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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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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 페이스북에서 지난 주 기자들에게 수상한 초청장이 하나 전송

- ‘Come and see what we’re building.’이란 문구

- 페이스북 전용폰이 나오는 게 아니냐 전망이 우세했지만, 이번주 ‘그래프 검색’을 발표

- 전세계 소셜미디어에선 여기에 주목하며 다양한 기대와 평가가 쏟아지고 있음



2. ‘그래프 검색’이란 게 뭔가요?


- 먼저 ‘그래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음

- ‘그래프 이론’이라고 수학과 컴퓨터과학에서 사용되는 이론인데, 흔히 아는 그래프는 아니고

- 집단 내 구성원간 관계를 점과 선으로 표현해 논리적인 구조를 밝혀내는 이론

- 본래는 수학에서 출발했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컴퓨터과학에서 각광받고 있음


- 페북이 ‘그래프 검색'이라고 이름을 지은 건 소셜미디어에 이미 형성된 ‘관계'를 활용해서 검색결과를 내놓겠다는 것임

- 지금의 검색은 ‘상남동의 맛집은?’, ‘합천의 관광명소는?’ 같은 거였음. 내가 찾고 싶은, 궁금한 콘텐츠를 검색어로 입력해 찾는 방법임

- 하지만 그래프 검색에는 ‘사람'이 중요한 변수가 됨. 

- 예를 들면 ‘내 중학교 동창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이라든지 ‘친한 친구들이 마산에서 자주 다닌 식당은?’ 혹은 ‘회사 동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처럼

- 나와 관계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좋아하고, 자주 다니고, 구매했던 것들을 검색결과로 보여준다는 것임

- ‘소셜검색이 검색의 미래'라고 하는데, 그 진면목을 이번 주에 페이스북이 보여준 것임




3. 사람간의 관계가 반영된 검색결과라는 말씀인데요, 실생활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요?


- 근본적으로 일상을 바꾸어 놓을 거라고 생각함

- 일상을 되짚어보면 실제 의사결정 중 팔할 이상이 합리적인 분석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따라 감성적으로 이뤄짐

-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작품성과 감독, 배우의 연기 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고, 자료를 취합해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경우가 과연 몇 번이나?

- 그보다는 나보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 친구가, “이거 괜찮더라"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설득력

- 유명관광지를 한 시간 다큐로 시청하는 것과 가까운 친구가 “거기 좋더라 같이 가자"고 말해주는 것과 어느 쪽이 진짜 여행하게 할 확률이 높을까?

- 이번에 페북이 발표한 그래프 검색은 어쩌면 우리가 진짜 궁금해 하는 걸 소상하게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름

- 당연히 사회도 달라질 것임. 서비스의 중심이 품질에서 사람으로 바뀐다고 볼 수 있음

- 식당을 예로 든다면, 예전엔 TV 아무개 프로그램에 한 번 소개되는 게 최고였고, 그걸 플래카드로 써붙여서 광고를 했다면, 이제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영업에 도움이 되는 세상이 될 것임



4. 현재 서비스되고 있나요?


-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음. 영어권에서 베타테스트 중이라고 함

- 우리나라에서 상용화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음




5. 사람간 관계를 기반으로 검색한다면 그만큼 개인정보를 오픈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프라이버시 문제는 없을까요?


- 좋은 검색결과를 얻으려면 그만큼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게 사실임. 

- 개인정보를 많이 노출한 사람이 더 좋은 검색결과를 얻으니 분명히 개인정보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임. 개인정보 노출 저도에 따라 차별이 생길 여지도 있음

- 그래서 일각에선 이번에 발표된 그래프 검색을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대한 페이스북의 도전으로 평가하기도 함



6. 지역사회 관점에선 긍정적일까요, 부정적일까요?


-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임.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음

- 예를 들어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좋은 내용으로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많이 올린다면,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지역이 훨씬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검색되지 않을까?

- 지역민들도 소셜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소셜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과 지역민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소셜검색 시대에 지역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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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1. 오늘은 새해 첫 방송인데요, 올해 지역의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보십니까?


- 지난 주 2012년을 정리하며 소셜미디어가 정착한 해라고 말씀드림. 하지만 지역별로 격차가 있었던 것은 사실. 서울과 지역에서 소셜미디어 활용 정도와 효과 정도가 차이가 있었음

- 올해는 그 격차가 줄어드는 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함

-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자연적으로 늘어날 것이기도 하지만, 기업이나 기관의 활동이 이 채널을 이용하는 비중을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이 소셜미디어 쪽으로 재편될 것임



2. 기업과 기관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하나의 촉매제가 될 거라는 말씀인가요?


- 특히 기업활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고, 그 힘이 소비자를 소셜로 이끌어들일 것으로 예상됨

- 올해 기업 마케팅의 화두는 소셜미디어임. 이제는 웬만한 광고에 검색창 대신 페이스북 페이지를 홍보하고 있음

- 페이스북 페이지의 경우 다양하고 깊이 있는 분석틀을 제시함으로써 사용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음

- 더불어 올 상반기로 예정된 카카오페이지 출시에 기업들이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

-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스마트폰 유저 대부분이 카카오톡을 이용하고 있고, 가장 많은 시간을 이 서비스에 보내고 있는데, 기업 마케팅을 위한 플랫폼을 곧 출시한다고 함

- 올해는 페이스북과 함께 카카오페이지를 주목받고 있음

- 사람들은 이제 TV, 라디오, 신문보다는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통해 상품정보를 얻을 것이고, 구매도 거기서 이뤄지게 될 것임



3. 기업활동이 주요 변수가 된다면 소셜미디어도 수동적인 공간으로 전락하지 않을까요? 특히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소셜미디어도 서울발 메시지에 종속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데요?


- 그럴 가능성도 다분히 있음. 매스미디어가 지역민의 눈과 귀를 지배하면서 지역의 이야기가 실종된 것처럼, 소셜미디어에서도 서울이야기가 지배하면 지역 이야기는 설자리가 없을 것임

- 사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의 대부분은 당장 눈에 보이는 환경에서 비롯함

- 월요일이 되면 학생들 대화가 대부분 개그콘서트. 야구나 축구 빅게임이 있으면 이튿날 동료와의 이야기는 게임이야기인 것과 같은 이치

- 어떤 콘텐츠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대화의 내용도 지대한 영향을 받음

- 소셜미디어에서도 어떤 콘텐츠에 주로 노출되느냐에 따라 이용행태도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음



4. 소장님 말씀 들어보니 소셜미디어가 지역에서 확산되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일단 소셜미디어는 ‘사람 중심'이란 걸 모두 기억했으면 함. 

- 기존의 웹환경은 콘텐츠 중심. 그래서 콘텐츠를 쌓아둔 포탈사이트가 위력을 발휘한 것임

- 예전에는 광고와 정보와 전문가의 평가, 전문기관의 추천이 소비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이제는 친한 친구의 추천이 소비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음

- 친구가 구입한 상품, 친구가 추천한 영화, 친구가 다녀온 여행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고 소비되는 것임

- 따라서 좋은 친구를 사귀어 두면 세상과 지역을 균형있게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됨

- 지역에도 훌륭한 시각과 태도를 가지고 소셜미디어에서 소통하는 분들이 많이 계심

- 소셜미디어를 그저 친한 친구와 더 친해지려는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좋은 사람, 다양한 사람과 만나서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기업의 무차별적인 정보 공세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함



5.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관과 기업들도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 아울러 지역의 기관과 기업들도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매우 중요함.

- 소셜미디어의 특징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임

- 매스미디어는 일정한 전문성, 자금, 인력 등이 없으면 메시지를 발신하기 어려웠지만

- 소셜미디어는 글 몇줄, 사진 한 장만이라도 얼마든지 소통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음

- 지역 기업과 기관이라고 미리 의기소침하지 말고, 서울기업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으로 활기차게 접근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메시지를 지역민에게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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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3.01.03 17:23 커뮤니티스토리텔링

커뮤니티스토리텔링(1) - 미디어의 변화와 공동체


오늘부터 짬짬이 '커뮤니티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공동체는 수다를 통해 완성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다를 떨다보면 자연스럽게 규범도, 윤리도, 제도도 확립되어 자연스럽게 계승 발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수다가 없는 공동체는? 대화 없는 가정을 상상하시면 될 겁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겠죠? 이 연재는 "공동체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구와 어떤 수다를 어떻게 떨어야 하나?"에 관한 거라고 보셔도 됩니다. 많이들 읽어주시고, 의견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꾸벅~


세계적인 미디어학자인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란 인간의 확장(Media is the Extension of Man)"이라고 정의했다. 땅을 파야 한다면 삽, 굴삭기 등이 맨손을 확장하는 미디어이고, 달려야 한다면 자전거, 자동차, 기차 등이 맨발을 확장하는 미디어이며, 소리를 외치려 한다면 메가폰, 마이크와 앰프 등이 육성을 확장하는 미디어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면 편지, 잡지, 신문, 방송 등이 웅변을 확장하는 미디어인 셈이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 기능을 확장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 다양한 미디어를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공동체와 관련해서는 '메시지를 지배하기 위한 미디어'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해서는 일정한 규범이 없어서는 안 되는데, 이 규범을 확산하고, 교육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메시지가 공동체 구석구석까지 미칠 수 있게 하는 미디어가 꼭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미디어란 말도 바로 이 '메시지를 지배하기 위한 미디어'를 가리킨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공동체(Community)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하자. 이 글에선 특정한 공동체를 제한적으로 쓰지는 않을 거다. 앞으로 언급할 공동체는 개념적으로 스펙트럼이 꽤 넓다. 부족이나 나라처럼 대규모의 공동체도 있고, 학회나 동호회처럼 소규모의 공동체도 있다. 사회참여와 봉사 같은 비영리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브랜드나 상품, 그리고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영리 공동체도 존재한다. 규모와 내용을 물론하고 일정한 정체성을 갖고 다른 무리와 구별되는 모든 무리를 공동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그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유지 또는 관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할 것이다.


'의식(儀式)'과 '구전(口傳)'


공동체의 규모가 크지 않았을 때는 특별한 미디어가 필요치 않았다. 아니 뒤집어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미디어가 없을 때 공동체의 규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미디어라고 해봐야 일정한 '의식(儀式)'과 '구전(口傳)',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상징'이 전부였을 때, 공동체의 최대규모는 부족사회 정도였다. 


당시에는 우리가 어떻게 시작됐고(곰이 백일간 마늘을 먹어 사람이 됐다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홍익사상 같은 모양으로)를 알려주는지를 이야기란 형태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됐을 것이고, 의식(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같은)이란 형태로 반복됐을 것이며, 상징(삼족오 같은)의 모습으로 공유됐을 것이다. 


이들 미디어가 공동체의 메시지를 구석구석에까지 전달하면서 비로소 공동체의 정체성은 형성됐을 것이다. 공동체의 권력도, 그래서 제의를 관장하는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부족공동체 대부분이 제정일치사회라는 건 제의를 관장하며 이야기를 발신하는 계층이 공동체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문자의 등장


하지만 문자라는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구전에 의존하던 메시지가 '기록'되기 시작했고, 매우 '정확하게' 메시지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내용도 신화처럼 간단한 형태에서 벗어나 제법 복잡해질 수 있었고, 분야도 다양해질 수 있었다. 부족을 훨씬 뛰어넘는 '나라 공동체'가 등장한 것도 활자 미디어의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권력의 변화도 당연히 뒤따랐다. 제의와 이야기를 관장하던 그룹이 독점하던 공동체의 권력은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로 나뉘었다. 이른바 학자 또는 관료 그룹이 등장했다. 당연히 제의와 정치도 분리됐다. 이른바 제정분리사회. 나라 공동체에서도 이런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과거 같은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인쇄술과 잡지의 등장


인쇄술은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기술이 등장하면서 소수 엘리트에게 한정됐던 '해독력'은 계급을 초월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활자를 지배했던 계층은 권력이 나뉘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어 반발하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카톨릭의 위협을 무릅쓰고 독일어로 번역한 성서를 인쇄해서 배포한 건, 그래서 혁명이라 불러줄 만했다. 


인쇄술 덕분에 '잡지'라는 미디어가 등장했다. 잡지는 인쇄술을 통해 메시지의 독과점이 허물어졌다는 신호탄이었다. 활자를 다룰 줄 아는 지식인이라면, 계급이나 지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세상을 향해 지속적인 메시지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 '대중화'라 말하기는 어렵다. 인쇄술로 무한복제가 가능해졌다지만, 활자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이른바 상류층으로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잡지를 중심으로 기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종다양한 공동체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념이나 철학, 기호와 새로운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가 잡지를 촉매제 삼아 활발화게 조직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잡지는 처음에는 주로 교회와 협회, 각종 단체 등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행됐다가 뒤이어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동인지와 각종 문예지들이 속속 등장했다.


공동체가 있는 곳에는 늘 잡지가 있었다. 잡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공동체의 정보를 공유했다. 잡지는 이를테면 공동체 구성원에게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관' 같은 존재였다. 내가 잡지를 '소셜미디어의 원형'으로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라디오의 등장과 대중매체 시대


한편 19세기 말 라디오의 발명과 함께 비로소 대중매체, 즉 매스미디어 시대가 열린다. 전파를 타고 전달되는 소리는 굳이 활자 해독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계층은 물론이고 지식유무도 거의 상관이 없었다. 물론 초창기에는 단말기를 보유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었지만 그마저도 함께 모여 듣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매스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동일한 메시지가 지위고하와 유무식을 불문하고 동시에 전달될 수 있는 획기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대중의 눈과 귀는 활자보다는 훨씬 쉽게,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이 대중매체에 집중됐다. 옛날 같으면 건너건너 이야기로 전해 듣던지, 그도 아니면 활자를 해독하며 발신자의 뜻을 이해해야 했다면, 이제는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발신자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매체 환경이 바뀐 만큼 공동체의 주도권도 빠르게 재편됐다. 라디오로 시작된 대중매체의 시대는 텔레비전으로 꽃을 피웠다.


대중매체에 고정된 눈과 귀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자본과 권력도 함께 집중됐다. 공동체를 지배하고 싶은 권력과 자본은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싶어 했고,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했다. 미디어를 장악해 메시지를 독점하고 싶었던 거다.


한편 대중매체의 출현은 공동체에겐 지독한 악재가 됐다. 저마다의 메시지로 저마다의 공동체를 꾸려가던 움직임이 위기에 봉착했다. 고작 잡지 미디어에 의존하던 공동체는 매스미디어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공동체의 활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사라지는 공동체도 속출했다. 운 좋게 대중매체의 조명이라도 받아야 그나마 활기를 띠는 정도가 됐다.


수평적 미디어, 인터넷의 등장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 매스미디어와는 완전히 다른 수평적인 미디어, 인터넷이 등장했다.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별도의 '관문'이 있냐없냐에 있었다. 매스미디어는 송출하는 주체와 콘텐츠 생산자가 방송국이란 형태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대중은 매스미디어에 일률적으로 연결되어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밖에 없다. 방송국이란 문지기가(작가든, 피디든) 선택한 콘텐츠가 아니면 미디어를 탈 수 없다. 따라서 그 방송국 하나만을 지배하면 메시지를 독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터넷은 장악이나 독점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구나 생산할 수 있고, 누구나 소비할 수 있다. 굳이 방송국이란 거간꾼을 거치지 않아도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가 가능하다. 이런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는 2000년대 초 P2P(Peer to Peer) 서비스를 통해 극명하게 표현됐다. 별도의 중앙 서버 없이도 각자의 컴퓨터 하드끼리 네트워크로 연결돼 음원 파일을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었다. 매스미디어만 바라보고 있던 기존의 음악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결국 시장주도권을 내놓고야 말았다.


2000년대 초 대한민국의 콘텐츠 시장을 봐도 수평적 미디어의 힘이 어마어마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초고속 통신망과 함께 플래시애니메이션이라는 툴이 통용되면서 '마시마로', '뿌까', '우비소년', '졸라맨' 등의 새로운 캐릭터가 쏟아져나왔다. 


본래 애니메이션은 최소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필요하고, 또 방송에 반드시 걸려야 흥행할 수 있는 매우 '무거운' 콘텐츠였지만 플래시란 툴이 보급되면서 혼자서 별도의 제작비 없이도 애니메이션 하나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가벼워졌다. 특히 초고속 통신망 덕분에 수많은 이용자들이 손쉽게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결과가 바로 '새로운 캐릭터'였다.



'엽기적인 그녀'로 대표되는 인터넷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소설가가 되려면 각 언론사나 문예지가 주최하는 신촌문예류에 응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문학계 원로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아야 비로소 대중과 소설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환경은 그런 '관문'을 생략해버렸다. 인터넷에 접속한 대중은 어느 공모전 당선작인지를 따지지 않고, 그저 재밌는지 없는지만 따졌다. 그 결과 신춘문예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청소년 작가가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하면, 영화로 제작돼 흥행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처럼 수평적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특정 계층이 더 이상 메시지를 독점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굳이 특정한 계층에 속하지 않더라도, 특정 관문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특정 스펙을 쌓지 않더라도 원하는 메시지를 누구나 발신할 수 있고, 또 직접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디어가 민주화되면서 메시지 또한 민주화되었다고 할까?


개인의 눈부신 활약에 비해 공동체는 이 변화된 환경을 기회로 활용하는 데 썩 성공적이질 못했다. 기민하게 움직인 게 홈페이지를 만드는 정도였는데,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과 관리 부담이라는 벽에 부딪혀 그것을 공동체의 미디어로 활용하는 데는 대부분 실패했다. 공동체에게 인터넷은 그저 낯선 환경이었다.


인터넷 포탈의 반동


최소한 한국 인터넷은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며 수평적 미디어로서의 매력을 스스로 포기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소수 포탈 사이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수평적이어야 할 인터넷환경은 다분히 수직적으로 변해갔다. 방송을 타지 않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 것과 같이 포탈에 검색이나 노출되지 않으면 인터넷에서 없는 취급을 받았다.


더구나 포탈들은 음악, 영화, 쇼핑 등의 핵심 서비스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하고, 기존 서비스에 브랜드를 빌려주는 형태로 수수료를 챙기기도 했다. 이처럼 포탈들이 다양한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개입하면서 각 분야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당연히 활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특정 포탈이 한국 인터넷을 장악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앞서 소개한 2000년대 초반의 활기차고 발랄한 캐릭터와 신인 작가들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콘텐츠뿐만이 아니다. 1999년의 소리바다나 아이러브스쿨 같은, 세상사람들을 놀래킬 혁신적인 서비스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수평적이었던 인터넷의 각종 기회와 활력들이 포탈 중심으로 수직화되면서 종적을 감춘 셈이다.


포탈이 지배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카페' 정도를 만들어 운영하는 정도였다. 그나마 카페는 홈페이지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렸다. 운영자가 부지런하면 꽤 활성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디어로서는 한계가 분명했다.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자기의 메시지로 세상과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카페는 그래서 공동체의 미디어가 될 수 없었다.


소셜미디어와 공동체의 기회


하지만 새로운 기회가 공동체에 주어졌다. 2009년 11월에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비로소 상륙하면서, 새로운 수평미디어인 소셜미디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소셜미디어가 기존의 인터넷과 다른 점이라면 콘텐츠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이란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웹환경 자체가 사람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많다. 단순히 새로운 서비스가 하나 등장한 게 아니라 웹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훌륭한 콘텐츠'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보를 뒤졌다면, 이제는 '친구가 추천하는 콘텐츠'를 함께 공유하며 수다를 떨기 위해 인터넷을 한다는 말이다. 


앞서 수평적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가 민주화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기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콘텐츠 중심의 웹환경에서는 뜻하지 않은 장애요소도 만만찮았다. 우선 수많은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메시지를 선별해내는 작업이 난해해졌고, 익명성에 숨어 악성루머와 악플 등이 기승을 부리며 인터넷 환경을 오염시켰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과도한 범람은 그래서 신디케이션 비즈니스를 잉태했고, 그 과정에 한국의 인터넷 대중은 포탈 중심의 수직 구조화를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중심으로 웹환경이 재편되면서 기존 웹이 가졌던 부작용은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중심의 웹에선 콘텐츠 중심의 웹에선 존재하지 않던 '신뢰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신뢰라는 자산은 콘텐츠 선별에 들어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킬 것이고, 그만큼 생산적인 활동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소셜미디어가 공동체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정한 조건이나 신념, 혹은 기호를 중심으로 신뢰 네트워크가 바로 공동체의 정체성이 될 텐데,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미디어가 바로 소셜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인쇄술에 기반한 잡지 미디어가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촉매역할을 했듯이 사람 중심의 소셜미디어도 다양한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훌륭한 촉매가 될 수 있다. 


아울러 기존 인터넷 환경과 또 다른 점은 소셜미디어의 진입장벽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다. 홈페이지의 경우에는 폼나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시스템을 유지보수 관리하는 이슈가 공동체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반면 소셜미디어는 140자의 글, 사진 한 장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대중매체처럼 고도로 훈련 받아야 비로소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맘만 먹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미디어다.


사실 자본과 첨단기술로 무장한 매스미디어가 지배하던 시절 공동체는 사실 속수무책이었다.  운 좋게 매스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으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던지, 근근히 연명하는 운명에서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매스미디어 이전의 잡지미디어처럼 공동체가 구성원은 물론 세상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독자적인 매체를 만들어줄 수 있게 됐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수많은 공동체들이 아직까지 이 사실을 모르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가 인용해서 유명해진 말을 한 번 패러디해본다.


"미디어는 이미 공동체에 와있다. 다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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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1. 최근 서울시에서 소셜미디어센터(SMC)를 열었다고 하던데요, 혹시 보셨나요?


-  네, 이달초부터 운영을 시작했음

- 현재 서울시 명의로 42개의 소셜미디어 계정이 운영되고 있다고 함

- 트위터만 30개이고, 페이스북 5개, 미투데이 4개, 블로그 3개, 시장 명의로 2개

- 이 모든 계정을 하나의 사이트에서 보고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 핵심 개념임

   ※ 서울소셜미디어센터 : http://social.seoul.go.kr



2. 어떻게 구성이 돼 있고, 내용은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 화면 중앙에 두 줄의 타임라인이 형성, 왼쪽이 주황색, 오른쪽이 회색 줄

- 좌측에는 시민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던진 질문이나 민원이 올라오고, 우측에는 그에 대한 서울시의 공식답변이 달리는 방식

- 아래쪽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티스토리블로그 등 4개 카테고리를 보여주고, 각 채널별로 제기된 민원과 응답현황 실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함


- 특기할 만한 사항은 두 가지, 첫째는 민원을 제기한 내용과 답변 내용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

- 예전에는 민원을 낼 때 실명인증을 거쳐 까다롭게 올리면, 당사자만 보고 당사자끼리 소통하는 방식, 관리자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었음. 하지만 SMC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 눈에 내용을 볼 수 있게 함

- 두 번째는 민원 내용과 답변 내용 모두에 ‘추천’과 ‘댓글달기’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 민원과 답변의 질을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평가하게 한 것임

- 이런 시스템은 향후 민원인이나 답변공무원 모두를 자발적인 평가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걸로 기대함




3. 구체적인 사례 한 두 가지 좀 소개해주시겠어요?


- 예를 들면 이런 내용임


“시장님 여기는 노량진동 노량진초등학교 근처입니다. 어제는 한밤의 도로공사로 새벽 두시에 깼습니다. 오늘 밤도 공사가 계속됩니다. 주택가에 인접한 도로를 왜 한밤에 공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답변은 아직 올라와 있지 않은데, 이럴 경우 민원부서가 바로 해당부서에게 연결해 답변을 빨리 달도록 채근하게 됨

- 더구나 민원 내용과 답변 내용 모두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허투루 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음

- 그밖에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공사기간이 지나치게 길게 책정됐다든지, 길가 어디가 지나치게 지저분하다든지, 정류소 관리실태가 엉망이라든지, 이런 내용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음



4. 민원을 처리해야 할 공무원 입장에선 보통 고역이 아니겠는 걸요?


- 실시간성이 급격하게 확장됐고, 또 행정과정 또한 급격하게 투명해졌기 때문에 민원을 응대해야 할 공무원 입장에선 적지 않은 고충이 따를 것으로 예상됨

- 이 부분 때문에도 서울시는 ‘민원처리규정’ 자체를 뜯어고치고 있는 중

- 신속한 응대를 위해 제도적으로나 인력적으로 재배치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됨

- 아울러 이젠 공무원분들 모두 소셜미디어는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것임



5. 서울시가 시도했으니 전국적으로 확대되겠죠?


- 보통은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됨

- 소셜미디어 자체가 트렌드이니 지자체들도 서울시 사례를 따라 갈 걸로 예상됨



6. 소장님 보시기에 아쉬운 점은 없나요?


- 지나치게 민원처리 중심인 게 아쉬움

- ‘미디어센터’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단순히 수동적인 민원처리에 머물러서야

- 실제로 시장의 시정 철학, 핵심 아젠다 등을 시민들에게 던지고, 토론하고, 검증받고 공유하는 그런 적극적인 미디어센터로 진화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음

- 아울러 꼭 시정이 아니어도, 시민들이 여기서 시민들을 상대로 자기 이야기를 건네고, 소통할 수 있는 개방적인 미디어플랫폼을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음

- 어쨌든.... 전국의 다른 지자체들도 서울시가 이만큼 했으니, 딱 그만큼만 따라하지 마시고, 이 서울 사례를 바탕 삼아 좀 더 진보한 소셜미디어센터를 만들어내는 지자체가 나왔으면 좋겠음


프로그램 : KBS 창원 제 1라디오(FM 91.7 MHz- 진주는 90.3)
생방송 경남 2부
방송시간 : 매주 월~ 금 오후 5시 50분~ 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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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1. 오늘은 무슨 얘기를 나눌까요?


- 요즘 대선이 핫 이슈. 그리고 소셜미디어에서도 대선 이야기가 연일 쏟아지고 있음

- 최근에 한 기업에서 “18대 대선 유권자 미디어 이용행태 예측보고서”를 발표했음

- 거기에 보면 유권자의 40%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선관련 정보를 얻을 거라고 답변



2. 40%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다면, 상당히 큰 비중인 것 같은데요, 소셜미디어 종류별로는 어떻게 결과가 나왔나요?


- 페이스북이 72.4%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옴. 트위터가 35.4%, 블로그가 27.9%로 조사

- 하지만 조사 시점이 8월이라고 하니, 지금 조사해보면 이보다 훨씬 높아졌을 거고, 대선이 열리는 12월에는 더 영향력이 커질 거라고 판단됨



3. 페이스북이 압도적으로 높네요. 그럼 후보들 입장에서도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해야 하겠는데요? 후보들이 잘 사용하고 있나요?


- 일단 페이스북만 놓고 비교...

- 박근혜 8,900명 구독, 반응하는 이 4,000명 정도

- 문재인 43,000명 구독, 반응하는 이 19,000명 정도

- 안철수 67,500명 구독, 반응하는 이 26,600명 정도

- 숫자만 놓고 보면 안철수가 가장 많은 영향력

- 내용적으로 보면...

- 후보 행보를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 동영상

- 후보의 연설문 게재(문재인), 공약 브리핑(박근혜), 번개공지(안철수)


-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수준도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음

- 박근혜의 수첨 메모 사진, 문재인의 광해 관람후 눈물, 안철수의 캐리커쳐 이벤트

- 캠프 담당자도 자꾸 하다보니 서서히 감을 잡는다는 느낌이 듬




4.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인물과 정책일 텐데요, 소셜미디어에서 감성적인 소통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그 부분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까요?


- 현 시점에서 소셜미디어는 일종의 보완재 역할이라고 생각함

- 각 캠프에서 소셜미디어를 다루는 분들이 아직 능숙하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충분히 전달 못하는 측면이 있음

- 꼭 성명서나 정책발표문 같은 형식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정책과 비전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시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만큼의 역량은 안 되는 것 같음

- 예를 들면 스토리텔링을 가미한다든지, 드라마나 다큐 형식을 차용한다든지... 소셜미디어의 문법에 맞게 재구성해서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임

- 하지만 그 정도의 준비가 된 캠프는 없는 것 같음. 따라서 기존처럼 기성 미디어를 통해 상당부분을 전달하고, 이를 보완하는 매체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판단됨

- 특히 위기관리 측면에서 현재의 소셜미디어는 매우 중요함

- 예를 들어 불리한 기사와 여론 때문에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면, 자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자기 입장을 지지자들에게 충분히 알림으로써 능동적으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음

- 이를 위해서라도 각 캠프에서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음



5.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소셜미디어에 정치 이야기가 너무 많아져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도 많다고 하던데요, 여기에도 좀 에티켓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대선에선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할 수 있고, 그걸 소셜미디어에 표현할 수 있음

- 하지만 편가르기는  참 어리석은 짓. 소셜을 통해 그동안 축적한 자산을 한방에 다 날릴 수도...

- 가장 기본적인 에티켓이라면 역시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 생각과 주장은 자기 공간에서 하되 이 역시 독백이나 설교가 아니라 ‘대화’라는 걸 명심해야 함

- 상대방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 고치려고 드는 사람은 소셜미디어에서 퇴출 후보 0순위임

-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쫓아가 댓글 등으로 공격하는 것..

- 참고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경우 악성 댓글이나 스팸을 남발하는 사람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으니 스트레스 받으며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음


프로그램 : KBS 창원 제 1라디오(FM 91.7 MHz- 진주는 90.3)
생방송 경남 2부
방송시간 : 매주 월~ 금 오후 5시 50분~ 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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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18 10:29 야! 소셜 좀 해!

이 연재는 청년들이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을까 하는 제안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지향점은 결코 ‘소셜미디어 전문가’가 아니다. 소셜미디어의 기능을 빠삭(?)하게 섭렵한 ‘기능인’을 키우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신 이 책은 ‘스토리텔러’를 지향한다. 세상과 공동체를 향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기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바로 그런 스토리텔러를 목표로 한다. 어떤 상황, 어떤 조건이든 자기 색깔을 지키며 이 세상에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그런 주체적인 스토리텔러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쓴 것이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우리 시대의 리더는 스토리텔러”라고 했다. 여기서 스토리텔러란 단순히 재담꾼을 말하는 건 아니다. 연설 잘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그들에게 희망의 그림(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지 않을까? 명확한 자기 메시지를 갖고 있으면서, 소통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바로 스토리텔러인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세계관과 윤리를 세우는 행위


본래 스토리텔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선사 시대에는 공동체의 제사장이나 무당에게만 그 역할이 주어졌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즉 신화나 설화는 공동체가 견지해야 할 세계관이 됐고, 또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구전을 통해 공동체에 확산됐는데,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 매체가 등장하면서 스토리텔링의 헤게모니는 기록을 관리하는 학자들에게로 이동한다.  기록을 관리한다는 건 기억을 장악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주관적인 기억력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객관적인 기억, 즉 기록에 바탕을 둔 사회로 진화한 것이다.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객관적인 기록이 갖는 힘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20세기에 등장한 대중매체, 즉 매스 미디어 시대는 미디어 자체가 압도적인 스토리텔러였다. 사람들의 눈과 귀는 매스미디어에 고정됐고, 그것이 보여주는 세상이 실제 세상의 전부인 걸로 착각할 정도가 됐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이들은 하나 같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싶어 했다. 권력이 그러했고, 자본도 그러했다. 이런 시도는 21세기인 지금도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와 함께 매스 미디어와 대비되는 인터넷 시대가 열린다. 매스 미디어에 집중됐던 스토리텔링 역할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수평적으로 분산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학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지성 분야도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집단지성이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진화의 열매로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매우 혁명적인 변화다. 인류 역사상 이런 평등한 기회가 개인에게 주어진 적이 없었다. 예전 인터넷에선 목소리로만 말했다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마이크와 앰프로 떠들고 있다. 훨씬 강한 전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심지어 기존 매스 미디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이외수 선생은 여느 언론사보다 많은 130만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웬만한 국가 인구보다 많은 5,200만명의 페이스북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표가 우리 모두 이외수 선생이나 레이디 가가 같이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대중적인 스타가 되자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우리 모두가 ‘제대로 된 스토리텔러’가 되자는 것이다.


미국의 소셜미디어 전문가인 로렌 피셔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소셜미디어가 스토리텔링의 기술(art)로 진화하고 있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셜미디어가 단순히 인맥 쌓는 수단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기술이라고 정의한 건 정말 탁월한 통찰 아닌가.


자, 이제 이렇게 정리하자. 소셜미디어는 수단이자 도구이다. 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이 달이라면, 소셜미디어는 손가락이다.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봐서야 되겠는가.


스토리텔링은 삶을 편집하는(editing) 활동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말자. 스토리텔링이 핵심이라고 해서 무슨 작품활동을 하자는 말은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보면 ‘편집활동’이다. 그날그날의 상황과 장면, 그리고 생각과 아이디어를 소셜미디어에 ‘편집’해서 소통하는 활동 말이다. 스쳐지나간 수많은 장면 중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골라내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며, 다양한 이야깃거리 중에서도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발굴하는 것, 이 모두가 편집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당부하자. 이처럼 일상을 스토리텔링, 즉 편집해야 하는 이유는 ‘눈속임’이 아니라 ‘발견’을 위해서라는 점을 꼭 기억하자. 남의 눈을 속여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진가를 제대로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해리포터를 쓴 조안 롤링은 2008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그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가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셜미디어를 하든, 스토리텔링을 하든 결국 자기 인생을 위해 하는 거다. 이 점 잊지 말자. 



※ 그동안 연재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 인사 올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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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16 11:13 야! 소셜 좀 해!

크리스챤 베일이 주연한 영화 '이퀼리브리움'(2002)을 보면 제3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전체주의 사회 ‘리브리아’가 등장한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은 범죄와 전쟁이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됐다고 규정하고, 철저하게 그것을 통제한다. 이를 위해 모든 시민은 매일 감정을 억제하는 약물인 프로지움을 복용해야 한다. 그리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동이든 혐오든 그 어떤 감정이라도 이끌어내는 문화예술품을 접해서는 안된다. 소설도, 그림도 그래서 철저하게 은폐된다.


하지만 감정은 본능이다. 억지로 누른다고 눌려지는 게 아니다. 마치 나치 치하의 레지스탕스처럼 감정을 추구하는 비밀결사조직이 만들어지고, 또 그들을 뒤쫓는 비밀경찰이 등장한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는 감정의 굴곡 없이 평정한(Equilibrium) 것처럼 보이지만, 지하에는 여전히 감정을 표출하고 사는 사람들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낯설지 않다. 영화가 나온지 10년이 지난 이 땅 대한민국은 오히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리브리아’에 갈수록 근접하고 있는 것 같다. 


'리브리아'에 근접하고 있는 한국사회


기성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하려면 개인의 특성과 감성보다는 사회(정확하게는 기업)가 요구하는 점수가 필요하다. 학벌에, 학점에, 토익점수에, 그리고 기타 자격증 등의 객관적인 물증을 요구한다. 다행히 기성사회 편입에 성공하더라도 승승장구하려면 철저하게 개인의 색깔은 숨겨야 한다. 개인의 꿈과 취향, 그리고 신념 따위는 일단 접어둬야 한다. 그리고 조직이 원하는, 회사가 기대하는 용도를 채워주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취업을 위해 자기 소셜미디어 계정을 ‘조작’하는 내용의 특강이 대학가에서 열리고 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취업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기를 숨기고 또 조작하라는 메시지였다. 자기 계정에서 자기를 숨긴다는 것, 리브리아에서 프로지움을 복용하며 자기 감정을 통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웃어도 울어도 안 되는 리브리아 시민과 취업을 위해 자기 존재를 은폐해야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 중 누가 더 불행한 걸까?


영국의 저명한 교육운동가인 켄 로빈슨 경은 2010년 TED 강연에서 교육이 산업모델에서 농업모델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산업모델이란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모든 과정을 표준화 또는 획일화시킨 것을, 농업모델이란 지역과 토양, 그리고 기후에 맞게 영농방법을 다양화시킨 것을 말한다. 즉 개인의 재능, 열정과 상관 없이 획일적인 교육을 시킬 건지, 아니면 각자의 재능과 열정에 맞춰 다양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그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거의 사용 못하고 있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평생동안 자기 재능을 모르고 있거나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기가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상당히 많이 만났어요. 세상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일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평생 그 일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자기 일을 사랑해서 다른 일하는 건 상상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부류 같지가 않아요. 실제로는 극소수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저마다 타고난 재능들로부터 사람들을 유리(遊離)시키는 악(惡)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인적자원은 자연자원과 마찬가지로 깊이 묻혀있곤 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발굴해내야만 하죠. 쉽게 찾을 수 있게 드러나 있질 않아요. 그래서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지금껏 교육이 그런 기능을 할 거라고 믿어왔습니다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를 못했어요.”


로빈슨의 말처럼 자기 일을 사랑해서 다른 일은 상상도 못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다. 어쩌면 그들은 일본의 괴짜 뮤지션처럼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대다수는 자기와 맞지 않은 일을 운명처럼 감내하며 불행 속에 살아야 할까? 로빈슨은 교육이 그 기능, 즉 각자의 재능과 열정에 맞는 일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일을 해줄 거라고 믿어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그는 교육의 ‘혁명’이 필요하고, 획일적인 산업모델이 아닌 다양한 농업모델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미 획일적인 산업모델로 교육 받아 사회진출을 눈앞에 둔 청년들은 어떡해야 하나? 나의 재능과 열정이 어디쯤에 묻혀 있는지 몰라 무엇을 어떻게 발굴해야 할지도 모르는 청년들은 어떡해야 하나?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농업모델의 교육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미 버스를 놓쳤으니 운명에 맡겨야 하는 걸까?


소셜미디어는 자기 재능을 발굴할 도구


이 책을 쓴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교육이라는 버스를 놓쳤어도 포기하지 말자. 언제 올지 기약도 없는 새로운 교육 버스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말자. 뛰어난 지도자가 불현듯 나타나 청년들이 처한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것을 기대하지도 말자. 그 시간에 차라리 직접 나서자. 닥치고 시작하자.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자기를 다시 조율하고, 인생의 비전을 새롭게 세우자. 


물론 소셜미디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미디어가 될 수 있다. 세계관을 키우고, 자기를 발견하며, 전문성을 쌓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마침내는 저마다의 꿈이 저마다의 현실이 될 수 있게끔 소셜미디어가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여럿이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뜻이 워낙 좋아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혼자의 꿈’을 어떻게 ‘여럿의 꿈’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지 그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혼자의 꿈을 여럿에게 알리는 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운이 좋아 기자의 눈에 띄는 방법이 거의 유일했다. 기왕이면 대서특필이 되고 후속보도가 이어질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개인의 꿈이 공동체의 꿈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그래서 실제 훌륭한 꿈을 가진 사람보다 언론에 접근할 수 있는 로비력을 갖춘 사람이 더 크게 다뤄지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꿈은 있어도 운과 줄이 달려 기자 만나기 어려운 사람에겐 그림의 떡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는 그런 제약마저 제거했다. 더 이상 자기 꿈을 세상에 알리는 데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 저마다의 꿈, 저마다의 재능에 집중해보자.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면 끈질기게 발굴하자.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열정을 일깨워보자.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소셜미디어로 소통하자. 저마다의 꿈이 저마다의 현실로 둔갑하는 그 짜릿한 경험을 놓치지 말자.

 

저마다의 꿈을 저마다의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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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15 09:56 야! 소셜 좀 해!

2007년 즈음 모 정부기관에서 잠깐 동안 음악산업팀장을 맡았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음악시장에서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편중 현상은 대단했다. 지금과 다르다면 K-Pop 열풍이 전세계가 아닌 아시아권에 머물렀다는 정도? 어쨌든 음악은 죄다 10대를 위한 것이었다. 그나마 원더걸스의 ‘텔미’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아이돌을 아끼는 삼촌팬이 막 등장할 시점이었다.


고민이었다. 편식이 몸에 나쁘듯 문화도 한 쪽으로 편중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 전체를 봐서도 그렇지만, 제각각의 취향을 가진 소비자도, 메이저가 아닌 음악을 추구하는 인디 뮤지션들도 형편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동체의 다양한 문화 욕구가 채워지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행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한 괴짜 뮤지션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그래서 나는 일본 음악시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은 인디음악시장이 훌륭하게 발달해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전체 음악시장의 50% 정도를 인디음악이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이돌은 아이돌 대로, 인디는 인디 대로 나름의 음악생태계를 만들어 제법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런 일본 음악생태계를 벤치마킹하려고 세미나를 기획했다. 전문가 두 사람을 초청했는데 그 중 한명은 일본 최대의 인디음악 유통사이트인 'mF247'에서 오랫동안 인디 뮤지션을 발굴하고 프로모션해온 다카하시 야스히로 프로듀서였다. 세미나에서 다카하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어느 날 mF247에 등록하기를 원하는 한 뮤지션이 음악을 들고 왔다. 수십년간 온갖 인디음악에 귀가 단련된 다카하시가 들어도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도대체 이런 음악을 누가 듣겠나' 싶은 생각이 솔직히 들었다. 다카하시는 그 뮤지션을 되돌려보냈다. 하지만 다시 찾아왔다. 사이트에 올릴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국 판단은 듣는 사람 몫이다 싶어서 별다른 홍보 없이 올려놓았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음악에 반응했고, 이후 음반제작으로까지 이어져 CD 판매량이 2만 장을 넘겼다. 콘서트는 대박이 났다. 이 과정을 지켜본 다카하시는 깊은 반성을 했다. 그가 직접 한 말이다.


"저는 그 과정을 통해 누군가가 어떤 음악이든 하고 싶어 한다면 그 음악을 듣기 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그와 같은 괴짜 음악가도 있고, 그런 음악에 호감을 느끼는 감상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없다는 데 있다. 괴짜 음악가와 감상자가 어떡해서든 만나야 반응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할 텐데, 이들을 이어줄 통로, 즉 미디어가 없었던 거다. 반면 일본에는 mF247과 같은 미디어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국민성 타령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본래’ 획일적인 걸 좋아한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사실 한국과 일본의 이런 차이는 국민성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 때문에 나타나는 거라고 봐야 한다. 다양한 뮤지션이 다양한 감상자를 만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가 이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저마다의 꿈에 팬 커뮤니티가 받쳐준다면?


장황하게 일본의 괴짜 뮤지션 이야기를 한 것은 이 시대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그에게 빗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괴짜 뮤지션이 자기 음악을 고집하는 것처럼 청년들도 자기만의 세상, 자기만의 인생을 꿈꾸고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그 괴짜 뮤지션이 사는 곳이 한국이냐 일본이냐에 따라 삶의 해법은 달라질 것 같다. 


먼저 괴짜 뮤지션이 한국에 산다면? 현실은 팍팍하다. 음악은 음악이고 생계는 생계다. 생계수단을 먼저 확보한 다음에 자기 음악을 추구하는 게 안전하다. 두 가지가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초지일관 자기 길을 가는 선배들도 없진 않지만, 고달픈 현실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길을 나선 선배들을 만나봐도 격려보다는 만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가 일본에 산다면? 음악이 생계가 되는 삶에 한 번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소개된 mF247뿐만 아니라 그와 유사한 다양한 플랫폼에 노크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일본이라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가 기대하는 감상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기에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음악을 지지해주는 감상자를 10명에서 100명으로, 100명에서 1,000명으로 늘려갈 수 있지 않을까?


마케팅 전문가들은 ‘팬을 1,000명 확보하면 사회운동(movement)으로 전환된다’고 말한다. 취향을 같이 하는 1천명이 모이면  단순히 개인 취향의 합이 아니라 사회적인 움직이는 힘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1,000명의 팬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면, 괴짜 뮤지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의 음악이 그에게 ‘직업’이 되지 않을까? 당장 떼돈은 아니더라도 자기 음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소셜미디어, ‘소일거리’거나 ‘무기’거나


이 땅의 청년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꿈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혼자만의 것이라면, 한국의 괴짜 뮤지션처럼 생계 대책부터 마련해놓고 꿈은 취미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공유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오랜 시간 동안 전문성을 축적해 사회적인 역량을 키워간다면, 앞서 제안한 것처럼 ‘평생직업’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 소셜미디어는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다.


처음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공간을 초월해 전세계인들이 연결되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도 획일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마치 라디오나 TV 같은 매스미디어처럼 인터넷을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연결됐다. 국경을 초월해 취향 따라 연결되기도 했고, 지역을 초월해 신념으로 모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이제는 개인이 기성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발신할 수 있게 됐다. 저마다의 메시지가 저마다의 수신자를 찾아가는 수평적인 미디어가 등장한 것이다. 전문가의 감수와 편집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매스미디어의 장비와 노하우를 빌리지 않아도 된다. 발신할 콘텐츠만 있다면 혈혈단신으로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소셜미디어는 단순한 소일거리도 될 수 있지만, 쓰기에 따라 ‘무기’도 될 수 있다. 소위 미디어 전문가들이 편집하여 보여주는 세상에 수동적으로 얹혀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세상을 편집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강력한 장비를 손에 쥔 것이다.


칼에도 종류가 많다. 과일 깎는 과도, 회 뜨는 회칼, 로마병정이 썼던 단검, 일본 무사가 썼던 일본도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한 칼이 존재한다.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쓰는 사람에 따라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또 사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크기만큼 소셜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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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09 11:43 야! 소셜 좀 해!

소셜미디어를 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수시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인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객체가 아니라, 주체, 즉 인맥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각성이 있어야 한다.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인맥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ㅇ 소통의 중심을 잡자

 

먼저 뻔한 얘기부터 하자. 주체라는 건 '내가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주체적 인맥이란 나를 중심으로 한 인맥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남이 만들어놓은 인맥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인맥지도를 새로 그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심'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구름잡는 소리로 '심리적인 중심'을 잡으라는 뜻이 아니다. '소통의 중심', '소통의 베이스캠프'를 견고히 민들어라는 뜻이다.

 

페이스북을 예로 든다면, 본인의 '타임라인(프로필)'과 본인이 운영하는 '페이지'가 소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블로그를 중점적으로 운영한다면 그곳이 소통의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중심이 되는 주체적인 인맥이 형성될 수 있다. 


그렇다고 거점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소통의 거점은 명확히 하되 소통이 일어나는 현장은 가리지 말자. 친구의 블로그든, 담벼락이든, 페이지든, 그룹이든 소통이 필요한 곳에서는 충분히 소통하자. 다만 하루 종일 바깥에서 놀다가도 잠은 자기 집에서 자야 하듯이, 본인의 소통 거점이 어디라는 것만큼은 명확하게 인지하자.

 

실제로 SNS 이용자 중 상당수는 자기 계정을 거의 돌보지 않는다. 어떤 이는 뉴스피드(페이스북)나 타임라인(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좋아요'하거나 '리트윗'하는 데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자기가 속한 그룹(페이스북)에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주고받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도 한다. 정작 본인 계정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이웃집 참견하느라 자기집 건사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할까? 


이런 분들은 설사 SNS 안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극히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진다든지 하면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소셜미디어 안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아예 계정을 닫는 수도 생긴다.

 

그렇다면 '중심을 잡고' 소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본인의 생각과 말을 꾸준하게 '발신'하면 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운영한다면, 하루에 최소 2~3건 이상은 자기가 직접 글을 올리자. 블로그를 운영한다면 1주일에 두 건 이상은 포스팅을 하자. 이런 페이스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지 그 누구도 어찌 할 수 없는 '자기 자산'이 생긴다.



ㅇ 오프라인으로 확장하자

 

올해 초 미국에서 한 삽화가 주목을 받았다. 페이스북 친구를 2,000명 넘게 보유하고 있던 한 사람의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달랑 두 명밖에 오지 않은 그림이었다. 페이스북에서 표현되는 친밀감과 현실과는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였는데, 이 그림에 공감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줄을 이었고, 국내에서도 여러 군데서 인용된 적이 있다. 작가가 실제 있었던 일을 그린 것인지 단지 풍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그림이 상징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소셜미디어에서 수다 떨고 친밀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의 인맥이 풍성하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SNS에서만 이뤄진 관계라면 거기에 '거품'이 끼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주체적인 인맥을 만들려면 오프라인을 지향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라면, 오프라인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보자. 직접 만나서 말을 섞어보면 그 관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온라인상에서 모호했던 것들이 실제 만남을 통해 상당부분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소셜미디어 소통 또한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역으로 기존의 오프라인 관계를 소셜미디어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도 추천한다. 관계에 따라 온라인의 실시간성이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겠지만, 오프라인의 여러 가지 제약(시간 및 공간 등) 때문에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에 소셜미디어가 훌륭한 보완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프라인 친구들이 소셜에서 만나게 되며 "네가 이런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고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만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오프라인 관계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뜻.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양쪽 공간이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훨씬 성숙해질 것이다.

 

ㅇ 일을 벌이자

 

인맥의 완성은 '경험'에 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나서 서로의 심사를 교환하고, 또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눴다고 해서 의미 있는 인맥이 되는 건 아니다. 만약 거기까지라면 그저 '아는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인맥이 되려면 공통의 '경험'이 필요하다. 함께 여행을 하든, 함께 땀을 흘리든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한 경험이 있을 때 그 결속은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앞서 언급한 '평생직업' 부문과 이 '프로젝트'를 연결지어서 생각해보자. 평생직업을 만들어갈 때 동행할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하지만 막막할 거다.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할까? 일단 소셜미디어의 '미디어'성에 주목해보자. 미디어란 신경망과 같다. 어떤 분야의 정보와 스토리가 구석구석 맴돌게 해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신문, 잡지, 방송 등 기존의 올드미디어가 수행했던 비즈니스를 참고해도 좋다. 정보나 콘텐츠를 소통하면 독자(시청자)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그 커뮤니티 규모에 따라 다양한 비즈니스가 펼쳐질 수 있다. 본인이 직접 커뮤니티를 상대로 사업을 펼칠 수도 있고, 본인이 아니어도 그 커뮤니티를 활용(광고나 마케팅 등)하고 싶어하는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12년 1학기에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 '소셜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 강의를 한 적이 있다. 3~4명이 한 팀이 돼 각 팀별로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방송국을 설립하고 한 학기 동안 실제 운영해보는 프로젝트였다. 팀별로 라면이야기, 클럽문화, 동네패션왕, 옛날 다방, 데이트코스, 독립커피숍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나왔다.  이들 중 실제 사업하는 분들의 관심을 받고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낸 팀도 있다.  


물론 '미디어성 프로젝트'만이 승산 있다는 말은 아니다. 비즈니스성 프로젝트만이 의미 있다는 뜻도 아니다. 봉사나 자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봉사 프로젝트를 만들어 뜻 맞는 소셜친구와 함께 지속적으로 활동을 펼쳐보면 어떨까? 특정 아티스트나 예술사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전문으로 다루는 공간을 만들고 친구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해보면 어떨까?


중요한 건 '의기투합'과 '과정의 소통'이다. 특히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보자.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폼 잡지 말고, 솔직하게 세상과 소통해보자. 이 과정은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친구간의 결속력도 강화시켜주겠지만,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아울러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단순한 인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생 동지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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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2012.10.08 09:16 야! 소셜 좀 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외로워서도 그렇지만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다양한 위협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를 '연결'하는 전략을 오래 전부터 선택했다. 역사책에 나오는 씨족과 부족이란 형태부터 오늘날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맥'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끊임 없이 연결되려고 애써왔다. 아니, 인맥은 생존본능이다!

 

인맥은 생존본능!

 

간단하게 역사(?)를 짚어보자. 농경사회에선 '혈연'이 최고였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집성촌은 혈연을 기반으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한 최고의 모범사례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도시화가 진행됐고,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너도나도 고향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도시는 온통 낯선 사람들로 넘쳐난다. 낯설다는 건 그만큼 위협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연'이 주목 받는다. 같은 고향출신이면 일단 '우리편'으로 판단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을 기반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언덕이 되어준다.

 

그런데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되면서 그 기능 또한 매우 복잡해진다. 교육수준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역할에 차등이 생기고, 그 위치에 따라 권력과 부도 차별화된다. 그러다 보니 '학연'이 급부상한다. 비슷한 교육수준을 가진 같은 학교 출신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며 또 다른 사회안전망을 만들어내는 거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계급'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인맥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안전을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안전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학연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긴 하다. 대체로 초등학교 동창이 순수한 친구 사이에 가깝다면, 고등학교 동창은 사회적인 결사체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등학교 인맥은 정치환경에서 매우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다. 개인의 정치성향을 떠나 같은 고교 출신이면 적극적인 빽이 돼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혈연', '지연', '학연'은 지금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인 '인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이런 전통적인 인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그들은 또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인맥을 형성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다. 종교는 혈연, 지연, 학연을 초월하는 신앙이라는 신념체계로 완전히 새로운 인맥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또 하나의 훌륭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가 다는 아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와 행복 또는 이해관계를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인맥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각 지역마다 자리잡고 있는 해병전우회, 휴일마다 학교운동장에서 땀흘리는 조기축구회와 사회인야구단, 직장 내 기수별 모임, 맘 맞는 여성끼리 계모임 등등 우리는 수동적으로 인맥에 속하기도 하지만, 능동적으로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가 움직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끊임 없이 관계를 창조해낸다.

 

소셜미디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00년에 우리나라서 아이러브스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2012년에 페이스북이 세계 10억명의 사용자를 돌파한 것도 이처럼 '연결되려는 본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미 사회엔 개인이 연결된 인맥이 포화상태일 것 같은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소셜미디어에 또 열광할까? 새로운 연결에 왜 다들 흥분하는 걸까? SNS라는 것이 '연결되려는 본능'의 어떤 지점을 자극한 것일까?

 

주체가 되기 어려운 오프라인 인맥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SNS가 등장하기 전의 인맥들, 일단 이들을 '오프라인 인맥'이라고 통칭하자. 오프라인 인맥의 공통점이라면, 언제나 '소수가 주체이고 다수는 객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오프라인 인맥들에서 '주인공'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오프라인 인맥에서 주체가 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충성도를 보여야 한다. 공식적인 행사에는 필참해야 하고, 아울러 멤버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세심한 활동도 뒤따라야 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원칙은 이들 인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치 공무에서와 같이 개인적인 사정은 뒤로 하고 조직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비로소 주체라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인맥이 주는 효용은 주체에 가까울수록 극대화되고, 객체로 밀려날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SNS는 그 어떤 개인도 인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다. 오프라인 인맥과 비교하면 SNS는 거의 판타지라 부를 만하다. 시간적 한계도 거의 없고(동시에 수천명과 소통할 수 있다), 공간적 한계도 제로에 가깝다(전세계 어디라도 만남에 제약이 없다). 신분이나 학력, 외모 등 오프라인 인맥을 가늠하는 각종 울타리들도 SNS에서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각종 제약을 초월해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기존 오프라인 인맥 사이에서 갑갑함을 느끼던 사람이라면 통쾌함을 만끽할 만하다.

 

하지만 완전한 것은 없다. SNS가 주체적인 인맥 쌓기를 가능하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SNS에서 만든 인맥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주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SNS가 '도피처'가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도피처로 삼았다간 유사한 실패 되풀이 가능


앞서 열거한 것처럼 SNS에는 기존 오프라인 인맥이 줄 수 없는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한다. 그래서 충분히 몰입할 만도 하고, 매진할 만도 하다. 하지만 오프라인 인맥에서의 실패를 위로 받기 위해 SNS에 몰입한다면, 머지 않아 오프라인에서와 유사한 실패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인간관계'는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SNS에 대한 각종 부작용이 보고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임처럼 중독증과 의존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FOMO(fear of missing out)'에서 보듯이 잊혀질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서 늘 행복한 사람들 소식만 접하다보니, 그렇지 못한 자기 신세를 보며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페이스북 사용자도 얼마든지 관계 속에서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초반에서 SNS라는 용어보다 '소셜미디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SNS는 정형사의 손에 들려 있는 발골칼과 같다. 잘 쓰면 고기를 뼈에서 분리해 부위별로 날렵하게 잘라내지만, 잘못 쓰면 자기 몸에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골칼을 들었다 해서 누구나 뼈와 살을 분리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형사가 돼야겠다는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칼의 임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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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나리봇짐 괴나리봇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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