인지가 판가름나겠죠? 눈앞에서 보이는 것, 당장 귀에 들리는 거에 너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을 거쳐야 진위가 판가름 나니까요.

 


#4. 소장님께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개인적 경험, 또는 다른 것에 영감을 받아서 등..)


저는 1997년에 전공을 문화정책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문화정책이 '문화산업'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고 있었지요. 당시 문화산업의 키워드가 '스토리텔링'이었어요. 좋은 스토리텔링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경제적인 효과로 나타난다는 논리였지요. 저는 그런 논리에 약간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경제와 돈에 봉사하는 스토리텔링이란 개념은 지나치게 협소하게, 표피적으로 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사람이나 공동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게 바로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관련된 생각과 흔적들을 정리해가고 있답니다. 

 

[개인적인 질문]


#5. 저는 개인적으로 “스토리”라는 단어에 양면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스토리”가 창의적인 무언가를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할 수 도 있지만, 반대로는 저희가 대학생인 점을 고려했을 때 취직이나 입시 등 무언가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써 내는 것과 같이 수단적인 측면으로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소장님께서 쓰신 글 중에 "누구나 자기가 누군지 궁금하고, 또 더 나은 나를 꿈꾸지요? 근데 참 막연하잖아요. 제가 말씀 드릴 이야기 관리론은 관념적인 나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 속의 나를 살펴보자는 제안입니다. 그 이야기를 관리할 수 있다면, 나란 존재도 어느 정도는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스토리텔링이란 자기실현에 가까운 것인가요?


제가 말한 스토리와 자소서에 쓰는 스토리와는 다르답니다. 제가 말한 스토리는 '내면화'된 스토리입니다. 어떤 판단을 하든, 행동을 하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어떤 이야기 하나가 떠오르게 되죠? 이성 친구와 헤어질까 말까를 고민한다고 칩시다. 헤어지는 쪽을 택할 때 그것을 지지하는 이야기들이 내면에 떠오르죠? 헤어지지 말자는 쪽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사시는지, 주변 친구나 친지 중에 비슷한 사연으로 깨지거나 극복한 사례들이 떠오를 겁니다. 그런 스토리가 내면화된 스토리입니다. 그들 스토리가 '행동'을 결정하게 되지요. '내가 어떤 이야기에 지배받느냐'에 따라 행동도 결정됩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건 나를 지배하고 있는, 내면화된 이야기가 무엇인가입니다.


그런 내면화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서 관리해보자는 게 제 주장이지요. 그냥 무의식에 내맡기지 말고, 내가 되고 싶은 인간상, 내가 꿈꾸는 삶이 있다면, 그것을 지지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강화하고 자꾸 떠올려보자는 겁니다. 그 이갸기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줄 겁니다. 제가 말한 '이야기를 관리하자'는 말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자소서에 쓰는 손 오그라드는 스토리와는 좀 거리가 있겠지요? 자아실현? 이 단어 자체가 좀 식상하긴 한데, 비슷하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굳이 제 식대로 표현한다면 스토리텔링은 '자아형성'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지지해줄 이야기를 관리하고, 발굴하고, 또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자... 그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300 프로젝트로 돌아와서... 24시간 프로젝트]


#6. 저희 24시간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하루 동안 일어나서부터 자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모든 일과와 그 때 갖고 있는 생각을 적는 활동입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평일, 주말, 그리고 공휴일을 한 번씩 선정하여 그 특정 날 동안 저희 조원 모두가 24시간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에는 모두가 쓴 기록을 바탕으로 서로의 시간 기록을 비교해보고 토론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 활동의 목표는 시간의 빈 틈을 파악해보고, 자신에 대한 체계적인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저희 각각의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또 조원 모두의 스토리를 엮어서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따라서 소장님의 스토리텔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만큼,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시간 기록”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했듯이,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그냥 깨알같이 기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좀 더 통찰을 얻으려면 거기에 레이어 하나를 더 추가해서 인덱스(꼬리표)를 잘 정해봤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개인' '가족' '친구' '사회' 등으로 각각의 시간에 인덱스를 달아보는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개인을 위해 쓰는 시간,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 사회를 위해 쓰는 시간 등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겠지요? 다른 인덱스도 가능하겠죠? '공부' '일' '여가' '연애' 등으로도 구분 가능할 거구요. 그리고 여러분이 같이하는 것이니 공동의 인덱스를 하나 가져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요약한다면 기본적인 '시간기록'을 하면서 '공통 인덱스'로 꼬리표를 하나 달고, 추가로 '자기만의 인덱스'를 추가해서 기록한 뒤 그것을 분석해본다면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상당히 유용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이 프로젝트에 굳이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런 활동을 하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니까요. 그 결과에 대해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 모든 과정이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그것이면 족해요. 별도로 스토리텔링 활동을 추가해서 '또 뭘 하지' 하고 머리를 쥐어 뜯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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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3.10.22 09:11 지역과스토리텔링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진나라 이후 무려 2,0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된 중국제국은 1911년 신해혁명을 계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혁명을 이끈 쑨원은 1912년 1월 공화정인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임시대총통에 취임한다. 쑨원이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의 자리를 양보한 뒤 몇년간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도도한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 즈음 인천에 조성된 청나라 조계지에는 산동지방 출신 화교들이 많이 정착해 있었다. 1908년에 인천으로 건너와 ‘산동회관’이란 이름의 객잔(客棧)을 연 우희광(于希光)도 그 중 하나였다. 황제정을 끝장낸 신해혁명 소식은 물론 인천의 화교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기뻐했을까, 슬퍼했을까, 희망을 가졌을까, 낙담을 했을까? 


그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최소한 산동회관 주인 우희광에겐 희망찬 소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가게 이름을 ‘공화춘(共和春)’으로 바꾼다. ‘공화국의 봄’, 즉 아시아 최초로 공화국이 된 중국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공화춘은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이름을 날린다. 다름 아닌 ‘짜장면’ 때문이다. 짜장면은 1950년대에 연안부두에서 일하는 화교 노동자들을 위해 특별식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비싸고 오래 걸리는 기존 청요리 대신 간편하고 값이 싸면서도 요기도 되는 음식이 바로 짜장면인데, 처음 개발된 곳이 바로 공화춘이었다.


이달 초 인천에 들렀다 잠시 차이나타운을 찾은 적이 있다. 마침 요기를 해야 해서 망설이지 않고 공화춘을 찾았다. 지상 4층 건물을 모두 쓰는 공화춘은 한마디로 으리으리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꼭대기층으로 안내한다.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메뉴판을 받아 보니 ‘공화춘 짜장면’이 1만원. 딱 3초 고민한 뒤 그것으로 주문했다. 짜장면 원조집에 와서 1만원을 아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짜장 형식으로 나온 공화춘 짜장면에는 돼지고기 대신 해물이 가득 들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길이 남기고자 인증샷을 찍고 페이스북에 자랑삼아 올렸다. 이내 좋아요 숫자가 올라가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천 사는 친구의 댓글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동네 사람들은 그 '공화춘'에서 안먹어요. 주로 초입에 있는 신승반점 간짜장 먹습니다. '공화춘' 설립자의 손녀분께서 운영하시는 곳인데…”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나름 벼르고 별러 맛본, 그것도 무려 1만원이나 투자한 공화춘 짜장면인데, 그게 진짜가 아니라 짝퉁이라니, 진짜배기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니! 다른 인천 분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길 왜 갔냐? 거긴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알고보니 진짜 공화춘은 1983년에 이미 문을 닫았다. 음식점 장사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정부의 화교 재산권 제한 정책에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이후 20여년간 폐허로 방치되던 ‘원조’(이런 접두어를 붙여야 한다는 게 서글프지만) 공화춘 건물은 2006년에 등록문화재에 등재됐고, 2010년에 인천 중구청이 매입해 짜장면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50미터 떨어져 영업중인 짝퉁 공화춘을 운영하는 회사의 정식명칭은 ‘(주)공화춘프랜차이즈’다. 한국인 이현대씨가 2002년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2004년에 지금의 자리에 본점을 열었다고 한다. 국민음식 짜장면이 만들어진 곳이니 상표 욕심을 낼 만도 했을 거다. 물론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지역민들은 이곳을 외면하고 있었다. 공화춘을 이야기하는 지역민의 이야기에는 진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인천시가 만약 방치된 공화춘 건물을 몇 년만 더 일찍 문화재로 등록하고 매입했더라면 어땠을까(혹시 뒷북친 건 아닐까)? 특허청이 만약 공화춘의 본래 뜻이 중국 신해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다면 과연 상표출원을 허락했을까? 공화춘을 브랜드로 쓰고 싶은 한국인 사업가가 우희광 선생의 유족과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이끌어낼 방법은 과연 없었을까?


모든 지역에는 저마다의 공화춘이 있다. 손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는 음식점이 있다.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역의 브랜드, 지역 문화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민의 마음이 시간만 흐른다고 얻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업자와 손님의 손에만 맡겨둘 일도 아닌 것 같다. 소중하다 여긴다면 함께 지켜나갈 지혜도 모아야 하지 싶다. 우리 지역의 공화춘은 안녕하신지 문득 궁금해졌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에 실렸습니다. http://goo.gl/54Tm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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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맡겨보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뭔가를 찍어대죠?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해 삐뚤빼뚤 정신이 없습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이들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에 반응하는지, 무엇을 담고 싶어하는지요.


어른도 다르지 않습니다. 별다른 해설이 없어도 찍은 사진을 죽 훑어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보입니다. 노래방을 좋아하는지, 포장마차를 좋아하는지, 우아한 카페를 좋아하는지 대충 견적이 나오지요? 여기에 포인트를 맞춘 SNS가 인스타그램이니, 핀터리스트니 하는 것들입니다. 사진만큼 직관적으로 자기를 보여주는 매체도 드물지요?


그런데 막상 남이 아닌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막막해집니다. 남의 사진이나 글을 갖고 품평하기는 참 수월한데, 내 사진이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해보면 아득하기만 합니다. 아무 개념도 없는 것 같고, 괜한 공해만 일으키는 것도 같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찍었다가도, 써뒀다가도 올리기는 관두는 경우도 참 많지요? 여기에는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혹여 남에게 노출되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이 제법 작용했을 겁니다.


이상적으로는 내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랑, 실제 남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랑 일치하는 게 좋습니다. 심리적으로도 그 간극이 좁을수록 안정된 캐릭터를 유지하기 쉽고, 그게 벌어질수록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내 모습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불안하고, 불안하니 차라리 문을 닫아버리는 수가 생기는 거겠죠?


이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나만의 앵글'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이지요. 무의식과 즉흥에 내버려두면 인이 박힌 대로 찍고 쓸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한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짝인 거지요. 몇차례 반복되면 식상하기도 하겠고, 또 사람이 너무 뻔해지는 폐단이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캐릭터를 '평면적 캐릭터'라고 하죠? 그리고 이 캐릭터가 맡는 역할은 조연이나 엑스트라밖에 없습니다. 주연은 언제나 '입체적 캐릭터'지요. 의외성도 있고, 반전도 등장합니다. 그런 의외성은 항상 '각성' 뒤를 쫓는 성격이 있습니다. 기존의 패턴에 문제를 발견하고 방향을 트는 각성에서 의외성과 반전이 나오게 되는 거겠죠?



자, 지금 사물을 볼 때 어떤 앵글로 보고 계시나요? 어떤 부분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면, 과감하게 그 앞으로 다가서서 장면을 포착해보세요. 사진의 전설 파카가 그랬다죠?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한 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구요. 기왕에 기울인 관심이라면 나에게 걸맞은(내 눈에 멋져보이는) 각도를 찾아보세요. 눈높이메만 머물지 마시고 땅바닥에서 하늘로 치떠보시고, 아니면 하늘에서 아래로 조망해보세요. 


먹방사진도 마찬가집니다. 달랑 음식 사진 하나 올린다 싶겠지만, 거기에도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타납니다. 배경을 어떻게 집어넣고, 사람을 집어넣고말고에 따라서 상대방은 상당히 다르게 여러분의 감성을 느끼게 될 겁니다.


물론 글도 마찬가지지요. 내 입장에 철저한 글과 상대방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글, 도덕과 윤리를 앞세우는 글과 상황의 필연성에 주목하는 글은 같을 수가 없겠지요? 그 각도가 어디를 향하냐에 따라 글쓴이, 사진찍은 이의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답니다. 그 각도, 자기만의 앵글을 관리할 수 있다면, 남에게 비치는 내 모습도, 그로 인해 빚어지는 관계의 문제도 어느 정도는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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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생활 속 스토리텔링' 두 번째 테마는 '인생이 시트콤'입니다. 흔히들 하는 말씀이지요? 내 인생이 꼭 시트콤 같다구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왜 시트콤일까요? 시트콤보다는 드라마가 더 근사해 보이지 않으세요?

그럼 단어를 한번 바꿔 볼까요? '인생이 드라마'.... 이거 분위기가 좀 무거워집니다. 드라마는 대표적인 서사(narrative)지요? 묵직하기도 하고 절실하기도 합니다. 물론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면 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TV 이전 시대를 살았던 저희 부모님 세대는 드라마 대신 '소설 수십권'이라고 표현들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드라마나 소설을 일상에 갖다붙이기는 웬지 부담스럽습니다. 왜냐면 일상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지 않거든요. 일상의 대부분은 반복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대동소이합니다. 드라마로 그릴 만큼, 소설로 표현할 만큼의 극적인 서사가 웬만해선 생기지 않는다는 소리죠.

사실 우리가 드라마나 소설로 표현할 만큼의 서사적인 상황인 일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습니다. 또 그래야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일상이 드라마 같은 서사라면, 그 사람은 압도적인 스트레스에 짓눌려 일찌감치 생을 마감해야 할 겁니다. 대부분의 일상이 별 의미 없는 반복이란 건 그래서 장수를 위한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에서 묵직한 서사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소소한 에피소드는 쉽게 발생하지요? 마치 시트콤처럼요. 특별한 서사는 없어도 관계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들, 그걸 주목해보십사 하는 겁니다. '인생이 드라마'란 말보다 '인생이 시트콤'이란 말이 훨씬 가볍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지요?

시트콤 안에는 일상이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하고, 학교에 등교하고, 밥먹고 간식먹고, 장보고 식사하는, 그런 반복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고만고만한 등장인물들이 늘 등장하면서 소소한 에피소드로 웃기도하고 울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깔깔깔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시트콤이라는 프레임으로 한번 바라볼까요? 배경은 많아봐야 3~4곳 정도가 되지요? 집, 직장, 자주가는 식당, 술집 등이 그렇지요? 등장인물은 몇 명 정도 되시나요? 가족, 직장동료와 상사, 또 가끔 만나는 친구들, 더 가끔 만나는 친지들... 그 정도지요? 주연은 당연 본인이고, 주연급 조연으로 가족과 직장동료 4~5명이 등장할 거구요, 가끔 등장하는 조연, 또 갑자기 등장하는 엑스트라들도 있지요?

이런 프레임으로 자기 일상을 거리를 두고 관찰해보세요. 생각보다 흥미진진하지 않으세요? 뭐 매일이 시트콤 같지는 않겠지만, 1주일에 이틀 정도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세요? 그걸 스스로 주인공이 돼서, 스스로 작가가 돼서 시트콤 시나리오로 창작해보면 어떨까요? 그냥 흘러가던 일상도 꽤 괜찮은 '작품'으로 길이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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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이야기는 속여도 노래는 못속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 감동받는 노래를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이 훤하게 보인다는 말씀이겠죠? 

실제 누군가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열 곡을 적어내게 하고,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 노래들을 들려준 뒤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추정케 한 거죠. 결과는? 놀랍도록 일치하더랍니다. 성격에서부터 정치적 성향까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맞추더라네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뭐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흥얼거리는 노래, 즐겨듣는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닌 것이죠. 그 음악이 나오기까지, 또 그것이 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때까지는 적지않은 '작용'이 있었을 테고 그것은 쉽게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즐기는 음악을 들여다보면 그의 세계관과 취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생활 속의 스토리텔링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자기를 표현한다는 것, 자기를 이야기한다는 것, 참 난감하고 머쓱하지 않습니까? 자기 입으로 자기를 이야기한다는 거.... 맨정신으로 하기가 정말 쉽지 않지요?



그렇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를 해보세요. 좀 더 나간다면 음악이야기도 괜찮구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가수가 누구인지, 작사작곡자가 누구인지, 음악이 만들어진 배경이 무엇인지 따위를 이야기하라는 건 아니에요. 엄밀히 말해 그건 '정보'고 '지식'이지 자기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냥 노래에 얽힌 이야기, 음악과 연결된 에피소드를 찾아보세요. 그도 아니면 문득 귓가를 때리는 노래 때문에 일어나는 심상도 좋아요. 그 정도만으로도 사람들은 노래가 아닌 '당신'을 보게 될 겁니다. 노래란 게 그런 매력이 있거든요.

참고로... 제가 들은 노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토막 들려드릴게요. 김광석은 '사랑했지만'를 사실 좋아하지 않았대요. 제대로 말 한 마디 못하고 돌아선다는 가사가 시대와 맞지 않다고 여겼대요. 그런데 어느날 엽서를 하나 받았다지요? 80먹은 할머니에게서 온 거였어요. 그분은 김광석이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었는데, 어느 비오는 날 길거리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를 듣고 그만 망부석이 되셨다네요. 우산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그 노래가 끝나기까지 서있으셨다네요. 그 사연을 듣고 김광석은 '사랑했지만'을 더 많이 더 자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굳이 음악을 공부하지 않아도, 일부러 노래를 찾아듣지 않아도, 누구나의 마음 속에는 자기만의 노래가 있지요? 그 노래를 하나둘 뒤적여보세요. 그리고 어느날 달팽이관을 잡아채는 노래 한자락을 놓치지 말아보세요. 당신을 빛내줄 이야기는 바로 거기에 있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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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아이가 크면서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자주 삐걱댄다. 가장 큰 원인은 성장 정도에 대한 인지 차이다. 쉽게 말해 어른 눈엔 여전히 아이 같지만, 아이는 스스로 어른이 다 됐다고 여긴다.


내 사춘기 때도 그랬다. 부모님과 형들은 막내라고 애취급했지만, 그 꼬리표가 죽기보다 싫었다.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 받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무표정'과 '침묵'의 울타리였다. 오죽했으면 아파트 같은 라인 이웃이 날 보고 장남인 줄 알았을까(오지게 무게 잡았단 야그).


어쨌든 스스로 차단한 울타리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형들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는 좀처럼 만나지 못했다. 그저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이야기들만이 오갔을 뿐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쌓아올리는 이야기는 울타리 안에 꽁꽁 숨겼다. 관계는 피상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한다. 결혼 혹은 가족이란 제도도 만들고, 동창이라는 인연도 만든다. 회사라는 시스템도 만들고, 종교라는 공동의 상징도 창조한다. 이른바 학연, 지연, 혈연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관계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 장치가 안전망 역할은 해줄지언정 관계의 질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 관계의 질은 '공통의 이야기'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공유한 관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관계일수록 친밀도(engagement)는 높아진다.


다시 부모 자식간의 관계로.... 아이와 부모가 좋은 관계를 지속하려면, 아이의 변화(성장)에 걸맞은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자녀는 자기 나이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가 절실한데, 부모는 여전히 어릴 때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면, 그 관계의 결말은 '피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공유하고 있는 혹은 앞으로 공유할 '이야기'를 관리해야 한다.


*추신 - 가족간의 이야기를 관리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바로 '여행'이다. 특히 서먹해진 관계를 개선하고 싶을 때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는 가족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함께 만들 이야기는 생각지 않고, 여행 자체만을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했다가 낭패보는 경우가 많다. 여행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매우 좋은 솔루션이지, 여행을 갔다고 자동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이점 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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