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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나리봇짐
문화, 그리고 문화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습지처럼 생태계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메일은 botzzim@gmail.com, 트윗주소는 @timshel02, 페이스북은 www.fb.com/botzzim, www.fb.com/local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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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2. 09:11 지역과스토리텔링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진나라 이후 무려 2,0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된 중국제국은 1911년 신해혁명을 계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혁명을 이끈 쑨원은 1912년 1월 공화정인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임시대총통에 취임한다. 쑨원이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의 자리를 양보한 뒤 몇년간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도도한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 즈음 인천에 조성된 청나라 조계지에는 산동지방 출신 화교들이 많이 정착해 있었다. 1908년에 인천으로 건너와 ‘산동회관’이란 이름의 객잔(客棧)을 연 우희광(于希光)도 그 중 하나였다. 황제정을 끝장낸 신해혁명 소식은 물론 인천의 화교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기뻐했을까, 슬퍼했을까, 희망을 가졌을까, 낙담을 했을까? 


그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최소한 산동회관 주인 우희광에겐 희망찬 소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가게 이름을 ‘공화춘(共和春)’으로 바꾼다. ‘공화국의 봄’, 즉 아시아 최초로 공화국이 된 중국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공화춘은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이름을 날린다. 다름 아닌 ‘짜장면’ 때문이다. 짜장면은 1950년대에 연안부두에서 일하는 화교 노동자들을 위해 특별식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비싸고 오래 걸리는 기존 청요리 대신 간편하고 값이 싸면서도 요기도 되는 음식이 바로 짜장면인데, 처음 개발된 곳이 바로 공화춘이었다.


이달 초 인천에 들렀다 잠시 차이나타운을 찾은 적이 있다. 마침 요기를 해야 해서 망설이지 않고 공화춘을 찾았다. 지상 4층 건물을 모두 쓰는 공화춘은 한마디로 으리으리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꼭대기층으로 안내한다. 인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메뉴판을 받아 보니 ‘공화춘 짜장면’이 1만원. 딱 3초 고민한 뒤 그것으로 주문했다. 짜장면 원조집에 와서 1만원을 아낀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짜장 형식으로 나온 공화춘 짜장면에는 돼지고기 대신 해물이 가득 들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길이 남기고자 인증샷을 찍고 페이스북에 자랑삼아 올렸다. 이내 좋아요 숫자가 올라가며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천 사는 친구의 댓글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동네 사람들은 그 '공화춘'에서 안먹어요. 주로 초입에 있는 신승반점 간짜장 먹습니다. '공화춘' 설립자의 손녀분께서 운영하시는 곳인데…”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나름 벼르고 별러 맛본, 그것도 무려 1만원이나 투자한 공화춘 짜장면인데, 그게 진짜가 아니라 짝퉁이라니, 진짜배기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니! 다른 인천 분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길 왜 갔냐? 거긴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알고보니 진짜 공화춘은 1983년에 이미 문을 닫았다. 음식점 장사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정부의 화교 재산권 제한 정책에 발목이 잡혔다고 한다. 이후 20여년간 폐허로 방치되던 ‘원조’(이런 접두어를 붙여야 한다는 게 서글프지만) 공화춘 건물은 2006년에 등록문화재에 등재됐고, 2010년에 인천 중구청이 매입해 짜장면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50미터 떨어져 영업중인 짝퉁 공화춘을 운영하는 회사의 정식명칭은 ‘(주)공화춘프랜차이즈’다. 한국인 이현대씨가 2002년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2004년에 지금의 자리에 본점을 열었다고 한다. 국민음식 짜장면이 만들어진 곳이니 상표 욕심을 낼 만도 했을 거다. 물론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지역민들은 이곳을 외면하고 있었다. 공화춘을 이야기하는 지역민의 이야기에는 진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인천시가 만약 방치된 공화춘 건물을 몇 년만 더 일찍 문화재로 등록하고 매입했더라면 어땠을까(혹시 뒷북친 건 아닐까)? 특허청이 만약 공화춘의 본래 뜻이 중국 신해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다면 과연 상표출원을 허락했을까? 공화춘을 브랜드로 쓰고 싶은 한국인 사업가가 우희광 선생의 유족과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이끌어낼 방법은 과연 없었을까?


모든 지역에는 저마다의 공화춘이 있다. 손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는 음식점이 있다.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역의 브랜드, 지역 문화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민의 마음이 시간만 흐른다고 얻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업자와 손님의 손에만 맡겨둘 일도 아닌 것 같다. 소중하다 여긴다면 함께 지켜나갈 지혜도 모아야 하지 싶다. 우리 지역의 공화춘은 안녕하신지 문득 궁금해졌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에 실렸습니다. http://goo.gl/54Tm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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