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2010.04.06 08:00 소리바다이야기
[소리바다이야기⑬] 소리바다는 다시 전진한다.

디지털 음악시장의 미래를 논하기 전에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우리나라 음악시장(음반시장)은 조성모가 CD를 300만장 팔았던 2000년에 정점을 찍었다가 2001년부터 조금씩 하락세를 보여 지금은 30만장만 팔아도 대박이라고 쳐주는 세상이 됐다. 반토막도 모자라 4분의 1토막이 났다. 당연히 CD판매가 매출의 대부분이었던 음반사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바로 이러한 음반시장의 변곡점에 등장한 것이 '소리바다'였다. 2000년 후반부터 인터넷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소리바다에 몰두했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파일을 찾기 위해 숱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소리바다가 등장한 이후부터 음반이 안 팔리기 시작했다. 음반사들이 소리바다를 곱게 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소리바다 때문에 음반시장이 망하고 있었다.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소리바다와 음반시장의 위축은 어떤 관계?
그렇다면 정말 소리바다 때문에 음반시장이 위축된 것일까? 양대표의 생각은 이랬다.

"명확한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자료를 찾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당시 P2P를 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CD 구매량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많다는 통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음반사들은 그들을 고객이 아닌 도둑놈으로 생각했습니다."

양대표는 당시 음반사들이 논점을 잘 못 선택했다고 말했다. P2P 이용자들을 도둑으로 몰면서 결과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소비자와 적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이 자기 고객을 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소비자들도 감정적으로 반발했습니다.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거죠. 가수들이 TV나 언론에 나와서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배고프다, 망한다고 캠페인을 벌이면, 소비자들은 잘 먹고 잘 살면서 뭐가 배고프냐며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P2P가 음악시장에 피해를 입혔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애당초 불가능했습니다."

양대표는 P2P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바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산업 관계자들은 이 공동체를 활용하기보다는 없애려고만 했다. 당장 음반시장의 매출을 좀 먹는 진원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는 P2P 자체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모아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너무 오래 방치해뒀습니다.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을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적으로 간주해 공격하면서 P2P 공동체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죠."

"P2P는 소리바다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서비스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기술적 발전단계였던 겁니다. 그런데 음반사들은 그 기술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환경이 바꿔놓을 음악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던 거죠. 그 결과는 급속하게 위축되는 음반시장의 현실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음반시장의
변곡점
변곡점, 시간은 있었다.
양대표의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CD로 대표되는 음반시장의 위축은 필연적이었다. 변화가 숙명이었다면 음악업계의 대응전략은 '배척'이 아니라 '적응'이어야 했다. 그리고 당시 음악업계에게는 적지 않은 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사실 P2P 초기에는 CD구매 패턴에 큰 영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P2P 때문에 롱테일 시장, 즉 히트곡을 제외한 다양한 음반이 더 판매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고, MP3플레이어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CD 없이 MP3만 있어도 음악을 즐기는 데 전혀 문제 없겠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소리바다가 등장하고나서도 2~3년의 시간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음반사들은 그 시간을 대부분 소리바다와 분쟁을 벌이는 데 소비한다.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소비자들의 귀는 이미 CD 음질과 별 차이가 없는 MP3 음질에 익숙해져 있었고, CD플레이어보다 훨씬 휴대하기 편하고 한 번에 수백곡 이상을 들을 수 있는 MP3플레이어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음반사들은 그렇게 바뀐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나온 MP3플레이어 모델이 1999년의 '엠피멘'이었고, MP3플레이어가 사회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은 것이 2003년 남짓이었습니다. 음악시장의 대세가 그때 MP3로 바뀐 것이죠.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MP3 음악파일을 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서비스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관련 상품은 팔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다운로드는 받지말라고 캠페인을 했으니, 어떻게 될까요? 소비자들은 알아서 그 공백을 채웠습니다. 소위 합법적인 곳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당연히 어둠의 경로라도 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드웨어와 유기적으로
발전해온
발전해온 음악시장
전체 음악 역사에서 음원을 특정한 매체에 복제해서 판매하는 '음반시장'의 역사는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것이 1877년이었고, 실제로 음반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897년 그라모폰사가 런던에 설립됐을 때였으니, 11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음반의 역사는 크게 SP, LP, MD, CD 순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SP(Standard Playing Record)는 1887년에 처음 만들어져 1940년대 후반까지 약 50년간 음반시장의 주인노릇을 했고, LP(Long Playing Record)는 1948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해 1980년대까지 이른바 '전축시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 전축 시기에 카세트테이프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LP가 전축과 연동돼 고급음향을 지향했다면, 카세트테이프는 일종의 '보급형' 음반시장을 형성했다. 특히 카세트테이프는 1970년대말 소니 워크맨과 만나면서  '모바일 음악시장'을 열었다.

그런데 음악시장의 지형도를 본질적으로 바꿔놓은 매체는 1982년에 등장한 CD(Compact Disc)였다. CD는 음반시장에 처음으로 '디지털'이란 개념을 도입한 매체였고, 그 덕분에 '잡음 없는 음질'과 '작은 부피', 그리고 '휴대의 편의성' 등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었다. CD는 전축이라는 고가의 하드웨어 없이는 불가능했던 고급음향 시장을 대중화시키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고, 아울러 워크맨으로 대변됐던 모바일 음악시장도 휴대용 CD플레이어가 보급되면서 빠르게 잠식해 들어갔다.

그 결과는 음반시장의 무한팽창이었다. 소위 말하는 세계 4대 음반사라는 것도 바로 CD 시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이와 관련해 스티브 고든의 책 <음악산업의 미래>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80년대 중반에 다국적 기업들이 독립레코드사들을 집어삼키면서 돈을 찍어내는 거대 공룡으로 탈바꿈했다. 음반 사업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록앤롤이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해 많은 밴드가 수백만장의 음반을 팔았고, 마이클잭슨 같은 슈퍼스타는 무려 수천만장을 팔았다.

당시 앨범 하나를 만드는데 100만 달러 정도가 들고,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2~300만 달러가 더 들었다. 그러나 도매에서 레코드 한 장이 7달러 정도로 판매되는데, 성공한 앨범의 경우 그 수익이 엄청났다. CBS 레코드사의 사장이었던 월터 예츠니코프에 따르면, 1960년대 초반 그가 CBS 레코드에 입사했을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미치 밀러와 제리 베일의 총 판매액은 2억 5,000만 달러였다. 그러나 80년대 말에 퇴직할 당시의 판매액은 25억 달러를 넘어섰다. 수백 개의 독립적인 회사들이 경쟁하던 음반업계가 5개의 다국적 기업에 흡수된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회계사들은 음반 시장에 돈이 쏠리는 것을 보았고 거기에서 수익을 거머쥐려고 몰려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 지금은 주요 레코드사인 EMI와 유니버설 뮤직을 소유한 다국적 기업들이 레코드 사업단을 합병하거나 매각할 생각을 하고 있다. 소니와 BMG는 이미 합병을 했으며 많은 직원들과 아티스트들을 해고했다. 타임워너는 2003년에 워너뮤직을 매각했다. 이처럼 다국적 기업들이 모두 시장을 떠나기 때문에 앞으로 음반 회사들이 다시 소규모의 독립 회사들로 바뀌는 세상이 올 가능성도 있다.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처럼 다국적기업의 자본이 들어와 시장을 평정한 것은 아니지만, 음반업계 종사자들은 CD 덕분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100만장 음반이 심심찮게 나왔고, 많을 때는 300만장을 넘기는 음반판매 기록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CD시장이 대중화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CD 시대는
특수하고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
그러나 고든의 말처럼 '상황이 달라졌다'. CD시장의 신화는 20년을 채우지 못하고 지금 막을 내리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음악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좋았던 시절이라고 생각하는 1990년대는 CD라는 매체가 만들어낸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때만큼 음반업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음악시장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CD라는 매체는 스스로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전 음반매체와 달리 '디지털신호'로 음원을 재생하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이 특징 때문에 음질도 뛰어났고, 부피도 줄일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인터넷 시대와 맞물리면서 너무 쉽게 MP3 파일로 압축될 수 있었다. CD를 컴퓨터에 집어넣고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돌리면 순식간에 MP3 파일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음반비즈니스에 함몰돼 있었던 음악업자들은 바로 이 점을 간과했고, 그 결과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다.

"음악시장에 제대로 성장하려면 하드웨어인 재생기계와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매체가 시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과거 LP시대 때는 중산층의 상징물처럼 여겨졌던 '전축'이 팔려나가기 시작하면서 LP 시장도 형성되지 않았습니까? 카세트테이프 시장도 마찬가집니다. 워크맨이 앞서가는 문화의 상징이 되면서 덩달아 카세트테이프 시장도 성장했습니다. CD는 더 말할 필요도 없구요. 그런데 MP3는 어떻습니까? MP3플레이어가 나오고 4~5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유료서비스모델이 등장했습니다. 4~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엇박자를 낸 것이죠. LP, 카세트테이프, CD 시대에는 능동적으로 환경변화에 적응했던 음반사들이 MP3 시대에는 적응하기보다는 공격을 선택했습니다."

음반사들이 적응보다 공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도 아직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해외 메이저 음반사들은 다국적 기업들입니다. 자본력은 물론 정보력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대기업들입니다. 그런데 CD가 디지털음악시대를 열어젖히면서 압축기술 발전과 함께 MP3가 등장하고, 인터넷속도도 빨라지고, 파일교환이 현실화될 것이란 사실을 왜 미리 예측하고 대응하지 못했을까요?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P2P는 필연적인 수순이었는데, 왜 그걸 못하게만 막으려 했을까요? 그 결과 몇 년간 영세한 P2P와 씨름만 하다가 아이튠즈가 등장했을 때 음악시장의 주도권을 애플에게 넘겨주지 않았습니까?"

냅스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음반사들은 음악시장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막대한 부도 축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CD시장은 거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이 없었다. CD 한장의 원가가 100원 남짓인데, 그것을 100배의 가격인 1만원에 수백만장을 팔아치웠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익률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웬 젊은이가 P2P라는 걸 세상에 들고나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습게 생각했는데 소비자의 반응이 장난이 아니다. 음반 판매량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은 '힘으로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저것 하나만 제거하면 다시금 예전의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디지털 기술 변화에 대해 신중하게 성찰하기보다는 자기가 당장 가지고 있는 힘을 너무 과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서 소위 메이저 음반사들은 모두 백기를 들었다. 심지어 2007년 11월 당시 워너뮤직의 CEO였던 에드가 브론프만은 한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틀렸다(We're wrong)"고 선언했다. P2P와의 분쟁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음반사의 대표가 과거 불법다운로드 문제에 대해 잘못 대처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애플이 장악한 '유료음악 시장'
그렇다면 세계 디지털음악시장은 어떻게 구성돼 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갈까?

"세계 디지털 음악시장은 크게 유료와 무료서비스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유료시장은 잘 아시다시피 애플의 아이튠즈가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죠. 오프라인 시장까지 다 합쳐도 단일매장으로서 아이튠즈가 가장 큰 매장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2등이 월마트이고, 그밖에 냅스터, 랩소디, 아마존 등이 있는데, 이 정도가 거의 전부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나머지는 다 합쳐봐야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10% 정도 될까요?"

그렇다면 애플이 주도하고 있는 유료 음악시장의 전망은 어떻게 될까?

"현재 애플의 시장 장악력이 워낙 강합니다. 점유율도 날로 늘어나고 있구요. 그리고 애플이 아이튠즈를 중심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당분간 이 틀이 쉽게 깨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유료 음악시장에서 눈에 띄는 서비스는 당분간 나타나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인
춘추전국시대인 '무료음악 시장'
유료 음악시장은 애플이 거의 독식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데 반해 무료 음악시장은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양대표의 분석이다.

"재미 있는 것은 무료음악 시장입니다. 온라인에서 무료로 음악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춘추전국시대라고 할만큼 많이 나와 있고, 또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SNS형 무료음악서비스와 라디오형 무료음악서비스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SNS형으로는 '마이스페이스'가 대표적이구요, '라디오형'으로는 '판도라', '라스트닷에프엠', '장고' 같은 서비스를 들 수 있습니다."

마이스페이스(www.myspace.com)는 처음부터 특정 밴드가 자기 음악을 알리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가 범용으로 확대된 것으로 기본적으로 공짜 음악이 내장돼 있는 서비스다. 판도라(www.pandora.com)와 라스트닷에프엠(www.last.fm), 장고(www.jango.com) 등은 이용자가 특정 음악을 지정할 수는 없는 대신 이용자의 음악선호도를 파악해 다양한 음악을 '추천'하는 일종의 개인화 라디오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료 음악서비스가 바로 불법 음악서비스라고 낙인 찍는 분위기이지만, 세계 디지털음악시장에서는 이런 무료음악 서비스들이 합법적으로, 그것도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물론 여기서 공급되는 음원들은 모두 저작권자와 계약이 된 것들이다.

이들 무료서비스의 비즈니스모델은 바로 '광고'다. 무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게 되고, 거기에서 발생한 광고수익을 권리자와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광고기반의 무료 서비스는 인터넷 환경에서 통용되는 대표적인 비즈니스모델 중의 하나인데, 이 모델이 2000년대 후반 들어 급속하게 확산되자 전문가들은 '공짜경제학'(freeconomics)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료음악시장에서 P2P서비스는 어떻게 됐을까?

"P2P는 시장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P2P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활성화된 서비스이긴 합니다만, 무료에다가 이렇다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해 여전히 불법 다운로드에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P2P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합법적인 유료화에 성공한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소리바다가 유일합니다."

무료음악서비스, 주류가 될 수 있을까?
이처럼 무료음악시장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 시장이 주류 음악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무료 서비스가 PC에서만 이용할 수 있고, MP3플레이어나 휴대폰 등을 통해 돌아다니면서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거의 극복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무료음악서비스용 앱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무료 음악서비스는 스포티파이(Spotify)입니다. 영국에서는 200만이 넘는 회원을 확보해 대박을 쳤구요, 지난해 9월에는 아이폰 앱 승인까지 받았는데, 벌써부터 애플을 위협할 만한 음악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스포티파이(www.spotify.com)는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다. 30분 마다 반복되는 광고와 곡과 곡 사이의 광고를 들어주면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광고를 듣기 싫다면 월 9.99유로를 지불하면 된다. 그런데 스포티파이는 단순한 스트리밍서비스와는 다른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
검색은 물론이고, 재생목록을 저장, 공유할 수 있고, 편집도 가능하다. 게다가 '오프라인 기능'이 있어서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돼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운로드 서비스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아니 무료서비스인데, 기존의 유료서비스보다 더 편리 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스포티파이의 인기가 미국시장에까지 불어닥치면 아이튠즈의 다운로드 상품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스포티파이가 애플에 아이폰용 앱 사용을 승인요청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기존에 애플은 자사 서비스(아이튠즈 등)에 영향을 줄 만한 앱에 대해서는 승인을 거부해왔기 때문에 스포티파이도 거절 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애플의 폐쇄적인 승인정책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마저도 진상조사에 나서자 애플은 결국 스포티파이 앱을 승인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파괴력 있는 서비스는 유료가 아닌 무료서비스입니다. 유료와 무료 서비스는 굉장히 다릅니다.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다르니까요. 작년 하반기에 스포티파이 앱이 아이폰에서 서비스된 것은 제 생각에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디지털 음악서비스의 경쟁구도를 확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국내 음악시장이
역동적이지
역동적이지 못한 이유
다시 시선을 국내 디지털 음악시장으로 돌려보자. 방금 살펴봤듯이 세계 시장은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데 반해 국내 시장은 소리바다, 벅스, 엠넷 정도가 아이폰용 앱을 서비스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할 변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합법적인 무료 음악서비스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고, 유료서비스조차도 상품의 종류와 가격이 거의 똑 같다. 서로 다른 브랜드에 보유한 곡수의 차이만 미미하게 있을 뿐 어디를 가나 거기서 거기인 서비스들 뿐이다. 나라 안과 밖이 왜 이렇게도 다른 걸까?

"국내에서는 다양한 음악서비스가 나오는 게 제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바로 음악 신탁 3단체의 '음악저작물 사용료징수규정' 때문입니다. 현재로는 이 규정에 등장하지 않는 음악서비스는 일단 불법으로 간주됩니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와서 합법서비스로 자리를 잡으려면, 그걸 들고 권리자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고, 또 규정에 새로운 조항으로 추가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내에서 이용되고 있는 음악서비스는 모두 이 징수규정에 지정되어 있는 것들이다. DRM-free 다운로드, DRM 다운로드, 스트리밍, 벨소리 및 통화연결음, 홈페이지 배경음악 등의 디지털 음악상품 모두가 어떤 식으로 서비스됐을 때 얼마를 징수할 것인지 매우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당연히 여기에는 무료음악서비스에 대한 조항은 없다.

"사실 이런 징수규정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걸 정부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것도 넌센스입니다. 다양한 음악상품들에 대해서 상세한 규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시장의 활력이 몰라보게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규정에 나와 있는대로만 서비스를 해야 하니 사업자가 창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리고 규정에 나와 있는 상품들은 기존 사업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신규 사업자가 새로 진입할 수가 있습니까? 이런 형태의 징수규정은 보기에 따라서는 기성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진입장벽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최소 단위의 핵심 기준
하나면
하나면 충분
그렇다면 저작권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음악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많은 규정을 계속 만들기보다는 모든 음악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준 하나를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해외 음악시장의 경우에는 '한 사람이 한 곡을 한 번 들었을 때 저작권료는 얼마를 지불하면 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명문화된 규정은 아닙니다만, 업계 구성원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단위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기준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어떤 형태의 음악서비스도 만들어낼 수 있고, 권리자들과도 원활하게 합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양대표는 해외 음악시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무료음악서비스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이유를 바로 '가장 기본적인 룰세팅'에서 찾았다. 예를 들어 스포티파이처럼 광고를 붙인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도 이용자들이 어떤 곡을 얼마만큼 들었는지를 계산해 그에 맞는 저작권료를 권리자에게 분배하고 있기 때문에 합법적인 서비스로 인정을 받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그런 기준이 없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 어렵고, 권리자들도 새로운 상품 제안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저도 권리자 단체들에게 이 같은 제안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런데 권리자들은 황당한 수준의 금액을 제시하더군요. 광고기반 서비스가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만약 그대로 법제화가 된다면 국내에서 음악 무료서비스는 완전히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외의 기준은 어떤 수준일까?

"해외에서 무료 음악서비스가 활발하다는 것은 그만큼 기준이 합리적이라는 말입니다. 저도 정확한 액수는 알지 못합니다만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곡당 2원 정도? 그러니까 한 사람이 A라는 무료음악서비스를 통해 한 달에 100곡을 들었다면, 권리자에게 200원 정도만 지불하면 되는 거죠. 이 정도면 광고를 붙여서 무료 서비스를 해볼만 하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저작권자에게 합당한 금액이 지불되느냐입니다. 그 기준만 만족한다면 사업자들에게 마음껏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현재 서비스에
충실할
충실할 생각
끝으로 소리바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 10년간 소리바다는 갖은 분쟁을 모두 해소했고, 또 그 분쟁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내부적으로 무리수를 뒀던 사업부문들도 모두 정리했다. 이제 소리바다는 분쟁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나름의 음악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첫 기회를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대표는 '지금의 서비스에 충실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의 소리바다는 경쟁사가 존재하는 유료화된 서비스입니다. 서비스의 내용도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고 유사합니다. 하지만 일단은 여기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저희가 P2P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음악 관련 데이터베이스와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밖에도 분쟁을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쏟다보니 상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못한 게 많았습니다. 이제는 차근차근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갈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디지털 음악시장은 참 많이 변했다. 이통사를 중심으로 한 거대 사업자들이 음악시장에 참여해 지형도를 바꿔놓았고, 소리바다는 지루한 분쟁을 거치며 과거 1, 2위를 다투던 온라인시장에서의 지위는 크게 약화됐다. 하지만 소리바다는 '서비스의 편의성'에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음악시장은 상당히 안정된 상태라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안정적이란 말은 향후 몇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하거나,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일종의 레드오션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소리바다의 목표도 당연히 이 시장 안에서 존재합니다. 파이의 크기가 거의 정해진 상태에서 소리바다가 성장하기 위한 방법은 잃었던 파이를 되찾아 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한 핵심 전략은 보다 나은 서비스의 편의성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맥, 리눅스, 아이폰에서도 돌아가는 소리바다
소리바다가 생각한 서비스의 편의성은 먼저 '다양한 OS'였다. '매킨토시(Macintosh)'는 물론이고, '리눅스(Linux)'에서도 소리바다의 서비스를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재 국내 음악서비스 사이트 중에 이처럼 매킨토시와 리눅스에서도 돌아가는 것은 소리바다가 유일하다. 

다음으로 소리바다는 '다양한 웹브라우저'에도 신경을 썼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 익스플로러'뿐만 아니라 모질라의 '파이어폭스', 구글의 '크롬' 등에서도 문제 없이 듣기와 다운로드 받기가 가능하다. 반면 국내 대부분의 음악서비스 사이트들은 음악재생과 다운로드 서비스에 '액티브엑스(ActiveX)' 기술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플랫폼(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의 특정 웹브라우저(인터넷익스플로러)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소리바다의 이러한 플랫폼 다양화 정책의 결정판은 아이폰(iPhone) 앱이라고 볼 수 있다. 소리바다는 2009년말에 아이폰이 출시되고 얼마 안 있어 국내 음악서비스로는 최초로 아이폰 앱을 내놓았다. 소리바다 앱은 출시 후 한 달만에 10만건의 다운로드 실적을 올려 국내 아이폰 앱 중에서 최고 인기 아이템으로 주목 받고 있다.

"소리바다가 처음부터 DRM-free를 고집한 근본적인 이유는 '소비자의 편의성'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플랫폼 다양화 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그 중에서도 아이폰 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여태껏 모바일음 악시장은 이통사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잖아요. 스마트폰과 함께 앱을 활용한 오픈마켓이 활성화되면서 우리도 모바일 음악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있으니까요. 소리바다 앱은 지속적으로 기능을 업데이트해서 스마트폰 시장의 대표적인 음악상품으로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이용자에게
아울러 소리바다는 플랫폼의 다양화 외에도 서비스 자체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이트에 방문할 때마다 로그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한 '자동로그인' 기능, 한 번 클릭으로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게 하는 '웹플레이어' 서비스, 블로그나 카페 등에 앨범 위젯을 바로 심을 수 있는 '소리바다 플레이어 퍼가기', 트위터나 미투데이 등의 마이크로블로그에서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들리는 링크', 소리바다를 통해 듣거나 다운로드 받은 음악정보를 관리해주는 '마이컬렉션', 메인 페이지에서 앨범 페이지로 이동하지 않고 바로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도록 한 '앨범 퀵뷰' 기능 등 음악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기능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동영상 등으로 서비스 영역 확장 예정
그러나 양대표도 지적했듯이 지금의 음악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레드오션이 돼버렸다. 정해진 파이 안에서 점유율을 높여야 하는, 한계가 분명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 대비한 소리바다의 전략은 무엇일까?

"음악 다운로드 시장만 보면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운로드 시장' 전체를 보면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와 드라마 등의 동영상 다운로드 시장은 이제 막 태동 단계입니다. 한편에서는 스마트폰 시장이 크게 열리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TV 등의 기존 영상기기들이 '스마트'해지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이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고, 그만큼 콘텐츠 다운로드 시장도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대표가 그리고 있는 소리바다의 그림은 어떤 형태일까?

"저는 오래 전부터 애플의 아이튠즈 모델을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감탄하는 것이 정말 에코시스템을 잘 만들어간다는 겁니다. 아이팟을 만든 뒤 아이튠즈 서비스를 내놓고, 다음에는 동영상이 돌아가는 아이팟을 내놓은 뒤 아이튠즈에서 뮤직비디오 동영상서비스를 개시하고, 또 이것이 안정화된다 싶으니까 영화와 TV드라마 등으로 동영상 서비스의 범위를 확대해갑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사업영역을 잘 확장한다 싶었습니다. 소리바다도 애플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자연스럽게 서비스 영역을 확장해나갈 예정입니다."

소리바다는 현재 영화 및 방송사들과의 계약을 대부분 마무리 짓고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조만간 소리바다를 통해 영화와 드라마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권리자와 P2P의
상생모델
상생모델 구현, 자부심
양대표의 말로라면 소리바다는 더 이상 'P2P의 대명사'라는 지위에 머물러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소리바다의 최근 서비스는 P2P보다는 '음악 및 콘텐츠 서비스의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10년간 P2P의 합법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의 방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P2P를 그 자체로 불법적인 것이라고 규정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P2P를 통한 다운로드 서비스도 정부가 정한 저작권료 징수규정에 포함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권리자와 P2P가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P2P냐 아니냐가 이슈가 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죠."

양대표는 P2P 자체보다는 P2P가 가져다 준 '효용성'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10년 전에 P2P에 열광했던 이유는 P2P라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P2P가 매우 편리하게 찾아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P2P가 아닌 웹서비스도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기에 큰 차이가 없고, 때로는 웹서비스가 더 편리한 부분도 있습니다. 따라서 P2P에 집착하기보다는 소비자가 편리하다고 느끼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동영상서비스를 시작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입니다."

무료 기반의 다양한 콘텐츠서비스 시도하고 싶어
소리바다가 10년 전 음악시장에 큰 화두를 던진 이후 과연 우리 음악시장은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까? 분쟁과 분쟁으로 이어진 지난 10년의 경험을 우리는 음악시장을 발전시키는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왔을까? 10년의 결과로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음악시장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역동성을 갖추고 있을까?

"우리 음악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장 기초적인 저작권료 징수규정이 하루 속히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런저런 서비스를 문자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한 곡을 들을 때 얼마의 저작권료를 징수하면 된다'는 매우 기초적이고도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합니다. 그래야 서비스 사업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양대표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사업을 펼치고 싶은지 물어봤다.

"제게 다시 처음부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권리자와 상생할 수 있는 '무료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누누히 강조했습니다만, 무료냐 유료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무료든 유료든 권리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소리바다에서 이런 시도를 하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유료와 무료서비스는 한 곳에서 양립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음악시장은 몇몇 거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되어 있다. 새로운 사업자가 나타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과연 '최소한의 저작권료 징수규정'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이런 진입장벽이 여전하다면 새로운 사업자가 기회를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저는 수직계열화에서 벗어난 소리바다 같은 기업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이라고 해서 반드시 직접 맞붙어서 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무료 서비스의 경우는 유료 서비스와 비교해서 고객층이 완전히 다릅니다. 비즈니스에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말처럼, 서로가 다른 영역이란 점이 인정된다면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지금의 음악시장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기발한 비즈니스 모델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리바다도 그 점에서 계속해서 기여하고 싶구요."

소리바다는 다시 전진하고 있다
소리바다는 2010년 5월로 만 10년째가 된다. 한때 대한민국 국민들을 잠 못 들게 만들었던 국민 소프트웨어였지만, 오랫 동안 저작권 분쟁에 시달리며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러나 소리바다는 그 긴 과정을 견뎌냈다. 그리고 권리자들과의 문제도 모두 해결했다. 물론 그 와중에 소리바다는 큰 상처를 입었다. 한때 업계 1, 2위를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4~5위 정도로 사세도 많이 위축됐다. 

그러나 소리바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리바다는 다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앱으로, 동영상 서비스로, 소리바다는 다시 전진하고 있다. 소리바다가 만들어낼 앞으로의 10년이 우리나라 디지털콘텐츠시장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끝)

(다음은 '후기'가 이어집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0.03.08 09:15 소리바다이야기
[소리바다이야기⑪] 폐쇄형 DRM의 탄생과 종말

스티브 잡스의 'DRM-free 제안'
알려져 있기로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논쟁을 세계적으로 촉발시킨 장본인은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다. 그는 2007년 2월 6일 '음악에 대한 생각들'(Thoughts on Music)이라는 제목의 공개 편지를 발표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DRM-free 음악파일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스티브잡스가 편지에서 밝힌 DRM 관련 주장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음악에 대한 생각들(Thoughts on Music)

아이포드와 아이튠즈는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하지만 애플의 DRM을 개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아이튠스에서 구입한 음악을 아이포드가 아닌 다른 기계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어야 하고다른 서비스에서 구입한 음악도 아이포드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단 아이포드에는 DRM을 입히지 않았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아이포드 사용자들은 각자 갖고 있는 CD를 포함해 다양한 스토어에서 구입한 음악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다하지만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음악은 인증받지 못한 기기에서는 들을 수 없게 DRM이 입혀져 있다이는 애플이 4대 음반사(유니버셜소니BMG, 워너, EMI)들로부터 유통 허락을 받을 때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DRM을 장착할 것을 요구 받았기 때문이다.

애플이 당시 협상한 DRM은 아이튠즈를 통해 구입한 음악파일을 아이포드에서는 무제한으로, PC에서는 다섯 대까지 복제할 수 있게 제한하는 것이었다그러나 당시 4대 음반사가 내건 협상의 핵심 조건은 아이튠즈를 통해 판매된 음악파일이 인증 받지 않은 기기에서 돌아갈 경우그 상황을 몇 주일 안에 고치지 않으면 모든 음악을 아이튠즈에서 철수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완벽한 DRM은 없다세상에는 DRM의 비밀을 풀어 모두가 공짜로 음악파일을 얻을(훔칠수 있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고또 종종 그들은 성공한다그래서 어떤 회사든 DRM을 자주 업데이트해줘야 한다애플의 DRM FairPlay도 몇 차례 그 비밀이 누출된 적은 있지만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음반사와의 약속을 성공적으로 실천해왔고이용자들에게도 합법 다운로드 시장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용권을 제공해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세 가지 대안을 검토해보자.

첫 번째는 현재 상황을 지속시키는 것이다그런데 특정 스토어에서 음악을 구입하면특정 플레이어에서만 들어야 하고특정 플레이어를 구입하면 반드시 특정 스토어만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맞을까
아이튠즈와 아이포드 데이터를 한 번 살펴보자. 2006년 말까지소비자들은 9,000만 대의 아이포드를 구입했고아이튠즈에서는 20억 곡을 구입했다아이포드 한 대당 22곡을 아이튠즈에서 구입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그런데 아이포드에는 1,000곡 정도를 저장할 수 있다그리고 소비자들은 웬만해선 1,000곡을 다 채워서 가지고 다닌다이를 계산하면 아이포드에 저장된 음악의 3%만이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DRM이 입혀진 음악파일이 그것뿐이라는 얘기다불과 3%를 위해서 소비자를 묶어야 할까최소한 아이포드 사용자들은 아이튠즈에 묶여 있지 않다.

두 번째는 FairPlay DRM 기술을 현재와 미래의 경쟁사에게 라이선스를 제공해 다른 회사의 플레이어 및 뮤직스토어에서도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이 방법은 겉으로는 좋은 전략 같아 보이지만실제로는 보안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한 기술을 다양한 회사가 활용하게 되면 그만큼 비밀이 새나가기 쉬워지고, 또 기기와 소프트웨어의 갯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업데이트 작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따라서 애플은 FairPlay를 다른 기업들에게 라이선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세 번째는 DRM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모든 음악스토어가 DRM-free 음악을 판매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그렇게 되면 모든 플레이어가 모든 스토어의 음악을 재생시킬 수 있으면서스토어 또한 모든 기기에서 재생할 수 있는 음악을 팔 수 있게 된다소비자에게는 분명 최고의 대안이고애플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4대 음반사가 DRM-free 음악판매를 허용해준다면, 애플은 아이튠즈를 DRM-free 음악만 판매하는 장터로 바꿀 것이다.

4대 음반사가 애플과 다른 유통업자들에게 DRM-free 음악을 라이선스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DRM이 불법다운로드를 막는 데 지금껏 효과적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결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4대 음반사들은 모든 온라인 음악에 DRM이 입혀지기를 원하지만동시에 이들은 보호장치가 전혀 입혀지지 않은 음악이 수록된 CD를 수십억 장씩 판매하는 회사들이다. CD DRM은 개발된 적이 없기 때문에, CD로 배포된 모든 음악은 DRM이 없는 음악파일로 인터넷에 쉽게 업로드될 수 있고동시에 얼마든지 (불법적으로다운로드 될 수 있다.

2006년 온라인에서 DRM을 입힌 채로 판매된 음악이 20억 곡이지만, DRM 없이 CD로 팔린 음악은 200억 곡이 넘는다이처럼 음반사가 90% 이상을 DRM 없이 판매하고 있는데나머지 10%에 DRM을 입힌다고 해서 얼마나 더 돈을 벌 수 있을까? DRM을 만들고운영하고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기술적인 전문지식과 과도한 요구 덕분에 DRM 음악을 판매하려는 음악사업자의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만약 이러한 요구가 사라진다면 음악산업계는 혁신적인 음악스토어와 플레이어를 개발하려는 새로운 기업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DRM 시스템에 대한 우려는 주로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아마도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지못한 분들은 4대 음반사들이 DRM-free 음악판매를 허락하도록 설득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4대 음반사의 지분은 대부분 유럽에서 갖고 있다. 음반사들이 애플은 물론 다른 사업자들에게도 DRM-free 음악판매를 허락하게 된다면 진정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시장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2월 6일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의 이 편지는 세계 음악시장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국내 주류 음악시장은 DRM-free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이 주장에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언론도 스티브 잡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아이튠즈 모델이 유럽시장에서 비판 받는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보도 내용을 부분 인용해본다.

(전략) 잡스는 특히 음반회사들이 DRM 제한을 풀 경우 폐쇄적으로 운영해 왔던 아이튠스를 개방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애플은 아이튠스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준을 비롯한 경쟁업체들의 MP3 플레이어와 호환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그 동안 철저한 폐쇄 정책으로 일관했던 스티브 잡스가 '개방'을 선언한 것은 최근 유럽에서 아이튠스와 다른 MP3 플레이어 간의 호환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최근 아이튠스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음원을 올해 10월까지 다른 기기에서도 재생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또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엔 아이튠스 폐쇄를 비롯한 강력한 법적 제재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아이뉴스24, 2007년 2월 7일,
기사전문 보기) .

애플의 진정성을 의심했던 국내 주류 음악계
그리고 당시 업계에서는 애플이 DRM 정책을 바꾼 것이 '아이폰'을 팔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애플이 DRM을 활용한 폐쇄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세계 음악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반대로 이로 인해 생긴 반대여론이 아이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의 공개편지는 진정성이 결여된, 아이폰 비즈니스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과장된 수사에 불과하다고 봤다.

그러나 과연 애플이 국내 주류 음악업계의 시각처럼 자기에게 유리할 때는 폐쇄적인 DRM을 잘 써먹다가 불필요한 시점이 되니까 'DRM 무용론'을 들고 나온 걸까? 양대표의 시각은 달랐다.

"제가 DRM 문제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애플의 행보는 처음부터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애플은 4대 음반사에 처음부터 DRM-free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편지에도 나오듯이 폐쇄적인 DRM은 4대 음반사의 요구 조건이었지 애플이 자기 비즈니스를 위해 고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음반사의 이러한 요구조건 덕분에 애플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음반사들이 자충수를 둔 격이 됐습니다. 애플은 DRM 덕분에 경쟁 확실한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DRM이 일종의 진입장벽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튠즈의 시장 점유율이 80%에 육박하자 음반사들이 오히려 애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음반사들은 자기의 우월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DRM을 강제했지만, 오히려 애플의 지위만 올려준 꼴이 돼버린 거죠."

애플의 제안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4대 음반사 중 EMI가 같은 달인 2월에 제일 먼저 DRM-free 대열에 참여했고, 뒤이어 워너뮤직과 유니버셜 뮤직이, 이듬해인 2008년 1월에는 소니BMG가 마지막으로 참여함으로써 DRM-free 음악서비스가 대세가 됐다. 스티브 잡스가 공개 편지를 발표한지 1년이 못되는 시간에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LG MP3폰으로 촉발된 국내 DRM 논쟁
국내에서의 DRM 논쟁은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에서 DRM 논쟁이 가장 뜨겁게 일어났던 때는 2004년 3월 LG전자가 MP3폰을 출시했을 때였다. 

LG전자의 MP3폰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50만원대의 고가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시 한 달만에 7만대가 넘게 팔려 나갔고, 이후 출시한 2종을 합치면 3개월만에 20여만대가 판매됐다고 한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반응한 핵심적인 이유는 DRM이 걸려 있지 않아 개인이 소장한 음악파일을 자기 폰을 통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장 메모리가 64MB로 15곡 정도밖에 저장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장용량을 제외하고는 다른 제약이 없었다는 바로 그 점에 소비자들이 반응한 것이었다.

LG전자의 MP3폰 'LP3000' 모델

물론 음악저작권단체들의 반발은 거셌다. 이들 단체가 문제 삼은 것은 MP3폰에서 '무료 MP3 파일을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음악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들은 무료 음악파일을 들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법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LG텔레콤이 운영하는 음악서비스에 음원공급을 전면 중단하는 한편, 불매운동과 법정 소송을 전개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분위기가 험악하게 굴러가자 문화부와 정통부가 중재자로 나섰다. 그리고 정부의 주선으로 저작권단체, 휴대폰 제조사, 이동통신사가 참여하는 '협의체'가 만들어졌다. 물론 LG텔레콤의 경쟁사인 KTF와 SKT도 이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해 7월 1일 이통사간 '양방향 번호이동성 제도'를 앞두고 MP3폰을 앞세운 LG전자의 가입자 유치 전략이 제법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두 회사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합의 무산
당시 저작권단체들이 애초에 내건 협상안은 두 가지로 '무료음악파일의 재생 가능시간을 48시간으로 제한', '64kbps 이하의 낮은 음질 제공'이었다. 협상과정을 거치며 48시간은 72시간으로 연장되면서 타결되는 듯했으나 LG텔레콤이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협의체를 탈퇴하면서 2004년 5월말에 협의체는 해산하고 만다.

양대표는 당시 저작권단체들의 요구 자체가 무리였다고 말했다.

"저작권단체들의 요구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습니다. 기계에다가 잠금장치를 다는 행위는 소비자들이 매우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제조사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멜론이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휴대폰에 사용할 만한 공식화된 DRM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란 거죠. 통신사 입장에선 저작권단체들의 요구가 황당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미국에서도 기계에 DRM을 부착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다
1990년대 말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1998말에 설립된 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라는럼에서 컴퓨터에 '디지털 잠금장치'를 장착하려다 실패한 이야기다. 이 포럼에는 주요 음반회사, 가전기업, 컴퓨터제조사, 보안기술회사, 인터넷서비스제공사(ISP) 등 200여 개 회사와 기관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 포럼의 목표는 '새로운 디지털 음악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디지털 음악의 재생, 저장, 유통을 보호하는 기술 규격'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디지털 음악을 다루게 될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리고 각종 디지털 가전제품에 적용시킬 보안 표준을 만들기 위한 조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포럼에 참여한 전자기업들이 표준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포럼은 결국 2001년에 문을 닫았다. 당시 SDMI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결론이 공표됐다.

SDMI 정기회의에서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본 결과, 제안된 기술을 채택할 정도의 동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2001년 5월 18일자로 SDMI는 잠정적 폐쇄를 선언하며, 향후 기술 동향을 평가하고자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포럼에 참여했던 메이저 음반사들은 일정한 표시가 부착되지 않은 콘텐츠의 전송과 다운로드를 막는 잠금 장치를 전자제품 업계가 자사 컴퓨터와 CD버너 제품에 자발적으로 부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전자제품 업계가 그 제안에 협력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비자들이 그렇게 잠금장치가 설치된 컴퓨터와 관련 기기를 구입하기를 꺼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포럼에 참여하고 있던 유력한 전자제품 회사 중 하나는 음반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던 소니(Sony)였다. <음악산업의 미래(The future of music business)>를 쓴 스티브 고든은 이 포럼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전자제품 회사들이 콘텐츠의 권리를 가지고 있던 기업들(음반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소니뮤직의 모회사인 소니는 컴퓨터와 공CD, 그리고 음악을 기록하고 복제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디지털 기기를 제조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따라서 소니 뮤직의 임직원들이 모회사의 이윤을 저해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DRM 논쟁에서 슬그머니 발을 뺀 LGT
다시 2004년 국내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LGT는 DRM이 없는 MP3폰을 먼저 내놓음으로써 회원을 유치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봤다. 그러나 협의체가 무산됐다고 해서 당시의 갈등상황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LG텔레콤이 합법적인 음악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저작권단체들과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다. 

LG텔레콤이 저작권 단체들과 협상에 성공한 것은 같은 해 11월말이었다. 협상 내용은 '100억원의 음악산업 발전기금을 내는 대신 더 이상 LG텔레콤의 MP3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더불어 '뮤직온'에 150만곡의 음원을 제공하며 2005년 6월까지 무료서비스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LG텔레콤이 자사 MP3폰에 DRM이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더 이상 마케팅 포인트로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리자들과의 원만한 협상을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SK텔레콤과 KTF의 폐쇄적 DRM 정책이 생각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LG텔레콤은 언제부턴가 경쟁 통신사와 똑같은 방법으로 휴대폰에 폐쇄적인 DRM을 적용했다. 

"당시 저작권단체들은 LG의 MP3폰이 불법 다운로드를 조장하고 시장을 위축시킨다며 법정 공방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법정으로 갈 경우에는 100% LG텔레콤이 이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LG텔레콤은 소비자들에게 제법 크게 어필했던 'DRM-free 휴대폰'을 계속 고집하는 대신 저작권단체들과의 협상을 통해 '뮤직온'이라는 자체 음악서비스를 론칭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이 방법이 새로운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더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겠지요."

하지만 LG텔레콤의 뮤직온 모델은 기대했던 것만큼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경쟁 통신사들보다 한 발 앞서서 저작권단체들과 협상을 마무리 짓고, 6개월 무료 음악서비스라는 획기적인 상품도 이끌어냈지만, DRM-free MP3폰을 출시했을 때만큼의 시장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뮤직온은 일정한 수준에서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2009년 12월에 엠넷미디어의 엠넷닷컴과 통합되면서 그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엠넷닷컴과 뮤직온이 통합했으나 뮤직온 브랜드는 사라졌다.

DRM 논쟁을 적극 활용한 SKT
LG텔레콤이 뮤직온을 한창 준비할 즈음인 2004년 11월 SK텔레콤은 '멜론'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기존에 네이트와 휴대폰을 연결한 음악서비스를 정비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SK텔레콤은 과감하게 휴대폰에도 잠금장치를 설치하는 정책을 펼쳤다. '멜론'에서 다운로드 받은 음악파일이 아니면 SKT폰에서는 거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앞서 밝힌 대로 기계에다가 잠금장치를 다는 것은 소비자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이같은 시도를 하다가 전자제품 회사의 비협조로 수포로 돌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이러한 위험을 무릎쓰고 '폐쇄적인 DRM 정책'을 관철시켰다. 어디에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일까?

"SK텔레콤은 이미 가입자를 상당히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객을 자기네 울타리에 '가두는 게' 제일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리고 잠금장치 때문에 발생하는 소비자의 반발여론은 음악 권리자들을 핑계로 얼마든지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가 자기 돈 내고 구입한 기계의 사용권까지 제한하는 강력한 DRM을 줄기차게 요구한 장본인이 바로 음악권리자였기 때문입니다."

양대표는 권리자와 권리자단체들이 SK텔레콤에게 유리한 폐쇄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신상품이 나왔다고 할 때, DRM이 없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 가지 다양한 DRM 음악파일도 지원되는 플레이어가 나왔다고 해야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까? 신상품은 신상품인데 다른 건 다 안 되고 특정 DRM 음악파일만 재생되는 플레이어가 이번에 새로 나왔다면, 어떤 소비자가 그 제품을 납득하겠습니까? 그러나 SK텔레콤은 기존 가입자를 상대로 이 상품을 강매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권리자들의 강력한 요구를 방패막이 삼아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했던 것이죠."

이런 비판여론을 의식했는지 SK텔레콤도 개인이 소장한 음악파일을 SKT폰에 전송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한 적이 있다. 개인 PC에서 휴대폰으로 음악파일을 전송할 때 DRM을 입히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런 조치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어땠을까?

"욕을 많이 먹었죠. SK텔레콤은 그 솔루션을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한 게 아니라 아니라 철저하게 마케팅 툴로 활용했습니다. 이를테면 한 번에 한곡씩만 변환할 수 있게 제약을 두고, 변환하는 과정에도 여러 단계를 둬서 서너 차례 이상 클릭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멜론에 가입하면 이런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뜨는 식이죠. MP3파일에 DRM을 입히는 게 매우 간단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어서 소비자들이 멜론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겁니다."

SKT, 권리자가 되다
더구나 SK텔레콤은 '멜론' 서비스를 시작한지 6개월 뒤인 2005년 5월에 당시 국내 최대 음반유통사였던 YBM서울음반을 전격 인수했다. 서비스사업자는 제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권리자들에게는 항상 '을'이 될 수밖에 없는데, SK텔레콤은 서울음반을 통해 단번에 '갑'의 자리에 올라섰고, 나머지 권리자들과의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그 결과는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불합리한 수익분배 구조'였다. 오프라인 음반시장에서 제작자가 전체 수익의 60% 가까이를 가져가는 데 비해 이통사가 주도하는 모바일 음악시장에서는 25% 정도밖에는 분배되지 못하고 있다.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개발자에게 수익의 70%를 분배하고, 구글이 자사 이북 시장에서 수익의 60%를 출판권리자에게 분배하는 것과 비교해도 턱 없이 적은 비율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장 모순은 모바일시장이 막 형성되던 시점부터 줄기차게 문제제기 되어 왔지만, 지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권리자들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소리바다와 권리자들이 한창 소송을 벌일 때 제가 여러 차례에 걸쳐 권리자들에게 소리바다보다 이통사를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 권리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소리바다와 소송을 벌여 얻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온라인 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은 달랐습니다. 당장 큰 액수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는 시장이었고, 발전 가능성 또한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통신사들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뒀다가는 얼마 안 있어 그들이 음악시장 전체를 장악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했습니다."

하지만 권리자들은 이통사의 음악서비스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당시 권리자들은 소리바다에 대해서는 상당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이통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분배율이 얼마가 됐든 당장은 돈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통사가 나눠주던 그 금액이 CD 시장에서 줄어든 액수를 메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진 만큼 균형 있는 수익확보 방안을 고민했어야 했는데, 모바일 음악시장을 너무 쉽게 생각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양대표는 당시 권리자들의 선택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소리바다는 초창기부터 유료화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수익배분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고 애썼습니다. 실제로 소리바다가 유료화됐을 때 국내에서 권리자에게 수익을 가장 많이 나눠주는 권리자 친화적인 음악서비스였습니다. 권리자들이 그때 소리바다를 조금만 더 믿어주고 힘을 실어줬더라면 지금처럼 이통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초라한 음악시장은 되지 않았을 겁니다."

DRM논쟁을 외면했던 주류 음악시장
LG텔레콤의 DRM-free MP3폰 때문에 촉발됐던 DRM 논쟁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맥없이 종적을 감췄다. 이후에는 디지털음악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DRM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사건도, 논쟁도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소리바다는 끈질기게 DRM 무용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 음악시장은 물론 정부까지도 소리바다의 외침에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스티브 잡스가 2007년 2월에 DRM 철폐를 주장한 공개편지를 발표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고, 소니가 4대 음반사 중 마지막으로 DRM-free 서비스에 참여했던 2008년 1월에도 요지부동이었다. 논리는 간단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사정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미국은 아이튠즈를 중심으로 온라인 음악시장이 상당히 자리잡은 반면, 한국은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기 때문에 미국처럼 DRM-free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는 2008년 2월 문화부가 DRM-free 음악서비스에 대한 '음악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을 승인했을 때도 그대로 적용돼 제법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가 DRM-free 음악서비스를 승인해줬기 때문에 불법 다운로드가 기승을 부리고, 기존의 합법 음악시장(폐쇄적 DRM 음악시장)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DRM-free 상품 출시에는 재빨라
그러나 징수규정이 통과한지 반년이 채 지나기 전에 국내 거의 국내 온라인음악서비스는 DRM-free 음악상품을 일제히 출시했다. 그것도 구색 맞추기용이 아니라 핵심 전략상품으로 전면 배치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이 왜 갑자기 돌변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왜 그들은 DRM-free 상품이 출시되는 순간 국내 온라인 음악시장이 다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일제히 얼굴색을 바꾸고 DRM-free 상품을 파는 데 올인한 것일까?

"그때 이미 국내 온라인음악시장은 한계에 다다라 있었습니다. 폐쇄적 DRM이 고객의 이탈을 막아 자사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시장 전체의 크기를 키우는 데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거든요. 그분들도 자기 명분 때문에 DRM-free를 반대했겠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서비스 모델이었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국내에서는 DRM-free에 대한 논쟁이 거의 금기시돼 있어서 이 부분과 관련한 실증적인 조사나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제법 많이 생산하고 있었다. 미국의 온라인미디어 전문 조사업체인 빅샴페인(BigChampagne)의 조사결과 하나를 소개해본다.

DRM-free 상품과 불법 다운로드는 별개
빅샴페인은 EMI가 2007년초에 '아이튠즈 플러스'를 통해 DRM-free 음악상품을 출시한 이후 EMI 음악콘텐츠의 유통경로를 집중적으로 추적한 적이 있다. 빅샴페인의 CEO인 에릭 갈란드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EMI의 DRM-free 상품이 출시된 이후 P2P 사이트의 트래픽 변화는 거의 의미 없는 수준이었고, 아이튠즈에서 DRM-free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P2P 사이트에서 음악파일을 업로드 하는 사람은 거의 겹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애플의 DRM 때문에 P2P를 통한 불법 다운로드가 영향을 받았다(줄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기사내용 보기).

이러한 결과는 한 마디로 'DRM-free 상품이 P2P를 통한 불법 다운로드와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국내 음악권리자들이 수년간 주장해온 'DRM이 없는 음악파일이 시중에 유통되면, 소리바다 등의 P2P를 통해 불법 다운로드가 창궐할 것'이라는 전망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더러 'SK텔레콤 등에 적용되는 폐쇄적인 DRM이 저작권을 보호하고 음악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주장 또한 근거가 매우 부실한 것으로 밝혀주고 있다.

"DRM이 없는 음악파일이 유통되면 불법 다운로드가 창궐할 것이라는 논리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엉터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공개편지에서 지적했듯이 세상에는 이미 DRM이 전혀 적용되지 않은 CD가 충분히, 또 합법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들 CD에서 그 어떤 잠금장치도 달려 있지 않은 MP3 음악파일을 추출하는 것은 매우 쉽고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가능성은 그대로 놔둔 채 DRM만 입히면 저작권 보호가 자동적으로 이뤄지고, 디지털음악시장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폐쇄형 DRM의 종말
온라인 음악서비스에서 DRM-free 상품이 출시된지 1년여가 지난 2009년 하반기에 이르러 비로소 휴대폰 시장에서 DRM이 해제된 상품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신호탄은 KT와 LG텔레콤에서 출시된 뉴초콜릿폰이었다. 2004년에 DRM이 없는 MP3폰이 처음 출시된지 5년만에 다시 DRM이 없는 휴대폰이 등장한 것이다. 

5년만에 DRM-free 휴대폰 시대를 연 '뉴초콜릿폰'

그러나 SK텔레콤에서 출시된 뉴초콜릿폰에는 여전히 DRM이 적용되어 있었다. 시장에서 여전히 우월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던 SK텔레콤으로서는 DRM을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아이폰이 국내 시장에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갖가지 제약을 통해 소비자를 가두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며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제공하는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에 국내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그동안 이통사의 말도 안되는 매트릭스에 갇혀 눈과 귀가 멀어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천하의 SK텔레콤도 아이폰이 불러일으킨 변화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SK텔레콤은 지난 1월에 '무선인터넷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 200만대 판매 △독자적인 와이파이(Wi-Fi)망 구축 및 일반폰에까지 적용 확대 △DRM이 해제된 휴대폰 단말기 25종 출시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DRM이 해제된 휴대폰은 2010년 3월달에 출시될 예정이다.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까. 소비자의 갖은 불만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던 SK텔레콤이 아이폰 '한방'에 정책을 바꿨다. 소비자를 상대로, 정부를 상대로 'DRM이 없으면 음악시장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그들이 하루 아침에 DRM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왜 DRM 정책을 바꾸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눈을 씼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과거에는 필요했는데 지금은 필요 없어진 것인지, 과거에도 필요 없었는데 굳이 필요하다고 우긴 것인지, 어떤 이유와 배경이 작용한 것인지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6년여의 시간 동안 한국의 소비자와 음악시장 구성원 모두는 DRM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어야 했다. 검증되지도, 확인되지도 않은 '주장'에 갇혀 소비자의 편의성은 마구잡이로 제한됐고, 정부의 정책은 일방적인 편들기로 점철됐다. 그렇게 해서 과연 한국의 음악시장은 발전했나?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 오랜 시간 동안 DRM에 목을 메달았을까?

(다음은 '살아남기 위한 소리바다의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어제 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 뉴스와 신문에 '대형마트'의 횡포를 성토하는 기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하루가 멀다하고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자, CJ 등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대기업들마저 '공급중단'을 선언하고 나선 겁니다. 한창 쟁점으로 떠오른 상품은 '햇반', '고향만두', '초코파이' 등이라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중소 납품업체는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힘 없는 납품업차들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이쪽 바닥 생리를 모르는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만, 언론에 소개된 풍경 하나를 보니 대형마트가 '을'이 아니라 '갑'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마트는 성수동 이마트에서 '신년교례회'를 열어 수백개의 납품업체 관계즈들을 모아 가격인하 정책을 밝혔다. 교례회에 참석한 한 업체 관계자는 "기존 단가에서 30% 낮춘 '초저가 제품(EveryDay Low Price)'을 요구하면서 전체 제품 가운데 그 비중을 연말까지 40~50%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며 "여기에 연초에 기존 10%대의 장려금을 2~3%포인트 올려달라고 해서 납품업체로서는 걱정이 태산이라고 전했다. 장려금은 대형마트에서 제품을 판매한 뒤 납품업체에 값을 정산할 때 판매촉진비 등의 명목으로 빼는 방식으로 부과한다(한겨레신문, 2010년 1월 21일, 이정훈 기자).

이뿐만이 아닙니다.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한 업체 관계자도 "30%선이었던 수수료를 더 내거나 아니면 장려금을 그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며 "견딜 수 있는 몇몇 업체만 버티고 나머지 작은 업체들은 이미 요구대로 계약을 마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품포장 개선비용을 납품업체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사례도 있다. 이마트는 최근 공문을 통해 제품을 바로 진열대에 선보일 수 있도록 제품 포장 겉면에 절단선을 넣는 '아르아르피'(Retail Ready Packaging)를 요구했다. 하지만 새 포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납품업체 몫이 된다(같은 기사).

이 정도면 말이 '신년교례회'지 '애국조회'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납품 업체들 모아 놓고 일장 훈시하며, 이마트 방침이 이러저러 하니, 여기에다가 무조건 맞추라는 식의 명령이 아니고 뭡니까? 이 정도면 대형마트는 천사의 탈을 쓴 마피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며 참 답답했습니다. 대형마트들이 왜 얼마 안 되는 '가격' 때문에 저토록 피튀기는 경쟁을 할까, 또 그 할인폭을 쥐어짜내기 위해 굳이 납품업체의 뒤통수를 쳐야만 할까, 그토록 잔인한 할인율을 요구해야 할까, 정말 이해가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 정도 노하우에, 그 정도 규모의 기업이면, 수년간 마케팅 데이터가 축적돼 있을 것이고, 그 데이터에 근거해서 정책을 수립했을 텐데, 고작 저 정도 수준으로밖에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가격 때문에 할인마트 찾는 건 아니다
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케팅 데이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을 거구요. 하지만 ㅁ트 애용자로서,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몇 마디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마트 여기저기에서 '최저가가 아니면 보상하겠다'는 구호를 외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상품인데 다른 매장에서 더 싸게 구입했다면, 구입한 가격의 두배를 물어주겠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구호가 과연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어필했을까요? 정말 우연찮게 같은 제품을 다른 마트에서 구입하게 된다면 모를까, 그렇게 행동하는 소비자는 'OO파라치'가 아닌 이상 거이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보상이란 걸 받으려면, 다행히 전에 제품을 구입한 마트에서 얼마에 구입했는지 기억이 떠올라야 하고, 그날 그 영수증을 잘 보관하고 있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들도 실제로 보상이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을 겁니다. 마케팅을 위한 일종의 과장된 몸짓이었겠지요. 우리가 소비자에게 최저가를 보장하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니 좀 알아달라는 정도로요.

그런데 사실 저 같은 소비자는 최저가인지 아닌지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그냥 대형마트라면 백화점보다는 싸고, 재래시장보다는 좀 비싼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거기서 몇원 왔다갔다 하는 거, 그거 때문에 마트를 바꾼다든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차 걱정 없고, 날씨 걱정 없는 쾌적한 실내공간이 매력
오히려 사람들이 마트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주차장' 때문입니다. 주차 걱정 없이 가서 물건을 맘껏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 냉장고 성능이 좋아지고, 용량도 커지면서 한 번 쇼핑할 때 많은 물건을 구입해야 하는데, 정말 차가 없으면 들고다니기가 난감하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쾌적한 실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겨울이면 따뜻하고, 여름이면 시원하며, 비나 눈 걱정 없이 아무 때나 찾아가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경우에는 한여름과 한겨울에 마땅히 데리고 갈 데가 별로 없습니다. 그때 마트는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에 참 좋은 대안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매력을 든다면 '원스톱'이란 겁니다. 재래시장은 물론이고 백화점에 가도 '안 파는 물건'이 꽤 됩니다. 그러나 대형마트에는 아주 특별한 것을 제외하면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건이 거기 가면 다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요.

왜 대형마트는 자기들의 강점을 홍보하는 데 인색할까?
제가 대형마트에 대해 느끼는 이런 매력들은 검증한 건 아닙니다만, 몇몇 독특한 사람에 한정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보편적인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대형마트들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마케팅 전략도 이런 쪽으로 맞춰져야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우리 마트는 주차시설이 끝내줘요'라든지(요즘 모 아파트 광고를 보니 주차공간을 10cm 넓혔다고 하던데, 대형마트도 이런 광고가 씨알이 먹힐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우리 마트는 고객들의 건강을 위해 항상 적정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요'라든지, 아니면 '마트 실내의 청정한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 환풍기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이번에 우리 마트에선 다른 마트에선 볼 수 없는 OO상품을 입점시켰다'든지... 뭐 이런 광고가 돼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가격 경쟁이 소비자를 위해서? 납품업자 길들이기는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가격경쟁에 목숨을 거는 대형마트들의 저의가 사뭇 궁금해집니다. 과연 그들은 소비자들을 더 많이 끌어모으기 위해서 가격경쟁을 하는 걸까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단언컨대 마트 관계자들의 '머리가 나쁘다'고밖에 말할 수 없네요.

저는 오히려 이들이 가격을 자꾸 앞세우는 게 '납품업자를 길들이기'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소비자는 핑계로 대고 가격을 후려서 납품업자들을 주눅들게 만들고,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마땅히 대형마트가 짊어져야 할 비용들을 납품업체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지요. 사실 이런 마트의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파견직원'을 저희들 직원처럼 부려먹는 건 벌써 몇 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지요. 

인건비로 대표되는 '고정비용'을 최소화시키면 자연스럽게 순익은 올라갑니다. 순익이 올라가면 회사 평가가 좋아지구요, 그리고 주가도 올라갑니다. 주가가 올라가면 경영 책임자의 성과가 좋아지구요, 자연스럽게 연봉도 올라갑니다. 

쉽게 말해서 경영자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매출을 올리는 것 못지 않게 '고정비용'을 줄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대형마트에서 그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납품업자들에게 전가'하는 겁니다.

애플과 구글이 자꾸 부럽다.
제 글에서 애플과 구글이 너무 자주 나와서 좀 부끄럽긴 합니다만, 이번에도 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애플과 구글도 이를테면 유통업자들입니다.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가 다를 뿐 유통업자이기는 대형마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네 유통구조를 만들 때는 '착취 모델'이 아니라 '상생 모델'을 채택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애플과 구글의 매장(플랫폼)을 이용하는 납품업자(개발자, 콘텐츠기업 등)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그들은 유통업자 이상의 역할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개발자에게 수익의 70%를 돌려주는 모델을 도입했구요, 구글도 전자책 시장에서 60%를 권리자에게 환원하는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글이나 애플 매장을 이용하는 납품업자 중에서 얼마든지 백만장자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대가를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형마트들은 납품업자들의 뒤통수를 칩니다. 그들의 호주머니를 쥐어짭니다. 수익을 분배할 때도 거기에 추가해서 더 내놓으라고 합니다. 매장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도 전가합니다. 이런 악당이 어디 있습니까?


구글의 모토가 'Don't be evil'이라고 하지요. 번역하자면 '악당이 되지 말자' 쯤 되겠습니다. 이 모토를 우리나라 대형마트에 적용한다면 'Be evil' 쯤이 되겠죠? 번역하자면 '악당이 되자!' 쯤 되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0.01.20 16:57 문화정책이야기
요즘 출판업계의 이슈는 단연 '전자책'이다. 그런데 출판업계가 이런 변화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턴가 유통업자들이 출판사를 제 집 드나들 듯이 하며 일정한 금액을 조건으로 '권리'를 넘기라고 회유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출판사를 아예 제끼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저자와 직접 만나 거래를 트고 있다고 한다. 물론 '권리'에 대한 거래다.

여기서 말하는 유통사란, 주로 온라인 서점 유통사를 가리키고, 최근에는 SKT, KT와 같은 이동통신사들이 올해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면서 출판사들과의 만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들도 세상 물정 잘 모르기는 저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심지어는 1인 기업이 절대 다수를 이루며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에 정보력이나 협상력에서 대형 유통사를 상대하기가 버거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호주머니가 얇아진 출판사들은 유통사가 제시하는 '현찰'에 솔깃해 하는 게 사실이다. 인지상정인데, 이를 두고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견 이상급 되는 출판사들이 의기투합해 일종의 '대리중개업체'를 만들기도 했다. '(주)한국출판콘텐츠'(KPC)가 그 주인공인데, 김영사, 문학과지성사, 더난출판, 시공사, 창비 등 나름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출판사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회사는 개별 출판사로부터 책의 '2차 저작권'을 위탁 받아 대형유통업체와 기타 콘텐츠 기업 등을 상대할 뿐만 아니라, POD(Publish on Demand)와 같이 개별 출판사가 하기 어려운 2차 출판사업을 펼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전자책', '오디오북' 등을 만들어 유통사와 계약하는 일, 그리고 원작을 가공해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원작을 토대로 한 이러닝 사업 등을 맡게 되는 것이다.


대표성을 갖는다는 건 매우 유리한 조건
음악 사례와 비교해보면, 출판업계는 확실하게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먼저, KPC가 다수의 메이저 출판사의 참여로 상당한 대표성을 띄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럽다. 음악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기업으로 과거 '만인에미디어'와 같은 대리중개업체 다수와 '음원제작자협회'와 같은 저작권신탁단체가 있었다. 그러나 음악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런 저작권 위탁 또는 신탁 사업에 메이저 음악제작사가 대부분 빠져 있었다는 거였다.

다들 주판알을 굴려봐서 내린 결론이었겠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음악업계는 대부분 유통사, 특히 이동통신사에 심하게 휘둘렸다. 구글은 미국 출판사협회와 작가협회와 수익(판매수익+광고수익)의 60%를 권리자들에게 내놓는 것으로 협상했는데, 우리나라 음악 권리자들은 이통사로부터 콘텐츠요금의 40%를 받아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게다가 소비자가 음원을 다운로드 받기 위해 지불한 '데이터요금'은 분배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분배 조건을 음악 권리자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음악업계를 대표해서 거대한 이통사와 협상할 주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통사들은 개별 음악기업과 만나 하나둘씩 계약을 성사시켜 나갔지만, 대리중개업체와 신탁단체들은 이미 성사된 계약을 뒤집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힘의 논리에 밀려 음악업계가 휘둘렸던 것이다.

따라서 출판업계의 대표성을 갖는 대리중개업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물론 대표성 자체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은 해줄 수 없겠지만, 최소한 대형 유통사의 힘에 맞서 전열을 정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판업계는 구글이 만들어 놓은 '6 대 4'의 수익분배 선례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만큼의 조건만으로도 출판업계는 음악업계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수직계열화 경계해야
다음으로 '수직계열화'가 아직은 크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다행스럽다. 수직계열화란 기획, 창작, 제작, 유통에 이르는 모든 비즈니스 가치사슬이 한 회사 안에서 수직으로 이뤄지는 상황을 가리키는데, 음악업계에서는 2005년 SKT가 당시 최대 음반제작 및 유통사였던 YBM서울음반을 인수한 것이 효시였다.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수직계열화가 갖는 폐해는 바로 시장구조를 '왜곡'한다는 사실이다.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권리자는 아무리 작고 허약하더라도 '갑'의 지위를 갖고, 유통업자는 아무리 돈이 많고 덩치가 커도 '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을'이 '갑'을 집어삼켜버리면, 시장에서 합리적인 질서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유통업자가 스스로 권리자가 되는 순간, 다른 권리자들이 설 자리가 크게 위협 받기 때문이다.

앞서 음악시장 사례에서 권리자들이 이통사로부터 콘텐츠 요금 수익의 40%밖에 받아내지 못한 이유도 이통사가 진행한 수직계열화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이 수직계열화는 '권리자가 유통사에 종속'되는 그림이기 때문에 백이면 백 권리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SKT가 YBM서울음반을 인수했다는 것은 이마트가 농심라면을 인수했다는 것과 비슷하다. 이마트가 농심라면을 인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마트에서 과연 삼양라면과 오뚜기라면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들어 음악시장을 걱정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로 '아이돌 일변도'와 '30초짜리 음악'을 거론한다. 이처럼 우리 음악시장이 층이 얇아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30초 짜리 음악이 판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음악시장이 이렇게 망가진 것과 이통사가 주도했던 음악시장의 수직계열화와는 관련이 없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들리는 이야기로는 출판시장에서도 유통사들이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야금야금 수직계열화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출판사 없이 저자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다든지, 영세한 출판사를 현금으로 회유한다든지 하는 일련의 권리확보 활동들은 유통사가 권리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출판업계가 음악업계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유통사가 주도하는 수직계열화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전자책 담론에서 독자가 빠졌다.
그러나 위 두 가지는 출판업계가 전자책 시장에 연착륙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은 갖추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자책 시장 전반에 대한 청사진은 뚜렷하게 나와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가지 활동계획들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 계획들에 맹점이 하나 있다. 모든 언설들이 오로지 '출판사'와 '유통사'에 관해서만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 긴장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고, 또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에 관해서만 몰두하고 있다. 정작 시장의 주체인 '독자'에 관한 이야기가 송두리째 빠진 것이다.

혹자는 출판사와 유통사간의 문제만 잘 해결되면 독자에게 행복한 환경이 만들어질 거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유통시장의 구조가 과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의 음악시장은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어쨌든 권리자와 유통사업자가 합의를 본 것이다. 소리바다와 벅스, 그리고 웹하드 업체들을 둘러싼 저작권 공방도 많았고, 이통사의 전횡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어쨌든 지금의 음악시장은 '모두(권리자와 유통사)가 합의한 시장'이다. 그런데 과연 음악소비자들은 그 시장에서 행복한가.

애플 앱스토어에서 배워야
전자책의 태풍을 앞두고 있는 출판업계는 요즘 부쩍 '출판생태계'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출판사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에서 나온 슬로건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을 중심에 둔 생태계는 매우 근시안적이고 또 협소할 수밖에 없다. '출판사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당위가 너무 강하게 배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래 가지고는 유연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짜낼 수가 없다. 무슨 생각이든, 무슨 행동이든 오로지 '출판사'부터 고려하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애플의 지혜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애플은 '휴대폰 제조업체'다. 그런데 그들은 아이폰을 팔아먹기 위해 기계를 잘 만든 게 아니라(물론 기계도 잘 만들었다, 그러나 기계 자체만으로 봐서는 삼성이나 엘지보다 낫다고 보기는 어렵다), '앱스토어'를 만들었다. '휴대폰 생태계'가 아니라 '어플리케이션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그들은 먼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독려했다. 개발자들이 개발하기 쉬운 환경부터 먼저 만들고, '7 대 3'이라는 혁신적인 수익분배 구조도 도입했다. 그 결과 개발자들은 미친듯이 기발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꽂힌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전자책 담론의 무게중심은 '출판생태계'에서 '독서생태계'로 옮겨가야 한다. 소탐대실이라고, 유통사와의 줄다리기에 몰두하다가 독자를 도외시한 서비스모델을 내놓을 게 아니라, 전자책을 계기로 독서문화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독자 친화적'인 서비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아마존은 최근 '킨들을 사용하는 독자가 그렇지 않은 독자보다 책을 3.1배 더 많이 읽는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전자책의 보급이 독서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전자책이 도입됐다고 자동적으로 독서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전자책을 통해 독자가 '편리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야만 독서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생태계'가 아니라 '독서생태계'다.
만에 하나 유통사들의 자기 전자책 단말기에 대한 욕심을 과다하게 부려서, 특정한 콘텐츠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 든다면? 권리자들이 유통사로부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정 단말기에만 읽혀질 수 있는 폐쇄적 DRM을 쓰도록 허락해준다면? 권리자들이 불법복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자책 제작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독자들은 전자책 단말기를 구입한 것을 금방 후회하게 될 것이다. 비싼 돈 주고 구입한 단말기로 내가 원하는 책을 내가 원하는 시점에 구매할 수 없다면, 그런 단말기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결론은 '독서생태계'여야 한다. 저자든, 출판사든, 유통사든, 정부든 전자책 시장의 핵심은 "독자들이 전자책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모두가 대승적 차원에서 '독서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데 매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자책 시장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0.01.15 12:06 문화정책이야기
스마트폰 바람이 태풍을 지나 토네이도로 진화하고 있다. 연일 아이폰을 '까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금 아이폰은 없어서 못 팔고 있다. 삼성인지 SKT인지, 아니면 또 다른 대기업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네거티브 캠페인을 펼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별 무소득. 아이폰 구입을 문의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물량이 동이 났습니다. 그리고 언제 물건이 우리나라에 들어올지 아무도 모릅니다"다. 

아이폰이 몰고온 모바일 토네이도
그저께 한 모임에 가서 확인해보니, 벌써 참석자의 절반이 아이폰으로 갈아 탔다. 소위 말하는 '밴드웨건 효과'가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고 할까. 이제 아이폰을 안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좀 덜 스마트해 보이고, 또 고루해보이기까지 한다(아이폰을 장만하지 못한 나도 그렇게 보일 거다). 

그리고 오늘자 신문에는 드디어 SKT가 항복했다는 기사가 떴다. 3G통신망의 매출 극대화를 위해 꽁꽁 걸어잡궜던 무선인터넷을 풀기로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올해에만 200만대를 공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 미국 투자회사 모건스탠리도 '모바일인터넷 리포트'를 통해 2014년이면 무선인터넷이 유선인터넷을 추월할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 보고서는 스마트폰 보급이 무선인터넷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 보고 애플의 아이폰을 무선인터넷 대중화의 대표주자로 추켜세웠다.

한 번 필(feel) 받으면 걷잡을 수 없이 트렌드를 타는 우리나라 소비자 특성을 감안하면, 기존의 '모바일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올 한 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스마트폰이 무서운 속도로 모바일 시장을 점령해가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이 시장을 주목하고 있는 콘텐츠기업들이 자사 서비스를 스마트폰에서 구현할 수 있는 앱을 속속 내놓고 있다. 소리바다앱이 이미 대박행진을 하고 있고, 다양한 게임회사들도 앱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랜만에 개발자들도 신이 났다. 앱스토어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입증되면서 그야말로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이 만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바일시장을 외면(무시)하는 방송사
그런데 이 바람에서 비켜선 기업들이 있다. 아니 외면하는 기업들이 있다. 그것도 자잘한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들이다. 사회적 영향력도 막강한 기업들이다. 그들은 바로..... 방송사들이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본 사람들은 알 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개 숙여 자기 '폰'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PMP나 PSP 같은 휴대용 단말기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사실 엄청난 대중들이 집합한 그곳에서 예전에는 사람들이 눈 둘 곳이 별로 없었다. 책 보는 사람이 '아주 조금' 있었고, 신문 보는 사람이 '조금' 있었다. 나머지 분들은 아예 눈을 감고 있거나 천장과 벽에 있는 광고에 눈길을 던지는 게 다였다. 그러나 휴대폰의 기능이 고도화되고 다양한 휴대용 단말기가 등장하면서 지하철과 버스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게임'에서 '영상'으로 모바일 트렌드 바뀌어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들여다 보는 휴대폰과 휴대용 단말기의 '콘텐츠'가 달라졌다는 거다. 과거에는 휴대폰이나 단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영상콘텐츠, 즉 '드라마'를 보거나 '예능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게, 혹은 찾아 보는 게 대세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특히 휴대폰에서 방송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규모로 볼 때 영화는 방송콘텐츠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영화는 지하철에서 시간 죽이기로 보기에는 너무 길고 지루한 반면, 방송은 비교적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과 거의 맞아 떨어지고, 또 '연재'가 되기 때문에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는 올해 극대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스마트폰 자체가 컴퓨터이기 때문에 폰을 통한 영상콘텐츠 즐기기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앱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앱을 통해 콘텐츠를 다운 받고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매우 다양해질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불법콘텐츠!
그런데 문제는 그분들이 즐기는 영상콘텐츠의 대부분이 웹하드를 통해 주로 유통되는 '불법 다운로드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저는 '불법콘텐츠'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이용자'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권리자'에게 초점을 맞춰 생각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무슨 말이냐면, '이용자가 불법콘텐츠를 이용하는 건 부도덕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이용자가 불법콘텐츠를 이용하면 권리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게 여러 모로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불법콘텐츠를 전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당연히 나오는 다음 행동은 '단속'하는 거다. 부도덕한 인간들이 그 짓을 하지 못하게끔 때론 겁도 주고, 때론 벌도 줘가면서 잡도리를 하는 쪽으로 행동이 결정되기가 매우 쉽다. 여태껏 국내에서는 주로 이런 방식으로 불법콘텐츠에 대한 대응 방식이 결정돼 왔다.

그러나 후자의 시각으로 보면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볼 수가 있다. 이용자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대가가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그리고 이용자들이 왜 불법콘텐츠를 주로 사용하는지를 시스템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다.

불법콘텐츠 논쟁, 도덕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많은 사람들이 불법콘텐츠를 '가격' 때문에 쓰는 걸로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공짜 혹은 아주 저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법콘텐츠를 선호하는 걸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공짜'가 아니라 '편리'해서 불법콘텐츠를 이용한다.

여기서 '편리'하다는 말은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유저 인터페이스가 어떻고, 솔루션이 어떻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원할 때 가질 수 있다"는 게 편리함의 핵심 포인트다. 음악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음악저작권 관련 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브 고든(Steve Gordon)이 쓴 책 <음악비즈니스의 미래(The Futuer of Music Business)>라는 책을 보면 사람들이 왜 냅스터에 열광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나는 초창기 냅스터가 한창 활발하게 서비스하고 있을 당시 소니가 개최한 콘퍼런스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변호사 한 명이 디지털 다운로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이 발표자는 프로젝터로 먼저 냅스터를 보여줬다. 언뜻 보기에 음악 콜렉션이 무제한인 듯한 서비스였다. 

발표자는 청중들에게 아무 제목이나 대보라고 요청했고, 누군가 유명한 노래 제목을 말했다. 발표자가 그 제목을 입력하자 곧바로 화면에 해당 음악파일이 뜨면서 다운로드가 가능했다. 발표자는 다른 제목을 불러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블루스 음악을 누군가가 댔다. 이 곧도 금방 찾았고, 다운로드됐다. 발표자는 단 몇 초만에 공짜로 이 파일들을 다운 받을 수 있고, 컴퓨터에 저장할 수도 있으며, 친구들에게 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소니뮤직의 현황을 보여줬다. 머라이어 캐리의 싱글앨범을 온라인에서 구입하려면 소니뮤직 웹사이트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게다가 페이지마다 광고와 홍보로 가득 차 있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다운 받을 수 있는 페이지에 마침내 도착했는데, 다운 받을 수 있는 곡 수도 몇 안 되고, 곡당 가격도 3 달러가 넘었다.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할 수는 있었지만, DRM 때문에 다른 컴퓨터로 전송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저렇게 바보 같을까?'라고 생각했다. 머라이어 캐리의 싱글을 다운 받으려고 이 웹사이트를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가 치밀어서 음반회사들에게 돈 한 푼 내고싶지 않을 것이 뻔했다. 이때를 돌아보면 음반회사들이 냅스터와 경쟁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냅스터를 죽이고, 가격은 높게, 접근은 어렵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음반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가격도 중요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가격에만 매몰돼서 행동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과거 냅스터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핵심은 바로 '편리함'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휴대 단말기에서 불법콘텐츠를 즐기는 이유 또한 '편리함' 때문이다.

콘텐츠를 틀어쥐고 있는 방송사들
그런데 왜 불법콘텐츠가 편리할 수밖에 없을까? 그건 방송사들이 콘텐츠를 틀어쥐고 시장에 충분히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주말에 방송된 개그콘서트를 못봤다 치자. 그리고 출근시간을 이용해 그걸 보고 싶어 한다고 치자. 그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구매할 방법은 손가락 몇 개로 꼽을 정도다. 방송국 홈페이지의 해당 콘텐츠 페이지를 찾아가든지, 아니면 '듣보'사이트인 콘팅(Conting.com)이나, 방송사와 계약에 성공한 극소수의 웹하드 사이트를 찾아가야 한다.

방송국 홈페이지를 이용해 다운로드 받아본 사람들은 알 거다.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해당 드라마나 프로그램 사이트를 찾아가는 것도 일일 뿐더러, 거기서 또 '다시보기'를 클릭하고 '회차'를 선택해 거기에 있는 '눈꼽만한' 다운로드 이미지를 클릭해야 한다. 하나 다운 받기 위해서 몇 번이나 클릭해 들어가야 하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콘팅 사이트는 또 어떤가. 콘팅은 방송 3사의 자회사인 KBSi, imbc, SBS콘텐츠허브 등 3사가 출자해서 만든 사이트인데, 이런 데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과연 국내에 몇 명이나 되겠으며, 게다가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콘팅(www.conting.com)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돈 내고 사가라며 상품 디스플레이는 엉망이다. 콘텐츠 상품설명은 방송사 홈페이지의 '미리보기'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카피해서 'Ctrl-V'해놨다. 전혀 성의가 안 느껴진다. 또 그뿐인가? 최근 'SBS스페셜' 프로그램이 좋아 좀 다운받아 놓으려 했더니 그 이름으로는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다. 제목만 갖고 추정하자면 아래 그림과 같은 '일요특선 다큐멘터리' 정도가 될 것 같은데, 클릭해보니 정보가 아예 없다. 무슨 내용의 다큐멘터리인지 도무지 알 방도가 없는데, 돈은 500원이나 내고 다운받아 가란다.

 '콘팅'의 콘텐츠 페이지 사례

소위 말하는 합법 사이트라는 걸 이런 식으로 만들어놓고 불법사이트는 잡아넣겠다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오늘자 기사를 보니 KBSi와 SBS콘텐츠허브가 '방송콘텐츠유통포럼(BCF)'를 발족시켰다고 하는데, 이 포럼은 방송콘텐츠의 필터링 기술의 적용과 올바른 유통체계 확립을 위해 일할 거라고 한다.

콘텐츠를 시장에 내놓아야
그런데 순서가 잘 못 됐다. 합법서비스의 질은 허접한 상태로 두고, 또 불편한 상태로 두고 불법만 잡겠다고 든다면, 성공할 확률도 떨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설령 불법을 잡는 데 성공한다손치더라도 그 와중에 시장의 활력은 몰라보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송사들이 합법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불법서비스 단속과 함께 합법서비스의 질도 신속하게 높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질을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콘텐츠 유통을 자기 우물에만 가둬놓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방송콘텐츠를 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고 다양해져야 한다. 음악파일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소리바다, 벅스, 멜론, 도시락, 엠넷닷컴 등으로 많은 것처럼 동영상파일도 다양한 사이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팔릴 수 있어야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지금처럼 합법콘텐츠의 유통을 방송사가 독점하는 방식으로는 서비스의 질도 개선되기 어렵고, 시장의 파이도 키울 수 없다. 한 마디로 고인 물은 썪는다.

그렇다고 불법서비스에 대한 단속이 필요치 않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단속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합법서비스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서비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비자의 만족도 높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굳이 불법사이트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시장활성화보다는 불법서비스를 잡아내는 데 너무 에너지를 쏟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합법서비스란 곳은 예산과 인력의 한계에 부딪혀 제대로 업그레이드 되지도 못하고 있다.

어제 방송사에서 콘텐츠 영업을 담당하고 계신 차장급 직원 한 분을 만났다. 내가 모바일 다운로드 시장에 왜 관심을 갖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그것말고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디어렙이라든지, 3D TV라든지 방송시장을 뒤흔들 만한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도 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만약 담당자라면, 혹은 정책결정자라면 자사 사이트와 콘팅 사이트에 들일 공을 줄이고, 오히려 동영상서비스 사업자들을 경쟁을 시켰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게 예산적으로나 인력운영 면에서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에 집착하다 시장 지위마저 빼앗길라
앞서 음악의 예를 들었지만, 소니가 내놓은 MP3 다운로드 서비스는 냅스터의 그것과 비교해 현저하게 경쟁력이 떨어졌고, 그래서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의 방송사들도 10년 전 소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우물만 지키려들 게 아니라 과감하게 콘텐츠를 개방해서 합법적인 다운로드 시장이 충분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방송사가 시장에서의 헤게모니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우물에만 만족하며 불법서비스만 사냥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계속한다면, 음반업계가 냅스터를 죽이고 3~4년 뒤에 애플에게 완전히 장악된 것처럼 방송사도 다른 우월적 플레이어에 지배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09.12.29 10:36 소리바다이야기
[소리바다이야기⑤] 네티즌이 소리바다에 열광했던 이유

"소리바다 서비스를 오픈한 첫날부터 충분히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회원수가 늘어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단기간에 굉장히 많이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정환 대표는 소리바다 소프트웨어를 처음 오픈했을 당시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2000년 5월 '소리바다'라는 타이틀을 내건 한글 기반의 P2P 서비스가 문을 열었을 때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미국에서 약 1년 전인 1999년 6월에 냅스터가 문을 열고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때, 사실 국내 네티즌들도 제법 많은 숫자가 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이용자들에게는 일종의 갈증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냅스터가 한글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냅스터로는 한국음악파일을 거의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갈증을 소리바다가 단번에 해결해주었다.

"초반에는 회원수가 만 단위로 올로가다가 이내 십만 단위로 올라가더군요. 한두달이 지나고 나서는 마치 2차 방정식의 그래프처럼 증가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한 달에 수십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던 것 같습니다. 수십만명이면 말이 쉽지, 웬만한 중견도시의 인구수와 맞먹는 규모 아닌가요? 그때는 소리바다만큼 회원수가 빨리 늘어나고, 매달 수십만명이 고정적으로 방문하던 사이트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리바다 초창기 사이트(2000년 6월)

사실이 그랬다. 2000년 5월 출시와 함께 바람을 일으킨 소리바다는 2001년에는 태풍이 되었다. 서비스 개시 4개월만에 75만명이 회원이 모여들었고, 이듬해인 2001년 8월경에는 600만명에 달했다. 그리고 2001년 연말에는 네티즌들로부터 최고의 국산 소프트웨어로 손꼽히기도 했다.

"사람들이 일단 소리바다에 접속하면 좀체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MP3 파일 찾기를 마치 보물찾기처럼 재미있어들 했고, 또 그때는 초고속통신망이 대중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한 번 다운로드 받는 데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연히 동시접속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양대표는 동시접속자 수를 물리적으로 5,000명으로 제한했다. 여기서 5,000명으로 제한한 것은 검색범위를 가리키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면서 모든 피어(Peer)가 모든 피어를 검색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5,000명이 검색풀이 되면 웬만한 음악은 다 검색됐고, 매우 특이한 음악조차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이용자들의 반응이 뜨겁게 달궈지면서 소리바다 서비스에 대한 민원성 메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때는 형이 P2P 프로그램 개발을, 저는 서버 관리와 서비스 운영 전체를 맡고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개선사항은 이메일을 통해서 받았는데요, 소리통 시절만 해도 저 혼자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리바다 때부터는 하루에 천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지면서 도저히 사람이 관리하기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가장 많았던 내용은 '검색이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때 소리바다 프로그램은 방화벽 뒤에 있든지, 공인아이피 주소가 없든지 하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런 내용의 메일을 보면서 답답함을 참 많이 느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데, 우리 힘으로는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초창기 소리바다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그 정도의 회원 규모면 지금 생각으로는 무슨 사업이든지 벌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 저와 형에게는 그 엄청난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술이 없었지요. 그때는 그저 배너광고 제의가 들어오면 그걸 받아서 처리하는 게 비즈니스의 전부였습니다. 광고서버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업데이트를 했지요. 그때 돈으로 배너 당 몇 백만원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냅스터와는 구조부터 달랐다.
그렇다면 냅스터보다 정확하게 11개월 뒤에 태어난 소리바다는 냅스터와 어떤 점이 달랐을까?

"구조적으로 달랐습니다. 맨처음 소리바다를 만들었을 때는 검색서버를 가운데 두고 피투피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냅스터와 거의 유사한 구조였습니다만, 2~3주만에 완전히 다른 구조로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저희가 임대서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서버에 과부하가 걸렸고, 그래서 바로 쫓겨났거든요. 다른 임대서버로 이사를 간다 해도 똑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자는 생각에 검색서버를 경유하지 않고 피어가 피어를 직접 검색하는 방식을 개발하게 된 것입니다." 

냅스터는 전술했던 바와 같이 피투피 기술에 검색기술을 얹은 형태로 검색서버를 중앙에 두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 검색서버의 존재가 법정에서 냅스터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즉 검색서버를 직접 만들고 관리했다는 것이 인터넷 사용자들의 불법 파일교환을 의도적으로 조장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냅스터 이후에 등장한 그록스터나 카자 같은 피투피 서비스들은 검색서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리바다는 미국에서 검색서버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기 이전에 검색서버를 사용하지 않고, 피어가 피어를 직접 검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몰리면서 서버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선택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궁여지책 덕분에 소리바다는 냅스터의 판결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됐다. 한국판 냅스터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냅스터보다 더 현실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피어들을 연결해준 메시지 기능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구조적인 문제만 가지고는 소리바다와 냅스터의 차별성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조문제는 기술적인 부분과 법리논쟁에서는 중요한 이슈가 될지 몰라도, 이용자에게 노출된 모습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양대표는 소리바다가 냅스터와 본질적으로 달랐던 점으로 '메시지 기능'을 꼽았다. 이 기능을 통해 피어와 피어가 연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리바다는 냅스터와 달리 다운로드를 받을 때 상대방 피어에게 메시지, 혹은 쪽지를 날릴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매우 요긴하게 사용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초고속통신망이 그리 많이 깔리지 않아서 본인의 컴퓨터는 물론이고 상대방 컴퓨터도 모뎀을 이용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운로드 속도가 몇십 킬로바이트에서 심지어는 5킬로바이트밖에 나오지 않을 때도 허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곡 하나를 다운 받는데 몇 분이 아니라 수십분이 걸리기도 했고, 그 와중에 상대방이 나가버리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습니다. 특히 내가 정말 원하는 희귀 음원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안달이 날 정도가 되지요. 이럴 때 상대방에게 '지금 다운받고 있으니 나가지 말아달라, 주무시더라도 컴퓨터는 끄지 말아달라'는 식의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저도 냅스터를 초창기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희귀 음원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그런 메시지를 참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소리바다에는 이런 메시지 기능과 별도로 채팅방도 있었다. 소리바다에 접속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초창기에는 음란채팅의 온상으로 지목돼 다른 채팅사이트들과 함께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채팅사이트라면, 그땐 정말 부지기수로 많이 있었는데 굳이 소리바다에서 채팅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에 소리바다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고, 그곳에서 채팅서비스가 제공되다 보니 여느 채팅사이트에서 발견될 수 있는 부작용도 함께 나타났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앞서 말씀드린 메시지 기능만으로는 피어들간에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에 대해 뭔가를 실컷 이야기 나누려면 채팅서비스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의 무림고수들이 모였던 채팅방
소리바다가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집한 채팅방 서비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단순 채팅방이 아닌 '음악전문 상담실'로 진화했다.

"소리바다의 채팅방은 단순 채팅이 목적이 아니라 음악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실제로 시간이 흐르면서 채팅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다른 사이트로 빠져나갔고, 음악 마니아들 중심으로 방들이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P2P 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는 음원을 채팅방에 와서 요청하면 거기를 지키고 있는 고수들이 구해주는 식이었습니다. 게다가 파일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에 관한 정보와 곡에 얽힌 사연  등의 다양한 음악정보들을 거기서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채팅방은 록, 발라드, 월드뮤직 등 각각의 음악적 특색을 가지고 분화되었고, 거기를 지키는 분들은 그 분야 최고 고수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채팅방을 지키고 있는 그분들을 통해 음악을 배웠습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의미 있는 공간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유명무실해져버렸다. 지난 2008년에 DRM-free 음악서비스에 관한 음악저작물사용료징수규정이 통과되고나서 메이저 음악서비스업체들이 무제한 다운로드서비스를 없애는 조건으로 음원공급계약을 맺은 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사실 채팅방 터줏대감들에게는 파일 공유의 숫자를 제한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제약이 된다. 그들의 파일공유 규모가 숫자로 제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지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리바다에서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가 사라지자 그들과 소리바다간에 갈등이 지속됐고, 결국 채팅방 활동은 급속도로 약화된다.

"음원 수급을 위해 계약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만, 그 때문에 채팅방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음악공동체가 와해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분들에게는 가격의 높고 낮음보다는 무제한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그 분들이 채팅방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음악이야기를 나누고, 또 파일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150곡이라는 제한은 엄청난 제약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제에 가격을 더 올리더라도 무제한 상품이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리바다의 P2P서비스는 여느 P2P와는 달리 세부적인 부분에서 음악소비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기 위한 장치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들 장치는 2000년 당시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던 다수의 P2P사이트들과도 차별화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따지고 보면 소리바다가 우리나라의 P2P 시대를 열어젖힌 것은 맞지만, 2000년 당시에 P2P서비스가 소리바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 기록을 들춰보면 국내에서도 이미 수많은 개발자들이 냅스터를 보고 나름의 P2P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소리바다가 등장했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상당히 많은 P2P 서비스들이 쏟아졌고, 또 실제로 상용화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메신저의 원조격인 디지토닷컴의 '소프트메신저2000', 영산정보통신의 메신저 시프렌드(www.seefriend.co.kr), 소리바다와 같은 달 문을 연 오픈포유(www.open4u.co.kr), 한국판 그누텔라를 지향했던 케이텔라, 씨네프, 신밧드, 넷페논, 카피셀, 엠엔조이, 엠제이커뮤니케이션 등 국산 P2P서비스는 그야말로 '수두룩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소리바다에 주로 '몰렸다'. 왜 그때 네티즌들은 주로 소리바다를 선택했을까?

소리바다는 '파일'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공간이었다.
이 점은 소리바다를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음반업계 종사자들은 소리바다를 비난하면서 주로 '공짜 프레임'을 갖다 댔다. 무제한 음원다운로드를 공짜로 받다보니 사람들이 몰렸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논리만 가지고는 왜 사람들이 수많은 P2P서비스를 제쳐두고 소리바다에 주로 몰렸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소리바다에는 공짜, 그 이상이 있었던 것이다. 양대표는 소리바다가 다른 P2P서비스와 달랐던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는 소리바다를 만들 때 처음부터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초창기 소리바다 로고도 그래서 'Internet Music Community'였습니다. 단순히 파일만 받고 필요에 따라 떠나는 곳이기보다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뭐랄까요, 소리바다에 가면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소리바다 이용자들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다른 서비스에서 볼 수 없는 충성도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Internet Music Community' 로고(2001년 사이트 디자인)

양대표의 말대로 소리바다는 한마디로 목적이 뚜렷했던 P2P서비스였다. 다른 P2P서비스는 모든 형태의 파일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소리바다는 MP3파일만을 공유하도록 했고, 앞서 언급했던 메시지와 채팅방, 그리고 파도(다운로드 받는 동안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프로그램)와 같은 다양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구비하고 있었다.

고소고발 통해 소리바다의 공동체성 확인
덕분에 소리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음악공동체는 상당히 순도도 높았고, 또 견고했다. 그런데 이들의 공동체성은 역설적이게도 소리바다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지면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소리바다 공동체의 최초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2001년 2월 냅스터가 미국 법원에서 위법판결을 받은 직후에 나타났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실 이 판결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소리바다를 둘러싼 법리 다툼은 해볼만 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냅스터의 패소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소리바다는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고, 이를 지켜보던 네티즌들이 소리바다를 지원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소리바다는 초창기부터 냅스터와 달리 검색서버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냅스터의 판례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웠겠지만, 당시에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정서적인 부분이 더 크게 부각되었고, 국내 법조계도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는 측면이 강했다.

이런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사이트로 '프리소리바다'(my.dreamwiz.com/freesoribada), 소리바다 이슈사이트(www.freeinternet.jinbo.net), 안티음반협회, 저작권협회(www.freesoribada.wo.to), 소리바다살리기운동사이트(www.antisori.wo.to) 등이 있었다. 이중에는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개설한 것도 있었고, 진보네트워크나 공유지적재산권모임 등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든 것도 있었다.

소리바다 이슈사이트(www.freeinternet.jinbo.net)
프리소리바다'(my.dreamwiz.com/freesoribada)

검찰 기소에 언론이 움직이다
소리바다 공동체의 두번째 큰 움직임은 2001년 8월 12일 검찰(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이 소리바다를 저작권법 위반 방조혐의로 기소했을 때 일어났다. 이때는 인터넷은 물론이었거니와 특히 언론사들이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했다. 기사 종류도 해설기사에서부터 기고문과 사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었다. 다음은 검찰 기소 뒤 이튿날 문화일보에 실린 취재내용이다. 

12일 오후부터 한두건씩 게재되던 글들은 밤새 이어져 13일 오전 9시 현재 1,000여 건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600여 만명에 이르는 소리바다 가입자들의 힘을 합쳐 네티즌의 힘을 보여주자는 내용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소리바다 사이트가 인터넷상의 디지털콘텐츠 유통기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검찰의 기소는 관련 기술 발전과 국내 MP3 플레이어 수출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문화일보, 2001년 8월 13일자).

다음은 논단과 사설에 실린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600만명으로 추산되는 소리바다 회원들은 '소리바다 살리기운동'을 벌여 약 40여만명이 서명을 마쳤다고 한다. 이들은 주범인 이용자들은 놔둔 채 방조범인 운영자를 기소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고, 이번 기소가 정보 공유가 생명인 인터넷의 자유로운 이용을 저해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략) 이제 우리도 디지털저작권법 등 보다 정교하고 시대에 맞는 관련법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윤락 알선업자는 영장이 기각돼 방면되는데, 노래 교환사이트 제공자가 기소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세계일보, 2001년 8월 14일자, 설왕설래)

음악파일의 불법유통을 근절하겠다는 게 검찰의 의지이지만 소리바다측과 600만명에 달하는 네티즌들의 반발이 거세 이래저래 법정공방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중략) 소리바다가 국내 인터넷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많은 네티즌들의 참여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중략) 국내 MP3 플레이어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소리바다와 같은 사이트들의 활성화가 기반이 됐음은 물론이다. (중략) 정부와 네티즌 역시 인터넷 발전과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도 음반제조업체와 소리바다측이 법정 다툼보다는 상호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다같이 힘을 모아줘야 한다(경향신문, 2001년 8월 14일, 사설)

응원가로, 독립영화로 만들어진 소리바다
그리고 세 번 째 큰 움직임은 2002년 7월 11일 법원(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이 한국음반산업협회 등이 낸 '음반복제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서비스 중단을 명령했을 때 일어났다. 이 판결로 소리바다는 실제 같은 달 31일에 서비스가 중단돼 다음달 25일 '소리바다2'가 등장하기까지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물론 이 때도 네티즌은 물론 언론사들도 일제히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당시 대학입시의 심층면접에서 이 판결에 관한 질문이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때는 소리바다 응원가와 소리바다를 테마로 한 독립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응원가는 엄아무개 작곡가가 직접 작사, 작곡, 노래까지 부른 곡으로 가사에는 "소리바다 때메 음반시장 불황이래, 무슨 소리냐, 니네들이 만든 음반 쓰레기들, 만원 값어치나 하는 거냐(1절). 초보 작곡자 시절에 모모 기획사장 만났는데, 외국음반을 주면서 비슷하게 베끼라고 하더라(2절)"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소리바다를 소재로 한 독립영화 <MP3파일>은 당시 영화 전문 검색사이트인 씨네후닷컴(www.cinehoo.com)이 제작했으며, 신태균 감독에 오세헌, 문영동 등이 주연 배우로 등장했다. 내용은 소리바다를 상징하는 '사운드빅뱅닷컴'이라는 음악사이트를 음반업체가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뒤 벌어지는 법정공방을 다루고 있고, 결론은 사이트를 유료화한 뒤 음반업체와 수익을 나누는 것으로 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바다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이때 정점을 찍고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 그 원인을 따져보자면, 우선 초고속통신망의 전국적인 보급으로 온라인게임과 동영상서비스 등이 콘텐츠 시장 전면에 나서 소비자의 관심을 분산시킨 것이 가장 컸고, 또 법정공방이 3년을 넘어서면서 대중들에게 지루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으며, 그밖에도 소리바다가 공개적으로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사용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카드 하나를 스스로 버린 측면도 있었다.

소리바다는 카피레프트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 한 가지를 풀고 가야겠다. 법리 다툼이 격화되면서 저작물의 무한공유를 주장하는 카피레프트 진영에서 소리바다를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소리바다도 과연 카피레프트의 이념에 찬성했을까? 처음에는 카피레프트에 동조하다가 법정공방을 거치며 저작권주의자로 변절한 것일까? 이에 대해 양대표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저작권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모든 저작물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발상에는 처음부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저작물이 아닌 남의 저작물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소리바다가 카피레프트에 동조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카피레프트를 주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기 저작물에 한해서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초창기 소리바다가 내세웠던 무료, 무제한 다운로드 서비스 모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료서비스는 사람들을 모으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방송산업이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대중들은 콘텐츠를 거의 무료로 즐기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광고매출 등으로 제작자와 기타 권리자들에게 일정한 보상이 돌아갑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료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기대했던 것은 이런 비즈니스모델이었지 무작정 무료로 저작물을 공유하자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음악공동체에 대한 아쉬움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리바다의 왕성했던 음악공동체는 전성기 시절에 비즈니스모델과 연결되는 데는 실패했다. 법정공방이 장기화되면서 적당한 타이밍을 놓쳤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가 예전처럼 다시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기회가 다시 생길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양대표는 부정적이었다.

"예전 소리바다처럼 목적성이 뚜렷한 음악 커뮤니티가 다시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 세대가 지났다고 해야 할까요? 당시에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인터넷에서 음악이 핫(hot)한 콘텐츠였기 때문입니다. 좋은 음악파일을 구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소리바다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에너지들이 게임이나 동영상, 혹은 아이폰과 같은 하드웨어 쪽으로 분산된 것 같습니다."

양대표는 공동체가 번성했던 때를 떠올리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2000년대 초반 소리바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음악공동체는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매우 독특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소리바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음악산업계 전체를 봐서도 매우 소중한 자원이었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그 공동체를 음악산업계 전체와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또 오픈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적성이 뚜렷한 집단을 음악업계가 공유할 수 있다면,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에는 그 공동체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음악 공동체를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다음은 '1차 분쟁 - 권리자들과의 갈등과 협상'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09.12.14 09:40 소리바다이야기
[소리바다이야기③] 국내 통신사가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

지난 연재에서는 애플이 구현한 모바일생태계를 다뤘다. 이번에는 국내 통신사들이 추구한 그림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다뤄보자.

언뜻 보기에 제조사인 애플과 통신사를 수평 비교하는 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모바일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애플과 국내 통신사는 충분히 비교할 만 하다. 왜냐하면 해외 모바일시장은 애플, 노키아, 삼성과 같은 제조사가 주도하고 있는 반면, 국내 모바일시장은 SK텔레콤, KT와 같은 통신사들이 거의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스펙다운
먼저 살펴봐야 할 부분은 통신사와 제조사간에 벌어지는 일명 '스펙다운'에 관한 것이다. '스펙다운'이란 특정 모델의 휴대폰이 국내시장에 들어올 때 일부 기능이 제거되거나 제한되어 해외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과 차이가 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는 대부분 '갑'인 이동통신사들이 '을'인 제조사에게 납품의 조건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스펙다운의 단골메뉴는 단연 '무선랜'이다. 요즘 한창 광고하고 있는 '뉴초콜릿폰'을 비롯해 국내외 화제를 뿌렸던 '투명폰' 등 웬만한 국내용 제품엔 무선랜이 빠져 있어서 누리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광고에서는 인터넷을 비롯해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나오지만, 이 모든 것을 국내에서는 무선랜이 아닌 데이터통신을 이용해야만 한다.  물론 데이터통신 매출을 높이기 위한 이통사의 전략이다.

그러나 통신사의 근시안적 매출 증대 전략으로 등을 돌리는 소비자들의 숫자만 늘어나고 있다. 양정환 소리바다 대표는 이런 전략이 소비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킬 뿐만 아니라 불편까지 강요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무선랜이 되는 공간에서는 3G 데이터망보다 무선랜이 훨씬 빠릅니다. 돈 몇 푼을 떠나서 네티즌들이 무선랜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휴대폰은 와이드폰이다 뭐다 해서 인터넷하기도 좋고 동영상 보기도 좋게 만들어놓고서는 망은 불편한 걸 쓰라는 겁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휴대폰은 또 사기 원합니다."
<국내외 투명폰 제품의 스펙 비교 예시(출처 : 터치모바일)>

앞서도 살펴봤지만, 앱스토어를 본 따 SK텔레콤이 내놓은 티스토어도 마찬가지로 무선랜 자체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거기서 광고하는 어플리케이션의 가격은 기껏 2,000~3,000원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정액제를 통하지 않고 다운로드 받았다가는 적게는 몇 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의 통신료를 내고 써야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잘 아시겠지만, 정액제를 모르고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대형사고를 치는 셈이 됩니다. 사실 데이터정액제라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할인율을 적용해준다는 거지 무제한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기 앞으로 나온 고지서를 인터넷 카페에 올려놨는데, 요금이 1억원이 넘게 나왔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할인율 구십몇 퍼센트를 적용해 얼마를 부과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액제 할인율을 적용하지 않았다면 1억원이 넘는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요금체계입니까."

이런 비상식적인 요금 구조는 당장의 이통사 수익구조를 좋게 만들어줄지 몰라도, 조금만 길게 봐도 시장을 위축시키는 독소 역할을 한다. 앞서도 양대표가 언급했듯이 사용자들이 '이용해서는 안 될 서비스'로 낙인 찍고, 아예 발길을 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통사의 수익 구조도 소수의 정액제 회원과 '실수로 데이터망을 이용한 사람'에 의존하는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이통사 데이터서비스에 대한 양대표의 평가는 신랄하다.

"비즈니스모델 자체가 굉장히 잘못됐습니다. 시골 할머니나 어린 아이들처럼 이동통신환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실수나 무지를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발상 아닙니까? 상식적이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습니다."

콘텐츠사업에 뛰어든 망사업자
이통사가 매출신장을 위해 추구한 것은 스펙다운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망을 가진 통신사가 콘텐츠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비유하자면 대형 할인매장들이 일제히 라면을 직접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는 말과 비슷하겠다. 

물론 지금도 몇몇 할인매장에서는 PB(Private Brand, 자체브랜드) 방식으로 라면을 팔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중소기업 상품을 저가에 납품 받아 자기 브랜드만 붙인 것이지 할인매장이 직접 라면을 생산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만약 국내 굴지의 할인매장이 농심이나 삼양 같은 대표적인 라면회사를 인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할인매장이 소유한 특정 라면이 훨씬 잘 팔릴 수 있도록 매대 배치와 마케팅 등에서 특혜를 주지 않을까?

그런데 통신사의 콘텐츠사업 진출은 라면으로 상상해본 것보다 훨씬 심각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라면이야 할인매장 아니어도 팔 수 있는 유통 통로가 제법 있지만, 디지털콘텐츠는 통신망이 아니면 유통될 수 있는 채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콘텐츠 유통에 관한 한 망사업자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양대표의 말이다.

"망사업자가 콘텐츠사업까지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망사업자는 본질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얼마든지 시장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기 망에 결합된 자사 서비스에 특혜를 줄 수도 있고, 타사 서비스에는 진입장벽을 얼마든지 높게 쌓을 수 있습니다."

통신사가 콘텐츠사업에 뛰어든 최초의 신호탄은 SK텔레콤이 2004년 11월에 내놓은 음악서비스 '멜론'이다. SK텔레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듬해 당시 최대 음반유통사였던 '서울음반'을 전격 인수했고, 뒤이어 영화사 'IHQ'의 2대 주주가 되는가 하면, 애니메이션 제작사였던 '인디펜던스'를 인수해 본격적인 수직계열화에 나섰다.

통신사의 콘텐츠사업진출은 '저인망식 경영'
SK텔레콤에 위기의식을 느낀 KT도 경쟁적으로 콘텐츠 기업 인수와 투자에 나섰는데,  영화사 '싸이더스'는 인수했고, '쇼박스'에는 투자를 진행했으며, 이후에는 음악제작사 '도레미미디어'를 인수한 '블루코드'를 인수해 자사 서비스인 '도시락'과 연계시킴으로써 제작부터 서비스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만들어낸 바 있다.

이런 수직계열화를 통해 통신사는 '자기 콘텐츠'를 '자기 망'에서, '자기 방식' 대로 유통하고 있다. 통신망을 가지고 있는 거대기업들이 '벨소리'와 '통화연결음' 같은 자잘한(?) 사업을 직접 혹은 자기 계열사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대기업들이 돈 되는 사업은 중소기업 영역이든 개인사업 영역이든 가리지 않고 다 뛰어든다 해서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지탄을 받았는데, 통신사의 사업영역은 말단까지 싹쓸이한다는 점에서 '저인망식'이라고 불러 줄만 하다.

이처럼 통신사의 지위가 강해지면서 망사용을 기준으로 한 '콘텐츠 수익 분배구조'에 심각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망사업자가 망을 제공하는 대가로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이다. 

음악을 예로 들면 '벨소리 다운로드'와 '통화연결음 서비스' 등에서 발생한 매출의 50%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을 이동통신사와 관련 계열사가 취한다. 그리고 정작 음원제작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25%, 저작권자(작사, 작곡, 편곡자)에게는 9%, 실연자(가수, 연주자)에게는 4.5%밖에는 돌아가지 않는다. 오프라인 음반시장에서 제작자에게 60% 가까이 분배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콘텐츠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요금은 100% 통신사 몫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소비자가 데이터망을 사용해서 발생하는 매출은 수익분배에서 100% 제외된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통신사의 몫이다. 만약 소비자가 음원 하나를 다운 받는데 음원가격 1,000원과 데이터통신료 1,000원을 합쳐 총 2,000원을 지불했다면, 실제 음악을 제작한 사람은 전체 비용 2,000원의 25%가 아닌, 음원가격 1,000원의 25%인 250원을 분배 받는다는 것이다.

"음악이 됐든, 게임이 됐든 그것을 만드는 데 망사업자가 기여한 것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망사업자는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망을 제공한 대가만 받으면 되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비자는 소비자 대로 불만이 생기고, 개발자와 저작권자는 그쪽 대로 불만이 쌓입니다. 이래가지고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가 없죠.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분배구조에 손을 못대고 있다는 겁니다."

양대표가 지적한 공정위 문제는 2006년 12월 공정위가 'SK텔레콤이 MP3 파일과 휴대폰에 폐쇄적인 DRM을 부착해 SK텔레콤 가입자들이 멜론 이외의 다른 유료음악사이트로부터 다운받은 음악은 들을 수 없게 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3억 3,000만원을 부과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이 조치가 부당하다며 취소청구 소송을 냈고, 1년 뒤인 2007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소비자 불편이 있더라도 DRM표준화가 의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득이한 일'이라며 SK텔레콤 손을 들어준 적이 있다. 이에 공정위는 2008년 1월에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2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최종 판결이 언제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공정위도 손 못대는 통신사의 전횡
이후에도 음원제작자 등이 줄기차게 DRM을 풀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SK텔레콤의 폐쇄적 DRM 정책은 변함 없이 유지되고 있다. 최근 출시된 '뉴초콜릿폰'의 경우에도 KT폰과 LGT폰은 DRM이 풀린 반면 SKT폰은 폐쇄적 DRM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SK텔레콤이 폐쇄적인 DRM 정책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체 모바일 사용자의 50%가 넘는 최대 회원을 보유한 SK텔레콤 입장에선 소비자를 '가두는 것'이 '풀어주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월한 지위의 기업이 저인망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모바일뿐만 아니라 온라인시장에서도 발견된다. 국내 검색시장의 8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는 네이버가 대표적인데, 네이버의 검색구조를 보면 최대한 네이버 안에서 트래픽이 재생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떤 단어를 검색하면, 인터넷 전체에서 콘텐츠를 찾는 게 아니라, 네이버 울타리 안에서 우선 찾아서 그것을 상단에 배치시키는 방식이다. 네이버를 구글과 같은 순수한 검색엔진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업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통신사들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일반 쇼핑몰이 버젓이 서비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쇼핑' 같은 서비스를 만들어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을 취한다. 음악서비스도 다른 서비스사이트를 연결시켜주기보다는 자기 서비스를 만들어 음원판매까지 유도하고 있다.

좁은 시장에서 목숨 걸기?
이쯤 되면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까지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생길 정도다. 왜 우월한 지위를 가진 기업들이 함께 상생하는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해 안하무인격으로 달려드는 걸까.

"전체 시장규모라 해봐야 얼마 되지 않는 좁은 나라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한정된 시장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다 보니, 무리한 사업확장 외엔 딱히 대안이 없는 것이겠죠. 보다 넓은 해외시장을 고려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기업들은 왜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언어의 장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왕에 국내에서 확보한 우월적 지위에 안주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얼마 전 구글코리아가 초기화면에 검색창 말고도 '이 시간 인기 토픽', '인기블로그' 등의 콘텐츠를 노출시킨 것을 두고, 혹자는 "구글이 네이버에 항복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구글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거의 같은 서비스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서비스가 해외시장에 나가면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나치게 국내 시장만 고려해서 서비스를 만들다 보니 해외시장에서는 적용하는 데 무리가 따르고, 결국 몇 번 시도해보다가 철수해버리고 마는 것이죠.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오로지 한정된 국내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파이를 가져가느냐밖에 없습니다."

IT 분야에서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개념이 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하는데, 일본의 휴대폰 기업들이 최신 기능을 탑재한 휴대폰을 시장에 내놓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런 현상이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와 멀리 떨어져 그곳 생물들이 원래의 종과는 다르게 진화한 현상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은 모바일 선진국이다. 휴대폰 분야에서 이뤄낸 기술혁신은 눈이 부실 정도이고, 다른 나라에 비해 평균 3~4년이나 빨리 서비스상용화를 이뤄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기술수준에 도취한 나머지 국제 표준을 무시했고, 결국 세계 휴대폰 시장의 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일본처럼 큰 규모의 내수시장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나라 모바일시장이 극소수 통신사의 힘에 휘둘려 폐쇄적인 정책을 고집하게 된다면, 과연 2~3년 뒤 갈라파고스 쯤이라도 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나라는 10여 년 전 'IT 선진국'에서 2009년 현재 '모바일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사실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이 이통사를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스마트폰의 무역장벽을 이제야 철폐했다"고 표현했다 하니 우사도 보통 우사가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통신사들의 힘이 이렇게 세졌을까? 휴대폰 제조사들이 알아서 스펙다운을 하고, 콘텐츠 제작자들이 적게 받아도 아무 소리 할 수 없게 만드는 이런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처럼 정부가 통신사를 보호해줬기 때문일까? 그런데 막상 정부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도 통신사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망사업자에게는 일정한 규제가 있어야
이에 대한 답은 '첫 단추를 잘못 꼈다'로 보면 될 것 같다. 통신사의 전횡을 막으려고 했으면, 2004년에 통신사들이 일제히 콘텐츠사업에 뛰어들 그 당시에 막아었야 했다. 그런데 당시 여론을 살펴보면, 통신사의 콘텐츠사업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많았지, 우려하는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까?

"통신사들이 콘텐츠사업에 뛰어들 때 정부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가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정부가 문화산업을 정책적으로 밀고 있었는데, 시장상황은 전혀 체계적이거나 산업적이지를 못했거든요. 통신사와 같은 거대기업이 들어와주면 시장이 자연스럽게 산업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 것 같습니다."

양대표의 말대로 당시는 참여정부 시절이었고, DJ의 국민의 정부시절부터 이어온 '문화산업을 통한 부국론'이 한창 힘을 발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산업이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육성되기 시작한 게 1998년쯤이었는데, 2004년이 되도록까지 게임 분야를 제외하면 제대로 산업이라 할만큼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문화산업이 과거 모 아니면 도 식의 흥행사업 색깔이 강했고, 그러다보니 산업적인 체계를 갖추기보다는 한 번 치고 빠지는 식의 주먹구구식 경영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삼성그룹이 한번 실패를 경험한 바 있는데, 통신사들이 다시 뛰어들겠다고 하니 정부로서는 충분히 반가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후 콘텐츠시장에 압도적인 강자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 강자는 기대와는 달리 시장을 합리화시키기보다는 사유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

양대표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망사업자에게는 일정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망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공공재'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KT가 가지고 있는 전화망이 과연 KT 것일까요? 단지 그 망을 가지고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가 준 것 아닙니까? 이동통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여러 가지 심사와 평가를 거쳐서 몇몇 업체를 선정해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지 그게 오롯이 통신사의 자산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신사가 그 권한을 사유화하려고 할 경우 일정한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글의 'Don't be evil'이 새삼스러운 이유
국내 통신사들이 이제 더 이상 공기업이 아닌 마당에 자기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두고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망이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업자가 저인망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기존의 중소사업자들에게까지 타격을 주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정부가 태도를 바꿔 통신사를 규제할 것 같지는 않다. 설사 규제할 수 있다 해도, 그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양대표는 해당 시장에서 국내 통신사와 유사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구글의 예를 들었다.

"구글의 모토가 'Don't be evil.'입니다. 자기들이 소유한 정보와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시장을 자기 맘대로 지배하며, 기존 사업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최소한 지금까지 구글이 보여준 행보는 자기의 모토에 충실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구글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거의 80%에 달한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지구상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하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200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전자책 사업인데, 책 가운데 굴곡진 부분을 스캔할 때 자연스럽게 펴주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특허를 낼 정도로 열성을 쏟고 있다. 구글의 이런 사업에 대한 양대표의 평가는 후했다.

"인류의 문화자산을 모두가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구글의 시도는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정부가 나서서 할 수도 없고, 정말 구글쯤 되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저작권이 잘 해결돼야 하는데, 전자책이 활용되면서 발생하는 수익이 적당한 수준에서 권리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규칙만 마련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구글은 저작권이 만료된 책을 우선적으로 디지털화하고 있고, 지난 2008년에는 미국 저작권협회, 출판협회와도 협상에 성공해 권리자의 사전 허락 없이 디지털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때의 협상 내용은 아래와 같다.

  ㅇ 구글은 저작권협회에 1.25억 달러를 제공하고 도서권리등록기관(Book Rights Registry)를 운영한다.
  ㅇ 미국 작가협회와 출판사협회 소속회원들은 자기가 원치않을 경우를 제외하고 여기에 자동 등록된다.
  ㅇ 여기 등록된 저작물은 개별 허락 없이도 검색하거나 온라인판매를 주선할 수 있다.
  ㅇ 대신 여기서 발생하는 광고와 판매 수익의 60%를 저작권자에게 제공한다.

위 협상의 핵심 포인트는 디지털화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60%를 권리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저작권 침해 문제로 법정 다툼까지 벌어졌지만, 구글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규칙을 제시함으로써 협상에 원만하게 성공한 것이다. 양대표는 구글의 이런 모토가 자기 사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구글의 이런 모토가 단순히 경영자의 윤리의식 때문에 나왔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구글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교류를 통해 수익을 내는 기업입니다.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구글의 행동이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다른 사업자의 영역을 갉아먹는다는 인식을 주게 된다면 과연 훌륭한 파트너가 생길까요? 파트너가 없으면 결국 자기의 사업목표도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글은 자기의 강점과 사업목표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글이 무섭고, 또 생각보다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플 또한 아이폰을 중심으로 모바일생태계를 만든 것이 단순히 개발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주려는 선심 때문이 아니었다. 애플의 사업목적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애플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드웨어인 아이폰을 많이 파는 것이죠. 그런데 애플은 다른 휴대폰제조사와는 달리 하드웨어를 잘 팔 수 있게 만드는 환경, 즉 생태계를 잘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휴대폰을 둘러싼 환경, 즉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등을 활성화시켜줘야 휴대폰도 자연스럽게 잘 팔린다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거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국내 통신사의 비즈니스 전략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구글의 'Don't be evil'에 비교한다면 'Be evil'쯤 되지 않을까? 물론 기업 경영의 문제를 선악의 문제로 단순하게 치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움' 대 '어리석음', '안목 있음' 대 '안목 없음', '함께 잘 살려는' 대 '혼자 독식하려는'의 차이로는 얼마든지 비교해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엄청나게 좋은 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고정된 회원만 천만명을 넘게 가지고 있다. 이 정도 인프라에 이 정도 회원, 그리고 정부의 규제도 느슨한 마당이면, 정말이지 못해볼 사업이 없다. 그런데 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오로지 울타리만 치려고 들고 있다.

"통신사들은 그동안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것은 권리자들에게는 희생을, 소비자들에게는 불편을 강요하면서 쌓은 부입니다. 그 정도 했으면 이제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더 이상 탐할 게 아니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진짜 매출은 해외시장에서 벌어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폰의 국내 출시 이후 통신사의 폐쇄적 비즈니스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아이폰 효과로 똑똑해진 누리꾼들이 세계 디지털시장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며, 블로그로, 트위터로 퍼나르고 있다. 이는 통신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뜻한다.

(다음은 '소리바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위 내용은 내년 '소리바다 10주년'을 계기로 필자가 양정환 대표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앞으로 본격적인 소리바다 이야기에 들어가, 서비스 탄생의 배경과 분쟁의 뒷얘기, 그리고 디지털음악시장의 미래에해 두루두루 다룰 예정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필자 아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09.12.07 09:26 소리바다이야기
[소리바다이야기②] 아이폰 신드롬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글은 소리바다의 양정환 대표와 '아이폰의 상륙과 애플의 전략'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본격적인 소리바다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현재 국내 디지털시장의 환경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슈라고 판단되어 첫 연재물로 올립니다(필자 아룀).

"애플은 생태계를 너무 예쁘게 잘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소리바다이 양정환 대표는 '생태계'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는 애플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구현한 모바일 환경을 생태계라고 표현했다.

"생태계란 게 본래 굉장히 복잡미묘한 것이잖아요. 눈에 띄지 않는 식물이 하나 없어짐으로써 연쇄적으로 다른 개체들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 바로 생태계 아닙니까? 그래서 균형(balance)을 맞추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애플은 개발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뤄냈습니다."

국내에 불고 있는 아이폰 신드롬
지난 달 28일 국내에서 KT를 통해 정식 출시된 아이폰은 예약자만 6만 5,000여명이 줄을 서서 크게 주목을 받은 바가 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지금 아이폰의 바람은 태풍으로 발달하고 있다. 최초 수입물량이 17만대였는데, 예약판매와 기업 대량구매를 통해 거의 소진된 상태이고, 추가로 5만대를 수입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추세라면 12월 중순에 20만대를 돌파하고, 내년 상반기에 100만대를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참고 : 아이폰,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의 이유?(하이컨셉&하이터치)

아이폰 관련 기사와 블로그 콘텐츠도 매일매일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아이폰이 이통사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국내 모바일 시장을 깨트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부터, 어떤 회사가 '자기네 서비스 어플리케이션을 애플 앱스토어에 올렸다'는 소식도 있고, 또 개중에는 '아이폰에 사진촬영음이 없어서 몰카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식의 흠집내기 기사에 이르기까지 가히 대한민국이 온통 아이폰 신드롬에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양대표는 "애플이 생태계를 잘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소리바다(www.soribada.com)도 예외는 아니다. 소리바다의 음악서비스 어플리케이션도 이미 개발이 완료돼 애플에서 최종 심사를 받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1월 초쯤이면 소리바다 음악서비스를 아이폰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양대표는 아이폰이 국내에서 이처럼 주목을 받는 이유를 바로 '잘 만들어진 균형'에서 찾았다. 여기서 균형이란, 쉽게 말해서 이용자가 특정한 소프트웨어나 저작물을 이용했다면, 그 만큼의 '적정한 대가'가 개발자나 저작권자에게 돌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야만 창작 또는 개발에서부터 소비에 이르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생태계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간사업자들의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그들이 어떤 형태의 플랫폼을 만들고, 그 안에 어떤 규칙을 적용시키느냐에 따라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누군가가 이익을 독식하는 착취구조도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양대표는 중간 유통단계를 없앤 애플의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애플 앱스토어의 가장 혁신적인 특징은 바로 소프트웨어의 중간 유통단계를 없앤 것입니다. 앱스토어를 통해 개발자가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했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70%를 개발자가 가져가는 매우 혁신적인 규칙을 만들어냈습니다."

중간 유통단계를 없앤 애플
개발자가 70%를 가져 가는 게 혁신적인 이유는 과거에는 그런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개발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시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 초창기였던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도 '쉐어웨어 시장'이란 것이 존재했다. 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게시판이나 카페 같은 곳에 올리면, 네티즌들이 내려 받아서 자기 컴퓨터에 설치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형식은 직접 거래였지만, 실제 개발자에게 배당되는 수익배분은 20~30% 정도에 불과했다.  

"예전에는 모든 소프트웨어가 퍼블리셔를 거치지 않으면 상용화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퍼블리셔뿐만 아니라 총판 등과 같은 2차, 3차 유통단계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이것 저것 다 떼주고나면 개발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고작 20~30%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 유통단계 또한 투명하지가 않아 실제 20%인지도 아무도 알 수 없었죠. 그런데 애플이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규칙을 개발자 위주로 뒤집은 겁니다."

현재 앱스토어는 전세계에서 개발자가 수십만명이 참여하고 있고, 상용화된 어플리케이션만 약 10만개, 사용자는 4,000만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개중에는 한 달에 수백만 달러를 버는 '앱스토어 백만장자'도 등장했다. 이러한 성과는 세계 휴대폰시장의 실적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애플은 휴대폰 업체로는 매출 기준으로 세계 5위의 수준이다. 매출액만 따지면 삼성 휴대폰의 1/4 수준, 세계 휴대폰시장 매출액으로는 8%의 비중에 불과하지만, 휴대폰 회사들이 벌어들인 수익액만 따져보면 32%나 차지하는 부동의 1위다. 자체 수익률이 무려 40%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불과 휴대폰시장에 뛰어든지 2년만에 이룬 성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러한 성과를 견인한 핵심동력이 바로 '앱스토어'였다.

개발하기 좋은 환경이 완성도와 신뢰도 높여
세계적인 IT 전문 컨설팅 기업인 IDC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스마트폰'과 '어플리케이션'이 모바일 다바이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들 자료에 따르면 내년 말에 스마트폰이 2억대가 팔리고, 아이폰의 어플리케이션은 30만개로, 안드로이드폰의 어플리케이션은 최대 7만 5,00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어떻게 이처럼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어플리케이션들이 쏟아질 수 있을까. 물론 아이폰 사용자가 빠르게 늘어서 그만큼 시장성이 커진 것도 큰 이유이지만, 양대표는 플랫폼 자체가 개발자들을 유혹할 만큼 잘 만들어졌다고 극찬했다. 

"애플은 무엇보다도 개발자에게 매우 편리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개발자에게는 개발환경이 얼마나 쉬우냐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어떤 언어를 쓰는지, 몇 줄의 코드를 써야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플은 짧은 양의 코드로, 짧은 시간에, 높은 품질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굉장히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플랫폼'과 '편리한 개발환경'은 애플 어플리케이션의 완성도와 신뢰도를 높이는 데도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개발하기 쉬운 환경은 어플리케이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발자가 소비자의 반응을 체크하고나서 어플리케이션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그만큼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자기의 의견이 금방금방 반영돼서 업그레이드 되니까 어플리케이션은 물론 애플 생태계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높아지는 것입니다." 

앱스토어의 무늬만 본 딴 티스토어
애플의 앱스토어 신화가 널리 알려지자, 국내에서도 그 모델을 본딴 서비스가 몇 달 전 등장했다. '모바일 앱스토어 대한민국 1호점'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SK텔레콤의 티스토어가 그것인데, '도착할 지하철 역에서 깨워주기', '직장상사 뺨 때리기' 등과 같은 흥미롭고 재치 발랄한 어플리케이션들이 TV광고를 통해 한창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티스토어에 대한 양대표의 평가는 냉정했다. 

"애플 앱스토어의 본질은 외면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껍데기만 따오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어플리케이션은 사용하라고 광고하면서 무선랜은 막아놨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플리케이션를 다운받거나 사용할 때 자기 데이터망을 사용하라는 이야기인데, 어떡해서든 데이터 매출을 올리려는 꼼수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사실 데이터 요금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혹시 잘못해서 데이터망을 썼다가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의 요금을 내본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든지 있고, 또 심지어는 그 문제로 자살한 청소년도 있지 않던가. 이통사들이 정액제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펼쳐보고 있지만, 이미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데이터망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데이터요금 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사용자들이 체감적으로 '이건 이용해선 안 된다'고 판단을 해버립니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것 자체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 시장이 성장할 수 있나요?"

결국 이통사가 과도하게 데이터 매출 집착한 결과, 우리 힘으로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양대표의 분석이다. 그러나 아이폰 출시 1주일만에 국내 휴대폰 사용자들은 엄청난 학습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예전에는 IT 매니아 사이에서 회자되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휴대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아이폰을 주제로 한 대화에 서슴없이 끼어들고 있다. 심지어는 스마트폰에 대해 잘 몰라도 '트렌드 리더가 되려면 아이폰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밴드웨건 효과'도 나타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소모품으로 여겨지는 국내 휴대폰
양대표는 아이폰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기대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아이폰을 구입할 때는 '이거 하나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걸 매개로 해서 얼마든지 기능확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보여도, 머지 않아 내가 원하는 기능을 누군가가 개발해줄 거라는 기대감 말입니다."

반면 국내 휴대폰의 현주소는 어떨까?

"우리나라 제품들은, 그것이 설사 스마트폰이라 할지라도, 지금 갖고 있는 그 상태가 거의 끝입니다. 앱스토어 흉내를 흉내내기도 하지만, 기능확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신모델이 나올 거고, 그때 또 바꿀 겁니다.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도, 사용자에게는 소모품일 뿐입니다. 이런 기계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에게 과연 어떤 어플리케이션을 팔 수 있을까요?"

애플의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한지 이제 겨우 1주일이 지났지만, 사회적인 신드롬은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신드롬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 같다. 그리고 동안 폐쇄적인 시장에서 편안하게 비즈니스를 영위했던 이통사들은 거센 변화의 요구에 맞딱뜨리고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다음은 '국내 이통사가 추구했던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필자를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경남도민일보 공채1기로 기자생활을 잠시 경험했고(1999~2000),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정책개발, 홍보 등의 업무를 거쳐 음악산업팀장을 지낸 바 있으며(2002~2008), 소리바다에서도 기획경영팀장으로 잠시 근무했음을 밝혀둡니다(2008). 이후 모 콘텐츠기획사를 거쳐 지금은 블로그 '문화도 습지처럼'(http://timshel.kr)을 운영하며 콘텐츠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국내에서 아이폰을 비롯해 이동통신환경 문제를 집요하게, 또 꾸준하게 파헤친 기자 중의 한 분이 바로 한겨레신문의 구본권 기자입니다. 구기자는 아이폰이 이슈가 될 때 항상 그 자리에 서서 분석과 전망을 내놓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느 언론사와 달리 그의 관점은 항상 이통사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웠고, 그래서 그의 기사를 읽는 것은 제겐 잔잔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구본권 기자(뉴시스 사진임다)

오늘자 신문에도 어김 없이 기대에 부응하는 기사 한 편을 내놓으셨네요. 기사 관련 내용은 잠시 뒤에 요약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난 주말 드디어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출시하기도 전에 가입 예약자가 6만 5,000명이었다니, 이 정도면 중대박은 되는 듯합니다. 그 파급효과 때문인지 삼성전자를 비롯해 SKT 등이 광고캠페인 물량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습니다. 주말에 티브이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의 하나 걸러 하나가 그 두 회사의 광고로 메워진다고 착각할 정도로 엄청난 물량공세였습니다.

저는 그런 광고물량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휴대폰을 대부분 '전화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예쁜 전화기, 더 멋진 전화기가 나오면, 마치 액세서리를 바꾸듯 2년이 채 안 돼 모델을 바꾸곤 했습니다. 각종 모바일 연계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개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엄청난 가격공포(잘못하면 수백만원이 부과될 수도 있는) 때문에 데이터를 쓰기보다는 그냥 전화기로 사용하는 데 만족했습니다.

이번에 두 회사에서 마구 쏟아내는 광고캠페인은 '휴대폰이 계속 전화기'이기를 바라는 두 대기업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소비자들이 기존에 생각하던 패턴대로 휴대폰 1,2년 쓰다가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거의 자동으로 사주기를 바라는, 계속 소비자들의 인식이 거기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그래서 아이폰의 바람을 어떻게 해서든 차단해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과연 '생각대로' 될까요? 구기자는 말합니다.

"(삼성전자 옴니아2의)단말기 값 인하는 잔물결에 불과하다. 이통사업자들은 그동안 가입자가 이용할 수 이쓴 모바일 서비스 종류와 수준을 통제했지만, 아이폰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진짜 변화다."

그리고 아이폰 자체의 국내시장 성공 여부를 떠나서 아이폰을 계기로 소비자의 인식 자체가 변하고, 그로 인해 국내 통시시장 구조가 변화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아이폰의 높은 인기는..... 곧 사그라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폰이 갖는 의미는 판매량보다 국내 통신시장 구조의 변화다. 이통 3사가 5대 3대 2로 시장을 분할해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업자 위주로 운영해온 폐쇄된 시장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당장 이번 주부터 6만명을 웃도는 '아이폰사용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주위에 아이폰 사용경험을 전파하며, 폐쇄적이고 후진적이라는 국내 무선인터넷 서비스의 현실과 '비교'할 것이고 향후 국내 사업자들에게 이 기준을 요구할 것이다."

여러분은 잘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공약 중 하나가 바로 통신비의 50% 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형님이 장을 맡고 계신, 옛날 같으면 나는 새도 떨어트릴 것 같은 방통위원회도 통신사와의 힘겨루기에서 그닥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haxx0red.
haxx0red. by –nath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어쩌면 아이폰이 거기에 준하는 효과를 소비자들에게 안겨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태껏 이통사들이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사업권을 가지고 높디 높은 울타리를 치고 소비자들을 철저하게 가뒀고, 그 안에서 갖은 방법을 동원해 호주머니를 털어내던 시대가 이제 서서히 종언을 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방된 시장에 던져진 국내 이통3사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전화도 되는 휴대용 컴퓨터'와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고성능 전화기' 사이의 전쟁.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시작입니다. 여러분은 컴퓨터를 사시겠습니까, 전화기를 사시겠습니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09.11.27 17:32 소리바다이야기
[소리바다 이야기①] 연재 시작합니다.

"아직도 살아 있어?"

'소리바다'가 이야기의 소재가 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나타내는 반응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말이다. 2002년과 2005년에 있었던 두 번의 서비스 중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날로 소리바다가 '끝났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2001년부터 시작돼 2008년까지 무려 8년간을 끌었던 저작권 분쟁과 연이은 패소 소식은 소리바다가 '불법'일 거라는 심증을 굳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직도 서비스가 살아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서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리바다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름만 남고 내용은 완전히 바뀌어버린 세계 최초의 P2P 음악서비스 냅스터와 달리, 소리바다는 초창기 P2P서비스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여전히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창업자인 양정환, 양일환 형제가 지금도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간의 온갖 시련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직원 70여명에 연 매출 300억원 가까이를 올리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고, 게다가 올해 7월에는 정부로부터 저작권문제가 전혀 없는 제1호 클린사이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소리바다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언론에 비친 소리바다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는데, 기존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정상적이고도 합법적인 서비스를 운영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오롯이 겪어낸 양정환 사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일(28일)이면 아이폰이 출시된다. 국내 모든 디지털과 이동통신 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아이폰 때문에 우리나라 디지털콘텐츠시장이 근본적으로 바뀔 거라고 예상하고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돼주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2010년이 우리나라 디지털콘텐츠 시장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거라고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작금의 국내 디지털콘텐츠시장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IT선진국이라고 자화자찬에 취해 있는 사이 어느새 모바일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고, 인터넷도 지난 7월 개정 저작권법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는 물론, 콘텐츠의 비상업적인 활용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이 시점에 '소리바다 이야기'에 한번쯤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소리바다의 지난 10년은 소리바다와 이를 둘러싼 콘텐츠산업계, 저작권자 및 단체, 정부, 이동통신사, 그리고 소비자들이 벌인 수많은 시행착오를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갈등의 한복판에 있었던 소리바다를 통해 우리나라 디지털콘텐츠시장이 걸어왔던 길을 복기해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또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디지털콘텐츠시장의 엄청난 발전속도를 감안할 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



※ 추신
앞으로 연재될 내용은 소리바다 양정환 대표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구성되며, 게재될 내용에 대한 반론과 토론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